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 ‘덕(德)’ ‘천(天)’자의 내함
우리가 정식으로『대학』과『중용』을 강해하기 전에, 무엇보다 먼저 중국문화에서의 세 개의 중요한 문자의 내함(內涵)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 ‘도(道)’자, (2) ‘덕(德)’자, (3) ‘천(天)’자가 그것이며. 여기다 ‘대인(大人)’이라는 명사의 의미까지 더 보태고 난 뒤에『대학』이나『중용』을 연구하며 읽으면 훨씬 쉬워집니다.
중국 문자는 먼 옛날부터 다른 민족들의 문자와는 달랐습니다. 중국 글자는 사각형 글자[方塊字]로서 인도의 범문(梵文),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더불어 모두 개체의 도형으로써 사유와 언어의 의미를 표현합니다. 그래서 한(漢)나라 시대에 이르러서는 문자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있었으며, ‘육서(六書)’로써 중국 문자의 형성과 그 용법을 설명합니다. 이른바 ‘육서’의 내용은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를 포괄합니다. 이것은 한학(漢學) 중에서 가장 빼어난 소학(小學)과 훈고(訓詁)의 범주에 속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문적인 학문 분야이므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여기에서 많이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한학(漢學)’은 한(漢)나라 시대의 문자학(文字學)과 고증학(考證學)을 가리키는 말이지, 현대의 외국인들이 중국의 문학이나 학술에 대해 모두 ‘한학(漢學)’이라고 지칭하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가 고서를 읽으려면 먼저 ‘도 · 덕 · 천’ 등의 글자와 ‘대인’이라는 단어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제기한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한나라 시대의 문자학인 소학과 훈고와도 관계가 있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춘추전국시대 이후의 제자백가 서적을 연구하고자 할 때, 특히 유가와 도가의 서적을 읽을 때는, 이상의 몇 글자를 서로 다른 어구와 편장(篇章)에서 사용한 함의에 대하여 동일한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사유의식을 갈림길로 끌고 들어가기 쉽고, 그럴 경우 편차가 너무나 큽니다.
도(道)자의 다섯 가지 의미
먼저 ‘도(道)’에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1) ‘도로(道路)’라고 할 때의 ‘도(道)’입니다. 다시 말해서 길을 ‘도(道)’라고 부릅니다. 고서의 많은 주해에서 “도(道)라는 것은 경로(徑路)이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 뜻입니다.
(2) ‘하나의 원리법칙[理則],’ 혹은 하나의 방법상의 원리나 원칙을 농축시킨 명사입니다. 예컨대『역경』「계사전」에서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고 말한 경우입니다. 의약(醫藥)에 있어서의 불변의 원리[定理]는 ‘의도(醫道)’, 혹은 “약물(藥物)의 도”라고 부릅니다. 정치에 이용되는 원칙은 ‘정도(政道)’라고 부릅니다. 군사에 사용되면 ‘병도(兵道)’라고 부릅니다.『손자(孫子)』제13편에서 사용된 한 마디 말인, ‘병(兵)이란 속임의 도이다[兵者, 詭道也].’거나, 심지어 자고이래 이미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구두어인 이른바 ‘도둑질에도 도(道)가 있다[道亦有道]’거나 혹은 ‘천도(天道) · 지도(地道) · 인도(人道)’라고 할 때의 ‘도(道)’자가 모두 어떤 하나의 특정한 법칙을 가리키는 ‘도(道)’입니다.
(3) 형이상 철학의 대명사입니다. 바로『역경』「계사전」에서 ‘형이하를 기(器)라 하고[形而下者謂之器], 형이상을 도라 한다[形而上者謂之道].’고 할 때의 ‘도(道)’입니다. ‘형이하(形而下)’라는 말은 물리세계와 물질세간의 형상(形相)이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인데, ‘기(器)’자가 바로 형상이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물질이나 물리의 형상이 있는 것을 초월한 그 본래의 체성(體性), ‘만상(萬象)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그것은 또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실재하는 유물적인 것일까요? 아니면 추상의 유심적인 것일까요? 이것은 우리의 옛날 조상으로부터 전통적인 답안인데, ‘물질[物]’도 아니고 ‘마음[心]’도 아닙니다, 마음과 물질 두 가지도 역시 그것의 작용 현상일 뿐입니다. 이 무엇이라고 이름 할 수 없는 그것을 바로 ‘도(道)’라고 불렀습니다. 가령『노자(老子)』라는 책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제시한 ‘도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면, 변함없는 절대적인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에서의 도는 바로 형이상으로부터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대학의 도[大學之道]’라고 할 때의 ‘도(道)’ 역시 형이상으로부터 나온 이념입니다.
