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일요일 오후, 사무실 근처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올스타전을 관전했다.
프로배구 직전 시기에 여러 문제를 안고 있던 종목의 배경을 조금 아는지라 프로화 이후에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해 발길을 향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한마디로 상전벽해된 배구가 부러웠다. 입장하려는 사람들로 경기 몇 시간 전부터 장충체육관 일대는 마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빅매치를 방불케했다. 정가 2배의 암표는 기본이요, 노점상들은 때아닌 대목을 만나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테니스전문지 편집장이 배구장에 가게 된 배경은 사실 순전한 자의는 아니었다. 움직이는 것 즐겨하지 않는 내자가 일주일전에 신문보고 예매해 놓고 2월호 마감과 호주오픈 출장 하루 전일지라도 꼭 배구올스타전을 보러 가자는 성화에 가정평화 차원에 따라 나섰다.
장충체육관에 도착해 예매번호를 보여주니 표는 턱 하니 창구에서 나와 편리했다. 그런데 문제는 입장이었다. 출입구는 쪽문 비슷하게 하나였고 입장 대기줄은 신라호텔 주차장까지 이어졌다. 식전행사가 시작되니 아직 입장하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큰소리가 터져 나왔다.
“경기가 시작됐는데 아직도 안들여 보내고 문은 하나고 문제가 많다”며 항의를 했다. 항의 리더는 고려증권이다 삼성화재다 엘지화재다 해서 아마 배구 전성기때를 겪은 40대 아저씨. 그 틈에서 20대 남녀 친구들끼리도 입장을 못해 발을 동동거렸다.
“요즘 배구가 이렇게 인기인가” 혼잣말로 되내이며 격세지감이었다. 4~5년 전만해도 관중석은 텅비고 선수들은 경기할 맛 안나고 특정팀의 독주로 뻔한 승부 못보겠다며 팬들은 외면했다.
안되는 집에 계보다 파벌이다 학연이다 지연이다 해서 싸움은 그치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실업팀 감독이 교체되는 등 한마디로 배구는 어수선한 집안이었다.
심지어 외국에서 활약하는 감독을 호텔방에 감금하다시피 해놓고 여론 떠 본다고 석달이나 지난 뒤 감독 임명 발표를 하는 등 촌극도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런 배구가 지금 속사정은 모르겠지만 겉으로는 프로연맹 출범 이후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경기장에 들어서니 이건 상하이마스터스컵 페더러-나달 경기 보는 듯. 경기장도 잘 꾸며놓고 선수 입장할 때는 흡사 상하이마스터스컵을 똑 빼 닮았다.
선수들 하나하나 코트에 들이면서 박수와 불꽃놀이 쇼가 펼쳐졌다. 정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선수에 불과한 이선규, 최태웅,박철우 등은 이제 배구판에서 대형 스타가 되어 있었다. 리베로 여오현은 코트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외국 선수들은 원더걸스의 노바디 등 최근 유행하는 댄스가수들의 춤을 익혀 경기 중간중간 선보이며 폭소를 자아내 몸값 이상을 했다. 심지어 닭장(배구에서 후보선수들이 서서 기다리는 곳)에 있던 외국인 선수가 경기 중간 코트에 팀 동료가 구르자 그의 땀을 닦느라 손걸레를 잡고 코트를 닦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걸레가 모자라자 자신의 윗도리를 훌러덩 벗어 닦고 닭장으로 복귀했다.
관중들은 물론 대회 관계자들 코트에 있던 선수들이 웃느라 경기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였다.
비록 올스타전이 쇼 성격에 가깝다지만 선수들은 경기에서 고공 점프에 대각 크로스 샷 묘기, 발로 광고보드까지 달아난 공을 걷어 올리는 재치 등을 한 껏 선보였다.
관중들은 데드스페이스까지 관중석으로 판 입장권을 놓고 대회 본부를 나무랄 생각은 커녕 관중석 상단에 서서보고, 통로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선수들의 묘기를 즐겼다. 선수와 볼거리만 있으면 되지 자리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투다,
배구는 얼핏 보기에 단순한 운동이다. 하나둘셋 빠샤 하는 것을 수없이 반복한다. 공격 루트도 A퀵 B퀵 C퀵 연타백어택 등 몇가지 없어 단조롭기 그지없어 보인다. 승패도 뻔하다. 어느 팀이 이길지 우승할지 시즌 시작하면 다 안다. 모르면 바보다. 20점대에서 한두점 벌어지면 세트는 결정된다. 예전에 사이드아웃제에서 랠리하던 시대는 지났다. 그럼에도 운동 중에 상하운동을 하는 어려운 운동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테니스와 비교하면 그나마 언론의 관심과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 종목이 됐다.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 하는 것은 테니스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그것도 프로테니스.
