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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게시판 스크랩 짧은 여정 긴 여운 3 (1)
승시기 추천 0 조회 46 15.04.10 10:1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미륵산을 오르며 바라 본 풍경)

 

언제부터인가 해마다 우리 집엔 봄바람에 실려 온 따뜻한 바람이 일렁이곤 한다. 평소엔 광주에서 자취하는 큰애는 제처두고라도 한집에 사는 우리 부부와 막내 모두 저마다 뭐가 그리 바쁜지 서로 대화는 커녕 얼굴보기조차 힘들어 집안에 찬바람이 도는데 이맘때면 가슴에 훈기가 돈다. 네 식구가 함께 어울려 국내명승지에서 1박2일 혹은 2박3일 동안 체온과 숨결을 나누기 때문이다. 늘 일에 쩔어 사는 옆지기에겐 황금휴양이기도 하다. 고작 이틀 길어야 사흘이지만 끔찍히도 아끼는 듬직한 두 아들을 옆에 달고 다닐 수 있으니 그보다 신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일상의 답답함을 벗어나 조망이 탁 트인 곳을 찾다보니 주로 바닷가를 찾게 된다. 옆지기 일정이 비는 시기를 중심으로 나머지 세 식구의 일정을 조정하곤 하는데 올해는 4월 첫 주말을 D데이로 하여 거제도 삼성호텔을 숙소로 잡고 통영과 거제도 일원을 돌아보기로 했다. 세부 일정은 두 아이가 짰고 그에 소요되는 경비는 옆지기몫이니 나는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물론 운전기사인 막내가 피로한 기색을 보이면 보조기사 노릇을 하기는 하지만 그외 특별한 소임은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함양 부근까지는 막내가, 이어서 통영까지는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광주에서 출발한 큰애를 픽업하기 위해 통영시외버스터미널까지 내려갈 때는 우리 나들이를 축복하듯 날씨가 정말 화창했다. 토요일과 일요일 양일간 남쪽지방에 5~60mm의 비가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가 빗나가는구나 싶을 정도였다. 또 한식이 코앞인데다 봄철 행락객이 넘치는 휴일인데도 집을 출발한 지 4시간만에 큰애와의 약속시각(10시 30분)에 대갈 수 있었다. 화창한 날씨와 원활한 교통사정 속에 남도의 봄기운을 마음껏 만끽하라는 신의 선물인 듯싶었다. 왜냐하며 지난 금요일(음력 2월15일, 올해는 4월3일)이 내 생일이었으니까.   

그러다 11시경 통영 한려수도 케이블카를 탈 때부터 조금씩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들떠 있었다. 3~4년전 한재골산악회에서 '소매물도'를 찾았을 때 새벽녁에 통영선착장에 내려 잠시 머물다가 이내 배를 타고 갔다가 다시 돌아와 버스를 타고 귀경길에 올라 통영은 그냥 스쳐갔을 뿐이니 진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과 한려수도의 절경도 절경이지만 유치진 유치환 형제, 윤이상, 박경리 등 수많은 예술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 꼭 한 번 둘러 보고 싶은 곳이라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에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모른다.

 

우선 미륵산을 찾으려고 한려수도케이블카를 타러 갔더니 행락객으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미처 주차하기도 전에 큰애는 탑승권을 사러 줄을 섰고 그 사이 우리는 생리현상을 해결했다. 오전 11시 조금 지났을 뿐인데 우리가 받아 든 당일 탑승권 번호가 무려 3,210번을 넘었다. 어쨌거나 드디어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에 올라 통영시내와 그 앞 바다를 조망하고 진달래와 생강나무꽃 등 봄꽃을 대하니 봄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시내로 들어와 점심을 해결하고 '동피랑마을'을 찾았다. 여기저기서 천사날개를 배경으로 찍은사진을 본 적은 많아도 그곳이 동피랑이라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동쪽 벼랑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라는데 좁고 가파른데다 꾸불꾸불하기까지한 고샅길을 따라 걷는 동안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참 고단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고교 졸업후 재수시절 잠시 머물렀던 서울 하월곡동 산동네가 떠오르기도 했다. 형형색색의 벽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통영에서 관광객의 발길이 가장 많이 닿는 새로운 명소가 됐다는 말이 허언이 아닐 듯싶다.

