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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네 종류의 부활 / 고린도전서 15:22-24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lYaMXuomcgQ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해마다 부활절이 되면 기독교인들은 알록달록 예쁘게 포장하거나 색칠한 달걀을 주고받으며 부활의 기쁨을 나눕니다. 우리도 오늘 광고 시간에 달걀을 나눌 것입니다. 부활절 달걀 풍습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정확한 유래를 알 수 없지만 몇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십자가를 대신 져준 구레네 시몬이 달걀 장수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린 뒤 집으로 돌아가 보니 달걀들이 모두 무지갯빛으로 변해 있었답니다. 이후 자연스럽게 이것이 부활절의 상징이 됐답니다. 마치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듯,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우리가 비로소 구원을 받아 옛 사람을 벗고 새롭게 거듭난다는 것을 달걀이 상징적으로 표현한다는 설입니다.
또 하나는 부활절의 영어식 표현인 이스터(Easter)가 봄의 여신인 에오스트레(Eostre)에서 온 것인데, 유럽 지역에서 달걀을 주며 이 여신을 기리던 풍습이 기독교와 만나 오늘날까지 굳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부활절 달걀을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또 십자군 전쟁 당시 부활절 달걀 풍습이 시작됐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자, 못된 부하에게 자신의 집과 재산을 다 빼앗긴 로잘린드 부인은 떠돌이 신세가 되었습니다. 추위와 빈곤에 지친 로잘린드 부인은 여기저기 떠돌다가 한 마을에 당도했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따듯하게 대해 주었고, 그녀는 그 마을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닭이 매우 희귀했기에 그 마을에는 닭이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부활절이 되었을 때, 로잘린드 부인은 친절한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항상 아이들과 함께 지냈던 로잘린드 부인은 그 동네 아이들에게 달걀을 하나씩 선물하려고 어렵게 달걀을 구했습니다. 부인은 동네 아이들에게 “여러분! 숲 속에 들어가 각자 새집을 하나씩 지어놓고 그 자리를 잘 봐 두고 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부인의 말대로 숲 속에 새집을 만들어 놓고 돌아오자 부인은 맛있는 요리를 아이들에게 먹게 했습니다. 그리고 로잘린드 부인은 숲 속에 들어가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새집마다 예쁘게 색칠한 달걀을 하나씩 놓아두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자, 여러분! 이제는 자기가 만든 새집에 다시 가서 무엇이 있나 보세요.”하고 말했습니다. 숲으로 들어가 자신들이 만든 새집에 달걀이 들어있는 것을 본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습니다. 아이들은 달걀을 하나씩 집어 들었는데, 그 달걀에는 “하나님의 보호를 믿으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일을 하는 사람을 도와주신다.”는 로잘린드 집안의 가훈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중 하나가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부상당해 쓰러져 있는 한 병사를 발견하고 극진히 간호하며 자기가 들고 있는 달걀을 건네주었습니다. 달걀을 건네받은 병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달걀에는 “하나님의 보호를 믿으라.”는 그 병사의 집안 가훈이 적혀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쟁에서 부상을 당한 후, 아내를 찾아 헤매던 이 병사는 아내가 부활절에 아이들에게 선물한 달걀로 인해 사랑하는 아내를 찾게 되었고, 결국 로잘린드 부인은 남편과 함께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부활절이 되면 이 부인은 달걀에 색칠을 해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그 후 오늘날까지 이 풍습이 여러 나라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설입니다.
달걀의 단단한 표면은 예수 그리스도가 묻혀 계시던 돌무덤의 표면을 상징합니다. 그 껍질을 깨고 병아리가 나오듯이 그리스도께서는 무덤을 열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부활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소망은 부활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소망이 부활이라고 말했습니다. 행 24:15입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소망은 부활이었고, 사도 바울의 소망도 부활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소망도 부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성경에 나오는 네 종류의 부활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이 설교는 제가 2013년 부활 주일에 한 설교를 리메이크한 설교입니다.
1.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죽은 자들 가운데 있었던 소수의 부활입니다.
