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서 5장 9-10절
(4) 전혀 생각하지 못한 변수!
여기까지 원고로 작성한 후 저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10절에 관한 원어와 번역본 그리고 주석들을 읽다가 기겁을 했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한 변수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9절을 설명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문제는 10절입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이 절은 세 가지가 서로 대조됩니다. "원수" : "화목하게 된 자", "죽으심" : "살아나심", "화목" : "구원"이 그것입니다. 1번과 3번은 그 의미가 확실합니다. 문제는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입니다. 이 문구의 구체적인 의미가 매우 알기 어려운 난제입니다. 왜냐하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세 가지 선택을 우리에게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1) 이 문구의 "그"는 하나님인가 예수님인가?
이 문구에 나오는 "그"는 누구일까요? 저는 오랫동안 당연히 예수님을 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표준새번역성경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한 일입니다."
처음엔 황당한 번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문법적으로 가능한 해석입니다. 구조만 본다면 하나님을 뜻한다는 것이 더 옳아 보이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전반절의 "그의 아들"이라는 표현에 나오는 "그"가 일관성 있게 사용되려면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더구나 "살아나심"의 원어는 부활이 아니라 "조에" 즉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뜻한다고 결론 내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죽으심"과 "살아나심"이 서로 대조를 이룹니다. 또 9절에서도 앞뒤 모두 예수님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도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합니다.
2) 이 문구는 '생명 안에서'인가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인가?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10절)의 원어를 직역하면 "생명 안에서"입니다. 헬라어직역성경도 "생명 안에서"로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보는 개역개정성경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는 의역입니다. 그러나 둘 다 문법적으로 가능한 번역입니다. 그리고 어느 것이 옳은지 선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단 둘 다 설명해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생명 안에서"가 옳다고 가정하고 설명해보겠습니다. 개역개정성경은 "안에서"를 "말미암아"로 번역했습니다. 헬라어 "엔"은 "~안에, ~에, 위에, ~와 함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공간적 의미로 쓰일 때는 "~으로, ~의 힘으로, ~에 의하여" 혹은 "~을 인하여, ~때문에"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때문에 토머스 슈라이너는 "전치사 '엔'(말미암아)은 수단 혹은 칭의의 비용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의 살으심으로 말미암아"는 9절의 "그로 말미암아"에 병행하는 것이므로 수단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로 번역한 것은 바른 번역입니다.
바른성경 로마서 5:10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분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니, 화목하게 된 우리는 더욱 그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만약 이 번역이 옳다면, 우리는 이 구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1-2절에 기초해볼 때, 이 구절의 대상은 의롭다 함 받았을 뿐 아니라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이에 근거, 후에도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 구절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3-4절입니다. 신자가 환난에 올바로 반응해야 환난이 인내를, 인내가 연단을, 연단이 소망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올바로 반응할 것을 당연시하고 소망을 이루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10절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궁극적인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부활이 주는 새 생명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것을 당연시하고 궁극적인 구원을 확신하는 말을 한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무조건적인 궁극적인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방금 설명한 것처럼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10절)를 "생명으로 말미암아"로 이해하더라도 꼭 궁극적인 구원이 무조건 확실하다는 뜻이 되지는 않습니다. 참으로 구원받고 새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의 궁극적인 구원이 확실하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의 근거가 아닙니다.
3) 이 문구는 부활이 주는 생명인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변호인가?
앞에서 저는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를 "생명 안에서"로 직역한 것이 옳다고 가정하고 이 문구를 설명해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번역과 일치하는 해석을 하는 주석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에 근거하여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우기는 자들의 주장을 파하기 위해 그 번역에 근거한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이번에는 개역개정성경처럼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라고 의역한 것이 옳다고 가정하고 이 문구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저는 이렇게 번역한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전반절의 '그의 죽으심'과 후반절의 '그의 생명'이 대조되고 있으므로 생명을 부활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즉 '조에'가 부활을 뜻한 용례는 없지만, 문맥 안에서 '그의 죽으심'과 '그의 생명'이 서로 대비되고 있으므로 부활로 번역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 번역이 옳을 경우, "살아나심"은 생명이 아니라 부활을 뜻하게 됩니다. 그래서 "살아나심"의 의미는 확실해지지만, "부활로 말미암아"가 과연 무슨 뜻이냐는 새로운 숙제가 생겨납니다. 그리고 다시 가능한 해석이 둘이 됩니다.
첫째로, 부활이 주는 새 생명을 가리킨다(롬6:4)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견해는 원어를 "생명 안에서"로 직역한 것과 중복됩니다. 그러므로 다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둘째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변호를 뜻한다(롬8:33-34)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 견해도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설명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설명이 아니라 두 해석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려워도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고민과 연구를 엄청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설명해드린 대로 예수님의 변호를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해석에 대한 부연설명을 조금 해드리겠습니다.
로마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부활이 주는 새 생명이 주어졌어도 계속 죄를 짓고 불순종하면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경고가 6장과 8장에 나옵니다. 먼저 6장의 두 구절을 비교해보십시오.
로마서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6:15-16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다음으로, 8장에 나오는 성구들을 비교해보십시오.
로마서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12-13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6장에서 바울은 새 생명을 언급했으나, 그러므로 궁극적인 구원이 확실하다는 논리를 전개하지 않고 도리어 버림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또, 새 생명은 성령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므로 8장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너를 해방했다고 말한 후에도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고 하지 않고 버림받을 수 있다고 경고를 했습니다. 이것은 부활이 주는 새 생명을 얻은 자라도 계속 죄를 짓고 불순종하면 버림받을 수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5장 10절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를 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생명을 뜻하는 것으로 보고 그래서 더욱 궁극적인 구원이 확실하다고 말한다면 이와 모순입니다. 더구나, 바울이 말하고 있는 대상이 같습니다. 그런데 6장과 8장에서와 달리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를 "부활이 주는 새 생명을 가지고 있으니 너희가 더욱 구원을 받을 것이다!" 즉 그것 때문에 궁극적인 구원이 확실하다는 의미로 썼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가 부활이 주는 새 생명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의 변호를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미 설명해드린 로마서 5장 9-10절에 대한 저의 해석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의 뉘앙스가 부활 자체를 가리키는 것 같고 변호까지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점이 의문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반절의 "그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가 죽음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효과를 뜻하는 것처럼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도 부활로 인해서 발생하는 효과를 표현한 것이라고 볼 때, 더구나 전 절에는 "그로 말미암아"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변호를 뜻한다고 보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