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암벽 손짓하는 '클라이머의 파라다이스'
차라쿠사 지역 6000m급 미답봉에 아리랑브락·코오롱브락 명명 글·사진 김형주 원정대장·코오롱등산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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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브락에서 캠프1을 설치하고 있다. |
파키스탄의 오지중의 오지인 산속마을 후세지역에 위치한 콘두스 산군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지역이다.
콘두스 산군에 있는, 세계 3대 난벽 중의 하나인 K-7(6925m)은 수많은 암벽의 침봉들로 구성된 거대한 암벽이다.
난공불락의 거벽 로체남벽에 버금가는 7000m급의 K-6의 북벽은 아직도 미등으로 익스트림 등반가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화살촉 모양의 침봉 네이저브락(Nayser Brakk)을 위시해 1000~1500m의 대암벽들로 형성된 침봉들이 마치 은하수의 별을 셀 정도로 산재되어 있는 곳, 차라쿠사는 바로 ‘클라이머의 파라다이스’인 것이다.
얼마 전 황금피켈상의 영예를 획득한 미국의 거벽등반가 스티브 하우스는 바로 이곳 차라쿠사 지역에서 K-7의 거벽과 네이저브락, 카푸라 등을 등반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히말라야 고산거벽에서 행해진 혼합등반으로 전 세계의 산악인들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2005년 코오롱등산학교 강사들로 구성된 7명의 원정대가 이곳에 위치한 드리피카(6447m) 정상을 등정한 것이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이번 원정의 목표는 작년 드리피카 정상을 오르면서 눈여겨 보아두었던 6000m급의 미답봉을 등반하는 것이었다.
1여 년간 주변 미답봉에 대한 자료를 수집한 결과, 아직까지 이 봉우리를 오른 기록이 전무하고 등반가치도 높기 때문에 또다시 차라쿠사 지역으로 원정을 떠나게 되었다.
주로 코오롱등산학교 정규반 및 암·빙벽반을 수료한 대원들이 주축이 된 원정대는 등반팀 12명, 트레킹팀 3명 등 모두 15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번 원정대의 주된 목적은 정상에 대한 욕심보다는 히말라야에서 보다 가치 있는 경험을 습득하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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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진캠프에서 바라본 차라쿠사 빙하 지역의 암탑들. 왼쪽부터 패스브락과 하지브락이다. |
아리랑브락·코오롱브락 등 미답봉 등반 시도
예정대로 6월 25일 출발한 원정대는 현지 육로수송과 카라반을 거쳐 7일 만에 드리피카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2~3일간은 고소적응을 하면서 전진캠프를 건설했다.
작년에 비해 적설량이 적은 탓에 캠프1로 가는 첫 관문인 암벽지대 통과가 매우 힘든 상태였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엄청난 낙석 때문에 크레바스 지역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고자 했지만 곳곳에 산재된 크레바스가 더 위험했다.
결국은 종전대로 암벽지대를 횡단하기로 결정, 나와 김만수, 임운종, 최병철, 변재균 대원 등 5명이 2조로 나누어 등반을 하기로 계획했다.
모두들 전진캠프에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오후 8시경에 베이스캠프로부터 무전이 왔다.
오전 11시쯤 같이 올라왔다가 먼저 베이스로 하산한 여성대원 조명현이 아직까지 귀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고심 끝에 실종자 수색을 위해 전 대원이 밤새도록 빙하지대를 수색했다.
다음날 새벽 K-7을 등반중인 영국등반대 2명이 우리의 수색작업에 합류하였으나 오전 8시까지 전혀 성과가 없었다.
낙심과 절망 속에 무거운 발걸음을 베이스로 향해 돌리는 중 조 대원이 베이스에 귀환했다는 낭보가 무전을 타고 교신되었다.
조 대원은 베이스캠프를 지나 상행카라반 중 베이스캠프 바로 전날에 캠핑을 한 안캄(Ankam) 지역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베이스로 올라왔다는 것이었다.
일단 모든 대원들은 베이스캠프에 내려가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재정비를 하기로 했다.
아직도 여러 대원들이 고소적응을 하지 못했고, 전진캠프 상부 암벽지대의 낙석발생에 대해서도 매우 회의적이었으므로 당초의 계획을 변경해 베이스캠프 상부에 위치한 또 다른 미답봉을 등반하며 먼저 고소적응을 하기로 했다.
