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둥지
김부영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파트 단지 안을 서행하는데 비둘기 두어 마리가 무언가를 먹는지 바닥에 부리를 박고 비켜줄 생각을 안 한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차에서 내려 쫒으니 뒤뚱거리며 슬금슬금 마지못해 움직이는 것이 영 못마땅한 모양이다. 길을 막은 건 저들인데 눈치를 주니 적반하장이다.
우리 아파트뿐 아니라 도심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조류가 비둘기다. 한때는 평화의 상징으로 큰 행사 때면 하늘로 날리곤 했는데 그 수가 너무 늘어나 여기저기서 민폐를 끼치니 도심의 유해조류로까지 신분이 추락해 버렸다.
재작년 봄이었다.
겨우내 품었던 생명의 씨앗이 초록빛 새순과 갖가지 빛깔의 꽃으로 깨어나는 무렵이면 비둘기들도 새 생명을 만들 준비를 한다. 이때부터 둥지를 틀 장소를 물색하는 비둘기들과 자신의 집을 내어주지 않으려는 사람들과의 신경전이 벌어진다.
그물로 에어컨 실외기 쪽을 다 덮어 버리기도 하고 커다란 독수리 연을 매달아 놓기도 하는 둥 여러 방법들이 동원된다.
그 무렵 실외기 주변을 살피던 비둘기가 눈에 띄었지만 그때마다 쫒아버리곤 했다.
며칠 뒤 베란다에 나갔다가 실외기 뒤에 어느새 작은 둥지가 자리 잡고 있고 그 안에 작고 하얀 알 두 개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벌써 알까지 낳았으니 어쩌랴. 내다 버릴 수도, 쫓아 버릴 수도 없으니 차라리 좋은 기회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새가 알을 품고 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한 번도 곁에서 본적이 없으니 정말 제대로 된 관찰의 기회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제멋대로 베란다 실외기 뒤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비둘기 가족과의 갑작스런 동거가 시작되었다.
막상 받아들이고 나니 틈나는 대로 들여다보며 살피게 되고 알을 품던 녀석은 내가 나타나도 대수롭지 않게 눈을 맞추곤 했다. 그 눈빛이 어찌나 태평한지 때론 웃음이 나기도 한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러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어색하고 불편해도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궁금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면서 시간이 흐른 만큼의 마음이 생긴다. 그렇게 깊어지는 마음이 정이 아닐까. 비둘기하고도 정이 생겼는지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마음이 편치 않다.
비둘기 알이 부화하는 기간은 대략 18일 정도라고 한다. 부화 후 한 달가량 둥지에서 지내면서 거의 성체가 되어야 둥지를 떠난다 하니 예정된 이별을 기다릴 뿐이다.
밤새 비가 내린 날 아침에 걱정스런 마음에 둥지를 살피다 이미 알을 깨고 세상을 만난 새끼 두 마리를 발견했다. 아직 깃털이 나지 않아 빨간 맨 몸뚱이가 한없이 약하고 안쓰럽다. 어미는 지극정성으로 새끼를 돌보다 가끔 내가 나타나면 긴장하고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비둘기는 새끼가 깃털이 날 무렵까지 비둘기만의 특별식을 먹인다고 한다. 비둘기 우유, 또는 피젼 밀크라고 부르는 젖같이 하얀 액체를 모이주머니에서 토해 부리를 통해 새끼에게 먹인다. 거기에 새끼에게 필요한 영양성분이 다 들어 있다고 하니 사람으로 치면 초유와 비슷할 것이다.
새끼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 가더니 한 달 정도 지났을 땐 어미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같아졌다. 이제 둥지를 떠날 날이 멀지 않았다. 둥지 주변은 새들의 배설물로 엉망이 돼 있었다. 냄새도 지독해서 창문을 열지 못한지도 한참이다. 새끼들이 둥지를 떠나면 깨끗이 청소하는 일도 큰 일일 듯 싶었다.
새벽녘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잠시 그쳤던 그날 아침, 드디어 비둘기 두 마리는 날개를 활짝 펴고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 새들은 태어날 때부터 나는 법을 아는 걸까? 첫 비행을 멋지게 성공했다. 순간 대견한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 서둘러 빈둥지를 치우고 주변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 비를 기회삼아 물청소까지 마치고 나니 큰 손님을 치른 듯 맥이 빠진다.
문득 둥지는 비둘기들한테 소중한 집일 텐데 내가 너무 빨리 치워 버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다시 돌아오면 갑자기 사라진 집에 황망할 것 같았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은 작은 정원이 있는 오래된 주택이었다. 작은 정원을 거의 차지하다시피 한 커다란 석류나무에서는 매년 많지는 않지만 빨간 구슬을 가득 품은 석류가 열리곤 했다. 어머니는 자주 그 집을 마련하기 전 셋방살이의 설움을 어제일인 양 구구절절 말씀하시곤 한다. 그렇게 집은 개개인의 역사를 담고 있다. 어머니에게 집이 설움 많은 셋방살이 끝에 장만한 기쁨인 것처럼. 나에게는 석류 알 만큼이나 많은 어린 시절 추억들이 알알이 영글어 있는 것처럼. 나는 내 집안에서 나의 가족들에게 어떤 역사를 만들어 주고 있을까?
그때 베란다 창문 밖에서 비둘기가 거칠게 날개 짓을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잠시 외출을 했던 모양이다. 나를 원망하며 화를 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쩌면 저 둥지는 비둘기에게 소중한 어머니의 추억을 담은 집일는지도 모르겠다.
첫댓글 비둘기 처럼 예쁜 선생님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