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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병 12 보병 사단의 역사
제12보병사단(第十二步兵師團, The 12th Infantry Division, 별명: 을지부대)은 대한민국 육군의 사단이다. 고구려 시대 장군인 을지문덕의 호를 따서 을지부대로 알려져 있다.
한국군 전력 증강 계획에 따라 미국 9 군단에 배속되어 1952년 11월 8일 창설되었다. 초대 사단장은 윤춘근 준장이다. 경기도 포천시으로 이동한 뒤 12월 10일에 37, 51, 52연대를 예하 부대로 편성받았다. 이후, 미국 10 군단에 배속되어 강원도 인제군으로 옮겨가 미국 45 보병 사단와 교대하여 812, 854 고지를 수비하였다. 연대는 37연대 51연대 52연대 이다.
강원도 인제군 원통 지역에서 미군 유해발굴팀에 의해 발견돼 미국 JPAC(합동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사령부)로 옮겨져종합감식을 받아왔다.
1952년 12월말 미 45 보병사단에서 한국군 12사단으로 전환됐으며 1953년 6∼7월에는 당시 중공군이 두 차례에 걸쳐 대공세를 펼친 접전지역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2. 고지 전투
1952. 11. 8 ; 국군 제12ㆍ15사단 창설
1953. 6. 1 ; 제12사단, 812ㆍ854고지 전투( ~9일 )
주요전투내용은 1952~1953은 고지전투가 많았습니다.
인제지역 고지전투에대한 전사를 찾아봐야겠죠.
3. 윤 대위 전사
2003년 6월의 호국인물
윤길병 대위는 1931년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나 1950년 안동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경주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으며,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육군소위로 임관했다. 임관 이후 1953년 5월까지 제6보병사단 2연대에서 소대장 및 중대선임장교로 사창리전투. 용문산전투에 참가하여 큰 전공을 세웠다.
1953년 1월 대위 진급 후, 윤대위는 같은 해 5월 전방의 전선이 국지전으로 가열되자 제12보병사단으로 전속되었다. 당시 12사단은 동부전선의 요충지 펀치볼 동쪽에 위치하여 강원도 인제지역의 적 접근로를 차단하는 중요한 지역을 방어하고 있었다.
1953년 6월 1일, 제12보병사단 37연대 3대대 10중대장으로 인제군 서화 북방 812고지 방어전투에 참가한 윤대위는 1개대대 규모의 북한군과 5일 동안이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며 진지를 사수했으나 중과부적으로 적에게 포위되자, 투항을 거부하며 부하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후, 자신은 적에게 포로가 되는 불명예를 피하기 위해 권총자결했다. 윤대위의 명예로운 죽음을 목도한 52연대 2대대 장병들은 분격하여 마침내 동부전선의 요충진인 812고지를 역습으로 탈환했다.
정부는 윤대위의 전공을 기려 1951년 12월 전투유공으로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으며, 1953년 7월에는 812고지 전투에서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공훈을 기려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4. 12사단(을지부대) 현재 상황
12사단(을지부대)은 강원도 인제원통에 52, 51, 37 연대 이렇게 3개 연대로 나누며 52연
