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배령
오르는 산길은 신록의 그 프르름과 풋풋함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그
싱그러운 유록의 산속에서 축제라도 열리듯 온갖 새들의 지저귐과, 넉넉한 계곡의 우렁찬 물 흐름 소리로, 그리고 숲 속에 숨어 조심스레,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새들은 지저귄다. 흐리면 흐린대로, 하늘은 부드러운 빛깔로 우리를 맞는다.
기대했던
만큼의 야생화 천국은 아니었지만, 꽃들은 이미 겨울을 벗어 버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하나 또 하나 얼굴을 바꿔가며 그 모습을 드러낼
모양이다.
4월부터
9월까지 곰배령은 야생화의 시절이란다.
분홍,
노랑, 그리고 보라와 흰빛의 꽃들, 정확히 안내를 하려면 난 이곳의 이곳 저곳에 대하여 아름답다는 감탄과 느낌이 아닌 약간의 지식은 갖어야 할
것인가보다.
산은
싱그러웠다.
봄을
지나 초여름의 문턱에 올라선 유월의 첫날, 꽃으로가 아니고, 풋풋한 신록으로 곰배령은 또다른 얼굴을 하고 우리 앞에 섰다.
곰배령릉
찾은지 이번이 네 번째, 앞서 세 번은 단풍으로 눈이 어지러웠던, 가을이었다.
비가
내리던 10월 중순의 단풍이 처음 인연으로 시작된 것은 2004년, 미치도록 아름답던 단풍으로 숨을 멈추게 했던 그것은 2005년, 아직 단풍은
이르고, 구절초는 시들어 거므스레 대궁을 이고 있던 그것은 2006년, 그래도 아직 인연이 닿지 않았던가? 난 야생화가 천상 화원을
만든다는 그 때는 만나지 못하고 있다. 아마 언젠가는 기필코, 난 그 아름다운 시간을 꼭 만나고야 말 것이다. 이게 무슨 탐욕인지 난
모르겠지만.
터무니없는
욕심에 그냥 나는 혼자 어이없는 웃음을 웃는다.
다만
이번 산길에선 난 특별한 만남을 갖었었다.
민박집의
촘비다.
짐을
풀고 오르는 우리를 따라 나선 누렁이 개는 오래전 내가 알고 있던 ‘코카스파니엘’을 연상시키는 잡종이긴 했지만 무척은 귀여운 개였다. 산
초입에선 ‘따라오고 있나보다.’ 한참을 걸으며 그래도 앞장서 돌돌 거리며 가고 있는 모습이 신통하기도 하고 믿음직 스럽기도 해 동행을 하다
보니, 이건 여엉 돌아갈 기세는 아니다. 임시로 불러주던 ‘누렁이, 그리고 덜렁이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그 개는 문제가 없다. 우리가 걷는 걸음의
두배는 걷나보다. 왜냐하면 우리가 늦으면 가던길 돌아서 다시 와 확인하고 또 앞장서 가곤 했으니까. 길만 걷기엔 밋밋했던가? 숲속으로 뛰어갔다,
길로 나왔다, 냇물에 온 몸을 적시며 물을 마시기도 하며 눈을 즐겁게한다. 프른 숲길, 그 한가운데를 달랑대며 뛰고 있는 모습은 그대로 한컷의
영상으로 담아 놓고 싶다.
근
3시간을 걷는 동안 우리는 산길에서 세 팀을 만났다. 두 팀은 혼자였고, 한팀은 젊은 부부(?), 넒은 곰배령 등산의 묘미는 편안함이다. 그리고
고요함이다. 적막함이다.
빠른
걸음으로는 두시간, 넉넉해서 세시간을 걷는 그 길엔 긴장이 없다. 그리고 산길에서 흔히 만나는 스릴도 없다. 아주 고요하고 잔잔한 명상 음악을
듣듯, 라르고의 악장을 들으며 음미하는 여유로움이 있다.
정상으로
오르면 탁 트이는 하늘아래 펼쳐진 너른 평원을 만난다. 푸른 초원이다.
이곳이
설악의 한자락인가? 그리고 백두대간의 한 길목인가? 의심이 날 만큼 우리를 평온한 기쁨으로 이끈다. 하지만 좌우 사방에 펼쳐진 능선, 또 그
능선의 자락들을 바라보노라면 깊 은 산 속 한가운데 있음을 알 수 있다. 초원 끝자락을 바라보면 그곳은 점봉산의 작은 봉우리 하나가 마주한다.
시간과 체력의 여유가 있으면 올라봄직 한 곳이다.
