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골산(321.8m,공주)’은 ‘금남정맥’상에 있는 봉우리.
금남정맥은 전북 ‘주화산(珠華山)’에서 시작해 왕사봉·대둔산을 지나 계룡산으로 이어져 부여의 부소산에서 끝나는 산줄기이다.
‘안골산(安골山)’이란 이름은 ‘안산들’과 ‘안산(安山)’을 기준으로 안쪽에 있는 산, 또는 안쪽 골짜기에 있는 산이라는 뜻인 듯.
‘거묵바위산(345.9m)’은 정상석에 ‘문암산 깃대봉’이라 새겨진 커다란 자연석비가 세워져 있고, 또 안내판엔 ‘거먹바위’라고 적혀있다.
등산로는 ‘계룡면행정복지센터’에서 발달되어 있고, 이름의 유래가 된 ‘거먹바위’는 안내판의 하산로에서 보인다.
아마도 바위가 검은 색을 띤 데서 유래된 듯하고, 또 ‘문암산’은 ‘門岩山’으로 표기할 것 같으니 바위와 관련된 이름은 확실해 뵌다.
안골산에서 계속 북진하면 복귀산과 구절산을 지나 건지산과 태봉산에 닿을 수 있으나 이는 준족들에게 맡기고 돌아서기로 했다.
이후 차량에 탑승 ‘태봉산’으로 이동한다.
‘태봉산(胎封山 128.5)’엔 조선 19대 임금인 숙종(재위 1674~1720)의 ‘공주 숙종대왕태실비(公州 肅宗大王胎室碑)’가 있는 산.
고종 2년(1869) 태와 태실은 경기도 양주로 옮겨가고 현재는 2기의 태실비가 남아있다.
지형도엔 ‘胎樹山’이라 씌여있으나 이는 ‘봉할 封’자와 ‘나무 樹’자를 혼돈하여 생긴 오기(誤記)인 듯.
태봉산 바로 옆에는 높이가 비슷한 산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건지산(130.8)’인데, 인근 ‘이인면 초봉리’에도 같은 이름의 산(237m)이 있다.
감히 ‘乾芝山’이라 적었으나 ‘상을 당했을 때 쓰는 건(巾)’ 같이 생겼다면 ‘巾之山’일 터.
계룡면행정복지센터 입구에 있는 ‘영규대사비(靈圭大師碑)’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운 영규대사의 정려비이다.
‘휴정(休靜·서산대사)’의 제자로 계룡산 갑사 청련암에서 수도, 승병장으로 ‘금산싸움’에서 부상을 입고, 월암리로 돌아와 숨을 거두었다.
인근 유평리엔 ‘영규대사묘’가 있어 그곳으로도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다.
코스: 1)계룡면행정복지센터-굴바위갈림길-범바위-제2전망대-거묵바위산(문암산깃대봉)-금남정맥분기봉(339.8)-안골산(왕복)-밤나무단지-임도-봉명2리마을회관-갑사주유소(6.9km,3시간 10분) *차량이동
2)태봉휴게소<공주시 태봉동 256-1>-굴다리-평산신씨묘-건지산-태봉산 임도-밤밭-태봉산-안내판-태봉뮤직(1시간 10분)
거묵바위산 궤적.
거묵바위산과 좌측 상단의 태봉산.
<산길샘> 네이버지도에 그어진 트랙.
6.85km에 3시간 14분.
고도표.
태봉산·건지산 궤적.
태봉산,건지산. <산길샘> 네이버지도에 태봉산은 트랙이 그어져 있다.
2.6km 원점회귀로 1시간 10분.
고도표.
미리 준비한 표지기.
네비엔 '계룡면행정복지센터'를 입력하여 입구에 버스를 댔더니 사방 1칸짜리 팔작지붕의 비각이 있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6호인 영규대사비이다.
비각 안의 비석엔 '의병승장영규지문'.
뒷면엔 '숭정기원후 계유오월(崇禎紀元後癸酉五月)'이라 쓰여져 있으니 곧 1633년이다.
하지만 비를 건립한 사람들의 생존 연대와 맞지 않아 활동 연대를 맞춰보면 1753년이나 1813년 계유(癸酉)임이 밝혀진다.
비각안의 '-영규대사지려'엔 '단기 4328년 을해 9월 25일 개제(改題)'. 단기 4328년이면 1995년이다.
그 반대쪽엔 같은 날짜에 쓴 '영규대사정려기'가 빼곡하다.
산길은 계룡면사무소 우측.
안내판에 이름의 유래가 되는 거먹바위가 하산로에 보인다.
월암노인회관을 지나...
깃대봉 2.5km 안내판을 따라 계류를 좌측 겨드랑이에 끼고 오른다.
다시 안내판.
뒤돌아보니 우람한 산세. 계룡산국립공원이다.
마지막 민가에서...
산길 진입하며 문암산 2.1km.
다시 이정표에서 아치형 목교를 건너...
유평1리·버들미 이정표 갈림길을 만난다. 이 길은 영규대사묘에서 사면으로 이어진 듯.
묘지 앞에 무슨 기록이 있어 사진에 담았더니 '사초(沙草)기록문'이다.
나는 조선 시대 사관들이 그때그때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해 둔 '사기'의 초고인 사초(史草)인 줄 알았더니 사초(沙草)란다.
산소가 훼손되면 봉분을 보수하고 잔디를 새로 입히는 작업을 말한다.
사초기록문.
굴바위·옹달샘 갈림길로 조금 들어가 보았더니...
반듯한 상석 4개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뭘까하고 보았더니...
묵묘다. 같은 항렬의 4형제 묘인 듯. 상석엔 아무런 비문이 없다. 4형제 자손들 모두 10년을 넘게 찾지 않았을까.