대는 위에서 말한 서측GOP대대 51연대(향로봉)는 동측GOP대대이구여 37연대는 예비연대인데...훈련 엄청나게 많이 뜁니다. 사단본부와 205사단병원 그리고 헌병대를 제외하고는 원통에서 더 북쪽으로 들어 갑니다. 들어가는도로는 하나밖에 없구여 버스도 잘안다닙니다 종점은 서화리라는 곳이구여 하루에 3번 서화리를 넘어 해안(최전방 휴전선바로밑동네)이라는곳까지 가는 버스도있구 암튼 12사단 지형적으로 위치적으로 별로 안좋은곳에 있습니다
37연대(생각안남) 51연대(5969부대) 52연대(7623부대)
12사단가는 길은 동서울터미널에서 원통가는 버스가있습니다
5. 6 25 주요 격전지
경기:
의정부 전투 :1950년 6월 25일 ~ 6월 26일
문산 전투 : 6월 25일 ~ 6월 28일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 15일 ~ 9월 16일
서울:
서울 수복전1950년: 9월 18일 ~ 9월 28일
충청:
단양전투: 1950년7월 5일 ~ 7월 10일
진천전투 : 7월6일 ~ 7월 10일
이화령전투 : 7월 13일~ 7월 15일
대전전투 : 7월14일 ~ 7월 20일
강원:
춘천 및 홍천 전투 :1950년6월 25일 ~ 6월 30일
강릉 전투 :1950년 6월 25일 ~ 6월 28일
사창리전투 : 1952년 4월 22일 ~ 4월 24일
백마고지전투1952년10월 6일 ~ 10월14일
전라:주요전투 없음
경상:
안동 전투 : 1950년7월 29일 ~ 8월 1일
의성 전투 : 8월 3일 ~ 8월 13일
다부동 전투 : 8월 3일 ~ 9월 22일
마산 전투 : 8월 3일 ~ 8월 13일
영산 전투 : 8월 5일 ~ 8월 19일
안강 및 포항 전투 : 8월 9일 ~ 9월 22일
신녕 전투 : 8월 30일 ~ 9월 15일
영천 전투 : 9월 2일 ~ 9월 12일
1950년
의정부 전투 : 6월 25일 ~ 6월 26일
문산 전투 : 6월 25일 ~ 6월 28일
춘천 및 홍천 전투 : 6월 25일 ~ 6월 30일
강릉 전투 : 6월 25일 ~ 6월 28일
옹진 반도 전투 : 6월 25일 ~ 6월26일
미아리 전투 : 6월 27일 ~ 6월 28일
한강 전투 : 6월 28일 ~ 7월 3일
오산 전투 : 7월 5일
동락리 전투 : 7월 5일 ~ 7월 10일
단양 전투 : 7월 5일 ~ 7월 10일
진천 전투 : 7월 6일 ~ 7월 10일
이화령 전투 : 7월 13일 ~ 7월 15일
대전 전투 : 7월 14일 ~ 7월 20일
영덕 전투 : 7월 16일 ~ 7월 29일
화령장 전투 : 7월 17일 ~ 7월 25일
영강 전투 : 7월 17일 ~ 7월 30일
안동 전투 : 7월 29일 ~ 8월 1일
의성 전투 : 8월 3일 ~ 8월 13일
다부동 전투 : 8월 3일 ~ 9월 22일
마산 전투 : 8월 3일 ~ 8월 13일
영산 전투 : 8월 5일 ~ 8월 19일
안강 및 포항 전투 : 8월 9일 ~ 9월 22일
신녕 전투 : 8월 30일 ~ 9월 15일
영천 전투 : 9월 2일 ~ 9월 12일
인천 상륙 작전 : 9월 15일 ~ 9월 16일
서울 수복전 : 9월 18일 ~ 9월 28일
원산 전투 : 10월 10일
영흥만 소해작전 : 10월 10일 ~ 10월 25일
금천 전투 : 10월 12일 ~ 10월 14일
평양 전투 : 10월 17일 ~ 10월 19일
숙천 및 순천 공수작전 : 10월 20일 ~ 10월 22일
희천 전투 : 10월 23일
초산 전투 : 10월 23일 ~ 10월 26일
중공군 1차 대공세 : 1950년 10월 25일
온정리 전투 : 10월 25일 ~ 10월 28일
운산 전투 : 10월 25일 ~ 11월 1일
정주 전투 : 10월 29일 ~ 10월 30일
비호산 전투 : 11월 2일 ~ 11월 4일
박천 전투 : 11월 4일 ~ 11월 6일
혜산진 전투 : 11월 21일
중공군 2차 대공세 : 1950년 11월 25일
영원 전투 : 11월 25일 ~ 11월 27일
덕천 전투 : 11월 25일 ~ 11월 27일
와원 전투 : 11월 27일 ~ 11월 30일
장진호 전투 : 11월 27일 ~ 12월 11일
군우리 전투 : 11월 29일 ~ 12월 1일
흥남 철수작전 : 12월 5일 ~ 12월 24일
중공군 3차 대공세 : 1950년 12월 31일
1951년
라운드업 작전
고양 전투 : 1월 2일 ~ 3일
원주 전투 : 1월 6일 ~ 1월 12일
중공군 4차 대공세 : 1월 25일
금량장 전투 : 1월 25일 ~ 1월 27일
