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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의 맛, 송편과 신도주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임두환 일주일쯤 지나면 추석(秋夕)이다. 추석은 글자 그대로 가을저녁이란 뜻이다. 가을 달 밝은 저녁으로 음력 팔월보름의 추석을 가배(嘉俳), 한가위, 중추절(仲秋節)이라 부른다. 추석은 설날과 함께 우리 겨레의 가장 큰 명절이다.
추석의 유래를 살펴보면, 오래전부터 보름달에 대한 신앙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일 년 중에 달이 꽉 찬 추석을 우리 선조들은 대표적인 명절로 꼽았다. 신라인의 풍습을 기록한 중국「수서(隨書)」의 「동이전(東夷傳)」에는 "동이족은 제사지내기를 좋아하며, 음력 8월15일이면 왕이 풍류를 베풀고, 관리들을 시켜 활을 쏘게 하여, 잘 쏜 자에게 상으로 말(馬)이나 포목(布木)을 준다." 라고 기록이 되어있다. 우리나라 문헌에도「삼국사기 」를 보면
"8월 보름에 이르면 공(功)이 있는 신하에게 상(償)을 주고,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하였으니, 이를 가배라 한다." 는 추석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나온다.
‘추석날 가을 맛은 송편에서 오고, 송편 맛은 솔 내음에서 온다.’는 말이 있다. 송편은 솔잎으로 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십장생 중의 하나인 소나무는 신선들이 늙지 않는 약으로 먹었다고 해서 장수(長壽)를 상징한다. 송편은 솔잎의 찍힌 모양이 멋스럽기도 하지만 솔 향이 배어들어 풍미가 있고, 기능적으로도 쉽게 상하는 것을 막아준다. 음식이 상하기 쉬운 음력 8월 중순에 살균력이 강한 ‘피톤치드’가 들어있는 솔잎을 사용했던 것은 우리 조상들의 지혜라 할 수 있다.
조선후기 세시풍속집인「동국세시기」에 의하면 ‘팔월추석에는 햅쌀로 송편을 빚어 차례를 지내고,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한다.’고 했다. 이 풍습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와 추석음식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송편 중에서도 올해 나온 햅쌀로 빚은 송편을 차례상에 올리는 것을 ‘오려송편’이라고 한다. 조상 때부터 지역에서 많이 나는 재료를 활용했던 까닭에, 지방에 따라 모양과 특색이 다르고 이름도 가지가지다. 전라도에서는 모싯잎송편과 더불어 꽃송편이 유명하다. 꽃송편은 쑥, 치자, 포도, 오미자, 도토리 등의 즙으로 화려한 색을 더해 꽃모양으로 만들어 쪄낸 떡이다. 강원도에서는 산간지방에서 많이 나는 감자와 도토리를 재료로 한 투박한 모양의 송편을 만들었고, 충청도는 호박을 삶아 멥쌀가루와 섞어 반죽한 다음, 깨나 밤을 송편소로 넣는 호박송편이 있다. 이 밖에도 송편재료를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이름은 달라진다. 예로부터 ‘추석송편을 잘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추석에는 우리 내외와 아들, 며느리, 손자 지훈이랑 둘러앉아 예쁘고 맛있는 송편을 만들어야지 싶다. 그 다음으로 신도주(新稻酒)를 소개하면, 신도주는 추석에 햅쌀로 빚어 차례상에 올리는 술을 말한다. 조선 현종 때 정학유(丁學遊)가 지은「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중 팔월령(八月令)을 보면 신도주가 등장한다. “팔월이라 중추가 되니… 서늘한 아침기운은 가을의 기분이 완연하다. 귀뚜라미 맑은소리가 벽 사이에서 들리는 구나… 햅쌀로 만든 신도주와 송편, 박나물과 토란국으로 조상께 제사를 지내고 이웃과 서로 나누어 먹세….”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도 설 명절이나 추석이 되면 으레 신도주를 담갔다. 온돌방 아랫목에 옹기항아리를 놓고서, 고두밥과 누룩을 잘 버무린 재료를 넣는다. 중요한 것은 배합비율에 있다. 대체적으로 물10: 쌀5: 누룩1 비율이면 적당하다. 술항아리에 이불을 덮어 놓고 사흘쯤 기다리면 발효가 되어 뽀글뽀글 거품이 올라온다. 이때가 술이 익는다는 신호이다. 술독에 용수를 박아놓고 처음 떠낸 것이 청주(淸酒)다. 그 다음으로 혼합하여 거른 것이 막걸리이다. 처음 떠낸 청주로 차례를 지내고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음복(飮福)을 하게 된다. 막걸리는 우리 집을 찾는 친척이나 이웃들을 대접하는데 빠질 수 없는 음식이었다. 조양임씨(兆陽林氏) 우리 집안은 거의가 술을 좋아한다. 아버지께서도 술을 많이 드셨지만 나 역시, 한창때는 중국소설 수호지(水滸志)에 등장하는 노지심(盧智深)과 버금가는 말술이었다.
올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뭄이 지속되어 농민들을 시름에 젖게 했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사과, 배, 밤 등 제철과일은 나올 게고, 황금빛 들판에서는 햇곡이 수확되어 풍요로움을 더할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항간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 햅쌀로 빚은 송편과 신도주를 의미하면서, 올해는 더욱 풍성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추석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2018. 9.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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