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에셀의삶
창 15;2
신앙생활은 철저하게 관계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예수님께서 한 율법사와의 대화에서 정확하게 말씀합니다. “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큽니까?” 라고 묻는
한 율법사의 질문에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라 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신앙의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이웃에게 내가 어떤 이웃인가?
혹은 하나님께 내가 어떤 자녀인가?”
이것이 오늘 우리 신앙을 평가하고 체크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세 항목에 걸쳐 이 두 영역의 신앙을 점검하고자합니다.
첫째로; 엘리에셀의 삶은 친밀한 삶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적어도 4,5년 정도 후에 있었을 사건 중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의 나이 80 가까이 되었는 데 여전히 약속이 성취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아브라함이 “하나님! 또 무엇을 주시려고 그런 말씀하십니까?
여전히 나는 자식이 없고 내 상속자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 때는 아브라함의 집에 적어도 318명의 싸움에 나갈만한 종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중에 오직 한 사람 엘리에셀을 지목하여 자신의 상속자라고 합니다.
상속자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아들과 같은 존재요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물려줄 수 있는 친밀한 관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4장은
시간이 60년이 흘러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이삭을 결혼시키고자 할 때에
배필을 정하는 모든 전권을 엘리에셀에게 맡길만큼 아브라함과 아주 친밀한 관계 안에
여전히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아브라함과 엘리에셀은 종과 주인의 관계를 넘어서서 친구였고, 동반자였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성도들과 이웃들과 얼마나 친밀하셨나요?
여러분들을 바라보는 성도들과 이웃들은 이 항목에서 몇 점을 여러분에게 줄 수 있을까요?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하셨나요?
변하지 않는 친밀감속에 머물고 계신가요?
신앙이 관계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시작이요 완성입니다.
하루 24시간 중에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 시간은 낭비된 시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유의미한 시간은 하나님과의 친밀함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시간입니다.
바라기는 올 한 해보다 내년도엔 더욱 이웃과 성도를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심으로 아브라함과 엘리에셀이 누렸던 그 친밀감 안으로 나아가길 축복합니다.
둘째로; 엘리에셀의 삶은 충성하는 삶입니다
그것은 신실함이요, 순종과 복종을 포함하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에게 철저하게 충성된 종이었습니다.
3절에서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을 “내 집에서 길린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브라함의 집에서 엘리에셀이 자랐을 것이고
아브라함은 평생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아마도 오늘 본문의 시점에 아브라함이 80세라면 엘리에셀은 60전후 쯤 되었을 것입니다.
즉, 엘리에셀 그의 나이 60세까지 여전히 충성된 종이었고, 또한 시간이 60년이 흘러
엘리에셀의 나이 120세가 되었을 때도 여전히 아브라함이 가장 신뢰하는 종이었습니다.
24장 2절은 “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겼다.”라고 합니다.
엘리에셀 그의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충성더된 초지일관의 삶이었습니다.
바람직한 신앙인의 모습은 '호시우행' 즉, 호랑이 눈으로 멀리 바라보고,
소처럼 그렇게 우직하게 한 걸음 할 걸음 걸으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과 사명을 바라보며
오늘 우직한 소처럼 황소 걸음으로 나아가는 이들입니다.
얼마나 충성스러우셨습니까?
여러분을 가장 잘 아는 성도와 이웃이 이 항목에 대해서 어떤 점수를 줄까요?
나아가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나 충성되셨습니까?
정말 사랑하면 그 삶의 모든 순간을 변하지 않는 충성과 신실함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얼마나 신실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붙잡고 순종하려고 애쓰셨습니까?
이런 항목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점수를 주신다면 올 해 여러분이 받으실 점수는 어떠할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사명을 바라보면서 내년에는 더욱 더 엘리에셀처럼
사람과 하나님 앞에 충성됨의 자리에 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엘리에셀의 삶은 공의로운 삶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열심을 다해 신실하게 섬기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마음과 방법이 옳지 못하면
자기 열심과 의가 될 수 있고 고집과 아집으로 사랑과 열심이 변질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과 충성을 온전케 하는 것은 공의로움입니다.
만일 엘리에셀이 아무리 아브라함과 친밀했고, 충성을 다했을지라도
그의 삶과 행위가 공의롭지 못했다면 아브라함은 절대로 그를 상속자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며,
자신의 모든 재산을 그의 손에 맡기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의 아들을 위하여
여인을 선택할 권위를 부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엘리에셀은 공의로운 사람이 분명합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옳고 공의로왔습니까?
혹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긴다고 했지만 그것이 여러분 자신만의 열정과
여러분의 고집스러운 열심은 아니었나요?
가까이에 계신 여러분들의 이웃은 이런 사실에 대해 여러분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나아가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하셨나요?
진정한 공의는 진리이신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오랜 시간을 하나님의 마음의 생각을 듣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머무셨나요?
얼마나 오랜 시간 말씀과 씨름하면서 나아갈 길을 구하셨나요?
그리고 얼마나 그 뜻 안에서 말하시고 행하시고 살아가셨나요?
하나님께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무어라 말씀하실까요?
바라기는 올 해보다 내년에 훨씬 더 이웃과의 관계에서 공의롭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공의를 구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결론으로; 엘리에셀의 삶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습니다
엘리에셀의 인생의 결론은 그의 이름 속에 담겨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란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약속에 붙잡혀 살았던 아브라함과 전혀 틀리지 않는
인생의 행보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아가 그는 이런 이름속에 담겨있는 약속을 담아낼만한
그런 인생의 그릇을 갖고 있었던 자였습니다.
친밀함,
충성됨,
공의로움,
이런 그의 인생의 그릇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담아낸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엘리에셀”의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삶,
그리고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담아내는 친밀함과 충성됨과 공의로움의 그릇을 가지시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그 인생의 그릇 가운데 하나님께서 마음껏 은혜 주시고 축복하시며,
사람들에게도 칭찬과 존경을 받는 복된 삶으로 나아가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