이천 381 고지 전투 : 1월 29일 ~ 1월 30일
쌍터널 부근 전투 : 1월 31일 ~ 2월 2일
수리산 전투 : 2월 1일 ~ 2월 2일
횡성 전투 : 2월 5일 ~ 2월 13일
지평리 전투 : 2월 13일 ~ 2월 16일
전략도서 확보 작전 : 2월 13일 ~ 1952년 2월 12일
원산항 봉쇄작전 : 2월 14일 ~ 1953년 7월 27일
중공군 1차 춘계공세 : 1951년 4월 22일
사창리 전투 : 4월 22일 ~ 4월 24일
장승천 전투 : 4월 22일 ~ 4월 23일
임진강 전투 : 4월 22일 ~ 4월 25일
금굴산 전투 : 4월 22일 ~ 4월 25일
글로스터 고지 전투 (235고지 전투)
적성 전투 : 4월 22일 ~ 4월 25일
가평 전투 : 4월 23일 ~ 4월 25일
중공군 2차 춘계공세
현리 전투 : 5월 16일 ~ 5월 22일
벙커고지 전투 : 5월 16일 ~ 5월 19일
용문산 전투 : 5월 18일 ~ 5월 21일
대관령 전투 : 5월 22일 ~ 5월 25일
인제 전투 : 5월 30일 ~ 5월 31일
자일리 전투 : 5월 30일
도솔산 전투 : 6월 4일 ~ 6월 19일
대우산 전투 : 7월 15일 ~ 7월 31일
향로봉 전투 : 8월 18일 ~ 8월 24일
피의 능선 전투 : 8월 18일 ~ 9월 7일
스트랭글 작전 : 8월 18일 ~ 1952년 5월 30일
펀치볼 전투 : 8월 31일 ~ 9월 20일
가칠봉 전투 : 9월 4일 ~ 10월 12일
단장의 능선 전투 : 9월 13일 ~ 10월 13일
적근산 삼현 전투 : 9월 21일 ~ 9월 22일
백석산 전투 : 9월 24일 ~ 10월 1일
마량산 전투 : 10월 3일 ~ 10월 8일
연천 313 고지 전투 : 10월 3일 ~ 10월 5일
학당리 전투 : 10월 11일 ~ 10월 13일
월비산 전투 : 10월 12일 ~ 10월 15일
949 고지 전투 : 11월 17일 ~ 11월 18일
크리스마스고지 전투 : 12월 25일 ~ 1952년 2월 13일
1952년
별 고지 전투 : 2월 18일
사튜레이트(차단) 작전 : 3월 3일 ~ 6월 30일
사천강 전투 : 4월 1일 ~ 11월 1일
아스널/이리 고지 전투 : 5월 18일 ~ 6월 21일
김화 400 고지 전투 : 6월 21일
수력발전소 폭격작전 : 6월 23일 ~ 6월 27일
불모 고지 전투 : 6월 26일 ~ 8월 1일
수도 고지 전투 : 7월 7일 ~ 10월 14일
지형능선 전투 : 7월 7일 ~ 10월 14일
351고지 전투 : 7월 10일 ~ 11월 10일
평양대공습 작전 : 7월 11일 ~ 8월 29일
고양대 전투 : 9월 6일 ~ 12월 13일
854, 812 고지 전투 : 9월 21일 ~ 1953년 6월 17일
노리 고지 전투 : 9월 29일 ~ 9월 30일
백마 고지 전투 : 10월 6일 ~ 10월 14일
화살머리 고지 전투 : 10월 6일 ~ 10월 10일
체로키 스트라이크 작전 : 10월 9일 ~ 1953년 7월 27일
저격능선 전투 : 10월 14일 ~ 11월 24일
삼각 고지 전투 : 10월 21일 ~ 10월 25일
고왕산 전투 : 10월 23일
1953년
김화 잣골 전투 : 2월 26일 ~ 4월 21일
180 고지 전투 : 3월 10일
포크찹 고지 전투 : 3월 23일 ~ 7월 8일
네바다 전초 전투 : 3월 28일 ~ 3월 30일
나부리 전투 : 5월 2일
후크 고지 전투 : 5월 2일 ~ 5월 28일
저수지 폭격작전 : 5월 13일 ~ 5월 29일
요크/엉클 고지 전투 : 5월 19일 ~ 5월 20일
M-1 고지 전투 : 6월 10일 ~ 6월 23일
화살머리고지 전투 : 6월 29일 ~ 7월 11일
중공군 7.13 대공세 : 7월 13일 ~ 7월 27일
베티고지 전투 : 7월 13일 ~ 7월 16일
금성 전투 : 7월 13일 ~ 7월 20일
김화 351고지 전투 : 7월 14일 ~ 27일
북정령 전투 : 7월 20일 ~ 26일
중가산 전투 : 7월 8일 ~ 27일
제주: 한국전쟁 직접적인 전투없음
6. 6 25 주요전투
가. 다부동전투
