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시 연재 칼럼 13 (2024년 9월)
이방인異邦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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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출신인 동네 주선酒仙 몇이 주말이면 북한산 오르는 길목에 있는 독립 운동가 묘지기인 후손이 하는 식당에 모인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이며 북한산 아래가 고향이거나 반 백 년 이상 한 동네 살아온 친구들이다. 한 사람은 대기업 사장으로 정년 퇴직했고 한 사람은 의과 대학 교수로 정년 퇴직, 한 사람은 모교인 대학 행정실장으로 정년 퇴직했다. 나머지 두 사람은 여전히 현역인데 한 사람은 전기과 출신으로 대기업 퇴직 후 아파트 전기 담당 기술자로 일하고, 이들 중 유일하게 혼자 사는 또 한 사람은 식당 운영을 접고 심야 택시 운전을 한다. 나는 이들 중 심야 택시 운전하는 친구와 제일 각별한데 그는 혼자 살면서도 늘 강직하고 동네 주선酒仙들 중 유일한 좌파이며 밴드부 출신답게 트럼펫 솜씨도 수준급이다. 식당을 운영했던 경력이 바탕이 되어 요리도 잘 하지만 오이지도 잘 담근다. 난 그의 오이지 매니아이다. 소년 시절부터 한 동네 친구인 이들은 좌파든 우파든 절대 공통점은 주선(酒仙)이라는 것과 어떤 말도 어떤 행동에도 서로 크게 걸림이 없어 보인다. 나는 가끔 이들 틈에 슬그머니 끼어 앉아 있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술 한 잔 안 마셔도 늘 제정신이 아닌 동네 이방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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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빈세트 반 고흐와 재즈 뮤지션 쳇 베이커는 굳어진 틀을 깨고 생각의 자유로움을 선사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지상에 머무는 동안 극심한 낯설음에 시달렸다는 것. 고흐는 정신병원에서 퇴원 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쳇 베이커는 암스텔담 공연을 마지막으로 이국의 호텔에서 뛰어내려 이방異邦에서 생을 마감했다. 요즘 필자는 젊은 나이에 종로에 있던 허름한 심야 극장 객석에서 생을 마감한 시인 기형도를 다시 읽고 있다. 이들을 생각하면 필자는 너무 오래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미안함이 슬그머니 스쳐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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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상재할 때마다 동료 국어 선생님들에게 먼저 증정했지만 아무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詩가 허름해서 그렇겠지.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 하는 친구들과 어울려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독학으로 익힌 내 허접한 음악을 좋아할 리도 없겠지만 음악이 직업인 그들에게 나는 영원한 이방인이다. 당구도 못 치고, 골프도 못 치고, 테니스, 탁구, 배드민턴도 재능이 없고, 낚시는 오래 했지만 바늘 매는 일이 서툴러 늘 맨 바늘을 사서 썼다. 한때는 대형 바이크에 빠져 이방 투어를 다니곤 했지만 언제나 남의 옷을 입은 듯 낯설었다. 일행 몇이 바이크 투어 중 끔찍한 사고로 죽고 나서야 필자는 바이크에서 내렸다. 그리고 다시 기타를 만지기 시작했지만 손이 너무 굳어버린 다음이어서 기타 주변만 맴돌다 마는 영원한 아마튜어가 되었다. 본질엔 끝내 닿지 못하는 낯선 사내, 아니 낯선 게 본질인 이방인이 되었다.
트렌드trend
동향이나 추세라는 말보다 트랜드라는 말이 더 익숙하게 통용되고 있다. 하긴, 동향이나 추세도 한자어인 動向과 趨勢에서 온 말이니 영어권에서 건너온 trend와 시대감만 다를 뿐 외래어라는 점은 같다. 주민등록증 이름 옆에 한자를 병기한 것을 중국에서는 중국의 아류라고 우리를 폄하하기도 한다. 문화적 대국 옆에서 그래도 꿋꿋이 생존한 우리의 힘은 외래어를 당당하게 수용하는 개방성, 즉 열린 기질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은 읽어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오늘 하고 싶은 말은 이런 외래어의 문제가 아니라, 갈수록 트랜드에 뒤처진 문화는 그 힘을 잃어간다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동북공정이니 뭐니 하면서 우리를 폄하하고 있는 중국의 근현대사도 트랜드에 뒤처져 혹독한 시대를 겪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있는 필자도 현대의 경제제일주의의 트랜드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무슨 정신주의 동향이나 추세에도 적응하지 못한 채,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눈치만 보며 살아온 셈이니 한심하다는 말이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갑자기 대중음악계에 트롯이 대세가 되었다. 필자는 모든 음악 장르엔 명곡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고, 곡에 따라 트로트도 좋아한다. 다만, 여기저기, 심지어 어린아이조차 한에 절은 트로트를 능숙하게 꺾어 재끼는 모습을 보다 보면 소름이 끼친다. 물론, 이 소름은 음악적 감동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아요"라고 그가 필자에게 말했다. 트렌드란 사상이나 행동 또는 어떤 현상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라니, 남들처럼 자동차도 있고, 비데가 있는 변기도 있고, 티브이, 에어컨, 스마트폰 등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들은 허술한 대로 갖고 있으니 필자도 트렌드에 뒤처진 건 아니지,라고 속으로 자위하다가 인터넷 뱅킹이나 컴퓨터 SNS 등 디지털에는 한참 뒤떨어져 있으니 그의 말이 맞는 것도 같고, 인류의 역사와 함께 존재해 온 성 소수자는 심정적으로는 이해하나 몸으로는 설득되지 않으니 현대 트렌드에는 맞지 않는 것도 같고,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에 안주하고 싶으니 요즘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는 게 분명한 듯하다. 자꾸 처지는 거울 속의 눈(眼)과 주름을 쳐다보는 일이 은근히 민망해지는 날이 많아지는 요즘, 현대 트렌드는 노안 수술은 물론 남자들도 주름 제거 등의 성형을 한다고 들 하던데 필자는 단지 겁이 나고 아플까 봐 요즘 트렌드를 따라갈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