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3월 2일 금요일 새벽기도회 ♣
성경:예레미야18:1-12(구1079P)
제목:토기장이신 하나님
1.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2.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시기로/
3.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4.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5.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6.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7.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8.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9.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10.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11.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
12.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할렐루야!3월입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3월에 깨어서 기도하시고 말씀으로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사순절 기간이기에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시고 경건하게 생활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제목}“토기장이신 하나님”
여러분!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의 말씀일까요?
1. 일과 휴식을 적절하게 배분하며 살라는 말입니다.
2. 믿음으로 살라는 말입니다.
3. 하나님을 무엇보다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4. 하나님을 지극히 존경하라는 말입니다.
5. 교회 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일에 제단에 매인 삶을 사는 것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면 우리의 삶에 진정한 안식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일은 점점 주님의 말씀하고 멀어지는 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주일을 목숨걸고 지키기 보다는 편리한 대로 지키고 그리고 지키지 못했어도 죄책감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17:19-27)의 말씀을 통하여 주일성수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변함이 없습니다.
온전한 주일성수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토기장이신 하나님”(예레미야18:1-12)
하나님은 탁월한 교육가이십니다. 말로만 교육 하시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실물교육을 통해서 가르치십니다.
본문 1절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연구한 것이거나 요구를 했다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2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예레미야가 “하나님! 저희 집에는 토기가 많아 별 필요가 없는데 저를 왜 그런데 가라고 하십니까?”하는 대구를 하지 않고 두말없이 일어나서 순종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축복의 비결입니다.
신학자들이 많은 시간을 들여 연구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위대한 주제들을 하나님은 토기장이의 하는 일을 통해서 너무나 쉽게 이해시키십니다. 자기도 잘 모르는 사람은 그것을 어렵게 말하지만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은 쉽게 말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어려운 말 같아도 사실 하나님의 언어는 쉬운 것입니다. 성경은 그 당시 중산층 사람들의 평범하고 쉬운 언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토기장이 집에 가서 그가 하는 일을 보니 진흙을 가지고 토기를 만드는 일입니다. 발로 바퀴를 돌리고 흙을 물에 반죽해 녹로(wheel)위에 얹어서 돌아갈 때 손으로 모양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을 구워서 토기를 만들어 내다 파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시대가 주전 627년부터 587년까지 40년 세월인데 지금이나 그때나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드는 방법에는 발 대신 기계로 돌린다는 것 외에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릇이 조금 비뚤어 나오면 토기장이는 그 진흙을 다시 부수어서 그 원래 진흙을 가지고 다른 그릇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토기장이와 진흙의 비유를 통해서 세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1. 토기장이는 진흙을 가지고 자신의 뜻대로 토기를 만듭니다.
토기가 토기장이에게 와서 “나를 이조백자로 만들어 주십시오.” 혹은 “고려청자로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토기장이가 만들고 싶은 대로, 자신의 뜻대로 진흙을 가지고 토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하나님의 주권”이라 부릅니다. 진흙이 자기 뜻대로 토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토기장이의 뜻대로 토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진흙에 주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토기장이에게 주권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얼마나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성경에는 토기장이와 진흙의 비유가 본문 외에도 두 군데 더 나와 모두 세 군데 등장하는데 그 말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오늘 본문 예레미야 18장 1절로 12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국가의 운명에 대한 주권자이시다는 말입니다.
5절로 10절까지의 해석이 그런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한 국가를 멸망시키려 하시다가도 국가가 회개를 하면 다시 돌이켜 그 국가를 축복하십니다. 또 한 국가를 축복하시다가도 국가가 악에 빠지게 되면 재앙을 내릴 수도 있으십니다.
즉, 국가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본문 6절 후반에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요나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를 40일 후에 멸망시키시겠다 하시며 요나를 보내서 그 메시지를 전하라 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는 이스라엘과 원수관계에 있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앗수르가 잘 되길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그만 풍랑을 만나서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됐습니다.
선원들이 원인을 발견해서 결국 요나를 바다 속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런데 물고기가 타이밍을 마쳐 입을 벌리고 있어 요나가 물고기 배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물고기가 삼일주야를 요나를 뱃속에 넣고 있다가 육지에 토해냈습니다.
그래서 결국 니느웨에 가서 메시지를 삼일동안 전한 것입니다.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아! 회개하지 않으면 40일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를 망하게 하실 것이다”하며 삼일동안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요나의 메시지를 들은 니느웨 왕이 요나를 혼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왕위에서 내려와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백성들에게 “니느웨 백성들아! 굵은 베를 입고 금식하며 회개하라. 짐승들도 금식하라.”고 공포했습니다.
이렇게 금식하고 회개하자 하나님이 뜻을 돌이켜 니느웨를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망하게 하려 하시다가도 회개하니 살려주셨습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을 축복해 다른 나라를 정복케 하시고 어마어마한 바벨론 제국을 이루어 황제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느브갓네살이 자기 손으로 바벨론 제국을 이루었다며 교만해지자 하나님이 느브갓네살을 7년 동안 치셨습니다.