일주일전 실업연맹 새 회장, 이정훈 연대 국제학부 학장 겸 동원대학 이사장을 만났다.
만나자 마자 “실업연맹을 프로연맹으로 바꾸겠다”는 말을 내놓았다. 말하자면 이말 들으러 인터뷰하러 온 것 아니냐 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시스템이 발달되어 있는 테니스가 왜 국내에선 선수도 별로 없고 프로도 안되고 하는 지 도통 이해 못하겠다는 식이다.
수영 피겨스케이팅 양궁 태권도 역도 야구 골프 등등을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는 스포츠 강국이라며 테니스도 이 종목과 더불어 경제교역국 순위에 걸맞게 올라가야 한다는 의견을 나눴다.
종목이 발전하려면 최 정점에 프로가 있어 선수들과 감독 등이 대접을 받고 초중고 선수들이 할 맛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프로야구 구단 롯데가 연고로 하는 부산에는 초등학생들이 죄다 야구방망이와 글러브를 들고다닌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기아 타이거즈가 있는 광주와 전남은 덩치깨나 있는 학생들은 야구 감독 코치 들이 공부하게 놔두질 않는다. 초등학교때부터 야구장에서 살게 만든다.
한국 테니스의 프로화.
참으로 쉽지 않은 이야기다. 하지만 야구 축구 농구에 이어 뒤늦게 뛰어든 배구의 사례처럼 기존의 실업팀과 선수 감독 협회 관계자 마케팅사, 굵직한 스폰서 끌어들일 능력의 마이다스 손 등이 어우러진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듯 싶다.
페더러-나달, 샤라포바-윌리엄스의 슈퍼매치처럼 장을 만들어줘야 스폰서들도 솔깃한다. 투자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필자의 소견으로는 일단 국내 실업 선수들의 연중 경기를 할 수 있는 상금이 걸린 대회가 시리즈로 만들어져야 한다.
실업선수들은 지금까지 두세 달하면 대회가 없어 연중 휴식에 들어간다. 그래서는 안된다. 테니스가 직업인 선수가 기량을 발휘하게 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해야 한다. 선수들은 우수한 경기력을 바탕으로 상금을 받게 되고 팀마다 좋은 선수를 스카우트하는데 시장이 개방되어야 한다. 이적이 자유로워야 한다.
또한 선수들도 자기 자신에 대한 보다 많은 투자로 경기력을 향상해야 한다. 좋아하는 팬클럽도 만들어질 정도로 실력과 쇼맨십을 장착해야 한다. 외국 테니스 유학을 다녀오는 코치와 선수들도 있어야 한다.
팀 운영도 프로수준으로 그 규모를 좀 키워야 한다. 단순히 선수 월급 주는 차원에서 해서는 항상 제자리 맴도는것이다. 발전이 없다.
배구도 하는데 테니스라고 못할 것이 없다. 다 같은 네트종목이 아닌가. 선수출신 아니라 모르는 소리라고 할 지 모른다. 하지만 배드민턴도 이용대라는 어린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고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테니스와 달리 실내종목이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하는 인구도 이용대 올림픽 금메달 이후 부쩍늘고 레슨하는 지도자들은 잘 나가는 테니스 코치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이용대는 전남 회순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배드민턴을 해 오던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필자로서는 참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코흘리개 소년이 어느새 국민적인 스타가 되었다. 테니스의 이형택이 한국테니스를 먹여 살린다면 배드민턴은 이용대가 한동안(앞으로 10년) 먹여 살릴 것만 같은 기세다.
올림픽때마다 금메달 유력후보로 소개하고 일희일비할 것이 뻔하다. 국제대회 나가 테니스는 쳐 주지 않는 혼합복식에서 우승 하나 해도 언론에 기사 나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버렸다. 사랑받게 생기고 사랑받는 행동도 하고. 요즘 팬들은 관전수준이 높아 스스로 찾아 나선다. 중고등학생, 대학생 등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지갑을 열때는 연다.
배구도 배드민턴도 붐을 이루는 마당에 테니스의 국민적 관심이 요구된다. 동호인도 많은데 톱10 아니 100위 이내 선수 두명만 나와도 ‘배구나 배드민턴쯤이야’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실업연맹의 프로화로 선수들 대우와 기량을 높이고 우수한 주니어들이 테니스를 하게 하는 것이 한국테니스의 살 길 하나다. 그러면 자연스레 세계 랭킹 100위 안에 드는 선수가 생길 것이고 동호인들의 열기를 바탕으로 테니스 이벤트는 성공을 거듭할 것으로 본다.
