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수비수를 대표하는 번호중 하나인 No.4!
쓰다보니 쟁쟁한 선수들이 많아 글이 다소 길어졌는데 좋아하는 선수라면 끝까지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거같아요~
하지만 아스날에서는 조금 '특별한' 번호 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1. 폴 데이비스 (85/86 - 94/95)
런던보이, 뼈구너, 로컬유스, 왼발잡이, 우리에게는 생소한 선수이지만 데이비스의 특징만 보면 누구와 많이 닮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윌셔와 비슷한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는 폴 데이비스, 그래서 윌셔가 처음 데뷔했을 때 제2의 폴 데이비스라는 소리도 간혹 나오긴 했죠. 데이비스는 1977년 아스날과 유스 계약을 맺고 1980년 19살의 나이에 토트넘을 상대로 성인 데뷔무대를 갖고 1년 만에 레귤러 선수로 성장합니다. 유연성과 정교한 왼발이 주 무기였던 데이비스는 85/86 시즌부터 마이클 토마스와 케빈 켐벨의 뒤를 이어 등번호 4번을 이어 받게 됩니다. 폴 데이비스는 80/81시즌을 시작으로 팀을 떠나는 94/95 시즌까지 총 447경기에 출장했습니다. 팀에 소속된 마지막 18개월을 당시 감독인 조지 그레이엄과의 마찰로 인해 단 1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게되고 94/95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되어 노르웨이 리그로 이적하게되고 1시즌 후 축구계에서 은퇴하게 됩니다. 데이비스는 96년 팀으로 돌아와서 2003년까지 유스 코치로 활약한 경력도 있습니다.
2. 패트릭 비에이라 (96/97 - 04/05)
4번을 '특별'하게 만든 장본인, 완성형 중앙미드필더의 표본, 아스날의 심장, 박스투박스 패트릭 비에이라가 두번째 4번입니다. 이탈리아 세이라A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그는 1996년 아르센 벵거와 함께 아스날에 합류하게 됩니다. 이 사실은 비에이라가 아스날에서 뿐만 아니라 선수로서도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아직 선수로 뿐 만 아니라 사람으로 완숙하게 성장하지 못했던 비에이라는 벵거 밑에서 엄청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첫 시즌 부터 그는 38경기에 출장하며 데이비스 이탈 이후 아스날에게 부족했던 후방플레이메이킹을 선사했다는 언론에 찬사를 받으며 '제2의 폴 데이비스'라는 칭호를 얻게 됩니다. 1997년 에마누엘 프티의 합류로 비에이라는 한단계 더 성장하게 되고 97/98 더블을 이루어 냅니다. 더 나아가 98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한 비에이라와 프티의 주가는 상상 이상으로 상승하게 됩니다. 이때 부터 비에이라는 거친 플레이 스타일과 인종차별 피해자로 잉글랜드 무대에서 어려움을 겪게되고 맨유, 유벤투스, 레알마드리드, 첼시 등으로 부터 끊이지 않는 구애를 받게 되지만 그는 벵거 아래에서 있기를 선언합니다. 하지만 00/01시즌 전 에마누엘 프티와 마크 오베르마스를 바르셀로나로 이적시키는 사태를 보고 적지 않은 불만을 표출하게 되고 팀을 떠나겠다고 선언합니다. 당시 상황을 보고 맨체스터 유나이트가 비에이라에게 접근하게 됩니다.(퍼거슨 감독이 수년간 지켜봐왔던 선수) 사태에 심각성을 파악하고 당시 부회장이였던 데이비드 데인과 벵거가 직접나서 사태를 진압하게 되고 벵거는 언론을 통해 "맨유는 비에이라에게 접근하였고 우리에게 그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건 규율에 어긋난 행동이다"라고 강력하게 비판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7월 비에이라는 팀 훈련에 복귀하게 되고 놀랍게도 벵거는 그를 부주장으로 임명하며 비에이라를 향한 여전한 신뢰를 표현합니다. 다음해 아담스가 축구계에서 은퇴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스날을 이끌게 되고 팀을 떠나는 04/05시즌까지 팀의 주장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04/05 시즌 전 여름 비에이라는 레알마드리드로 부터 또 다시 제안을 받게 되고 팀을 떠날 것이라 판단되었습니다. 언론은 벵거가 비에이라의 대체자로 웨스트햄의 마이클 캐릭이 유력하다고 판단된다는 기사들을 쏟아냈지만 비에이라는 이번에도 팀에 남겠다고 언론에 발표하여 또 한번 상황을 잠식 시켰습니다. 팀을 떠나기전 마지막 시즌 비에이라는 그 유명한 로비킨과의 터널 사건을 벌이고 여전한 싸움개라는 사실을 다시 증명하게 되지만 04/05시즌을 끝으로 유벤투스로 떠나게 됩니다. 벵거는 추후 인터뷰로 다음에 소개할 선수를 키우기 위해 비에이라는 유벤투스로 보냈다고 말하게 됩니다.