누가 올려 놓았는지 막걸리 한 병이 애잔하다.
가파른 구간의 밧줄.
친절한 이정표.
범바위는...
실체가 불명해서...
아무리 둘러봐도 모호하다.
2전망대에서...
조망되는 계룡산.
굴바위 갈림길 이정표. 굴바위를 답사하고 이곳으로 올라올 수 있다는 말씀.
거묵바위산에 마련된 1전망대.
정상석엔 '문암산 깃대봉'.
사각정자 좌측으로 면사무소로 내려가는 하산로가 개설되어 있고, 안내판에 나오는 '거먹바위'도 있을 것.
기념사진을 찍은 뒤...
준비해간 표지기도 걸었다. 그런 뒤 냉막을 곁들인 요기를 하였다.
다시금 경천저수지 위로 계룡산국립공원을 바라보며 갈길을 재촉한다.
최고봉인 363.9m봉에 삼각점이 있다.
'금남정맥17지점'에 올랐다.
우측 발아래는 온통 밤밭.
밤꽃이 제철을 만나 밤송이 만큼이나 탐스럽다.
안골산 갈림길에서...
안골산을 올랐다. 안골산은 정맥에서 살짝 비켜선 봉우리.
다시 되돌아와서...
내려서는 길은 밤나무과수원.
과수원으로 난 임도를 따라...
개망초 흐드러진 길을 내려서니...
포장임도.
돌아본 모습.
낚시터를 지나고...
KTX호남선 고속철도 굴다리를 지나...
잘 생긴 보호수도 지난다.
포장로를 따라 큰길로 나오면...
우리 버스가 대기하는 'S-oil 갑사주유소'다.
길가엔 '평화통일기원 일붕시비'가 세워져 있다.
이제 B팀들을 합류시켜 태봉산으로 차량이동을 한다.
'숙종대왕태실비' 안내판이 있는 태봉휴게소 앞에 버스를 댔다. 뒷풀이 공간은 휴게실 옆 공터.
태봉휴게소(태봉뮤직)는 휴업 중.
태봉마을 유래비의...
유래가 빼곡하다.
굴다리입구에서 선착한 종주팀(거먹바위산-안골산-복귀산-구절산-태봉산)들을 만났다.
굴다리를 지나자 우측으로 '공주 숙종대왕 태실비'입구 안내판이 있다.
태봉산으로 먼저 오를려는 일행들을 불러 건지산부터 가자고 하였다. 태봉산부터 가면 나중에 건지산은 빼먹기 때문.
좌측으로 건지산에서 내려올 민가 뒤 능선을 살펴보며...
우측으로 태봉산을 올라갈 임도급 산길을 지나면...
우측으로 꺾어지는 농로의 민가 뒷쪽이 건지산 들머리.
대밭으로 들어가면...
평산신씨묘.
첫봉을 지나 건지산에 닿았다. 솔밭 수더분한 산길엔 반듯하게 길이 나지 않았으나 길눈을 크게 뜨고 능선을 따른다.
서쪽 능선을 따르다...
좌측 계곡으로 치고 내려왔더니 버섯재배지역.
돌아보니 우리가 내려오는 좌측으로 산길을 다듬어 놓았다.
민가 마당으로 내려오며 미안한 맘에 인사를 건넸더니...
주인은 아닌 듯.
민가를 벗어나며 태봉산 진입길을 건너다 본다.
뒤돌아보는 건지산에서 내려오는 길.
태봉산은 사면으로 비스듬히 임도를 따르는 길.
밤나무단지를 휘돌아가는 임도에서 가파른 직등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오른 태봉산엔 무덤 한 기가 있으나 태실과는 관련이 없는 듯.
이곳은 조선 19대 임금인 숙종(재위 1674∼1720)의 태를 묻었던 곳이나, 고종 2년(1869) 태와 태실은 경기도 양주로 옮겨가고 현재는 2기의 태실비만 남아있다.
입을 꾹 다문 거북이는 잔뜩 무거운 짐을 한짐 졌다.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용을 조각한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고개를 절래절레. 등짝에는 ‘주상전하태실(主上殿下胎室)’이란 비문.
뒷면에는 ‘강희이십이년십월십오일건(康熙二十二年十月十五日建)’이라 새겨져 있다.
강희(康熙)는 청나라 황제(강희제)의 연호로, 강희 22년을 환산해보면 1683년(숙종 9년) 10월 15일에 세운 것이 확인된다.
역시『태봉등록』의 기록과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기의 비 중 조금 작은 비는 현종 2년(1661) 태실과 함께 세운 것으로,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얹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머릿돌은 옆면이 2단으로 동그랗게 말려 있다.
아기씨 태실비. 자료에는 1661년 12월 25일에 세워졌다 한다.
무지개님이 마치 애완용 강아지를 이쁘하듯 머리를 만지며 얼래고 있다.
한편 숙종의 태실이 옮겨진 뒤 기존에 있던 태실비와 장태 석물 등은 흩어진 채 태봉산에 방치되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1991년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한 결과 숙종의 태실비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
준비해간 표지기를 건 뒤...
돌아보는 모습. 어쩐지 짠한 거북이.
밤밭을 내려오면...
안내판이 있는 태실비 입구.
다시 굴다리를 지나...
우리 버스가 대기중인 태봉휴게소(태봉뮤직) 옆 공터에 회귀하였다.
막 뒷풀이가 진행중이고, 나는 연거푸 막걸리 서너 잔을 마신 뒤...
휴업 중인 휴게소 안쪽 수돗가로 갔다.
그런 뒤 수도꼭지를 튼 뒤 머리를 쳐박았다.
"허푸~ 허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