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들 저물었으니
(마태복음 14 : 13-21)
복음서에 다 기록이 되어 있는 이야기 5병 2어입니다.
그 당시 얼마나 충격적이고 잊지 못할 대 사건 이었는지 복음서 저자들은
앞 다투어 이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축사하시고’
축사에 해당하는 희랍어로 ‘율로게센’입니다.
이 단어가 또 쓰인 곳이 한 군데 더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 자리입니다.
마지막 운명 전에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떡을 떼어
축사하시고, 잔을 들어 축사하시고..
오늘 본문도 같은 단어입니다. ‘율로게센’
우리나라 말로 번역할 때 축사라고 번역을 했는데,
더 좋은 번역은 ‘감사하다’ ‘찬양하다’의 의미입니다.
축복기도의 의미보다는 감사 기도의 의미가 강한 단어입니다.
그 때는 빈들이었고, 저물 때 이었습니다.
상황 쳐다보면 감사할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먹여야 할 사람은 5000명, 손에 있는 것은 1인분 식사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잡으시고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감사하며 그 예물을 드린 손길을 축복하시고, 그 음식 자체를 축복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감사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제자들에게 떼어 주며 사람들 앞에
내놓도록 하셨습니다.
‘축복기도’ 로 해석합니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축복기도 하신 거 맞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사람들을 축복하는 내용뿐이 아니라 손에 놓인 빵과 물고기를 축복하시는 내용이고, 동시에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그리고 그것을 넉넉하게 만드셔서 모든 이들을 먹이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내용이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1. 빈들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벳세다 들녁에서 생긴 일이다. 주님의 말씀을 듣느라고 5천명이나 되는 무리들이 허기져 있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명하셨다. 세가지 변명이 나왔다. 빌립이 빈들을 보며
여기는 빈들인데 어떻게 하겠는가?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어떻게 먹을 것을 구하겠는가?
200데나리온(약 6백만원)도 부족합니다.
이는 인간의 3대 변명이다. 장소적 문제, 시간적 문제, 재정적인 문제입니다.
빌립이 본 것은 무엇입니까? 빌립은 그 광야를 보았습니다. 인적이 없고 오직 사막같이 막막한 광야, 그 광야만 보았습니다. 그 다음 빌립이 본 것은 많은 수의 군중을 보았습니다. 도저히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수가 거기에 모인 것을 보고 그는 마음속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 다음 빌립이 본 것은 자기 주머니에 돈이 없음을 보았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말씀하기를 "빌립이 대답하여 가로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먹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돈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저는 돈이 없습니다" 그 다음 빌립이 본 것은 떡 살 곳이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적은 저물고 빈들에서 일어납니다. 너무 늦었다고 할 때 사람의 힘으로 어찌 할수 없을 때 저물녘 빈들이라는 곳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흐릅니다.
다들 안된다고 할 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안된다고 할 때 되도록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2. 있는 것 예수님께 드릴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똑같은 제자로서 똑같은 광야에 있었는데 안드레가 본 것은 빌립과는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광야지만 광야 중에 서 있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었습니다. 물론 광야입니다. 그러나 광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광야 가운데에 있는 예수님을 집중해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물론 많은 군중이 있습니다. 이 많은 입을 먹이려면 굉장한 돈이 필요하겠지만 그러나 군중 가운데에 서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안드레는 한아이의 도시락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찾아냈습니다.
빌립은 할 수 없는 것만 바라보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안드레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빌립은 없는 것을 바라보고 안드레는 있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빌립은 부족한 것을 바라보고 안드레는 만족한 것을 바라보았었습니다. 빌립은 현실을 바라보았지만 안드레는 현실 가운데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마귀는 환경을 보고 낙심하게 만들지만 하나님은 믿음으로 보고 잘될 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성도들이 무엇을 바라보면서 기적을 맛보아야 할까요?
1) 죄에 대한 용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죄의 문제는 종교적 의식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돈으로도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해결할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데 있습니다. 십자가 상의 그리스도를 바라볼때 죄를 용서받는 확신과 기쁨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성령충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죄 용서함을 받은자에게 부어 주시는 성려의 충만함이 임할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예수께서 주시는 성령의 생수를 마시십시오.
3) 부요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성도들도 아브라함처럼 복받을 수 있습니다.
내 삶속에 <안된다, 힘들다, 손님이 없다, 대는 일이 없다>등 이런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게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요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도적이 오는 것을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도 12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겨해 주시는 분이지 모자라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풍부해 져야 합니다.
3. 축사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5병2어를 들고 감사하셨습니다. 축사하셨습니다.
어느 교회의 여자집사님이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입을 굳게 다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된 것은 힘든 가정을 이끌고 고생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히 남편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싹터 올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집사님이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집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남편집사님은 형편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제안을 했습니다.
"노트를 한권 사다가 아내에게 주세요, 그리고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남편집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 들고 아내에게 갔습니다.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
여자집사가 그 노트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남편집사님이 방에서 나간 후 한창동안 생각에 잠긴 여자집사님은 한줄, 두줄, 감사제목을 써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평범하고 사소한 일부터, 그리고 감사할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날도, 또 그다음날도, 그러자 점점 통증은 사라지고, 다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암세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비다.
신앙생활이란 “항쉬범”입니다. 항쉬범이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입니다. 항쉬범이란 기뻐하지 않아도 기뻐할수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할수 없는데 기도할수 있는 것이고, 감사할일이 없는데도 감사할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에 감사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스바냐 3장 17절에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과거, 현재, 미래를 감사하세요.
성경에는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내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에벤에셀이 있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임마누엘이 있고
하나님께서 미리 주셨다는 여호와 이레가 있습니다.
좋은 것을 얻고 싶으면 미리 감사하세요.
신명기 16장 15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힘껏 감사하세요.
시편 139편 14절에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아나이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것이 신묘막측합니다. 신묘막측하다는 것은 “신통하고 요하여 감히 헤아릴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감사가 회복되어질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빈들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있는 것을 가지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빈들이고 저물었을때에도 꿈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나의 문제 해결해 주실 것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감사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