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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 그 한복판에서 – 두리봉,백운봉,장군봉,용문산,문례봉,중원산
1. 중원산 가는 길에 바라본 백운봉, 용문산, 용문봉, 용조봉(앞 오른쪽)
아츰볓에 섭구슬이한가로히익는 곬작에서 꿩은울어 山울림과작난을한다
山마루를탄사람들은 새ㅅ군들인가
파―란한울에 떨어질것같이
웃음소리가 더러 山밑까지들린다
巡禮중이 山을올라간다
어제ㅅ밤은 이山절에 齋가들었다
무리돌이굴어날이는건 중의발굼치에선가
―― 백석(白石, 1912~1995), 「秋日山朝」
▶ 산행일시 : 2023년 10월 28일(토) 맑음
▶ 산행인원 : 2명
▶ 산행코스 : 새수골 약수사,두리봉,태남막재,682m봉(헬기장),백운봉,구름재,868m봉,함왕봉,장군봉,
용문산(가섭봉),문례재,964m봉,문례봉(천사봉),△735.3m봉,중원산,중원계곡 주차장
▶ 산행거리 : 도상 17.2km
▶ 산행시간 : 9시간 50분(07 : 50 ~ 17 : 40)
▶ 갈 때 :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 타고 양평역에 가서, 택시 타고 새수골 약수사로 감
▶ 올 때 : 중원계곡 주차장에서 택시 타고 용문에 와서 저녁 먹고, 용문역에서 무궁화호 열차 타고
청량리역에 옴
▶ 구간별 시간
06 : 50 – 청량리역(무궁화호 열차)
07 : 20 – 양평역
07 : 50 – 새수골 약수사, 산행시작
08 : 20 – 두리봉(543.2m)
08 : 42 – 682.5m봉, 헬기장
09 : 16 – 백운봉(白雲峰, △941.2m), 휴식( ~ 09 : 35)
10 : 10 – 868m봉
10 : 47 – 함왕봉(890m)
10 : 58 - △967m봉
11 : 14 – 장군봉(1,043m)
11 : 25 – 용문산 서봉(1,150m) 아래 ┳자 갈림길
12 : 05 – 용문산 가섭봉(龍門山 迦葉峰, 1,157m), 점심( ~ 12 : 47)
13 : 13 - ┫자 갈림길, 왼쪽이 한강기맥
13 : 33 – 964m봉
14 : 05 – 문례봉(汶禮峰, 폭산 暴山, 천사봉, 1,004m)
14 : 45 - △735.3m봉
15 : 15 – 784m봉, ┣자 갈림길, 오른쪽이 중원산 가는 길
16 : 45 – 중원산(中元山, 800m)
17 : 40 – 중원계곡 주차장, 산행종료
20 : 20 – 용문역(무궁화호 열차)
21 : 00 – 청량리역
2. 산행지도(영진지도, 1/50,000)
▶두리봉(543.2m)
오늘 새벽에는 샛별이 아주 또렷하게 보인다. 지구에서 샛별까지 거리는 가장 가까울 때 41,400,000km라고 한다.
KTX 열차가 최고 속도인 시속 300km로 밤낮없이 달려서 15년이 넘게 걸린다. 그토록 먼 거리인데도 가리는 게
없어 또렷하게 보인다니 신기한 일이다.
산에서의 오늘 하루 날씨를 미리 말하자면, 하늘만 맑았다. 웬만한 산은 운해에 다 잠겼다. 용문산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그야말로 망망대해였다. 운해는 해거름 때가 되어서야 묽어지기 시작했다.
오지산행 카페의 산행일정 난에 1주일 전부터 오늘의 산행계획을 올렸는데, 수년 이래 모처럼 소득이 있다. 다훤 님
이 동행하시겠다고 한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각자 예매하였기에 목적지인 양평역에서 만난다.
양평역은 다른 역사와는 다르게 버스나 택시의 승강장이 없이-내가 잘못 아는지 몰라도-역사 계단을 내리면 바로
인도와 차도가 나온다. 카카오 택시 부른다.
