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출애굽기 4 : 1-9)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하나님은 가문이 좋다고 해서, 학식이 높다고 해서, 재물이 많다고 해서, 인물이 출중하다고 해서 쓰시기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고 잠재된 능력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낼 지도자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부름 받았을 때 자원하는 심정으로 임하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3장, 4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모세를 찾아오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에서 탈출하라는 사명을 주시고 부르시는데, 모세는 그것에 순종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설득하는 것이 나중에 모세가 바로를 설득하는 것만큼 힘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줄곧 이의만 제기합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겠습니까?”(출3:11) 자신은 구원자로서의 자격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출3:12)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없습니다”(출3:13). 그에 대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성호를 말씀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스스로 있는 자가 너를 보냈다고 하라”(출3:14).
1. 사람의 약점을 쓰시는 하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기적을 보고도 모세가 또 핑계를 댑니다.
“저는 말을 잘 못합니다”(출4:10).
광야 40년 동안 이집트 말을 쓰지 않고 셈족 언어 중 하나인 미디안 방언을 했으니 “저는 입이 뻣뻣합니다. 게다가 저는 그동안 이집트 언어를 다 잊어버리고 오직 미디안 방언만을 했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누가 입을 지었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 할 말을 가르치겠다”.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를 대변인으로 함께 보내겠다”(출4:14)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친절한 하나님이십니다. 말 같지도 않은 변명에 일일이 답변을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제부터 너는 말을 유창하게 할지어다”하고 명하셔서 모세에게 말을 잘하게 해주실 수 있는 분이신데, 하나님은 말 잘하는 능력을 주시는 대신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는 원론적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야말로 모든 것보다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우리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능력이 아니라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부름 받은 자의 약점을 당장에 고쳐주시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단지 하나님과 함께하게 하고, 동역자와 함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라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정말 모세는 끈질깁니다. 나중에 변명을 하다하다 안 되니 이제는 단도직입적으로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출4:13)라고 대꾸합니다.
자신은 그럴 일을 할 만한 사람이 못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마치 하나님의 일이 사람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겸손이 아니라 교만입니다. ‘보낼만한 자를 보내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핑계 댈 것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급기야 하나님은 노를 발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인간적인 약점을 구차한 변명으로 이용하는 것을 보고 노하셨습니다. 나의 부족함은 오히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기회라는 것을 모르고 하나님 안에서 나의 약점은 오히려 강점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완전한 사람이어서 쓰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유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것과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게 하리라'는 약속을 지키고자 계획을 이루어가십니다.
사람의 약점을 쓰셔서 강한자로 만드시는 하나님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9-10절에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2. 없는 것 가지고 쓰지 않으시고 있는 것을 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핑계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이 물으십니다.
“지금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모세는 대답합니다. “지팡이입니다.”
사람은 ‘없는 것’을 먼저 보지만, 하나님은 ‘있는 것’을 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지 않으십니다. 있는 것을 요구하시며 그것을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부름 받았을 때 우리에게 없는 것부터 먼저 생각합니다. “저는 시간이 없어요”, “저는 경험도 없고 능력도 없어요”, “저는 돈도 없고 빽도 없어요”. 모세의 변명은 자신에게는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지식도 없고, 사람들의 신뢰도 없고, 말주변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모세에게 “네 손에 가진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모세는 ‘지팡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지팡이로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특별한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목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필수품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있는 것을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킬 때도 있는 것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 날이 저물었습니다. 사람의 숫자는 장정만 5천 명이 넘는데 어떻게 먹이시겠습니까? 200데나리온의 돈으로도 이 군중을 먹이는데 부족할 것입니다. 여기는 광야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들이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 그것을 가져 오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가 갖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사하시고 떼어 주셔서 결국 5천 명이 배불리 먹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는 것을 다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차게 되었습니다.
1만 명이 먹을 가능성이 있는 식사를 혼자 먹는 사람이 있고, 혼자 먹을 것으로 1만 명을 먹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갖고 있을 때는 한 사람의 한 끼 식사 밖에 안 되는 것이지만 주님께 드릴 때는 생명의 양식이 되어 수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탓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으로 역사하십니다. 지금 우리 손에 들고 있는 것으로 주님께서는 사용하십니다. 우리 눈에는 보잘 것 없어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귀중히 쓰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것이 부족하다고 해서 열등감을 가질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열등감이 아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자존감을 높이기를 축복합니다.
로마서 4장 17절에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너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바로앞에 보냈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아름답게 쓰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누구의 손에 붙들리느냐가 중요합니다. 흔히 말하기를 ‘칼’이 의사의 손에 있느냐, 강도의 손에 있느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생명을 살리는 수술용 칼이 되기도 하고, 흉기가 되기도 합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있을 때, 그것은 목동의 지팡이에 불과했습니다. 오병이어를 아이가 가지고 있을 때는 고작 한 사람의 허기를 간신히 면할 적은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보리떡’이 ‘생명의 양식’이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작지만 하나님께 드릴 때 그분은 놀랍게 쓰십니다.
출애굽기 4장 17절에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출애굽기 4장 20절에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모세는 하나님께 붙들림 받은 그 지팡이로 놀라운 이적을 행하게 됩니다. 지팡이가 뱀이 되기도 하고(출7:10), 나일 강을 치니 피로 변하고(출7:17),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고(출14:16), 지팡이로 반석을 치니 물이 나오고(출17:5),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지팡이를 들고 기도하니 승리했습니다(출17:9).
지팡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표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의 임재의 시각적 증거입니다. 지팡이는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을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모세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착각과 오해로 고집을 피웠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갖 핑계만을 대고 거부하는 모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손에 가진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 우리가 잘하고 익숙한 것을 원하십니다. 다만 그분의 손에 붙들림을 받을 때 평범했던 우리의 것이 하나님의 탁월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도 “네 손에 가진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십니다.
나의 손에는 예수그리스도가 있습니다. 나의 손에는 감사하고 찬송이 있습니다. 나의 손에는 복음과 사랑이 있습니다. 나의 손에는 임마누엘과 여호와 닛시가 있습니다.
우리는 돈없어요 사람없어요. 재능없어요. 능력없어요. 권세 없어요.라고 말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너의 약점을 쓰고 약점이 아닌 강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너의 부족함을 내가 채워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없는 것가지고 불평하지 말고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라는 것입니다.
나의 지팡이가 아닌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