(4) ‘말을 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고대 중원문화에서는 습관적으로 사용하던 단어입니다. 당신이 중국고전 민간 통속소설들을 좀 들여다보기만 하면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내 천천히 말할 테니 들어보시오[且廳我慢慢道來]’라든지, 혹은 ‘그가 말하기를[他道]’, ‘할멈이 말하기를[老婆子道]’ 등등 정말 손에 잡히는 대로 짚어낼 수 있어서 이루 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5) 한위(漢魏) 시대 이후로 이 ‘도(道)’자는 특정 종교나 학술 종파의 ‘최고의 요지[主旨],’ 혹은 ‘주의(主義)’을 나타내는 대명사와 표식으로 변했습니다. 예를 들어 ‘협의도(俠義道)’나 ‘오두미도(五斗米道)’ 등등이 그렇습니다. 당대(唐代)에 이르면 불가(불교)에서도 그것을 대명사로 사용했는데, ‘도는 평소 날마다 사용하는 사이에 있다[道在尋常日用間].’ 같은 것입니다. 도가(도교)는 더 말할 필요도 없는데, ‘도(道)’자를 오직 도가만이 단독으로 가진 도로 보았습니다. 더 발전하여 송대(宋代)에 이르면 아주 재미있게도, 유가학설 학파의 밖에 ‘도학(道學)’이라는 명사를 따로 하나 세워서 자신들이 ‘유학’이나 ‘유림(儒林)’ 외에, 따로 공맹(孔孟)심법(心法)의 밖에 전해진 ‘도학’의 도가 있다고 생각했으니 어찌 기괴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덕(德)자의 여러 가지 의미
우리 현대인들은 ‘덕(德)’자를 보자마자 자연스럽게 ‘도덕(道德)’을 연상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도덕’이란 단어가 바로 ‘좋은 사람’을 나타낸다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의문이 없으며, 좋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결덕(缺德)’이라고 합니다. 사실 ‘도’와 ‘덕’ 이 두 글자를 한데 연계한 것은 한위(漢魏) 시대 이후부터였으며, 그것이 점차 구어의 습관으로 변했습니다. 특히 당대(唐代)부터는『노자(老子)』를『도덕경(道德經)』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도덕(道德)’은 인격과 행위의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가장 높은 표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오경(五經) 문화에 근거하면 ‘덕이란 얻는다는 것이다[德者, 得也]’라는 또 다른 해석이 있는데, 이미 어떠한 행위의 목적에 도달한 것을 ‘덕(德)’이라고 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상서(上書)』「고요모(皐陶謨)」편의 정의에 따르면 모두 9덕(德), 즉 아홉 종류의 행위 표준이 있습니다.
‘도량이 너그러우면서도 공경 근신하고, 성정이 온화하면서도 우뚝 독립적이며, 성실 무던하면서도 엄숙 장중하며, 일처리 재간이 많으면서도 신중 진지하며, 유순하면서도 굳센 의지로 과단성이 있으며, 대바르면서도 태도가 온화하며, 지향이 높고 멀면서도 사소한 일을 중시하며, 강직하여 아부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됨이 독실하며, 굳세어 굽힐 줄 모르면서도 도의에 부합한다[寬而栗, 柔而立, 愿而恭, 亂而敬, 擾而毅, 直而溫, 簡而廉, 剛而塞, 彊而義].’『상서(上書)』「홍범(洪範)」편에서는 그와는 별도로 3덕에 대해 말하기를, ‘첫째는 정직(正直순한 사람은 정직으로써 대하는 것)이요, 둘째는 강극(剛克 난신적자亂臣賊子는 강함으로써 지배하는 것)이요, 셋째는 유극(柔克 현귀대신顯貴大臣은 부드러움으로써 지배하는 것)이다[一曰正直, 二曰剛克, 三曰柔克].’라고 했습니다.『주례(周禮)』「지관(地官)」편에서는 또 ‘지(知 지혜) · 인(仁 사람을 사랑함으로부터 시작하여 만물에까지 미침) · 성(聖 박식하고 선견지명과 원대한 식견이 있음)· 의(義 일을 마땅하게 처리함) · 충(中 충성. 내심에서 존경함) · 화(和 강함과 부드러움이 알맞음/역주)’의 6덕을 말했습니다.
