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
불교 용어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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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般若)는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냐(प्रज्ञा prajñā) 또는 팔리어 빤냐(paññā)를 가리키는 낱말인데, 뜻에 따라 지혜(智慧)로 번역하고, 간단히 지(智) 또는 혜(慧)라고도 한다.[1] 지혜 즉 반야는 그 기초 또는 출발이 인과 즉 업과 업의 과보의 법칙 즉 연기법[2][3]을 아는 것 또는 믿는 것에 있다.[4][5][6][7] 즉, 인과를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사견(邪見)이 없는 것이 지혜의 출발이다. 달리 말해, 8정도의 정견의 시작이다.[8][9] 반야는 선한 업 즉 유익한 업을 쌓아 현세와 미래에 마음에 드는 좋은 결과 즉 기뻐할 만한 결과를 가져오는 뿌리 또는 원인인 무탐 · 무진 · 무치의 3선근 중 무치에 해당한다. 그리고 정견을 완전히 갖추는 것, 연기법을 완전히 아는 것, 인과를 완전히 아는 것이 반야의 완성이다. 즉 완전한 깨달음이다.[10][11]
완전한 깨달음 즉 열반의 증득과 관련하여, 충분한 수행력이 쌓였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좌선삼매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12][13]
마땅히 열반이라는 최선의 법 가운데 들어가서 머물러야 한다. 정진의 힘으로 깊은 선정에 들어 4념처 중 법념처에서 모든 존재의 실상을 관하건대 모든 것이 괴로움이어서 즐거움이 없으며 괴로움은 애착 등의 여러 가지 번뇌와 업에서 연유한다는 것을 알아 열반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이 괴로움은 일체가 남김없이 사라진다.
즉, 《반야심경》에서 설하고 있는 바처럼 제법을 관[照]하여 그 모두의 실상이 괴로움 즉 무상 즉 실체 없음 즉 공임을 정견[見]함으로써[照見五蘊皆空], 번뇌가 적멸하여 열반으로 들어가고, 그럼으로써 모든 괴로움이 남김없이 사라진다[度一切苦厄]고 말하고 있다. 정진 · 선정 · 반야바라밀에 의해 열반이 증득된다고 말하고 있다. 반야란 선정에 든 상태에서 제법의 실상이 고 · 무상 · 무아 즉 공임을 아는 것 또는 관하는 것, 즉, 연기를 보는 것이며 그렇게 하여 증득된 열반의 무분별지라고 말하고 있다.
반야 즉 정견은 길이자 목표이다.[14][15] 인과를 믿는 것에서 출발하여 중도 연기를 보는 것이다. 선법(유익한 법)과 불선법(해로운 법)을 분별하고 식별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진여의 분별지[依言眞如]에서 시작하여 진여의 무분별지[離言眞如]에 이르는 것이다.
불교 경전에서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냐 혹은 팔리어 빤냐를 '지혜'라고 번역하지 않고 음역인 '반야'를 사용한 것은 불경의 한역(漢譯) 시 적용했던 원칙인 5종불번(五種不翻: 5가지 번역하지 않는 원칙) 가운데 존중불번(尊重不翻)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즉, 반야를 지혜라 번역하면 그 본래의 뜻은 깊고 심대하나 번역함으로 인해 그 뜻이 얕아지고 가벼워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16] 하지만, 불교 논서들에서는 흔히 반야를 혜(慧)로 번역하고 있다.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반야(般若) 즉 혜(慧, prajñā, paññā)는 택법(擇法) 즉 간택(簡擇: 정확히 식별하여 판단함)[17][18][19] · 판단작용 · 판단력 또는 식별력으로, 5위 75법의 법체계에서 심소법(心所法)의 대지법(大地法: 마음이 일어날 때면 언제나 항상 함께 일어나는 마음작용들)에 속한다.[20][21][22]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의 교학에 따르면, 혜(慧)는 부파불교에서와 마찬가지로 택법[23][24] 즉 간택[25][26] · 판단작용 · 판단력 또는 식별력이지만 5위 100법의 법체계에서 심소법의 별경심소(別境心所: 특정 대상 또는 경계에 대해서만 일어나는 마음작용들)에 속한다.