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서 생긴 일
김화숙
언제부터인가 의자에 앉았다 일어날 때 핸드백이 뒤에 잘 놓여 있나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 이유인 즉 몇 년 전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세계 심장학회에 남편을 따라 참석하게 된 후부터였다.
바르셀로나 하면 올림픽을 떠올리게 되고 특히 몬주익 언덕은 코리아의 태극기를 품고 마지막 승리를 위해 한발 한발 숨을 헐떡이며 내 달리던 황영조의 숨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일장기를 달고 뛰었던 손기정 선수의 한을 품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을 확 뚫리게 해주던 황영조 선수, 분명 영웅이고 애국자이다.
도시 전체가 예술품이라고 찬사를 보내던 파리, 로마와는 달리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작품이 전시된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페인의 후손들은 가우디의 예술품 덕분에 먹고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하늘을 찌를 것만 같은 정교하고 절묘한 탑들이 조화를 이루며 질서 있게 서 있다. 하나하나 키 높이가 다르고 가늘고 긴 가래떡을 옆으로 쌓아 올린 듯하나 이것은 분명 갖가지 모양의 돌 조각임을 생각할 때 어찌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지 않겠는가. 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새로운 배경의 풍경이 나오고 또 다른 하나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하니 인간이 돌로 쌓아 만들었다기보다 신의 손이 빚어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걸작품이 아닌가 싶다. 1891년 가우디가 건축설계에 참여하여 12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미완성의 교회라고 하며 앞으로 100~200년이 더 걸린다고 하니 불후의 명작을 만들려면 이렇게 오래오래 수백 년이 걸리나 보다. 우리네 건축물처럼 짧은 시간에 뚝딱하여 불나면 폭삭하고 갈라지면 땜질하고 수명의 한계를 느끼는 목조건물에 비하면 이렇게 진지하고 과묵하게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 부럽기도 하다.
바르셀로나 도심 길옆에 세워진 까사바뜨요 건축물도 3년이 걸린 가우디의 작품으로 건물 전체는 하얀 석고로 분칠되어 있으며 창문은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고 창살은 뼈 모양을 디자인하여 마치 골다공을 연상케 한다.뿡뿡 뚫린 창살 사이로 은은히 비친 오색가지 불빛은 마술의 집같이 우리를 한없이 유혹하고 있었다.
바르셀로나의 명동인 람블라스 거리는 미로가 디자인한 형형색색의 모자이크가 깔려있어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밟는다는 생각을 하니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커피 한 잔을 음미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려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접할 수 없는 유럽중세의 고풍스런 물건에 현혹되기도 한다. 언제 서울에서 이러한 여유를 즐겼던가. 몸 전체를 하얗게 채색하고 마치 하늘에서 금방 내려온 천사처럼 날개를 단 여인, 까만 망토를 두르고 꼼짝 않고 서 있는 베트맨, 총부리를 누구엔가 겨누고 눈동자까지 금방 싸울 것 같은 표정, 갖가지 모양을 하고 몇 시간이고 서 있는 모델 앞에 몇 푼의 동전이 놓여있는 상자 통을 볼 때 측은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들이 행위예술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젊은이의 향기를 맡으며 낭만을 즐겨보며 예술을 감상하는 가우디의 도시를 마음껏 호흡하면서 람불라스 거리의 밤은 익어 가고 있었다.
심장학회는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되었다. 학구적인 열정은 아직도 남아있어 나의 전공과는 다르지만 세계심장학회라는 매력에 끌려 혹시 우리 개원가에서 진료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연제가 있을까 하고 학회장을 살펴보는데 등록비가 아깝던 차에 마침 외근(?) 중인 다른 대학 교수님이 계셔서 그 명찰을 달고 입장하였다. 그곳 등록처에서는 한국인의 이름이 남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리가 없다. 한국에서 오신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카페테리아에 들어가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한참을 노닥거리며 세계 각 나라에서 온 심장의사들의 얼굴색과 언어의 차이를 감상하면서 인간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박물관을 생각해 보았다. 몇 분 후 다시 강의실로 들어가려고 의자 등 뒤에 놓았던 핸드백을 잡으려는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어 내 핸드백이 어디로 갔어” 저절로 소리가 질러졌다. 여기저기 의자를 다 봐도 핸드백은 흔적없이 사라졌다. 같이 앉았던 선생님들도 당황하여 찾아보고 있는데 카페테리아 입구 문 옆에 얌전히 놓여있는 빨간 핸드백을 가리키면서 “이것 맞느냐”고 웨이트가 물었다. 너무나 반가워 “땡큐 땡큐” 하면서 얼른 집어서 가방을 열어보는 순간 또 한번 놀랐다. 지갑, 손수건, 미니 화장 케이스, 선글라스 집 등 모두가 그대로 있는 것이었다. “후유” 하고 안심을 했다. 그러나 지갑을 여는 순간 유로화(600유로정도), 달러(팁용), 한국 돈(조금)이 몽땅 없어졌다. 내 사진이 있는 외환 카드는 쓸모가 없는지 그대로 있었다. 안경집을 열었더니 역시 비었다. 허탈하기도 하고 가슴이 쿵쿵 뛰기도 하였다. 또 뒤져보았다. 귀걸이 2개가 든 작은 꽃 주머니와 카메라도 없어졌다.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더니 한국에서 자주 사용했던 장바구니가 생각났다. 결론은 모든 물건을 천으로 된 장바구니 속에 담아 유유히 살아졌다는 사실, 대신 핸드백만 고이 남겨둔 채. 그날 따라 귀걸이를 하지 않았는데 그 주머니 속에 항상 여행 시 지참하는 진짜 같은 가짜 다이아몬드 귀걸이 한 세트가 있었다. 쓰리꾼은 진짜 다이아몬드인 줄 알고 얼마나 좋아했을까?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너무나 다행인 것은 여권을 호텔에 두고온 것과 모처럼 뉴욕에 살고 있는 출산한 딸을 보러 간다고 약간의 달러를 호텔에 두고온 것이었다. 도시의 거리도 아니고 학회장 안에서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의사일 텐데 어떻게 도난 사고가 날 수 있을까? 속도 상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흥분하면서 같이 앉았던 선생님들과 함께 학회장에 있는 경찰에 신고하러 가자고 일어섰다. 그때 뒤에서 따라오던 남편 왈 “당신도 가짜 명패 달고 입장했으니 신고하면 당신도 걸리게 되니까 참는 게 어때?” 모든 사람들이 와르르 웃음보가 터졌다.
바르셀로나하면 가우디의 멋지고 아름다운 예술품도 생각나지만 유감스럽게도 쓰리꾼이 먼저 생각난다.
—계간 『시에』 2013년 봄호
김화숙
대구 출생. 2012년 『한국산문』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