그밖에 또 ‘덕(德 )’자와 관련된 것이 있습니다. 위진(魏晉) 시대 이후에 불교, 불학의 보급이 ‘보시(布施)’를 제창하며,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를 반드시 자신이 소유한 것으로써 마음을 다해 은혜를 베풀어 중생에게 주어야 비로소 수행의 공적(功績) 기초가 있다고 하였기 때문에, 이로부터『서경(書經)』에 나오는 ‘공덕(功德)’이라고 하는 동의어(同義語) 하나를 받아들여 사용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때로는 ‘덕’자를 말할 경우 습관적으로 ‘공덕’이라는 단어와 한데 이어놓아 덧붙여 설명함으로써 다들 이해하기 편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상고시대의 전통문화에서 ‘덕(德)’자의 내함을 이해하고 난 뒤에, 그것을 귀납시키고 다시 좀 간략화 해서 말해보면 ‘도(道)’자는 체(體)를 가리키고 ‘덕(德)’자는 용(用)을 가리킵니다. 이른바 ‘용’이란 사람들이 생리적, 심리적으로 일으키는 갖가지 행위의 작용을 가리킵니다. 이것은『대학』이라는 책을 연구함에 있어서 특히 가장 중요한 인식입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명덕(明德)’과 ‘명명덕(明明德)’의 대목에 이르러서 모호하고 뒤섞여 분명하지 않게 되기 십상입니다. 왜냐하면 고문(古文)은 간략화를 원칙으로 했는데, 오늘날에 이르러서 중국인의 교육은 문자학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아서, 자기가 자기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옛사람들은 정말 죽어 마땅하고, 자기의 전통문화가 정말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천(天)자의 다섯 가지 의미
‘천(天)’자는 정말로 ‘아이고 하느님!’입니다. 고서를 읽어 가다가 이 ‘천(天)’자를 만나게 되었을 경우, 만약 자세히 연구해보려고 하면 역시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똑같은 ‘천(天)’자이지만 어디에 쓰였느냐에 따라 그 뜻이 다른데, 우리가 이제 그것을 귀납시켜 보면 ‘도(道)’자와 마찬가지로 다섯 가지 내함이 있습니다.
(1) 천문학상 천체의 ‘천(天)’을 가리킵니다. 무량무변한 우주[太空]를 포괄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외국에서는 ‘우주를 비행하다’를 ‘항행태공(航行太空)’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항천(航天)’이라고 말합니다. 그 둘은 결코 다르지 않은데도 각자 문화가 다르기에 용어가 다를 뿐입니다. 이것은 과학적인 천입니다.
(2) 종교적인 ‘천(天)’입니다. 지구 인류의 위에, 어렴풋한 듯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주재자가 하나 따로 있다는 것을 표시하며, 그것을 ‘천’이라고 부릅니다. 상고 이래의 전통적인 습관상 때로는 ‘제(帝)’자, ‘황(皇)’자와 동일한 뜻입니다. 하지만 ‘제’나 ‘황’은 영문을 알 수 없는 그것을 인격화한 것일 뿐입니다. ‘천’자를 사용하게 되면 훨씬 추상적이 됩니다. 의식상에 ‘천도와 인도의 관계[天人之際]’가 있게 되고, 하나의 주재자가 존재한다는 뜻이 자연히 있습니다.
(3) 형이상 철학적인 ‘천(天)’입니다. 그것은 자연과학의 범위에 속하는 해 · 달 · 별이 벌여져 있는 천체를 대표하지도 않고, 종교적인 유심론의 천도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心]도 아니고 물질[物]도 아니면서, 또한 마음과 물질과 그리고 온갖 만상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양(梁)나라 부선혜(傅善惠) 대사가 다음의 시(詩)에서 말한 ‘천’과 같은 것입니다, ‘어떤 것이 있는데 천지개벽 이전에 존재했고, 형상이 없는 것으로 본래 텅텅 비었네. 만물을 만들고 만물의 주재자가 되며, 사계절 따라 살거나 죽거나 하지 않네[有物先天地, 無形本寂廖, 能爲萬象主, 不逐四時凋].’ 간단히 말하면 철학에서 말하는 ‘본체(本體)’로서의 ‘천(天)’입니다.
(4)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천(天)’입니다.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묵인하는 ‘운(運)’ 또는 ‘명(命)’과 관련된 천입니다. 이른바 ‘천리양심(天理良心)’은, 심리 도덕적인 행위상으로 의지하는 정신적인 하늘입니다. 또 ‘곤궁이 극에 달하면 하늘을 부르짖고, 고통이 극에 달하면 부모를 부르짖는다[窮極則呼天, 痛極則呼父母].’고 말할 때처럼 순수한 유심적인 ‘천(天)’입니다.
(5) 자연과학의 범위에 속하는 것으로, 시간과 공간이 맞물려 이어진 대명사로 삼는 ‘천(天)’입니다. 예컨대 1년 365‘일[天]’, ‘오늘[今天]’, ‘내일[明天]’, ‘어제[昨天]’ 및 ‘서쪽[西天]’, ‘동쪽[東天]’ 등등입니다.
요컨대 중국 고서 속에서의 ‘천(天)’자의 이런 몇 가지 차별적인 의미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중용』이라는 책을 연구할 때는 더욱 중요합니다.
(이상은『대학강의』제1편 개종명의 중에서 발췌 번역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