성경에 보면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난 사건들이 몇 번 나옵니다. 열왕기상 17장에는 3년 흉년 때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엘리야를 대접했던 과부의 아들이 죽었는데,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 살려주신 사건이 있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엘리사를 극진히 섬겼던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는데,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서 다시 살려주신 사건이 나옵니다. 열왕기하 13장에 보면 엘리사가 죽고 다음 해에 모압의 도적 떼가 몰려왔습니다. 그때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 떼를 보고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살아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친구 나사로의 무덤에서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어서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나인이라는 성에 사는 과부의 아들이 죽어서 관에 실려 운구 중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니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셔서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은 “소녀야 일어나라”라는 아람어입니다. 주님이 “달리다굼” 하시자 소녀가 곧 일어나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마 27:50-52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말씀을 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두 가지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지성소를 휘장이 막고 있었던 것처럼 죄가 담이 되어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또 하나는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죽었던 성도들이 부활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역사가 진행 되는 동안에 초자연적으로 죽은 자들이 살아난 사건에 대해서 부활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을 반대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부활입니다. 물론 그들은 죽음에서 살아났지만 언제가 다시 죽습니다. 히 11:35을 보겠습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이 말씀에 보면 두 종류의 부활이 나옵니다. 하나는 세상 종말이 아닌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 세상에서 죽은 자들이 살아난 것을 말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주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믿음의 사람들이 죽음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에 부활이라는 용어, 헬라어로는 ‘ἀνάστασις’(아나스타시스)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초자연적으로도 일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적으로는 죽으면 몸이 썩게 되어 있지 다시 살아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얼마든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보통은 자연적으로 역사하십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질서와 자연을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연법칙 안에만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자연을 초월하실 수 있는 초자연적인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초자연적인 역사가 많이 나옵니다.
사람은 자연의 질서 속에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초자연적인 역사를 만들 수 없습니다. 지구상의 인구가 80억입니다. 80억이 힘을 다 합쳐도 죽은 자 한 사람도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죽은 자도 살아나고, 얼마든지 초자연적인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자연의 질서 속에서 살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주님이 물 위를 걸으셨다고 우리도 물위를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가 홍해를 갈랐다고 우리도 한강을 가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위급할 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초자연적인 기적도 일으켜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흥미로운 기도 응답이 있습니다. 어느 자매가 아이를 낳았는데 대머리였습니다. 보통 나이가 들면서 머리가 빠지는데 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대머리였습니다. 아이가 대머리이니 어머니가 새벽마다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가서 목사님께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머리카락 한 올 나지 않았습니다. 매일 기도를 받는데 초등학교를 졸업해도 머리카락이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아이의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새벽기도시간에 목사님께 안수를 받게 했습니다. 그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도 머리카락 하나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이 되자 머리카락이 팡팡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어머니의 끈질긴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저는 그 어머니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도 그분이 가진 그런 믿음과 끈기가 있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기도의 에너지를 전도에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프로골퍼 최경주 집사님은 얼마나 신앙이 투철한지 모릅니다. 챔피언이 되었을 때 우승 소감을 말하라고 하니 온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승리의 소감을 말할 때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처음에는 교회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교회에 나가지 않으니 그 부인은 남편이 잘 때마다 발을 붙잡고 “하나님! 이 발을 축복해 주세요. 이 발이 교회에 가는 발이 되게 해 주세요.”라고 매일 기도를 했답니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드리는 아내 분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결국 최선수는 그 발로 교회에 와서 새벽기도까지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신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큰 건축물들은 대개 무덤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세상에는 큰 무덤들이 많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에 쿠푸의 피라미드는 약 4,500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평균 25톤이 되는 돌을 230만개 쌓아서 만들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중국 시안 병마용은 진시황의 능입니다. 병마용은 무덤을 지키는 용도로 사람 크기의 군사를 흙으로 만들었는데, 약 7,000개나 발견했습니다. 수백 개의 마차와 가마도 들어있습니다. 인도의 타지마할은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무덤입니다. 무굴제국의 샤한 왕이 죽은 왕비 마할을 기리기 위해 일꾼 2만 명을 동원하여 22년간 지었답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주님의 무덤은 별 볼일 없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이 세 곳입니다. 성묘교회애 둘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가셨던 비아돌로로사라는 길이 있습니다. '슬픔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 길은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에서 선고를 받은 이후 십자가에 못 박혀 장사지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800m 정도 되는 순례 길입니다. 그 길 마지막에 성묘교회가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가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교회 안에 집 같은 건물 하나가 있는데, 그 안에 있는 무덤이 예수님의 무덤이라는 견해가 있고, 더 왼쪽으로 들어가면 돌무덤이 있는데, 거기가 예수님의 진짜 무덤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또 하나는 정원무덤입니다. 작은 산 아래 있는 무덤인데, 그곳의 정원은 아름답지만 예수님이 묻히실 때의 모습은 아닙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히브리어로 ‘골고다’라고 합니다. 라틴어로는 ‘갈보리’입니다. 뜻은 ‘해골의 곳’입니다. 정원무덤이 있는 곳 산의 바위가 해골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 무덤은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입니다. 들어가서 보니 작은 방만한 비어 있는 무덤입니다.
