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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경우 어머니인 유화 부인은 하늘의 신 헤모수와 동침하여 임신한 몸으로 부여의 금와왕에게 발견되어 의탁하여 알을 낳았는데 여기서 주몽이 태어났다. 이경우 헤모수와 유화는 뻐꾸기이고 금와왕은 뱁새가 되는듯 하다
주몽은 금와왕의 돌봄을 받다가 다 크니 뻐꾸기가 뱁새의 둥지에서 훌쩍 떠나듯이 떠나 나라를 세웠다.
박혁거세도 어미가 누군지는 모르나 우물가에 알을 낳아놓고 말이 지켜주다 서라벌의 육촌장이 나타나니 하늘로 날아갔다
이 경우 육촌장이 탁란을 당한 뱁새가 되겠다. 육촌장 운명도 기구하지 탁란을 한번더 당한다
이번엔 계룡이 알영을 우물가에 알을 놓고 갔다. 탁란된 알에서 나온 뻐꾸기 새끼들을 결혼시키고 자신들의 지도자로 삼았다
이젠 뻐꾸기 새끼가 바닷가에서 흘러들어왔다. 이 뻐꾸기 새끼는 본능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반월성에 살고 있는 호공이라는 뱁새의 집을 사기쳐 빼았었다
그후에 김알지도 탁란의 대열에 합류한다. 이번엔 반월성 옆 계림숲의 나무위에 상자안에 알로 나타난다
사람이 알로 태어날려면 어는 정도 크기라야 할까? 아마 멸종된 코끼리새의 알 정도는 되어야 할듯 하다. 코끼리새가 우리나라에 와 알을 낳았을까?
중국사에서는 탁란과 유사한 사례가 역사속에 나온다. 이를 移花接木이라한다. 이화접목이란 남 모르게 사람이나 사물을 바꿔치기 하여 사람을 속이는 것을 이르는 고사성어이다
이화접목의 사례는 또 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의 사례이다. 이때의 뻐꾸기는 여불위이다
우리나라에도 고려말 우왕의 사례가 있다. 이성계측은 신돈이 뻐꾸기라고 주장했고 이로서 역성혁명을 일으켜 우왕을 시해하고 그후 고려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공민왕이 탁란을 당하지 않았고 자기 아들이라고 인정했다고 하니 이건 뭐 하느님만 아는 내용이 될듯 하다
옛날 자신의 집앞에 몰래 탁란하듯이 갓난아이를 놓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업둥이라 하며 내치면 집안에 복이 들어오지 않는다 하여 받아들여 가족으로 키우곤 했다. 심지어 동물 새끼도 집안에 들어오면 기꺼이 받아들여주었다
6,25전쟁 이후 많은 고아들이 생겨나 우리나라는 해외에 수많은 아이들을 탁란하였다.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탁란하여도 쉼없이 뻐꾹뻐꾹하며 어미가 근처에 있고 너를 결코 버린것이 아니고 네가 잘 성장해 날수 있으면 데려가겠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했다. 해외에 탁란은 했지만 파충류같이 자기의 새끼들을 못본채하고 외면하고만 말았다. 우리는 뻐꾸기만도 못했다. 북한은 6,25이후 동유럽으로 보낸 자신들의 고아들을 다 다시 데려갔다고 한다. 우리는 북한보다 못했다.
아직도 우리민족은 유구한 탁란의 역사를 못잊어 곳곳에 탁란의 둥지를 두어야만 한다. 이 뻐꾸기 새끼들 우리가 키울수 없을까? 입양조건이 너무 까다롭게 되어 있다. 10여전에 알아보니 너무 늙었다한다.
프랑스에서는
루이14세의 정부(우리말로 후궁)
루이15세의 정부
(이 여인은 정말 예쁘다. 몸이 약해 섹스파트너보다는 친구나 상궁같이 지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외모론 그럴것 같지는 않아보인다)
왕의 정부를 뻐꾸기 아내라 불렀다 한다.
그리고 왕의 정부의 공식적인 남편을 뻐꾸기 남편이라 불렀다 한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뻐꾸기라하면 굉장히 모욕적인 말이 된다고 한다. 뻐꾸기 아내는 가정을 파탄시키는 바람피우는 여자라는 뜻의 멸칭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 프랑스에서는 바람 피우는 아내를 어쩌지도 못하고 속앓이 하는 뻐꾸기 남편이 늘고 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었다.
프랑스에서는
이래저래 뻐꾸기의 이름이 인용된다
탁란하는 새는 탁란할 대상이 정해져 있다한다
왜 뱁새는 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