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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원문 경 1장 간략한 풀이
남회근 선생 강해
송찬문 번역
대학 원문 경 1장에 대하여 남회근 선생이 부분적으로 간략히 풀이한 내용을 역자가 주로 그의 저작『남회근강연록』과『21세기초전언후어』에서, 그리고 일부는『대학강의[原本大學微言]』에서 참고하여 정리 번역하였습니다. 보다 깊고 자세한 강해는 역자가『선과 생명의 인지 강의』에 보충한 ‘부록 5. 인지에 관한 남회근 선생의 법문을 간단히 말한다’와, 이미 출판되어 있는 남회근 선생의『대학강의』를 읽어보기 바랍니다.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며 在親民하며 在止於至善이니라. 知止而后有定이니 定而后能靜하며 靜而后能安하며 安而后能慮하며 慮而后能得이니라 物有本末하고 事有終始하니 知所先後면 則近道矣리라.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는 先治其國하고 欲治其國者는 先齊其家하고 欲齊其家者는 先修其身하고 欲修其身者는 先正其心하고 欲正其心者는 先誠其意하고 欲誠其意者는 先致其知하니 致知는 在格物하니라. 物格而后知至하고 知至而后意誠하고 意誠而后心正하고 心正而后身修하고 身修而后家齊하고 家齊而后國治하고 國治而後天下平이니라. 自天子로以至於庶人이 壹是皆以修身爲本이니라. 其本이 亂而末治者否矣며 其所厚者薄이오 而其所薄者厚하리 未之有也니라. 此謂知本이며 此謂知之至也니라.
“대학지도(大學之道)는”, 성년자의 첫 번째 수업으로는 먼저 생명인 심성의 기본수양에 대하여 인지하여야 합니다.
“재명명덕(在明明德)하며”, 무엇이 ‘명명덕’일까요? 도를 얻은 것을 말합니다. 바로 심성의 문제를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재친민(在親民)하며”, 명덕을 밝힌 뒤에 수행하고 행을 일으켜 세상과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업을 하는 것이 바로 ‘친민’입니다.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이니라.”, ‘지어지선’이란 바로 범부를 초월하여 성인의 경지로 들어가는 것, 초인이 되는 것,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입니다.
이상은 일개 범부로부터 생명의 근원을 아는 성인이 되는 세 가지 강요인데 이를 ‘삼강(三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명덕(明德)을 밝힐까요? 어떻게 도를 얻을까요? 어떻게 생명의 근본 의의를 알까요?
“지지이후유정(知止而后有定)하며”, ‘지(知)’와 ‘지(止)’ 이 두 글자에 주의하기 바랍니다. 사람은 모태에서 나오자마자 ‘아는[知]’ 작용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갓난애는 태어난 뒤 배가 고프면 울 줄 알고 젖을 달라고 합니다. 추위와 더위가 지나쳐도 울 줄 압니다. 이런 지성(知性)은 선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하십시오!, ‘지지(知止)’는 감각 지각할 수 있는 작용이 정지했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지성을 인도하여 하나의 가장 좋은 길로 걸어가게 하라는 말입니다. 심성이 평안한 길을 하나 선택하여 걸어가는 겁니다. 우리들의 생각과 신체는 어떻게 정(定)하게 할까요? 보통사람의 지성은 뛰고 산란(散亂)하고 혼매(昏昧)하면서 정(定)의 상태가 아닙니다. 그러나 또 지성의 평온함 ․ 청명함[淸明]으로써 산란과 혼매를 없애고 청명한 경지에 전일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를 ‘지지(知止)’라고 합니다. ‘지지’한 다음 다시 한 층 나아가야 정(定)입니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뒤 대소승 수행의 하나의 요점을 선정(禪定)이라고 부릅니다. 선(禪)은 범어의 음역이며 정(定)은 대학의 ‘지지이후유정’에서의 ‘정’자를 차용한 것입니다.