택시기사님이 호탕한 분이시다. 출발하자마자 대뜸 우리더러 양평의 물안개공원을 아시느냐고 묻고는 거기에 김종
환의 노래비가 있다고 한다. 그의 노래인 ‘사랑을 위하여’를 새겼다고 한다. 오늘처럼 안개가 자욱한 날이었다고 한
다. 김종환이 양평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안개가 자욱하여 시적감흥이 떠오르고, 곧바로
‘사랑을 위하여’를 작사 작곡하였다고 한다.
그 노래가 얼른 생각나지 않기도 해서 다훤 님이 기사님에게 노래 한번 틀어주실 수 있겠느냐고 하자, 기사님은
마치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핸드폰 유튜브를 켠다. 노래를 검색할 필요가 없이 나온다. 그리고
흥얼거린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작은 미소로 너를 부르리”
제목을 몰랐지 우리 귀에 익숙한 가사와 곡조다.
기사님은 아주 신났다. 노래방 무선마이크를 꺼내더니 작정하고 그 곡조에 따라 노래 부른다. 달리는 노래방이다.
우리로서는 무언가에 홀린 듯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한동안 얼이 빠졌다. 두리봉 들머리인 새수골을 갔다가 뒤
돌았다가 다시 간다. 용문산 자연휴양림 입구 약수사다. 택시비가 10,700원이 나왔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여기까지
8,000원 정도 나오는데 그 입구에서 약간 버벅거렸기로서니 너무 많이 나온 것 같다.
이정표에 용문산 자연휴양림 입구에서 두리봉까지 줄곧 가파른 오르막 630m다. 데크로드로 계곡 건너고 ┣자 갈림
길에서 오른쪽 사면 도는 소로를 따라간다. 백석 시인이 「추일산조」에서 읊은 ‘아침볕에 섶구슬이 한가로이 익는
골짝’이다. ‘섶구슬’은 높은 산의 골짜기나 등성이에 열려 있는 구슬댕댕이나무의 작은 열매라고 한다. 좀작살나무의
보랏빛 구슬 같은 열매이면 또 어떠랴. 다가가서 익는 그 열매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런 골짝을 한 피치 길게 돌아 오르면 능선이다. 등로는 낙엽이 어느덧 수북하니 깔렸다. 바위 슬랩은 미끄러워
낙엽을 쓸어가며 오른다. 가을을 간다. 낙엽은 언뜻 부는 실바람에도 우수수 흩날린다. 등로 살짝 비킨 전망 트인
바위절벽에 다가간다.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발아래는 파고 높은 운해가 넘실거린다. 장관이다. 아니 볼 것을 보아
버렸다. 이러한 데 저 위는 어떨까?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진다. 어서 가자 하고 사족보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두리봉 직전에서는 배낭 벗어놓고 암릉을 기어 전망바위에 들른다. 운해는 점점 차오른다. 얼마간 지나면 백운봉도
고도(孤島)로 갇힐 판이다. 두리봉. 커다란 돌탑이 있다. 그 앞에 서서 발돋움하면 남한강과 백병산, 양자산 등이
보이는데 오늘은 운해에 잠겼다. 두리봉 아래 쉬자파크에서 아침 일찍 올랐다는 젊은이 세 분이 쉬고 있다. 나는 곧
뒤따라올 다훤 님을 기다리며 서성거리는데 그들이 나더러 중원산까지 가시느냐고 묻는다.
3. (두리봉에서 바라본) 오른쪽 뒤는 백운봉
4. 두리봉에서 북서쪽 골 건너 693m봉
5. 백운봉 가는 길
6. 682m봉 헬기장에서 바라본 백운봉
7. 백운봉 서릉
8. 멀리 오른쪽은 도일봉
9. 청계산, 그 뒤 흐릿한 산은 문안산
10. 마유산(유명산)
▶ 백운봉(白雲峰, △941.2m)
이들이 내가 중원산까지 간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의문은 금방 풀렸다. 내가 전망바위를 들른 사이에 다훤 님이
두리봉을 지나면서 이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다훤 님은 내가 이미 두리봉을 지나간 줄로 알고 부리나케 갔다. 내가
줄달음하여 뒤쫓느라 녹아난다. 두리봉을 잠깐 내려 ╋자 갈림길 안부를 지나고 가파른 한 피치 바짝 오르면
579.7m봉이다. 이제 당분간은 평탄한 오솔길이다. 오가는 이 없는 한갓진 숲속이다. 만추, 그 한복판을 걷는다.