비에이라는 아스날의 상징적인 선수입니다. 요즘은 쓴소리하는 레전드, 팀을 사랑하지 않는 레전드로 팬들 사이에서 알려졌는데 제는 개인적으로 아스날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벵거가 어머니라면 비에이라는 아스날의 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름 모를 세네갈 출신 프랑스 선수가 아스날이라는 클럽을 통해 패트릭 비에이라가 되었고 패트릭 비에이라를 통해 인빈시블 아스날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감독 비에이라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3. 세스크 파브레가스 (06/07 - 10/11)
새대교체의 근원, 미친 재능, 패스마스터, 두두다다의 중심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3번째 선수입니다.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의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2003년 아스날과 계약을 맺게 되고 16살이라는 나이에 성인 무대 데뷔 및 득점을 하면서 클럽 역사상 가장 어린 선수와 가장 어린 득점자로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세스크가 4번을 달게 된 이유는 비에이라 때문이 아니라 어릴적 부터 존경하는 펩 과르디올라의 영향입니다. 하지만 비에이라가 이적하게 된 계기는 세스크 때문입니다. 세스크의 재능을 높게 평가하던 벵거는 그를 중심으로 팀을 개편하기로 합니다. 비에이라가 팀을 떠나기전 비에이라와 세스크를 함께 중용하는 4-4-2시스템을 시험해 봤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비에이라는 유벤투스로 둥지를 옮기게 됩니다. 그렇게 그는 비에이라의 자리에서 질베르투 실바와 호흡을 맞추게 되고 시간이 흘러 흘럽, 로사, 플라미니와 두두다다 4인조를 완성합니다. 08-09시즌 나스리와의 충돌로 당시 주장이었던 윌리엄 갈라스는 주장 자격을 시즌중간에 박탈당하게 되고 이른 나이에 팀의 주장으로 발돋음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스날의 연이은 타이틀 획득 실패는 세스크를 지치게 하였고 그는 결국 어릴적 우상이였던 펩의 밑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렇게 아스날의 세스크 시대는 00/11시즌으로 막을 내리고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미친활약을 하게됩니다.. 그게 아니라 3얼가니에게 밀려 후보로 생활하다 14-15시즌으로 시작으로 자신이 절대 입지 않겠다는 파란색 유니폼을 입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베르캄프 이후 가장 좋아했던 선수였습니다. 어린나이에 미친재능을 보인 선수들은 수두룩하게 많지만 전 세스크가 그 중에도 세손가락안에 들어갈 정도로의 재능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첼시로서 이적 당시 엄청 미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스날이 선제의를 포기하게 된것이니 이제는 이해할수 있는 걱정입니다. 우리팀 막내가 어느덧 선수생활 막바지에 도달했는데 끝까지 큰 부상없이 잘 마무리 하길 바랍니다.
