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악의 절정, 몰락의 시작(행시)
패 : 패륜과 폭정으로 백성의 눈물을 외면하고
악 : 악한 권세에 취해 충신들의 간언마저 짓밟으니
의 : 의로움을 지키던 선비들은 화를 입고 떠나갔으며
절 : 절망의 궁궐엔 한숨과 피바람만 가득했네
정 : 정사를 잃은 임금의 끝은 결국 몰락으로
몰 : 몰아치는 권력의 바람에 스스로 눈이 멀고
락 : 락에 취한 궁궐은 백성의 신음을 잊어갔네
의 : 의로운 충언은 칼끝 아래 사라져가고
시 : 시작된 폭정은 끝내 나라의 어둠이 되었도다
작 : 작아 보였던 균열 하나가 결국 몰락을 불러왔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7
- 패악의 절정 그리고 몰락의 시작
갑자사화가 시작된지 70일이 지난 후
연산은,
이만하면
백성,신하들이 정신을 차렸을것이라는
매우 조심스런 대신들의 간언에,
“10년은 풍속을 바로잡아야
변화를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여
대신들을 아연실색하게 하였습니다.
연산의 자칭 개혁은
갈수록 그 범위가 넓어졌고 잔혹해졌습니다.
연산은 죄인을 잡아올 때 손바닥을 꿰어 끌고 오게도 하고, 배를 가르고 뼈를 바르는
광인과도 같은 형벌을 가하였습니다.
또한 연산은
어미인 폐비 윤씨의 제삿날엔 후원에서
여럿이 보는 가운데 성관계를 갖기도 했고,
조참에 백관을 꿇어앉도록 하고,
하급 문신과 대간들을 자신의 가마를
메게 하는 등 하는 짓이 점점 해괴해졌습니다
드라마속에 연산군
조선의 태종이나 세조
그리고 중국의 예에서 보면
신하들에게 매우 가혹했지만
명군으로 평가받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어찌되었든 나라를 튼튼히 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켰다는 점에 있으나,
연산에게는 가혹한 권력만이 있을 뿐,
그렇게 강화시킨 왕권을 가지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어떻게 하겠다는
설계가 없었음은 물론,
오히려 백성들의 땅을 빼앗고
이유 없이 죽이는 등의 가혹한 행위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행하였습니다.
이처럼 연산은
점점 파멸의 길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흥청망청(興淸亡淸)”입니다.
(뒤에 설명)
그런데, 연산은 과연 미친 것일까요?
아니면 에 기재된 내용이
과장된 것일 뿐 실제는 이와 같지 않았을까요?
연산이 미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다른 야사에도
연산의 위와 같은 행위가 많이 나오고
역사가들의 이견도 없는 것을 보면,
아무리 어미인 폐비 윤씨의 일이 있다 하더라도, 연산이 수백 번 죽어도 마땅한
패악을 저지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생각컨대, 연산은 가혹한 통치만이
강한 왕권을 유지시켜주는 길이라고 믿었으며
포악한 권력을 아무런 견제 없이 휘두르다
스스로 휘두르는 권력이라는 괴물에
이성이 마비되어 사실상 미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무튼 연산은
자신을 견제하는 모든 장치가 해제되자
더욱 향락의 길로 빠져들었고,
급기야 신하들의 부인까지 수시로 탐하고
나들이하는 길 위에서 교합을 하는 등
연산의 타락은 끝을 몰랐습니다.
그러던 중,
“임금이 신하를 파리 죽이듯 하고
여색에 절도라곤 없다”라는
익명의 투서가 전해지고,
“임금을 시해하는 것은 옛 글에도 있는 것이다.
가엾은 백성들아 나의 의병을 따르라”
라는 익명서 등이 붙으니,
이는 연산이 몰락할 필연의 조짐이었습니다.
연산은
이런 조짐에 내심 큰 두려움을 느꼈으나,
또한 이 두려움이 오히려 연산을 더욱
광폭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즈음 연산을 오랫동안 모셨던 내시 처선이
연산에게 충언을 하다 팔 다리가 모두
잘려나간 일까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신하들은 신하들대로 두가지 걱정과 근심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연산으로부터 죽임을 당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어디선가 정변이 일어난다면
자신들 또한 연산과 함께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연산의 광폭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한계점에 이르렀기에,
오로지 생존을 위한
정변의 기운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고,
이제,
누군가 그 팽팽한 줄에 칼을 대기만 한다면,
정변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까지
이르게 된 것 입니다.
한편 이즈음 연산을 몰아내는
반정을 구체화하고 있는 인물이 있었으니,
이 사람이 바로 박원종입니다.
이제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도가 지나친
연산의 운명이 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심은대로 거두는 것이 당연한 이치겠지요
담회로~
[출처] 조선왕조 실록 |작성자 DJ Song
첫댓글
패륜 연산군의 패악은
악의 절정인 폭군연산
의로움보다 복수심은
절절하게 피를 뿌린다.
정이란 조금도 없는님
몰락의 시기가 왔는데
락석의 돌보다 못하게
의미도 없이 사라진다
시작부터 복수심 뿐인
작은연산 폭군 연산군
휴 ~~ 어려워요 ㅎ
프란치스코님
기쁜 날 행복한 날
평화를 빕니다
패륜아 연산군의 폭정은
악의세력의 이간질에 의한것
의리를 저바리고 일신광영을 위해
절개가 생명인 선비정신을 외면하고
정도를 벗어난 길을 걸었으니
몰락의 길을 걸을 수 밖에요
락락장송이 되리라는 성삼문의 절개
의리의 사나이 멋찐 선비죠
시방도 정계를 보면 서로가 비방해서
작은사람 즉 소인배같은 사람들이죠
안녕하세요 어제는 장대비같은 비가
쏟아져 온 동네 뿐 아니라 내마음까지
축축하게 젖었었지요
오늘 아침 짙은 안개비가 주위를 맴돌아 아직도 우비를 벗지 못하고 있네요.
부부의 날에
5월 21일 목요일, 오늘이 부부의 날이라고 합니다.
방송에서 들려주지 않았다면 무심히 지나칠 뻔한 하루였네요.
젊은 날에는 바쁘게 살아가느라 모르고 지나쳤던 날들이
나이가 들수록 더 마음에 남고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아내와 함께 살아온 지도 어느덧 48년.
돌아보면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살림으로 시작했던 우리였기에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아야 했고,
웃는 날보다 걱정이 더 많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손을 놓지 않고 여기까지 왔네요.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한집에서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서로의 삶을 견디고 의지하며 살아왔습니다.
어느새 거울 속 우리는
젊은 부부가 아니라
주름 깊은 할배와 할매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한 세월이 있기에
그 모습마저도 정겹고 고맙습니다.
늘 곁에 있으면서도
정작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시장 보러 가는 날,
차 안에서 나누는 이런저런 대화가
어쩌면 우리 부부에게는 작은 데이트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