“정이후능정(定而后能靜)하며”, 정(定)의 경지에서 점점 차분하고 고요한 상태에 들어가는 것을 정(靜)이라고 합니다.
“정이후능안(靜而后能安)하며”, 정(靜)의 경지에 도달한 뒤에 다시 대단히 평안하고 쾌적하며 가볍고 재빠른 경지에 들어가는 것을 ‘안’이라고 합니다. 불학 용어를 빌리면 경안(輕安)이라고 부릅니다.
“안이후능려(安而后能慮)하며”, 경안하고 청명하고 산란하지 않고 혼매하지 않아서 정결(淨潔)한 경지에 대단히 근접하면 ‘애쓰지 않아도 들어맞고 생각하지 않아도 얻어지는’ 지혜의 힘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을 ‘려(慮)’라고 합니다. 자기의 내재적인 지혜가 일어날 수 있는 겁니다. 불학 용어를 빌리면 ‘반야’의 경지이며 중문으로는 ‘혜지(慧智)’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려이후능득(慮而后能得)이니라.”, 이 혜지를 통하여 생명인 자성의 근원을 철저하게 아는 것을 대학에서는 ‘려이후능득’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얻는 것일까요? 생명에 본래부터 있는 지혜 기능의 대기대용(大機大用)을 얻는 것을 ‘명명덕’이라고 합니다. ‘득’은 도달한다는 의미입니다. 대철대오하여 생명의 본래의 면목을 보는 겁니다. 증자는 이런 심성수양의 성취를 ‘명명덕’이라고 했습니다.
이상은 명백하게 말해놓지 않았습니까? 바로 이 길로 걸어가면 명덕을 얻습니다. 도를 얻습니다. 좋습니다! 보다시피 그 방법은 지(知) ․ 지(止) ․ 정(定) ․ 정(靜) ․ 안(安) ․ 려(慮) ․ 득(得)으로, 모두 일곱 단계의 공부인 칠증(七證)입니다. 이상은 자기 내면의 수양공부인 내성지학(內聖之學)을 말한 것입니다.
“물유본말(物有本末)하고 사유종시(事有終始)하니 지소선후(知所先後)면 즉근도의(則近道矣)리라. 고지욕명명덕어천하자(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는 선치기국(先治其國)하고 욕치기국자(欲治其國者)는 선제기가(先齊其家)하고 욕제기가자(欲齊其家者)는 선수기신(先修其身)하고 욕수기신자(欲修其身者)는 선정기심(先正其心)하고 욕정기심자(欲正其心者)는 선성기의(先誠其意)하고 욕성기의자(欲誠其意者)는 선치기지(先致其知)하니”
‘삼강칠증(三綱七證)’에 이어서 ‘팔목(八目)’이 있습니다. 바로 여덟 개의 방향인데, 어떻게 성인의 학문과 수양 정도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치지(致知)는 재격물(在格物)하니라.”, 무엇을 ‘치지’라고 할까요? ‘지’는 바로 지성(知性)입니다. 우리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지성이 하나 있습니다. 갓난애 때 배고프면 울 줄 알고 추우면 울 줄 압니다. 이 지성은 본래부터 존재합니다. 이 지(知)는 생각의 근원입니다. 다시 말해 이 ‘지’는 우리가 보통 천성(天性)이라고 하는데,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엄마 태속에 들어가 태아로 변할 때 이미 있었고 선천적으로 지니고 온 것입니다. 다만 엄마 태속에서 열 달 동안 있다가 태어날 때 그 열 달의 경과를 잊어버렸을 뿐입니다. 지금 우리들처럼 수십 년 동안 사람으로 살아오면서 많은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모태 속에서의 경과는 거의 사람마다 그 고통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흐리멍덩해져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지성은 결코 손실되지 않아서 모태에서 나와 탯줄이 가위로 잘라지자마자 차가움과 따뜻함, 그리고 외부의 자극을 알고서는 응애응애 하고 울었는데, 견딜 수 없어서 울고불고함으로써 지성이 작용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런 다음 곁에 있던 어른이 우리를 깨끗이 씻어주고는 수건으로 싸고 옷을 입히고 젖을 먹이고 좀 편안해지자 울지 않았습니다. 다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배고프면 울면서 먹고 싶다고 하는데, 이 지성은 천성적으로 지니고 온 것입니다. 정좌하여 어떤 것을 정(定)을 얻은 것이라고 할까요? ‘치지(致知)’입니다. 방금 ‘치지재격물’이라고 외웠지요? 그렇다면 무엇을 ‘격물(格物)’이라고 할까요? 외부의 물질에 유혹되어 끌려가지 않는 것을 ‘격물’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지성은 외부의 것들에게 유혹되어 끌려가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들의 신체는 정좌하면 시큰거리고 아파서 견디기 어려운데 신체도 외부의 ‘물(物)’입니다.