 

 

 

 

 

동피랑마을을 뒤로 하고 거제도로 향하자마자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그래도 예정대로 유람선을 타고 외도와 해금강을 보려고 구조라에 들렀다. 그러나 아쉽게도 거센 바람과 풍랑때문에 배가 뜨지 않는단다. 당나라 시인 우무릉(于武陵)의 勸酒(권주)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 상황이다.

"花發多風雨(화발다풍우 : 꽃필 때면 비바람 잦아진다)" 고 햇볕 좋으면 그림자도 짙어지듯 세상사 어떤 일이든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는 법이니까. 배를 타지 못한 아쉬움은 몽돌해수욕장에 들러 파도에 띄어 보내고 숙소인 거제삼성호텔로 향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만 황당한 상황에 맞딱드리고 말았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왕복2차로 길을 따라 갔다가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탄 오렌지색 비옷을 입은 사내들이 끝도 갓도 없이 도로를 점령하고 내달리는 탓에 오도가도 못하고 꼼짝없이 차안에 갇혀있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알고 보니 모회사 안 도로로 진입한 것인데 하필 퇴근시간인데다 일방통행길이었다. 마침 걸어서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차창을 내리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니 30미터쯤 직진해서 우회전하면 바로 호텔로 연결된단다. 그러면서 눈치껏 빠져나가라고 귀띔해줬다.  그 사람 말대로 오렌지군단의 행렬이 조금 뜸해진 틈을 타 잽싸게 차를 몰아 바로 호텔에 여장을 풀고 옷만 갈아 입은 다음 장승포로 나가 저녁 식사를 했다. .

 

식사후 막내가 가지고 있던 무료쿠폰을 사용하기 위해 호텔 근처 백화점 건물내 스타벅스커피점에 들렀다. 커피향을 즐기고 있는 사이 막내가 숙소에서 마실 알콜음료를 사러 나갔다 들어왔다. 미리 준비해갔지만 혹시 부족할지 몰라 다녀온 것이다. 커피타임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주차해 놓은 곳으로 왔는데 막내가 자기 안경을 어디 두었는지 모르겠단다. 보통 때는 안 써도 되지만 운전하려면 써야 해서 반드시 찾아야 했다. 막내가 커피점에 다시 올라간 사이 저녁식사를 했던 식당에 전화를 해서 습득여부를 확인했으나 그곳엔 없단다. 막내가 커피샵에서도 못 찾았다고 하길래 그러면 아까 알콜음료 샀던 곳으로 가보라고 했더니 한참 뒤에 찾았다고 연락이 왔다. 어디에 물건을 떨어뜨렸는지 모르는 것은

나이와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숙소로 돌아와 가지고 간 맥주와 막내가 사 온 맥주를 나누어 마신 다음 잠시 노닥거리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파람과 풍랑 탓에 그냥 정박해 있는 유람함)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기상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호텔 객실 커튼을 열고 밖을 내다 보니 산 위에 비구름이 걸려 있다. 배나 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내려가는 길에 바라 본 호텔 앞 풍경도 젖어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숙소로 돌아와 구조라쪽에 연락을 했더니 여전히 배를 띄울 수 없단다. 혹시 몰라 장승포쪽에도 연락을 해 보았더니 외도 가는 배를 탈 수 있다고 했다. 호텔 체크 아웃 후 장승포로 나가 11시 50분 유람선을 타고 외도와 해금강을 구경했다. 외도에서는 해양식물원답게 다양한 식물과 꽃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특히 공기가 공기가 좋아 몸속 곳곳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식물의(botanic 보타닉) 이상향(utopia 유토피아)이라는 뜻의 '외도보타니아'라는데 오히려 사람들이 낙원으로 여기는 곳이 아닐까 싶다. 계절마다 다른 분위기일테니 기회가 닿으면 다시 가보고 싶다.

 

 

 

 

 

 

 

 

 

 

통영 거제 봄맞이 가족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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