사람은 한 번 죽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의 빛은 각자 다 다릅니다. 사람이 서로 다르듯이. 어둠 자체로 끝날 수도 있고 빛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흔히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듯이 호랑이 가죽보다 몇 백 배나 비싼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름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역사 속에 일어났던 수많은 전쟁 속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을 잃었을까요? 하나같이 이름 없이 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름 없이 세상을 떠납니다. 길게 또는 짧게. 누구나 이 땅에서 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물론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 소망입니다.
살고 싶은가? 집에 가고 싶은가? 당연히 가고 싶지요.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다. 저들과 싸워 이겨서 여기를 빠져 나가면 된다. 저들은 돌아가려고, 우리는 모두 못 돌아가게 죽이려고 한 판의 싸움이 벌어집니다. 맞습니다. 이미 끝난 전쟁이기도 합니다. 돌아가도록 내버려두어도 됩니다. 그러나 저들이 7년 동안 온 나라를 헤집으며 이 땅에 저지른 짓들을 기념으로 가져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기회가 되면 또 다시 짓밟을 꿈을 꾸게 될 것입니다. 꿈도 꾸지 못하도록 확실한 승리를 거두어야 합니다. 개인적인 복수가 아닙니다. 이 나라의 장래를 기약해두는 보장입니다. 장래 있을 법한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 지금 희생하고자 합니다.
하기야 저들의 야욕은 꾸준히 키워져 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잘 아는 대로 더 철저히 당합니다. 그 때의 그 치욕이 교훈이 되지를 못하였습니다. 얼마나 마음 아프고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 후 한 세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요? 얼마나 경계를 잘 하고 있습니까? 물론 지금은 과거처럼 총칼로 쳐들어오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보다 새로운 방법을 가지고 그 탐욕을 채우려하는지 모릅니다. 가까운 이웃이지만 그래서 더욱 경계를 해야 합니다. 조상들이 피로써 지켜준 땅입니다. 수많은 백성이 이름 없이 자기를 버리며 지켜준 산천입니다. 곳곳마다 피로 얼룩지지 않은 곳이 없을 것입니다. 다시는 넘보지 못하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나라를 지킨 것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백성이었습니다. 위기 때마다 나타나준 위대한 장군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복입니다. 이 조그만 땅덩이지만 그 어느 나라에도 먹혀서 동화되지 않고 반만년 역사를 유지하여 왔다는 것은 말 그대로 기적이고 복입니다. 어느 임금이 한 일도 아니고 뛰어난 정치인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이 땅을 떠나서는 있을 곳이 없다는 절박함을 안고 사는 백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자기 모은 돈을 싸들고 어디든지 도망가서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힘없는 백성은 다른 곳으로 도망갈 힘도 돈도 없습니다. 여기가 끝입니다. 살아도 여기, 죽어도 여기입니다. 그 때 그 백성의 힘을 모아줄 장수가 있었다는 것이 복입니다.
도와주겠다고 온 명나라 군사도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살 사람들이 아닙니다. 쫓겨 가는 자기네만 돌아갈 처지가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그렇습니다. 구태여 나서서 희생을 감내할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왜군 장수 ‘고니시’의 판단이 맞습니다. 그 약점을 알기에 화친을 제의한 것이지요. 명나라 도독 ‘진린’도 그런 처지에 있기는 합니다. 충분히 전과도 올렸고 구원군으로서 할 만큼도 하였습니다. 일부러 나서서 희생을 덧댈 일이 없습니다. 철군하는 왜군의 길을 열어주어서 이대로 전쟁을 끝내고 자기네 나라로 회군한들 누가 비난할 일은 없습니다. 더구나 자신의 자존심도 세워주었으니 더 이상 나설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전쟁을 확실하게 끝내려는 것입니다. 이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확실한 대가를 지불하게 하려는 것이고 두 번 다시 발들일 생각조차 갖지 못하도록 만들려는 것입니다. 자신의 아들이 죽임을 당한 것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가 아닙니다. 그런 사정은 아마도 휘하 장병들 속에서도 얼마든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당장의 편안함으로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들 수는 없는 일입니다. 자신을 바쳐서라도 끝장을 내려 합니다. 명나라가 도와주지 않아도 혼자서라도 치르겠다는 결의를 보여줍니다. 진린이 일단 관망할 것을 택하여 멀찍이서 지켜봅니다. 그리고 고니시의 잔꾀에 놀아났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해상 전투 장면만 시간 반이나 됩니다. 그것도 야간전투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화려하게 나타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전함의 포진과 전진, 여기저기 포탄 터지는 장면은 더욱 뚜렷하게 그리고 짜릿하고 신나게 전개됩니다. 앞부분의 각 진영의 상황도 결코 지루하지 않습니다. 지휘하는 장군의 생각이나 전략들이 서로 엉키어 벌어질 전투를 예견하게 만들어줍니다. 이야기의 긴박성을 첨가해주는 것이지요. 이 해상전투 장면들을 육지에서 촬영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대단한 기술입니다. 물론 각 진영의 장수들의 통솔하는 장면들 그리고 그 나라 언어 그대로 구사하는 것이 너무 실제 같습니다.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Noryang: Deadly Sea)를 보았습니다.
첫댓글 마치 영화를 보는듯한 논평이네요
감사합니다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복된 주말입니다. ^)^
잘보구 갑니다
감사합니다. 복된 한 주를 빕니다. ^)^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듯 관람평이 너무도 깔끔하고 시원합니다
작지만 강한 나라 ~~^^
잘 읽고 갑니다
비슷한 영화려니 단순히 생각했는데 님의 평을 보고 ~~ 보러 가야겠어요
감사합니다!
과찬의 말씀 감사합니다. 보셔도 실망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