지난 주 한 스포츠 샵 대표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신제품 라켓이 나왔다고 해서 호텔 연회장에 갔는데 종전처럼 라켓의 성능이 어떻게 바뀌었고 디자인이 세련되어졌다는 식상한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라켓 성능과 디자인은 다 안다며 라켓을 어떻게 팔 수 있는 지 노하우를 알려달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동호인들이 라켓을 사지 않는데 아무리 싸게 준다해도 스포츠 샵에서는 대량으로 구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스포츠 샵 대표는 “테니스 스타도 나와야 하지만 어디 감나무에서 뚝 떨어지겠느냐”며 “어린 아이들이 테니스를 할 여건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요즘처럼 얼굴 안태우고 실내에서 깔끔하게 하는 운동을 선호하는 어린이에게 땡볕 찬바람 대신 잘 지어진 실내코트에서 저렴하고 내용 알찬 그룹레슨으로 테니스인구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만 해도 잠원동실내와 창동실내, 최근에 지은 서울 시립대실내코트, 계남실내코트 등에서 어디에서나 잘 치는 어른들이 아닌 초보 어린이들 그룹레슨의 장으로 활용이 된다면 라켓 수요도 생겨나고, 지도자들도 바삐 할 일이 생기고, 취미로 시작한 어린 레슨자 가운데 선수 지망생이 나오고 해서 한국테니스가 살지 않겠냐는 것이다.
최근 20년간 역대 정권 가운데 요즘처럼 테니스 인프라 구축하기 그리 어렵지 않은 시대는 없다고 본다. 232개 시군구마다 한두개의 실내코트를 지어 주로 저렴한 어린이 그룹레슨으로 이용하게 하면 테니스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어 있다.
학교 공부 때문에 1인 1기 운동조차 기피하는 문화도 바꾸어야 하겠지만 테니스 배우기 쉬운 여건을 만들고 일부 외국 학생들이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추세라고 소개한다면 자식교육에 대해 세계 1위인 우리네 학부모들이 따라서 안할 이유가 없다.
이야기가 장황했다.
배구가 프로화되면서 상전벽해가 됐음에 부러워하면서 한국 테니스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단견을 냈다.
정말 기축년은 다음주 설날이다. 새해에는 우리나라 구조적으로 그리고 제대로 발전할 일만 생겼으면 하는 생각이다.
참, 테니스코리아에서는 1월19일부터 호주 멜버른에서 열리는 시즌 첫 그랜드슬램 취재길에 필자와 함인범 기자가 나섰습니다. 물론 앞서 예선전은 송선순 동호인대회 전문기자가 호주여행길에 취재해 생생한 한국선수들의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92년 창간하면서 세계적인 테니스의 흐름을 소개하고 선도해 온 테니스코리아는 지난해 프랑스오픈과 상하이마스터스컵 취재에 이어 올해 첫 그랜드슬램 취재에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비록 우리 선수들이 예선에서 탈락은 했지만 역대 4명의 선수가 동시에 한 그랜드슬램에 뛴 것은 좋은 징조입니다. 다음 그랜드슬램에서는 본선에도 많이 진출할 징조로 보입니다.
이번 호주오픈 취재에선 테니스의 오랜 역사를 지닌 호주와 볼만한 남자 4명(나달 페더러 조코비치 머레이)의 경기 등을 근거리에서 보고 인터넷에 올리고,
상반기 프랑스오픈 이전까지 월간지 만드는 밑천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동호인들이 최근 관심 가지기 시작한 엘리트 복식 경기 포메이션과 전술, 떠오르는 스타(니시코리, 존 이스너, 델 포트로 등)들의 연속사진을 담아 전문가의 해설을 곁들여 소개합니다.
우리나라 미디어에서는 유일하게 취재하는 터라 어깨가 무겁습니다. 가져가는 짐도 2주간의 출장이어서 그런지 카메라 노트북 식량 옷가지 등 100KG에 육박합니다.
사명감을 갖고 출장 길에 나선지라 독자들의 여러 취재 요청을 받아 움직이고 싶습니다. 이런 것도 취재해 달라, 저것은 꼭 해달라. 누구는 꼭 만나서 인터뷰를 해달라. 그랜드슬램의 진면모를 알려달라는 등의 요청을 최대한 수첩에 적어 움직이고자 합니다.
애정 어린 많은 관심 바랍니다.
발리가는 비행기내에서 =박원식 기자
*멜버른 가는 경제적인 항공권이 12월초부터 동이나는 바람에 어렵사리 인도네시아 가루다 항공을 타고 발리를 거쳐 7시간 대기해 있다 멜버른행 비행기를 잡아타고 화요일인 20일 오전 7시반에 도착해 취재에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