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의 고등학교 2학년 어느 가을 날,
대신동 ‘구덕야구장’에서 모교와 다른 학교의 시합이 있었다.
결과는 패배였다. 화끈하게 진 것도 아니고 아슬아슬한 분패였다.
그때는 늘 그랬다.
나의 집은 부산진구 범전동이다. 열패감에 젖어 그냥 걷기 시작했다.
운동장을 나와 영주동 터널로 하여 하염없이 걸어가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초량을 거쳐 범일동을 지나 서면을 지나오는데 비에 젖은 가을 교복은 내 몸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호승심 때문인지 결국 집까지 걷고 말았다.
많은 시간이 지나도 그날의 기억은 좀체 지워지지 않는다.
그 기억과 더불어 야구에 대한 사랑은 평생 간직하게 되었다.
나는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류현진의 시합을 실황으로는 보지 못한다.
안타를 맞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워서,
나중에 승전보를 접한 뒤 느긋하게 게임의 매 순간을 복기하듯 음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 코리안 시리즈 5차전이었다.
9회 말 신세계팀이 4 : 2로 지고 있었다.
감독은 대타로 김강민을 선택했다.
결국 키움팀 최원태 투수의 공을 배트에 정통으로 맞힌 공은 스탠드에 꽂혔다.
게임아웃이었다.
천천히 다이아몬드 베이스를 돌던 김강민 선수가 이윽고 3루를 돌았다.
이제 바로 홈베이스가 지척이다.
3루와 홈의 중간 즈음 왔을까,
순간 김강민 선수는 헬멧을 벗었다.
그리고 3루 쪽 키움팀 덕아웃을 향해 오른손으로 헬멧을 벗어 아래로 그어내리며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목례를 하였다.
그것은 마치 투우사가 관중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에 방불하였다.
그리고 헬멧을 손에 들고 끝까지 달려가서 홈베이스 앞에서 하늘로 헬멧을 던지며 동료들과 하나가 되었다.
바로 이 광경이 내가 수많은 야구 경기를 보면서 목격했던 광경 중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승부의 세계에 살면서 패배가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상대팀에게 띄운 동병상련의 마음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야구 경기 한 게임을 제대로 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최소한 두세 시간은 희생해야 한다.
그 동안 보아왔던 그 수많은 게임과 시간들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신세계 팀에는 노장들이 많다.
6차전의 게임 승부를 결정지은 김성현을 비롯하여 추신수, 김강민 등,
은퇴에 즈음한 타자는 대타로, 투수는 중간 계투요원으로 나오다가 어느 날 무대에서 소리도 없이 사라진다.
추신수와 김강민을 보면 젊은 선수들의 자리를 뺏은 것은 아닌지 하는 노파심이 얼굴 가득 묻어 있다.
김강민 선수는 그 면구스러움을 껌을 씹는 행위로 희석하고 있었다.
추신수 선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굳게 다문 입술로 그런 내면을 이겨내고 있었다.
게임이 끝난 뒤 김강민 선수의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내 마음도 그런 복잡한
속내를 털어버리고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6차전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뒤, 신세계팀의 구단주인 정용진 사장의 인사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 빨갱이들 득시글거리는 세상에 대놓고 ‘멸공’을 외치던 용기 있는 사람,
“우리 팀 선수 중 ‘골든 글로브’를 받은 선수는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팀이 1등인 것이 단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 문학경기장의 홈 관중 동원 능력입니다.”
그는 그렇게 자기 팀의 고향 사람들에게 축원하고 있었다.
2022년 11월 8일, 내 그토록 감동적인 광경을 목도하였기에 이렇게 행복하다.
첫댓글 공감하는... 같이 체험했던 그날 야구에서 지고 대신동에서 서면까지 걸어 왔던 거억... 아직도 생생하네요^^
그러나, 이 부분에서는 나는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하겠네요
즉, "이 빨갱이들 득시글거리는 세상에 대놓고 ‘멸공’을 외치던 용기 있는 사람"
글의 맥락에도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굳이 언급하지 안해야 했을 이 부분입니다~
물론, 정용진에 대한 당신의 찬양(?)은 어쩔수 없겠지만....
신세계 정용진이나 당신의 입장에서 보면 나도 빨갱인데.... 내 아버지가 이북에서 월남했고 나도 민주당 아류인데 이 일을 어쩔꼬.. 아이고~~~
그런데, 그 (호승심)이라는 단어는 무슨 뜻인가요?
적어도 우리 홈피에는
빨갱이 어쩌구저쩌구
정치적인 이바구는
삼가 합시다
요즘 빨갱이가 오데
있노
호승심은 '반드시 이기려는 마음'이라고 하네.
그렇구나.
영남 친구의 아버지는 자유의 가치를 찾아 월남하신 분이시구나.
친구여, 그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해 보시게나.
공산주의가 좋았으면 왜 이북에 있지 대한민국으로 오셨겠나?
우리 대한민국은 자유와 시장의 가치를 신봉하여
온몸을 던져 전력투구한 끝에
오늘에 이른 것이라네.
우리 그 사실을 절대 잊지 마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