여러분은 당장에 한 가지 실험을 해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거기 앉아 있는데, 다리가 시큰거리고 아프고 온 몸이 괴로울 때 갑자기 당신의 채권자가 칼을 들고 당신 앞에 서서 당신더러 “돈을 갚지 않으면 안 된다. 갚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한다면, 당신은 즉시 아프지 않게 될 겁니다. 왜 그럴까요? 당신의 그 지성이 놀래 있기 때문입니다. 신체의 아픔도 ‘물’인데 하물며 신체 밖의 ‘물’은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일체가 모두 ‘외물(外物)’이 됩니다. 그러므로 ‘치지재격물’이란 바로 신체의 감각과 외부 경계에 속아 끌려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격이후지지(物格而后知至)하고”, 온갖 외물의 유혹을 물리쳐버리면 우리들의 그 지성은 본래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정좌하고 있으면 지성은 또렷하므로 따로 지성을 하나 찾지 말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먼저 이 지성을 확실히 인지하고 나서 정좌를 얘기해야 합니다. 왜 정좌하고자 할까요? 지성이 정좌하고자 하고 내가 정좌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왜 이것을 배우러 왔을까요? 내가 어떤 것을 하나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여 당신은 이미 속임을 당했습니다. ‘물(物)’에 의하여 ‘물리쳐져버린(格)’ 것입니다. 당신이 ‘물’을 물리친 것이 아니라 ‘물’이 당신을 물리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치지(致知)는 재격물(在格物)하니라. 물격이후지지(物格而后知至)하고’ 란, 온갖 감각과 외부 경계를 모두 물리쳐버리면 당신의 그 지성은 지금 여기에 또렷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定)을 얻은 하나의 경지라고 우선 부를 수 있습니다.
“지지이후의성(知至而后意誠)하고”, 이때에 당신이 한 생각이 청정한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지성이며, 한 생각이 청정함이 바로 ‘의성(意誠)’입니다. 생각 생각마다 청정하고 지성이 언제나 청명하여, 신체상의 막힘[障碍]에 의하여 시달리지 않고 외부의 온갖 경계에 의하여 시달리지 않으며 자신의 흩날리는 망상들에 의하여도 시달리지 않습니다.
“의성이후심정(意誠而后心正)하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 바로 ‘심정(心正)’입니다.
“심정이후신수(心正而后身修)하고”, 그렇게 되면 우리들 신체의 병통 ․ 막힘 ․ 쇠약노화는 서서히 전환 변화합니다. 전환 변화한 다음에 정좌하면 당연히 반응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애를 써서 신체 반응에만 상관한다면 ‘물’을 물리치지 못하고 ‘물’에 의하여 물리쳐집니다. 이렇게 알아들으셨습니까? “의성이후심정(意誠而后心正)하고 심정이후신수(心正而后身修)하고”는 모두 공부입니다. 얼마나 오래 닦아야 할까요? 일정하지 않습니다.
“신수이후가제(身修而后家齊)하고 가제이후국치(家齊而后國治)하고 국치이후천하평(國治而後天下平)이니라.”
