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1, 2, 3차원으로 분류되는데, ‘직접적인 힘으로 제압하는 권력’인 1차원적 권력과 ‘법이라는 간접적 힘’으로 통치하는 2차원적 권력, 그리고 ‘설득과 영향력으로 부지불식간에 작용’하는 3차원적 권력이 그것이다.” 『3차원적 권력론』(나남, 1992)이라는 책에서 영국의 정치 이론가인 스티븐 룩스 교수의 권력에 관한 정의이다. 사실 권력이란, ‘다른 사람의 의사에 관계없이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이기도 하며, ‘다양한 의견을 모아 하나로 일치시키기 위해 나타난 것’으로 양면성을 보여준다. 이렇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일상생활 주변에 ‘다양하게/극단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바로 권력이다. 우리는 ‘군부독재’와 ‘검찰 지배’, 그리고 ‘언론의 편향성’으로 이 3가지 권력을 맛보았고 경험하고 있다.
그렇다면 극단적으로 권력이 오용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특히 불의한 권력의 폭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폭력이란 무엇인가』(난장이, 2011)에서 ‘신적 폭력’과 ‘신화적 폭력’을 구분하며 신적 폭력을 지지하는데, “신적 폭력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모호함을 피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신화적 폭력의 ‘신화’는 그리스 신화를 가리키고, 신적 폭력의 ‘신’은 유대교의 신, 곧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킨다.
먼저 신화적 폭력을 설명하기 위해 베냐민은 그리스 신화 속의 ‘니오베 이야기’를 사례로 든다. 테베의 왕비 니오베는 아들, 딸 각각 일곱 명을 두었고 그들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따라서 니오베는 자신이 레토(Leto) 여신보다 더 훌륭하다고 뽐낸 불경죄를 저질렀다. 아들 아폴론과 딸 아르테미스 한 명씩밖에 없었던 레토는 화가 나서 두 자녀로 하여금 니오베의 아들, 딸들을 죽이게 하였다. 결국 자식을 모두 잃은 니오베는 울며 세월을 보내다 돌이 되고 말았다는 신화인데, 여기서 레토의 분노가 바로 신화적 폭력이다. 법 정립적이고 경계 설정의 폭력이다.
반면, 베냐민이 예를 든 신적 폭력의 사례는 구약 민수기의 ‘고라의 반역’이다. 고라는 모세의 사촌이었으나,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모세의 지도력에 반기를 들었다. 모세가 교만하고 독선적이라는 것이 반기의 명분이었으나, 사실은 같은 레위 지파 후손으로서 모세에게만 영광이 돌아가는 데 대한 질투가 숨어 있었다. 이것은 모세에게 권위를 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다. 따라서 모세가 공정한 심판을 요청하자, 여호와는 땅을 가르고 불길을 솟아 오르게 해 고라의 무리를 한꺼번에 소멸했다(민 16:32-35). 이것이 신적 폭력이다.
그렇다면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의 차이는 무엇인가? 베냐민은 “신화적 폭력이 법 정립적이라면, 신적 폭력은 법 파괴적이고, 신화적 폭력이 경계들을 설정한다면, 신적 폭력은 경계를 파괴한다.”라고 말한다. 곧, 지배를 구축하고 유지하려는 법 정립적이고 경계 설정의 폭력인 데 반해, 신적 폭력은 그런 법을 파괴하고 해체하는 폭력인 것이다. 따라서 베냐민은 이 신적 폭력을 ‘순수한 폭력’이라고 옹호하였다. 신화적 폭력이 생명체를 희생시킴으로 자족하지만, 신적 폭력은 생명체를 위해, 생명체를 구현하기 위해 생명을 희생시키기 때문이다. 오늘 신화적 폭력으로 변질된 1, 2, 3차원 권력의 폭력에 맞서 그리스도인의 신적 폭력을 묻는 우리 시대가 참 비극적이고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