오후
2시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하던 하늘은 , 정상 초원에 이른 시간 오후 5시,어느새 구름이 약간은 걷혀있었고, 계곡 이곳저곳에서 모아져
올라오는 바람으로 산 위 정상의 위력을 보여준다. 누렁이는 정신없다. 아마 쉼터 이곳저곳에서 저에게 나누어준 간식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도
할려는듯 온갖 묘기를 동원해 우리를 놀라게도 그리고 기쁘게도 해 준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먹을 것 앞에는 한없이 순해지는 것인가?’
순한길이니
문제없어요라고 꼬시어 모시고 온 선배가 행여 너무 힘겨워 하지는 않을까? 속으론 약간 염녀했지만, 워낙 내공이 있는 분이라 문제없이 우리는
하산, 속으로 한 시름을 놓는다. 선배는 사진에 완전 매료되어, 모든 순간을 렌즈에 담아낸다.
긴
말이 없어도 좋다. 선배는 카메라 렌즈에 순간을 담아내는 작업으로 족하고, 나는 흘러가는 모든 순간들을 머릿속에서 편집하고, 지워내고, 그리고
다시써가며 걷기만 하면 되니까. 참 좋은 여행의 파트너다.
누렁이와의
산행이 내게는 신기하고 새로워 주인아저씨에게 자랑을 해댄다 ‘아저씨, 이 개가요. 우리랑 곰재령을 다녀 왔어요.’ 어저씨 왈 ‘점봉산도 가요.’
에지간히 멋도 없는 아저씨다.
‘이름이
뭐예요?’ ‘ 촘비요.’
흠뻑
정이 들었고, 아마 저 촘비는 우리와 특별한 관계를 갖었다 생각하겠지하며 다음날 갖고 나온 간식, ‘아마 또 산엘 따라 갔을거예요.’
우리는
그 촘비가 아침에 우리 방문 앞에 지켜줘 있을 것을 그렸고, 떠나는 우리를 향해 동구밖까지는 아니더라해도 헤어지기 아쉬워 한참을 따라 나서기를
바랐던 그 꿈이 깨어진채그 민박집을 나섰지만, 그런데 아직도 내겐 산길 동네에서 만난 송아지만큼이나 큰 개 앞에 낑낑대며 내 주위에서 구원을
요청하던 그 촘비의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대며 남아돈다.
언젠가
다시 곰배령을 찾는 날, 난 촘비가 좋아하는 먹을 것을 한아름 장만 할 것이다.
손뼉을
치며 팔을 벌리면 촘비는 비호처럼 달려와 내게 안겨 올 그 모습을 그리며.
산
정상 그 언덕에서 묘기처럼 우리에게 보여줬던 놀라운 쇼를 그려보면서.
첫댓글 저도 아직까지 "촘비" (강아지이름) 의 영리함 과 정있는 태도가 아믈거립니다. 어쩜 그럴 수 있을까 하고. 미물도 이런데 만행으로 신문에 이름이 오르는 사람들은 어떤 머리 구조일까요? 흐르는 쇼스타코비치의 로망스가 좋군요. 그날 정말 감사했읍니다.
단번에 내리 읽었습니다. 물 흐르듯 잔잔하게 그린글, 음악과 함께 저도 동행하고 있었던 느낌이 었습니다. 잘어울리는 두분사이에 저도 끼어 달란 말은 감히 드릴수가 없겠습니다. 촘비와 파트너가 되면 어떨지요?
violwt님은 글을 참 편안히 쓰십니다. 구름님과 비슷하게....산행기 많이 올려주세요. 곰배령의 여행이야기도 잘 읽었습니다.
곰배령을 신봉공주님과 함께 다녀 오셨나요. 얼마나 좋았을까요. 공주님의 사진 보고 많이 부러웠습니다. 호젓한 길을 조용히 걸으면 참 많은 생각들이 정리가 될 것 같아요. 더군다나 그 이쁜 <촘비>도 함께 했다니 더욱 흥미가 끌립니다.
지금쯤 촘비는 또 누구를 따라나서 맛있는 먹이를 먹고 있을지. 제발 품위를 지켜주면 좋으련만. 보고싶어요.
아침에 이 글을 읽으니 참으로 좋습니다.. 음악도... 벌써 여러날 전에 올린 글이었는데 이제사 제정신으로 보게 됩니다... 현충일날 저는 회암사지를 비롯 양주군 일대를 다녀왔습니다.. 가는 곳마다 야생화인지 모르겠지만 들꽃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시골 길을 걷는 기분도 참 좋더라구요.. violet 님 글을 읽노라니 푸릇한 산길 내음이 나는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