베이스캠프 상부에 있는 너덜지대를 약 4시간동안 오르니 독스노브(Dog’s knob)가 마치 지척에 있는 듯하다.
4800m 부근에 안전한 장소를 임운종 대원이 발견, 이곳에 캠프를 설치하였다.
하지만 그동안 눈부시도록 화창했던 날씨는 서서히 변하기 시작하며 연이어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가스와 세찬 바람 속에 뿌려대는 진눈깨비는 우리의 등반의욕을 상실케 했다.
이틀 동안 전진캠프에서 기상이 호전되기를 기다리다 캠프1 진출을 위한 정찰등반을 하기로 했다.
나와 박흥철·임운종·최병철 등 4명이 수많은 크레바스 지대를 넘어 루트를 개척해 나갔다.
하지만 결국 넘어가기가 불가능한 커다란 크레바스 앞에서 단념해야 했다.
하산 중에 그동안 쌓인 적설로 만들어진 히든 크레바스에서 박흥철 대원이 추락하기도 했지만 나머지 대원들이 자기제동을 적시에 잘해 대형 참사를 면할 수 있었다.
전진캠프로 귀환해 날씨가 호전되기만을 기다리다 비교적 시야를 분간할 수 있을 정도의 가스를 뚫고 캠프1을 설치하기로 했다.
새로운 루트로 7시간 여 등반을 한 끝에 비로소 캠프를 설치할 수 있었다.
사방이 크레바스 지역이고 곳곳에 숨어있는 히든 크레바스로 캠프2 진출이 어려워졌다.
설상가상으로 계속 쉬지 않고 눈이 내렸다.
비좁은 2인용 텐트에 누워 이틀간을 보내고 나니 체력손실은 물론 식량도 부족한 상태라 최소한의 식량으로 날씨가 호전되기만을 기다리는 수 밖에는 없었다.
우리가 오르기로 계획한 봉우리를 가까이서 보니 아주 가파른 설벽과 암벽으로 형성된 고난이도의 루트였다.
이름 없는 빙하 상부에 위치한 6000m급 3개 봉우리가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는데, 이곳의 빙하는 물론 봉우리들조차 지도상에 표기가 되어있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현지인들의 말로는 다른 원정대들이 이곳에 접근조차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수많은 히든 크레바스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단 캠프2 설치를 위한 정찰을 시도해 5600m 지점까지 등반했다.
미답봉을 세밀히 관찰하였으나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벽이라는 것과 최소한 하나이상 캠프를 더 추가해야 되는 먼 거리라는 사실에 실로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식량이 모자랐기에 더 이상의 등반은 불가능했다.
다음을 기약하고 베이스캠프로 곧 바로 철수하였다.
비록 정상에는 오르지 못하였으나 미지의 지역에서 새로운 미답봉을 발견하고 등반루트 개척과 그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크나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우리는 이지역의 빙하를 아리랑 빙하(Arirang Glacier)라 명명하고 빙하 맨 상부에 위치한 6000m급 3개 미답봉을 아리랑브락-I(Arirang Brakk-I), 아리랑브락-II, 아리랑브락-III라고 지도상에 표기했다.
(하산후 파키스탄 관광성에 브리핑을 하며 제의한 결과 산과 빙하 이름에 대한 우리의 의견을 승낙해 자세한 보고서를 후일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또 이번 등반에는 GP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미답봉 주변지역 조사와 거리·고도 등 비교적 상세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다.
베이스캠프에 귀환하니 스페인 팀이 TV방송을 위해 와있었다.
우리나라도 방문한 적이 있는 8000m급 14좌 완등자 바스크의 후아니토 오이에르자발이 이곳에 왔다는 것이다.
우리 캠프 바로 옆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했는데 별다른 인사는 없었다.
지금까지 해외 고산원정에서 느낀 경험으로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베이스캠프에서는 서로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는데 말이다.
우리보다 먼저 온 영국 팀들도 마치 한 팀처럼 서로의 어려운 점을 도와주고 특히 우리 대원이 실종했을 때 호의를 베풀었다.
그런데 이 바스크의 유명한 산악인은 그 유명세 때문인지 안하무인격이다.
여하튼 나는 먼저 가서 그들을 환영해 주었다.