우리는 어느 무덤이 예수님의 진짜 무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주님의 무덤은 웅장하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무덤은 볼품없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에게는 무덤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은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무덤은 크고 화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교회가 주님의 무덤을 그렇게 꾸밀 필요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신화가 아닌 역사적 사실입니다. 사단은 부활이 없는 기독교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이론을 만들어 냈지만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는 이유는 많습니다만 저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제자들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께서 잡히시고 십자가를 지실 때,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는 모두 살기 위하여 도망쳤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던 제자들이 부활을 증거 하다가 목숨까지 버렸습니다. 이런 일은 부활을 목격했기에 가능한 것이지 부활을 목격하지 못했다면 이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12사도 가운데 주님의 죽음의 현장, 즉 십자가의 현장까지 따라간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 다른 사도들은 다 주님의 부활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도미티안 황제의 박해 때 끓는 기름 가마솥에 던져 졌다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후 밧모섬에 유배되었습니다. 거기서 요한계시록을 쓰고 에베소로 돌아와 수명이 다하여 죽었습니다. 12사도 중에 유일하게 사도요한만 자연사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헤롯 안티바스에 의해서 목베임을 당했습니다. 안드레는 그리스의 파트레에스에서 X자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래서 X자 십자가를 안드레 십자가라고 부릅니다. 빌립은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바돌로매는 아르메니아에서 산체로 살 껍질을 벗기우고 목베임을 당하여 순고했습니다. 마태는 에티오피아에서 칼에 찔려 순교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이교도 제사장들에게 창에 찔려 순교했습니다. 작은 야고보는 예루살렘의 한 탑 꼭대기에서 던져진 후 돌에 맞고 몽둥이에 맞았으나 거기서 회복되어 후에는 톱으로 베임을 당해 순교했습니다. 다대오라고 하는 유다는 메소포타미아에서 화살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열심당이었던 시몬은 페르시아만 근처에 폭도들의 공격으로 사망했습니다. 가롯 유다 대신에 12사도 들어온 맛디아는 터키 가파도기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주님이 잡히실 때 두려워서 도망갔던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엇 때문에 부활의 복음을 전하다가 한 결 같이 순교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가 있습니다. 롬 1:4입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로마서 1장 앞부분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은 복음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복음을 설명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특히 부활을 통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선포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과 믿음으로 연합한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합하여 옛자아는 죽은 것이며, 그분의 부활과 합하여 새생명 가운데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우리는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여 우리도 생명의 부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믿는 자들의 부활입니다.
23절을 보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들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믿음의 사람들이 생명의 부활한다는 말씀입니다.
고전 15:51을 보니 부활은 비밀입니다.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 우리는 순식간에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때의 광경을 살전 4:16,17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믿음 안에서 죽은 자들이 부활합니다. 그리고 그 때에 살아남은 자들이 부활한 자들과 함께 공중으로 들림을 받아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활시키신 후에 이 땅에 지상재림하십니다. 그 때 우리는 흰옷을 입고 흰말을 타고 주님과 함께 이 땅에 내려올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천년 왕국을 통과하고 흰보좌 심판을 거친 후에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생명의 부활을 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부활이 진정한 소망입니다.