7년 동안 그는 소처럼 풀을 먹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처럼 되며 손톱이 새 발톱처럼 되는 비참한 미치광이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7년이 지나자 다시 총명을 보내주셨습니다.
다니엘 4장 35절을 보니 총명이 돌아온 느브갓네살은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아무도없도다”라고 고백합니다.
국가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국가를 복주시다가도 저울에 달아 악이 크면 토기를 파쇄 하듯이 망하게 할 수 있으십니다.
반대로 한 국가에 전쟁과 고난을 주시다가도 죄악에서 돌이키면 다시 축복을 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어떤 경제적 위기나 전쟁의위기가 오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시 여기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이사야 64장 8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여,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개인의 인생사에 대한 주권자이시다는 말입니다. 개인이 잘 되는냐 못되느냐 이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사무엘상 2장에 보니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가 기도해서 받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인생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시적인 언어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장 6절로 8절 전반에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장님 아들이 방방한 삶을 살고 불쌍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위 아들이라도 공부를 열심히 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 성공한 인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시기 때문입니다. 강해지고 약해지는 일, 부해지고 가난해 지는 일, 살고 죽는 일, 높아지고 낮아지는 일이 모두다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나는 사무엘상 2장 10절 전반에서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고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그릇이 토기장이를 대적하면 깨지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10절 후반에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성령 충만을 입은 하나님 백성의 뿔은 높이신다는 것입니다. 인생사에서 강해지고 부해지며 높아지고 싶으면 주권자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잘 맺어 하나님께 잘 보이십시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헌신하여 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낮은 자도 높이시고 약한 자도 강하게 하시며 가난한 자도 부하게 하시는 주권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큰 일에만 주권을 가지고 계신 게 아니라 우리의 아주 작은 일상사에도 모두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머리카락도 다 세신바 된다고 했습니다. 참새도 하늘에서 떨어질 때는 하나님의 뜻 없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생사의 소소한 일에도 다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주권자 이십니다.
셋째, 로마서 9장 20절로 21절 말씀입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구원에 있어서 주권자이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하시고 애서는 미워하신다 하셨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말씀이 애서를 덜 사랑했다는 것이 아니냐며 자꾸 의미를 희석시키려 하지만 성경 자체의 언어는 강력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하고 애서는 미워하셨다, 하나님은 긍휼이 여길 자를 긍휼이 여기시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신 택하신 영혼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미리 정하시고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다 하셨느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인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교회 목사님이 평생 설교하시다보니 자기 설교에 뭔가 부족한 게 있는 걸 느끼고 생각해보니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하다가 드디어 하나님의 주권 교리를 깨닫고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집사님이 하나님의 주권 설교를 맹비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 성경말씀이라고 얘기하지 않고 로마서 9장을 그대로 읽었습니다.
그러자 그 집사님이 일어나 “나는 그 말씀을 안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그러니까 목사님이 “이 말씀은 로마서 9장에 있는 말씀을 그대로 읽은 것입니다. 집사님이 하나님 말씀을 안 믿으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집사님이 말하기를 “그런 건 아니고, 말씀의 내용은 믿지만 목사님이 그 성경을 읽으신 방식을 싫어한다는 얘기입니다.”하고 꼬리내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로마서 9장은 많은 사람이 오해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교리를 싫어하는 신학자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9장은 여전히 있어왔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이 주권자 이시다하는 것을 당당히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 토기장이는 목적을 가지고 토기를 만듭니다.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 때 목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토기장이가 “밥그릇을 만들어야 되겠다.” 그러면 밥을 퍼먹기 좋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리고 “물컵을 만들어야 되겠다.”
그러면 물을 마시기 좋게 만들어야 됩니다. 또 국그릇을 만들어야 되겠다면 넓적하게 만들어서 국이 넘치지 않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꽃꽂이 그릇을 만든다, 예술 작품을 만든다, 고려청자를 만든다, 이조백자를 만든다, 그러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 때는 목적을 가지고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토기장이의 집에 견학을 갔다고 합시다. 거기에 녹로 앞에서 토기를 빚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토기를, 무슨 목적을 가지고 만드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뭘 만드는지도 모르고, 목적도 없다고 대답한다면 그 토기장이를 조금 이상한 토기장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국가를 일으키고 개인의 운명을 인도하시며 택하신 영혼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 22절로 23절 말씀에서 그릇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찌라도 무슨 말 하리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로서 어떤 그릇을 만드느냐하는 절대자유가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천히 쓸 그릇도 만들고 귀히 쓸 그릇도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천히 쓸 그릇을 진노의 그릇이라고 하고 귀히 쓸 그릇을 긍휼의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진노의 그릇을 만드시는 목적은 “하나님은 죄에 대해 진노하시며, 죄를 심판하실 능력이 있으심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예수님 믿기를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은 진노의 그릇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죄에 대하여 진노하고 죄를 벌하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그 사람을 통해 보여주시려고 그 사람을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인생은 참으로 불쌍하고 가련한 인생입니다. “너는 태어나지 않으니 맘도 못하니라”고 말씀한 가룟 유다같은 인생입니다.이것이 진노의 그릇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사람은 긍휼의 그릇입니다. 하나님이 긍휼의 그릇을 만드시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보이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영광 받는 사람을 보면 대단합니다. 대통령이 취임할 때 고급차를 타고 사람들이 나팔을 불고 축제를 합니다. 또 영화배우들도 시상식 때 멋진 옷 입고 단상에 올라가 꽃다발과 트로피를 받습니다.