그런데 그는 다짜고짜 엄씨·박씨·한씨 등을 나열하면서 자신이 8000m 14좌 완등자라고 강력하게 스스로를 격상시키는가하면 일부러 신은 슬리퍼인지 자신의 절단된 발가락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 K2 동계등반을 했다고 자랑한다.
자신의 등반이력을 적은 팸플릿을 주면서 자화자찬을 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산악인으로서의 자세는 전혀 엿볼 수가 없었다.
대원 7명이 가져온 장비와 식량을 80여 명의 포터들이 운송해왔다니 실로 가관이다.
우리가 이곳의 여러 곳을 등반했다는 것을 이미 후세의 포터들에게 들은 그는 나에게 이 지역에 대한 사진과 상세한 정보를 요구했다.
마침 우리 발전기가 오래 전부터 고장이 나서 무전기용 배터리 충전에 문제가 있었기에 나는 그동안 촬영한 사진과 드리피카를 위시한 이 지역에 대한 모든 정보를 기록한 CD를 그에게 주고 우리 발전기 고장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면서 무전기 배터리 충전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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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 빙하 히든 크레바스에 추락한 박흥철 대원을 구조하고 있는 임운종·최병철 대원. |
알파인 스타일 시도했지만 일정부족으로 실패
베이스캠프 철수 예정일은 7월 20일로 이제 4~5일의 시간밖에 없었다.
또 다시 팀을 재정비하여 원래 계획의 목표인 드리피카 빙하에 있는 미답봉을 향해 나와 임운종 대원 둘이서 알파인 스타일로 등반을 감행했다.
2인용 텐트 1동, 8mm 50m 로프 1동, 약간의 고소식을 가지고 17일 베이스캠프를 출발, 전진캠프를 거쳐 상부의 난관인 암벽지대에 도착하니 전보다 더욱 더 눈이 녹아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지형이 모두 변해있었다.
물이 흐르는 암벽지대를 약 60m 등반 한 후 낙석지대를 신속히 올랐다.
20여kg의 무거운 배낭이 전진을 자꾸 방해하는 듯하다.
4900m 부근의 낙석으로 형성된 너덜지대에 텐트를 설치했다.
18일, 수많은 크레바스와 가파른 설벽지대를 넘어 5400m에 도착해 드리피카 우측 하단에 캠프를 구축하니 어느덧 4시가 다 되었다.
오늘 미답봉 설릉을 따라 어깨부분까지 진출을 하지 못하면 예정된 20일 오전 베이스캠프 철수계획에 차질이 온다.
어제부터 이러한 시간부족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계속 베이스캠프로 무전을 교신해보았지만 연락이 되지 않는다.
작년 이곳을 등반할 때는 비록 신호가 약했으나 커다란 문제는 없었는데 이번에 베이스캠프와의 교신이 두절되어 난감하기만 하다.
딱 하루가 부족하다.
다행히도 베이스캠프와 무전교신만 되면 그곳의 대원들을 먼저 철수시키고 우리는 정상에 올라 하루 만에 베이스캠프로 귀환한 후 21일 새벽에 하행 카라반하는 본대와 합류하면 되는데 이러한 상황을 설명할 수 없어 답답했다.
오늘은 시간부족으로 미답봉 설릉 종료지점인 어깨부분까지는 갈 수 없고, 19일 어깨부분에 캠프를 설치한 후 20일 정상에 오른 후 하산 한다면 대원들은 우리를 얼마나 걱정할까 생각하니 정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날씨도 좋았고 체력도 커다란 문제가 없는데 시간부족과 무전통신 두절이 결국은 정상을 지척에 두고 하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7월 19일, 맥 빠진 모습으로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모든 무전기의 전원이 꺼져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스페인대가 무전기 배터리 충전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매일 저녁마다 휘황찬란하게 베이스캠프를 밝혀놓은 그들은 자신들의 발전기 용량에 문제가 있어 충전을 할 수 없다는 구차한 변명으로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 상황은 그렇게 한순간에 종료되었다.
대원 실종, 크레바스에서 추락, 네이저피크에서 낙석을 맞는 등 여러 가지 극한 상황 속에서 행해진 등반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무사했고 산이 주는 너무나도 값지고 소중한 체험들을 제각기 할 수 있었다.
따라서 비록 등정에는 실패했지만 아주 가치 있는 등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그리운 이곳을 언젠가 찾아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