[27][28][29][30][31] 상좌부 불교의 교학에서는 8정도를 크게 계(戒) · 정(定) · 혜(慧)의 3학(三學)으로 분류하여 보는데, 정견(正見)과 정사유(正思惟)를 혜로 분류한다.[32][33] 이와 관련하여 《잡아합경》 제13권 제334경〈유인유연유박법경(有因有緣有縛法經)〉에서 고타마 붓다는 정사유(正思惟)의 반대인 부정사유(不正思惟: 바르지 않은 사유, 바르지 않은 생각)가 무명(無明)의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구사론》 등에 따르면, 지(智) · 견(見) · 명(明) · 각(覺) · 해(解) · 혜(慧) · 광(光) · 관(觀)을 통칭하여 혜의 8가지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34][35] 이 때문에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과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의 법체계에서 혜(慧)라는 명칭의 법은 있어도 지(智) · 견(見) · 명(明) · 각(覺) · 해(解) · 광(光) · 관(觀)이라는 명칭의 법은 없는데, 이들의 본질[自性, 自相]이 모두 혜(慧)와 동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에서는 성자의 지혜, 즉 출세간의 지혜, 즉 번뇌를 단멸하는 힘을 가진 무루혜 또는 무루지를 크게 법지(法智)와 유지(類智)의 2가지로 구분한다. 법지는 욕계에 대해 4성제를 체득함으로써 증득되는 무루지이고, 유지는 색계와 무색계에 대해 4성제를 체득함으로써 증득되는 무루지이다. 또한, 무루지 즉 '법지와 유지를 합한 전체'를 4성제의 고 · 집 · 멸 · 도의 각각의 측면에서 보아서 각각 고지(苦智) · 집지(集智) · 멸지(滅智) · 도지(道智)라 한다. 그리고 무루지 즉 '법지와 유지를 합한 전체'를 깊이 또는 완전함의 측면에서 보아서 무학위의 아라한이 색계나 무색계의 선정에서 증득하는 무루지를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라 한다.[36][37][38][39][40]
대승불교에서는 특히 부처가 증득한, 번뇌장과 소지장을 단멸함으로써 드러나는 진여를 깨친 완전한 지혜 또는 진여의 지혜, 즉 부처의 무분별지(無分別智, 산스크리트어: nirvikalpa-jñāna, 니르비칼파 즈냐나)를 가리켜 반야(般若) 또는 마하반야(摩訶般若, 산스크리트어: mahāprajñā) · 대반야(大般若) · 대지(大智)라고도 하며, 보리(菩提, 산스크리트어: bodhi) · 대보리(大菩提) · 대원경지(大圓鏡智, 산스크리트어: ādarśa-jñāna) 또는 구경각(究竟覺)이라고도 한다. 대승불교에서는 진여의 무분별지가 모든 성자가 선정(禪定) 수행을 통해 증득하는,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갖가지 무루혜의 근본이라고 본다. 이러한 이유로 대승불교의 각 종파는 진여의 무분별지에 근거하여 자신의 견해를 세운다. 대승불교의 중관학파에서는 반야 또는 마하반야의 입장에서 현상을 관하여 온갖 번뇌를 벗어나게 하는 방편으로서의 선정(禪定) 수행인 팔불중도(八不中道)의 공관(空觀)만을 세운다.[41]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에서는 진여의 무분별지를 본질의 입장에서는 근본지(根本智) 또는 근본무분별지(根本無分別智)라 하고 진여를 완전히 깨칠 때 비로소 드러난다는 증득의 입장에서는 후득지(後得智) 또는 후득무분별지(後得無分別智)라 하며, 가행(加行: 노력, 방편) 즉 선정 수행을 통해 증득하는, 진여의 무분별지의 일부로서의 갖가지 무루혜를 가행지(加行智) 또는 가행무분별지(加行無分別智)라 하며, 가행지는 근본지를 깨쳐 후득지가 드러나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42] 《대승기신론》등의 대승불교의 여래장사상 계열에서는 진여의 무분별지 또는 자성청정심(自性清淨心)을 본질의 입장에서 본각(本覺)이라 하고, 증득의 입장에서 범부가 최초로 증득하는 무루혜를 상사각(相似覺)이라고 하고, 성자가 선정 수행 즉 지관(止觀) 수행을 통해 증득하는 중간의 갖가지 무루혜를 수분각(隨分覺)이라 하고, 성자가 근본무명을 끊고 진여를 완전히 깨쳐 본각이 완전히 드러나는 것을 구경각(究竟覺)이라 한다.[43][44]
반야의 뜻이 넓고 깊음
반야 바라밀
반야의 다른 이름
같이 보기
참고 문헌
주해
각주
배우는사람님이 6일 전에 마지막으로 편집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