태남막재는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682.5m봉. 너른 헬기장이다. 아직 여기는 운해에 잠기지 않았다. 고개 들어
화려한 적상 두른 백운봉을 한 번 우러르고 내린다. 야트막한 ┫자 갈림길 안부는 삼태재다. 완만한 오르막이 잠시
이어진다. 예전에는 사나운 자갈길이었는데 야자매트를 깔았다. 오른쪽으로 형제우물(0.6km) 가는 ┣자 갈림길을
기점으로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백운봉 정상까지 0.4km. 데크계단이거나 돌길이다.
여느 때는 계단마다 뒤돌아보면 가경이 펼쳐지는 경점이었는데 오늘도 그러할까? 온 세상이 운해에 잠겼다. 보이는
것이 별로 없어 퍽 단조롭다. 마치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를 나는 기분이다. 백운봉. 삼각점은 1등이다. 용두 11,
1983 복구. 사방 트이는 경점이다. 오늘은 전에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날씨다. 하늘만 구름 한 점 없이 맑을 뿐이다.
멀리 치악산과 백운산 연릉 연봉도 운해에 잠겼다. 청계산이 산정만 약간 돌출한 망망대해 고도다. 혹시 다른 경치
가 연출될까 기다리며 오래 머무른다. 그러나 운해는 좀체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창계 임영(滄溪 林泳, 1649~1696)의 「백운봉 등유기(白雲峯登遊記)」의 일부다. 창계가 이 백운봉을 오른 그 시대
에는 대기가 무척 맑았다.
용문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들은 가섭봉(迦葉峯), 응봉(鷹峯), 백운봉(白雲峯)이다. 그 높이가 대체로 비슷하지만
백운봉이 그중에서 가장 험하고 가파른데, 사방에서 바라보면 가지런한 모습이 마치 먹줄을 대고 깎아 만든 것 같
다. 또한 강을 굽어보고 홀로 우뚝 서 있어서 기상이 더욱 기이하고 빼어나다. 그러므로 사방 사람들이 용문산을
이야기할 때 오로지 이 봉우리만을 말한다.
(…) 내가 본 것 중에서 작고 가까운 것은 생략하더라도 멀리 있고 큰 것을 들면 다음과 같다. 원주의 치악산과 호서
의 속리산, 영남의 조령 등이 그 동쪽에 있고, 연산(連山)의 계룡산과 천안의 광덕산이 그 남쪽에 걸쳐 있으며, 송도
(개성)의 천마산ㆍ성거산ㆍ송악산이 서쪽에 우뚝 솟아 있으니, 이 산이 그 중앙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이에 근거해
서 알 수 있다. (…) 가까운 고을에 있는 백 겹으로 구불구불 서린 산들을 다 내려다 볼 수 있었는데, 가평의 화악산
과 죽산의 칠정산이 그중에서 조금 큰 축에 들었다. 삼각산은 아까 산허리쯤 오르고 있을 때부터 이미 그 진면목을
다 드러내고 있었는데, 산의 정상에 도달해서 보니 비록 또한 평평히 마주하고 있기는 하였지만 산세가 기이하고
빼어나 다른 산에 비할 게 아니었다.