그리고 식장을 나와 좋은 차를 타고 멋지게 돌아갑니다. 이처럼 세상 영광도 큽니다. 그러나 세상 영광은 천국의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평생 일해서 큰 다이아몬드 하나를 샀습니다. 그런데 죽을 때 아까워서 하나님께 이것 좀 가지고 가게 해달라고 기도드렸더니 하나님이 허락 하셔서 천국에서 다이아몬드를 머리에 이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를 보더니“당신은 왜 보도블록을 잘라 가지고 무겁게 이고 다니느냐?”고 했다는 우스운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긍휼의 그릇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우리를 통해 나타내실 줄로 믿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고 인생을 행복하고 자신 있게 사시기를 소원합니다.
3. 토기장이는 “잘못된 토기를 파쇄하여 동일한 진흙재료를 가지고 다른 그릇을 만듭니다.
본문 4절에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대단히 간단한 실물교육이지만 인류역사 전체를 요약한 비유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그 지혜가 오묘하신지 이렇게 쉬운 말로 역사전체를 요약합니다.
인간은 원래 흙으로 지은바 된 토기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토기를 짓듯이 하나님이 흙을 뭉쳐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흙에다가 생기(breath of life)를 불어 넣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이 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생각도하고 연구도하는 자유가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살아있는 생령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이 자유를 잘못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순종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범죄하고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은 거절하고 마귀를 따라갔습니다. 죄와 마귀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원래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상실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이 그 동일한 흙으로 계속해서 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잘못된 그릇인 아담의 후손들로부터 하나님의 의견에 선한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역사의 과정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도 사실은 아담과 하와 같은 진흙입니다. 그것도 죄에 빠져 잘못된 그릇이었습니다. 아담의 후손 모두가 죄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죄에 빠진 인간들 가운데 하나님은 당신의 보시기에 의견에 선한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 동일한 재료를 가지고 다른 그릇을 만들어낸다 하는 것입니다.
주권적인 의지를 따라서 진노의 그릇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부요를 나타내실 긍휼의 그릇을 만들어 내신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하여 온 인류는 범죄 했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그 가운데 긍휼의 그릇들을 자꾸 만들어 내시고 그 긍휼의 그릇들이 모여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정하신 숫자가 차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는 재림하시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생명의 부활을 해서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과 자유를 가지고 영원토록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직 성경에서만 알 수 있는 하나님의 계시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은 다른 그릇이 되는 것이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깨어지고 박살나고 천히 쓰다가 하나님의 진노나 보일 그런 그릇이 아니라 귀히 쓸 그릇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부요를 나타낼 귀한 긍휼의 그릇으로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타락한 인류의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그릇이 잘못됐으니 쓰레기통에 버려 버려라.”
그랬으면 모든 인류는 소망 없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운데긍휼의 그릇을 지어내어 영생과 부활의 약속, 그리고 천국을 주십니다.
***{결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에베소서 1장 11절에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 가지를 해야 됩니다.
첫째, 주권자 앞에 겸손해야 됩니다.
그릇이 교만하면 깨지는 것 밖에 더 있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은 다 겸손한 인격을 갖고 사시기 바랍니다. 말도 겸손하게 해야 되고, 행동도 겸손하게 해야 됩니다.
내가 주권자라며 내 힘으로 다 되는 줄 알면 느브갓네살처럼 재앙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권자는 하나님이시고 나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빨리 깨닫고 겸손하십시오. 특별히 교회의 일군은 겸손해야 됩니다. 교회 일군이 교만해지면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둘째, 언제나 주권자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야 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정치를 하든, 경제를 하든, 문화를 하든,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정책을 만들 때 이 정책이 우리 정당에 유익이 될까를 생각하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인생 계획을 세울 때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주권자를 따돌리고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성도들은 모든 일에 하나님을 고려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 이것은 하나님께 기쁨이 될까?”를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고려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이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 의식성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죄로 파괴된 인생도 소망을 가져야 됩니다.
죄로 말미암아 내 인생이 망가지고 파괴되고 빚도 많이 져서 살 소망이 없다 해도 스스로 목숨을 끊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망가진 그릇도 다시 만들어 다른 그릇을 만드실 능력이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절망에 빠진 분이 계시다면 좌절하지 마시고 소망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이 안계시다면 소망이 없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의 부요함을 이생에서나 내세에서나 넉넉하게 나타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예레미야18:1-4절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묵상하시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