4. 페어 메르테사커 (11/12 - 17/18)
멀대형, 멀주장, 흥부자, 피온2 레전드, 페어 메르테사커가 4번째입니다. 10/11시즌을 끝으로 세스크라는 에이스를 또 다시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게 되자 벵거의 입지가 본격적으로 좁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로인해 11/12시즌 전 아스날은 클럽역사상 가장 정신없는 패닉바이를 실행하게되고 메르테사커가 팀에 합류하게 됩니다. 산드로스 이후 오랜만에 보게되는 장신 수비수여서 팬들은 많은 기대를 하였지만 첫시즌 그는 그저그런 선수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르마엘렌 이 팀을 떠나게 되고 코시엘니와 짝을 맺어 출장하는 경기가 늘어날수록 아스날 수비에 안정감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렇게 탄생한 멀-코 라인은 캠-투 라인 이후 최고의 빅앤스몰 콤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게 12/13 시즌을 시작으로 15/16까지 멀-코 라인이 전성기를 누렸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페어는 나이가 들었고 자연스럽게 기량하락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시즌 마지막 경기인 FA컵에 출장해 미완 홀딩, 체임버스를 데리고 첼시상대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또 한번 FA컵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평소에 벵거 감독을 우상으로 생각하던 페어는 벵거의 조언에 따라 지도자의 길을 걷기로 결정하고 17/18시즌 전 선수생활 은퇴와 유스 아카데미 지도자로의 전향을 발표하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메르테사커는 평소에 동경하던 벵거와 같이 끝을 맞이하게 되면서 팀의 정신적 지주였던 2명이 동시에 팀을 떠나게 됩니다. 페어는 선수로서 아스날의 미친 영향력보다 필드 밖에서 리더로서 미친 영향력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아르테타-멀대 주장 부주장 시절이 저는 가장 팀이 인상 깊었다고 생각하며 그로 인해 이 두선수를 보다 높이 평가하게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비록 이제는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 아스날에 이바지하게 되지만 once a gunner, always a gunner. 애들 잘 키워주세요..ㅋㅋㅋ
5. 모하메드 엘네니 (18/19 - )
북친개 시즌2, 보다 작은 육각형, 스핑크스 엘네니가 5번째 선수입니다. 이번시즌 부터 공번이 된 4번을 과연 어떤 선수가 받을지는 많은 팬들 사이에서 궁금증이었습니다.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은 윌셔의 4번 배정과 외질의 10번 이였지만 어느날 갑자기 엘네니의 4번 배정 사실이 알려지면 많은 혼란과 환호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러나는 진귀한 현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엘네니는 팬들 사이에서 매우 사랑받는 선수입니다. 굳은 일을 자초해서 하는 플레이스타일과 엄청난 활동량, 그리고 무엇보다 본인이 베스트11이 아니더라고 만족하고 겸손할줄 아는 성격이 그를 사랑할수 밖에없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자카와 램지가 못한 날이면 엘네니에게 기회를 줘야한다고 외치는 팬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사실을 반증한다고 봅니다. 올 시즌 토레이라, 귀엥두지가 합류하고 스미스-로우가 급부상하면서 경쟁이 한층 더 심화됐지만 엘네니 같은 플레이를 보여줄 선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주 봤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꽃길만 걷자 우리의 스핑크스~
이것을 끝으로 백넘버 4번의 역사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너무 쟁쟁한 선수들이 많다보니 기존 글보다 길었는데 끝까지 보셨다면 감사합니다!
오타 밑 잘못된 정보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조만간 No.5로 돌아오겠습니다~
첫댓글 4번이 중앙수비수를 대표하지만 막상 아스날에선 미드필더들에게 더 어울리는
그쵸그쵸
잘봤어용
사감합니다
흥미로운 글
좋은거죠? ㅎㅎㅎㅎ
@Mikel Arteta 넵 개인적으로 이런글 매우 호
@Monday Kiz 5,6 헬파티 예정...ㅠ
@Mikel Arteta 갠적으로 10번 적으실때는 멘탈관리가 필요하실듯 ㅋㅋㅋㅋㅋㅋㅋ ㅠㅡㅠ
@Monday Kiz 아니에요... 10번은 그래도 벨캄 갈라스만 있지...
9번은ㅠㅠㅠ 스미스.. 아넬카.. 밥티.. 박주... 흙
@Mikel Arteta +슈케르..
@Mikel Arteta ㅂㅍㄹㅅ..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오늘 저녁은 짜장면이닷
좋은 자료 잘봤습니다!
감자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두 4번 6번 19번 매우애정
개인적으로 엘네니는 별로라 4번 다른애가 달았으면..
개인적으로 다음 4번은 토레이라가 달았으면
잘해라 엘네니. 개인적으로 4번을 좋아함....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하 2011년 그때 기억이,, 파브레가스 바르셀로나로 떠날때, 파브레가스 에 대한 아쉬움 서운함도 있었지만
03-04 무패우승 세대 이후, 00년대 후반 에미레이츠로 이사한 아스날의 다음 전략으로서 꼬꼬마 정책의 상징이고 핵심선수가 떠나는 거라서
앞으로 벵거감독님과 프런트가 이런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전략을 바꿔 나갈지 걱정였는데..
다행히 2013년에 외질 오기 전까지 2년 과도기동안
11-12시즌은 풀 페르시, 12-13시즌엔 카솔라+아르테타 그리고 수비에서 코시엘니랑 파브레가스의 4번을 물려받은 메르테자커 로 버텨냈죠.
진짜 저때 6위 7위해서 이상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ㅠㅠ 진짜 아다리잘맞은 캐이스
4번은 정말 상징적인 번호죠
토레이라가 받길 원했는데 아숩..
시간이 흘러 흘럽 펀치라인 보고갑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