동행하던 중 가운데 풍악산에서 막 온 이가 있다고 하여, 내가 “비로봉에 갔다 왔다면, 이 산과 비교해서 어느 쪽이
더 험난하오?” 하고 묻자, 중이 말하기를 “비로봉은 등산로가 길지만 완만하고 이 산은 짧지만 가파르지요. 어느 곳
이 더 험난한지는 모르겠지만, 비로봉은 다만 등산로가 닦인 지 오래되어 조금은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또 비로봉
은 높기는 하지만 보이는 것이 산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동쪽으로 단지 창해만 볼 수 있답니다. 시야가 끝없이 훤히
트인 것으로 말하면 비로봉은 실로 이 산에 미치지 못합니다.” 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정동화 (역) | 2018
11. 백운봉에서 이어지는 용문산 가섭봉
12. 682m봉 헬기장 서릉의 693m봉
13. 백운봉에서 내려다본 지나온 능선, 중간 맨 오른쪽이 682m봉 헬기장
14. 망망대해
15. 가운데가 사나사계곡
16. 함왕봉 동쪽 자락
17. 마유산(유명산), 그 오른쪽 뒤는 중미산
18. 멀리 가운데는 도일봉, 그 앞 오른쪽은 중원산
19. 마유산, 그 오른쪽은 어비산, 멀리 가운데는 화야산
▶ 장군봉(1,043m), 용문산 가섭봉(龍門山 迦葉峰, 1,157m)
창계가 그러했듯이 나도 사방 둘러 다시 보고 백운봉을 내린다. 계단 길 내리막이다. 예전에 계단이 없던 시절, 바위
에 달라붙어 짜릿한 손맛을 즐기던 그때가 새삼 그립다. 지금은 재미없는 길이다. 연수리 가는 갈림길에 이어 형제
우물 가는 갈림길을 지나고 바닥 친 안부는 구름재다. 암릉이 이어진다. 오른쪽 사면 돌아 긴 슬랩을 오르고 왼쪽 슬
랩을 트래버스 하여 814.0m봉을 오른다. 이다음은 암릉을 살금살금 기어오르다 오른쪽 사면 돌아 암봉인 868m봉
에 오른다. 데크 전망대가 생겼다. 운해 만경창파가 볼거리다.
868m봉을 내려 돌무더기 길게 늘어진 함왕산성(咸王山城) 성곽을 간다. 삼국시대의 산성이라고 한다. “전설에는
성 밖 계곡 아래의 함공혈(咸公穴) 혹은 함왕굴(咸王窟)이라 부르는 바위굴에서 삼한 시대의 함씨대왕 주악(周顎)
이 태어나 성을 쌓고 웅거하였다가 멸망하였고, 그 자손들은 본관을 양근(楊根)으로 하였다 한다. 양근 함씨인 고려
태조 때의 공신 함규(咸規)가 본향을 이곳으로 한 것과 관계된다. 고려 후기 몽고군의 침입 때 부근의 주민들이 이곳
에 피난하였으나, 1253년(고종 40)에 포위공격을 당하자 방호별감(防護別監) 윤춘(尹椿)이 나와서 항복하였고, 또
1291년(충렬왕 17)에 합단(哈丹)에게 함락된 바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짧게 내렸다가 길게 오르기를 반복하며 고도를 높인다. 이다음 901m봉은 함왕봉이다. 아무런 조망 없는 육산이다.
△967m봉(여기도 ‘함왕봉’이라고 한다) 오를 때다. 생각지도 않게 등로 옆을 곁눈질하다가 덕순이를 보았다. 이때
부터 눈에 힘이 부쩍 들어가고 걸음걸음 사면을 둘러보느라 힘 드는 줄 모르고 오른다. 내내 빈 눈이지만. △967m
봉 직등은 암릉이라 잘난 등로 따라 오른쪽 사면을 길게 돌아 오른다. ┫자 갈림길인 △967m봉도 사방에 키 큰 나
무숲 둘러 조망이 없다. 삼각점은 ‘용두 449, 2003 재설’이다.
장군봉이 반대쪽에서 내릴 때는 이등병도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상원사 쪽에서도 그렇고 여기서도 오를 때는 4성
장군이다. 오뉴월 비지땀 쏟는다. 장군봉. 데크 전망대가 오늘은 운해말고는 무망이다. 곧장 간다. 용문산 서봉
(1,150m) 아래 ┳자 갈림길이 금방이다. 배낭 벗어놓고 왼쪽 길 전망이 트이는 산모퉁이에 올라간다. 마유산과
중미산, 삼태봉, 통방산, 곡달산, 화야산이 차례로 뚜렷하다. 그 오른쪽 대해의 고도는 벽암산일 것.
뒤돌아 와서 용문산 남쪽 사면 돈다. 용문산 정상 1.2km.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길이다. 지능선을 몇 번이나 오르락내
리락한다. 너덜지대도 지난다. 등로 주변의 풀꽃은 모조리 자취를 감췄다. 오가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수인사 나누
는 것으로 파적한다. 용문사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고 막판 스퍼트내서 데크계단을 오른다. 용문산. 주봉은 가섭봉
(迦葉峰)이다. 원경은 여전히 운해로 가렸고 근경은 흐릿하다.
용문산 정상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소슬한 가을향기 속 일광을 즐기고 있다. 우리는 때마침 2인용 빈자리가 난
정자에 들어 점심밥 먹는다. 아직 갈 길이 멀어 든든하게 먹어둔다.