이상을 팔목이라고 하는데, ‘격물(格物) ․ 치지(致知) ․ 성의(誠意) ․ 정심(正心) ․ 수신(修身) ․ 제가(齊家) ․ 치국(治國) ․ 평천하(平天下)’ 이 여덟 개의 큰 항목으로서, 큰 방향의 외용지학(外用之學)이 됩니다.
“자천자이지어서인(自天子以至於庶人)이 일시개이수신위본(壹是皆以修身爲本)이니라”, 중국 전통문화는 불법과 마찬가지로 위로는 천자인 황제로부터 아래로는 서인인 보통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 개인으로 보고 모두 먼저 이 문화로써 근본을 삼습니다. 이것을 내양지학(內養之學)이라고 하는데 불가에서는 내명(內明)이라고 합니다.
“기본란이말치자부의(其本亂而末治者否矣)며”, 이 근본학문 수양을 성취하지 못하고 외면의 지식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좇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한 인간이 내성(內聖)수양 공부가 없이 제가(齊家) 치국(治國)하여 평천하(平天下)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내용들을 여러분들은 반드시 자세히 참구해야 합니다. 그것 자체가 바로 하나의 대비주(大悲呪)입니다.
“기소후자박(其所厚者薄)하고 이기소박자후(而其所薄者厚)함은 미지유야(未之有也)니라.”
“차위지본(此謂知本)이며 차위지지지야(此謂知之至也)니라.”, 여기서의 ‘지’는 바로 지성입니다. 지성을 잘 수양하고 정좌공부를 하여 정력(定力)이 있으면 지성은 청명합니다. 지성이 청명하고 간절합니다.
이상의 남회근 선생의 풀이를 참고하여 역자가 미흡하나마 그 원문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한글 번역했습니다.
대학(大學)의 도(道)는 명덕(明德)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친애함에 있으며, 지극한 선[至善]의 경지에 머묾에 있다.
(자기의 심리상태, 좀 더 명백하게 말하면 자기의 심사와 정서를) 지성(知性 : 소지지성所知之性, 아는 작용)이 알고서 멈추어[止 : 制止] 지성의 평온하고 청명한 경지에 전일하도록 한 뒤에야 안정[定: 安定]이 있고, 안정이 있은 뒤에야 평정[靜: 平靜]할 수 있고, 평정이 있은 뒤에야 경안[安: 輕安]할 수 있고, 경안이 있은 뒤에야 혜지[慮: 慧智]가 열릴 수 있고, 혜지가 있은 뒤에야 명덕을 얻을 수 있다.
어떤 물건이든 근본과 말단이 있고, 어떤 일이든 끝과 시작이 있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도에 들어가는 문에 다가갈 수 있다.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집안을 다스리고, 그 집안을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자신을 수양하고, 그 자신을 수양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자기의 의념(意念)을 정성스럽게 하고, 자기의 의념을 정성스럽게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자기의 지성(知性 : 능지지성能知之性)에 도달하였으니, 지성에 도달함은 외물(外物)을 물리침에 있다(남회근 선생은『대학강의』에서 ‘격물格物’을 ‘만사만물의 성리性理를 알게 된다는 뜻으로도 풀이합니다).
외물이 물리쳐진 뒤에야 지성이 도달하고, 지성이 도달한 뒤에야 의념이 정성스럽게 되고, 의념이 정성스럽게 된 뒤에야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야 자신이 수양되고, 자신이 수양된 뒤에야 집안이 다스려지고, 집안이 다스려진 뒤에야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야 천하가 화평해진다.
천자(天子)로부터 일반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똑같이 저마다 자신의 수양을 근본으로 해야 한다. 그 근본이 어지러운데도 말단이 다스려지는 경우는 없었으며, 두텁게 해야 할 것을 얇게 하고 얇게 해야 할 것을 두텁게 한 경우는 아직 없었다. 이것을 일러 근본을 안다고 하고, 이것을 일러 지성이 도달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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