낙동강방어선 가운데 대구 북방 22km에 위치한 다부동은 대구방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술적 요충지로서, 만일 다부동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면 지형상 아군은 10km 남쪽으로의 철수가 불가피하고, 대구가 적 지상화포의 사정권내에 들어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게 된다. 따라서 북한군은 1950년 8월 5일 다부동 일대에 증강된 3개 사단을 투입, 약 21,500명의 병력과 T-34전차 약 34대와 각종 화기 약 670문으로 필사적인 공격을 해온다. 국군은 적과 수차례의 수류탄 공방전을 전개하면서 쟁탈전을 거듭하였고, 쌍방간에 많은 손실을 낸 채 밀고 밀리는 공반전을 반복하였으나 대체로 적의 돌파확대를 저지하였다. 8월 21일부터 국군 제1사단의 전황은 점차 호전되어 갔다. 더우기 다음날 오전에 적 제13사단 포병연대장이 국군지역으로 작전지도를 갖고 귀순함으로써 적의 전투의지는 극도로 저하되었고, 그의 진술에 따라 유엔 전폭기 편대가 대거 출격하여 적의 포진지와 집결지를 강타함으로써 적의 화력지원을 무력화시켰다. 다부동전투는 55일간이나 계속되었으며, 북한군 2만 4천여 명과 국군 1만여 명이 죽거나 다치는 인명 피해를 냈다. 그 결과 당시 투입된 북한군 3개 사단에 치명적인 패배를 안겨 주어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6·25전쟁사에서 다부동 일원에서 벌어진 전투는 국군의 위대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나. 백마고지전투
6.25전쟁 때 철원평야 북쪽 효성산에 있는 395고지에서 국군과 중국군이 벌인 전투. 395고지는 철원을 방어하고 서울로 통하는 주요 보급로를 장악하는 데 꼭 필요한 전술 요충지였다. 이 때문에 1952년 10월 6일 부터 15일까지 국군과 중국군은 서로 이 고지를 차치하려고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고, 국군 제9사단은 중국군 1만 3천여 명을 격멸하는 전과를 올렸다. 395고지는 국군과 중국군의 집중 포격으로 그 모습이 변해 백마고지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국군 보병 제9사단은 백마부대라는 이름을 얻었다. 또한 폭격에 대한 수도 엄청 나다.총 754회의 폭격이 있었으며 총 27만 4,954발을 사용했다.
다. 금성전투
금선 전투는 1953년 7월, 휴전이 임박해지고 있을 때, 금성 지역 북방에 위치한 중공군이 한국전쟁에서 그들이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을 세계에 과시하려는 정치 목적과 중부전선에 돌출되어 있는 한국군 전선으로부터의 위협을 제거할 목적으로 중공군 4개군 (제24군 제60군 제67군 제68군) 산하 12개 사단의 병력을 동원하여 국군 5개 사단 (수도 제5사단 제6사단 제8사단 제11사단)이 방어하고 있던 금성 지역의 돌출부에 대한 최후 공세를 감행한 전투이다. 이전투는 일명 7.13공세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 전투에서 국군 5개 사단은 7월 13일에 대대적인 중공군의 공격을 받고 금성 돌출부의 양견부가 돌파되었으며, 뒤이어 후방의 지휘소가 중공군의 기습을 받는 등 혼란이 야기됨으로써 국군은 금성천 남쪽의 백암산과 주파령, 적근산 부근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16일부터 국군 제 2군단이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미 제8군의 공격목표인 아이슬랜드 선( 간진현 - 금성천 - 462고지 )으로 진출하였으며, 원진지를 회복하지 못한체 이선에서 머물게 되었다. 이 전투의 결과 중공군은 약 40km정면에서 평균 4km를 남하하여 금성천 북안의 주요고지를 점령하게 되었으며, 국군은 아이슬랜드 선 전방의 전 전방의 전초선만을 확보한 상태에서 휴전을 맞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