가파른 데크계단 내리고 한강기맥 길로 들어선다. 비탈진 사면의 소로에는 낙엽이 수북하게 쌓였다. 오지로 변했다.
우리가 발로 더듬어 새 길을 낸다. 저만치 보이는 뭇 산행표지기가 반가운 등대다. 지능선 두 개 돌아 넘고 펑퍼짐한
사면은 함부로 낙엽 지쳐 내린다.
야트막한 안부 지나고 봉봉을 넘는다. 왼쪽으로 한강기맥과 문례봉을 가는 ┫자 갈림길이다. 이정표가 없다면 길을
헤매기 십상이다. 낙엽이 심설처럼 인적을 덮어버렸다. 조망 가린 운해 덕분에 발품을 던다. 오른쪽 사면을 조금 더
간 전망바위는 들를 필요가 없다. 봄이면 얼레지가 만발하여 행여 밟지나 않을까 발걸음이 무척 조심스러웠던 사면
을 바싹바싹 낙엽 헤쳐 내리면 ┣자 갈림길 안부인 문례재다. 오른쪽은 조계골로 가는 길이다.
20. 오른쪽 고도는 벽암산
21. 앞은 용문봉, 그 뒤는 도일봉
22. 멀리 가운데 오른쪽은 장락산
23. 멀리 왼쪽은 소리산, 맨 오른쪽은 도일봉
24. 봉미산
25. 용문산 가섭봉 정상
26. 앞 고도는 벽암산, 멀리 오른쪽 흐릿한 산은 호명산
27. 노루궁뎅이버섯
28. 문례봉(천사봉)에서 바라본 용문산
▶ 문례봉(汶禮峰, 폭산 暴山, 천사봉, 1,004m), 중원산(中元山, 800m)
그간 이 길이 인적이 뜸했나 보다. 바로 곁의 눈높이에서 노루궁뎅이버섯을 본다. 964m봉을 대깍 넘고 한 피치 잠
깐 내리면 ╋자 갈림길 안부다. 천사의 품에 든다. 다훤 님 먼저 가시라 이르고 나는 덕순이를 데리러 덤불숲으로 들
어간다. 거기에 모여 있다. 이때 가슴이 설렌다. 낙엽을 살며시 한 장 한 장 들어내며 숨어버리려는 덕순이를 찾아낸
다. 금세 맑은 향기가 사방에 은은하게 퍼진다. 더는 덕순이를 탐하지 않고 천사봉을 향한다.
천사봉. 지도에 따라서는 폭산(暴山) 또는 문례봉(汶禮峰)이라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양평군에서 1,004m라는 고
도표시와 함께 ‘천사봉’이라는 아담한 자연석 표지석을 세웠다. 마음에 드는 작명이다. 그런데 누군가 이 표지석을
쓰러뜨려 북쪽 사면에 굴려버렸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다. 혹시 오래 살고 싶은 욕심에서 이런 게 아닐까. 흔히
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을 믿어 천사봉을 오르는 수많은 등산객들로부터 무수한 욕을 먹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수명을 단축하는 쌍욕을 처먹게 되리라는 것을 몰랐던가.
이 근방에서 예전에 다훤 님은 산우 한 분이 심장마비로 죽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목도했다고 한다. 그때 동행했던
베리아 님은 그 분에게 인공호흡을 하는 등 백방으로 무진 애를 썼으나 끝내 살아나지 못했다고 한다. 다훤 님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 분의 명복을 빌었다.
문례봉 내려 헬기장에서 동진하는 한강기맥 길은 어느 정도 예상한 까다로운 험로로 변했다. 가파른 내리막에 낙엽
이 수북이 쌓여서다. 낙엽 지쳐 내리기가 심설보다 더 힘들다. 심설은 러셀한 효과가 나지만 낙엽은 바로 메워지고
미끄럽기는 제동이 먹히지 않는다.
쭉쭉 미끄러지며 쏟아져 내리고 그 여세를 몰아 △735.3m봉을 단숨에 오른다. 이 봉우리가 험로의 중간지점이다.
