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발소 (노 애 경)
오늘도 흥미로운 3분 스피치시간이 기대된다.
3분 스피치는 제한된 시간에 자기의 정보를 정확히 전달하는 시간이다.
평소 대중 앞에 서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유창한 스피치를 위해 연습을 하는 단계다. 잦은 술자리를 줄이기 위해 오게 되었다는 넉살좋은 김 과장이 여느 때처럼 첫 번째로 단상에 올라 들려준 이야기다.
며칠 전부터 이발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김 과장은 직장동료가 들려준 이발소를 떠올렸다. 주변에 미용실처럼 산뜻하고 피부미용까지 겸하는 이용소도 많지만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이발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홍두깨로 민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질 땐 국수집이 아닌 국시라는 간판 앞에 서성일 때처럼 말이다.
직장동료가 말해준대로 수성구 어느 동네의 골목길을 다 뒤졌으나 그가 말한 낡은 이발소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마침 모퉁이를 돌아서 나오려는 순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이발소 간판이 비스듬히 보였다. 문을 밀치니 70대 노부부와 노인 몇 분이 앉아 있어서 잠시 주춤했다. 마치 노인정을 찾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노인 한 분이 발길을 붙들었다. ‘이발하러 와쓰마 이발하고 가소, 머리하나는 잘 깎심더’
아련한 추억이 그리워 어렵게 찾아온 터라 자리에 앉아 머리를 맡겼다. 머리손질도 그랬지만 노안 때문인지, 어둔해진 손 때문인지 면도를 하면서 몇 번이나 따끔거렸다. 상처가 눈으로 보였지만 아프다고 내색하면 무안해 할까봐 제대로 내색도 못했다.
면도가 끝날 무렵 노인의 고향인 듯 여겨지는 곳에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동네 일가친척들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손님은 안중에도 없는 듯 통화는 점점 무르익어 갔다. 누구네 강아지가 새끼를 몇 마리 낳았고 누구네 소가 암송아지를 낳았다는 둥, 하며 끊이지 않는 대화 속에 노인의 얼굴에는 화색이 묻어났다. 김 과장은 초조하게 시계를 보며 약속된 점심식사를 취소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발이 끝나자 할머니가 머리를 감겨 주었는데 세면대조차 옛날 그대로라 머리를 앞으로 숙이게 했다. 직접 감겠다고 해도 기어이 감겨 주신다며 물이 사방으로 튀어 셔츠가 다 젖었다. 이발을 끝내고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자 영문을 모르는 아내의 눈초리가 이상했다.
점심약속까지 취소하며 불편을 겪었지만 한동안 이발소의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황혼녘에 노을빛으로 물드는 노부부의 삶이 아름답게 여겨지고 손때 묻은 집기들이 정겹게 다가왔다.
거울 앞에 다시 서니 머리는 그런대로 스타일이 나온다. 먹을 땐 매워도 다시 먹고 싶은 불 닭발처럼 은근히 마음이 머무를 땐 또 다시 그곳을 찾게 될 것 같다.
디지로그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들에게는 디지털의 편리함도 좋지만 아날로그의 향수가 그리울 때가 많다. 다소 불편은 따르지만 정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눈앞에 것만 좇아가는 요즘 젊은이들은 이 맛을 알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