양복임이라는 자매의 간증입니다. 어느 부활절에 친구의 손에 끌리다시피 해서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억지로 따라왔지만 자기가 왜 거기에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미 신앙을 버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주님을 믿고 신앙 안에서 만난 남편이 넉 달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너무너무 많이 사랑했는데, 그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부부로 함께 산 세월이 겨우 일 년뿐인데’ 세상에 절망하고 자신에게 절망하고 그래서 삶이 끝나버린 듯 무척 괴로웠습니다. 결국 신앙을 버렸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친구와 교회에 들어갔을 때 자리는 꽉 차 있었습니다. ‘무슨 이유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온 것일까?’ 그런데 그들의 모습은 밝아 보였습니다. 아무도 자기처럼 고통의 짐을 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자매는 안절부절 어쩔 줄 몰랐습니다. 찬송이 울려 퍼지자 친구는 자매의 손을 꽉 잡았습니다. 강단 위에 서신 분이 성경 요한복음 11:25,26을 읽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순간 이상한 기류 같은 것이 자매를 감쌌습니다. 그 넓은 교회 안에 자기 혼자 있는 듯했고 눈앞은 캄캄해졌습니다. 두려워서 허공을 향해 두 팔을 휘저었습니다. 그때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아니요, 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그 사람을 데려가지 않았습니까?’, ‘이것을 네가 믿느냐?’, ‘아니요, 그는 이미 죽었고 내 삶은 절망입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아니요.’, ‘이것을 네가 믿느냐?’ 물음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는 계속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일까요? 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겨우 한 마디 내뱉었습니다. “왜... 왜... 저를? 왜요?” 그때 빛이 자매를 감쌌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순간 눈앞이 환해졌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진정한 부활의 의미를! 그리고 눈물과 콧물로 얼굴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때 자매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가슴속으로부터 솟아나는 큰 울림으로 몸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짐이 사라져버렸어. 이제 괜찮아.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자매는 주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 그리고 죽었던 주님이 살아계시니 남편도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자매는 부활의 신앙을 통하여 남편의 죽음을 극복했습니다. 부활이 소망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믿음의 사람들은 생명의 부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부활을 믿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도 바울은 고전 15장에서 부활을 말한 후에 58절에서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여기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두 가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➀부활을 믿으면 견고하여 흔들림 없이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신앙을 흔들어 놓는 환경과 사건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 속에 살지만 부활과 천국을 확신하고 흔들림이 없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10kg의 물건을 들지 못하는 사람이 100kg의 물건을 들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지금 작은 시험에 신앙이 흔들리는 사람이 대환난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지금 시험을 담대하게 이기십시오. 시험을 꿀떡 삼키십시오. 그래야 대환난을 이길 수 있고, 그래야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➁부활을 믿으면 항상 주의 일에 더욱 충성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갈 것이고, 천국에는 우리가 받을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은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믿는 우리는 부활할 것입니다.
4. 최후의 심판 직전에 불신자들의 부활입니다.
부활의 시기에 관해서는 몇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저는 천년왕국설에 대해서 역사적전천년설을 받아드립니다. 역사적전천년설은 천년왕국을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있을 신자들의 천년왕국으로 봅니다. 부활에 관한 역사적전천년설의 입장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의인들이 부활하고 천년 왕국 후에 악인들이 부활한다고 봅니다. 이것을 이중부활이라고 하는데 저는 이중 부활을 믿습니다.
23,24절을 보면 주님의 부활 외에 두 번의 부활 즉 이중 부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어떤 사람은 의인의 부활만 있는 줄로 아는데 아닙니다. 성경은 의인이 부활하듯이 악인도 부활한다고 말씀합니다. 단 12:2입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의인과 악인 모두 부활합니다. 롬 5:28,29입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역시 의인과 악인 모두의 부활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20장에 보면 천년 왕국 전에 의인들이 부활하여 천년동안 왕 노릇합니다. 그리고 천년이 찬 후에 백보좌 심판이 있는데, 그 때에 두 번째 부활 즉 악인들의 부활이 있습니다. 악인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은 끝없는 고통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당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합쳐도 지옥에서 잠간 받는 고통보다 약한 것입니다.
지옥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천국만 있고 지옥이 없다면 믿지 않아도 소멸되어버리니 별 상관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옥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축복입니다. 지옥을 면할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지옥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옥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전도해야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의 가족, 나의 친구, 나의 친척들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전도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기도 소그룹별로 전도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며 전도 대상자를 정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함께 기도하며, 함께 전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전도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것을 소유했어도 죽으면 내 것이 아닙니다. 죽음 후에 천국과 지옥은 한 번 결정되면 변개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것입니다. 전도는 지옥을 면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비결을 전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전도만큼 큰 선물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은 네 종류의 부활에 관해서 나눴습니다.
1.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죽은 자들 가운데 있었던 소수의 부활입니다. 신앙생활에는 기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기적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일으켜 주셨든지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은혜와 기도로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 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의 죄사함과 부활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믿는 자들의 부활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이유는 부활과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날을 바라보며 견고하며 흔들림 없이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며 주의 일에 항상 힘써야 합니다.
4. 최후의 심판 때 불신자들의 부활입니다. 그들은 마지막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들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도에 힘을 써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도 생명의 부활을 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