다시 두 차례 사태 난 듯 낙엽과 쏟아진다. 일단의 등산객들을 만난다. 그들은 용두에서 오는 길이라며 우리가 처음
만나는 등산객들이라 반가워한다. 그들은 문례봉 용문산을 넘어 배너미재로 갈 거라고 한다. 가파르고 긴 오르막이
이어진다. 703.5m봉에서 잠시 주춤하여 가쁜 숨을 고르고는 냅다 솟구친다.
784m봉. 한강기맥을 벗어나는 ┣자 중원산 갈림길이다. 휴식한다. 이정표에 중원산 4.14km라고 하는데 분명 과장
된 오기다. 도상으로 2.2km가 나온다. 중원산 가는 길 그 절반은 부드럽지만 816.5m봉(지도에 따라서는 여기를
중원산이라고도 한다)을 길게 내린 ┣자 갈림길 안부에서부터 1.4km는 재미난 암릉 길이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
트가 시작된다. 여러 암봉을 오르고 내린다. 인적이 낙엽에 가려 여기저기 쑤셔보고 달달 기어오르기도 한다.
한 번은 전망 좋은 암봉에 오르는 길을 찾지 못하여 그 반대편으로 가서 오른다. 여태와 전혀 다른 경치가 펼쳐진다.
운해는 사그라졌다기보다는 묽어졌다. 백운봉에서 문례봉까지 산릉이 그라데이션 작품이다. 추읍산은 환영처럼
둥두렷이 솟았다. 이로써 더 바랄 게 없다. 중원산 0.4km를 남겨두고는 숫제 톱날 능선이다. 우회하는 길이 보이면
주저하지 않고 따른다. 중원산. 너른 헬기장이다. 중원산 정상 표지석도 누군가 없앴다. 그래서일까 양평군에서
사각기둥의 표지목을 세웠다.
하산. Y자 갈림길 오른쪽은 신점리 용문사 버스종점으로 가는데, 길이 험하고 3.2km나 된다. 왼쪽은 중원폭포가
가까운 중원계곡 주차장으로 가는데, 길이 부드럽고 2.5km이다. 왼쪽으로 간다. 해거름이다. 줄달음하여 내린다.
주변 경치가 모색(暮色)이기도 했지만 가을이 몰려 있는 산길이다. 걷고 있어도 걷고 싶은 숲길이다. 등로 살짝 벗어
난 절벽 위의 추읍산 전망대(?)에 들러 그 단아한 모습을 바라보고 내린다.
한 군데 가파른 내리막은 긴 밧줄 핸드레일을 설치했다. 손바닥이 화끈하게 붙들고 내린다. 능선 막바지에는 아름드
리 소나무가 줄지었다. 덩달아 의젓해진다. 왼쪽 사면 돌아 골짜기로 내리고 임도와 만나 조금 더 가면 텐트촌이 나
오고 중원계곡 도로다. 중원폭포를 들르기에는 너무 늦었다. 은근히 마음 속 붙들었던 중원폭포를 놓아준다. 버스종
점이자 주차장이 가깝다. 용문 가는 군내버스는 19시에 있다고 한다. 택시 부른다. 그리고 무사산행을 자축하는
하이파이브 나눈다.
부기) 용문으로 가는 택시가 곧 왔는데 택시기사님 얘기로 오늘 용문사 쪽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고 한
다. 오전에 용문사를 가는 데 차량행렬이 길게 늘어섰고, 지금쯤은 나오는 차량들이 그럴 거라고 한다. 자기는 용문
관광단지에서 호출이 있었는데 거기로 갔다가는 빠져나오기가 힘들 것 같아 거절하고 우리에게 왔다고 한다. 그래
서인지 용문역 앞 제일식당이 북적인다. 그 옆 춘천식당은 불이 꺼졌다. 얼른 번호표를 뽑았더니 8번이다. 기다렸다.
시장했던 터라 덕순주가 더욱 맛났다. 얼근하여 용문역에 가자 청량리 가는 무궁화호 열차가 도착하기 4분 전이다.
곧바로 승강장에 달려가서 승무원에게 열차 내에서 매표하겠다고 말했다. 1인은 좌석, 1인은 입석이다. 간이의자
꺼내니 입석인 나도 좌석이다.
29. 도일봉
30. 추읍산
31. 앞은 용조봉
32. 용문산, 그 앞은 용문봉
34. 추읍산
35. 하산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