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을 왜 안산 남산이라 할까
마을 앞에 위치한 산을 가리켜 앞산이라 하기도 하고, 안산 혹은 남산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같은 산이 앞산, 안산, 남산으로 각각 불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들 말의 연원은 남면(南面)이란 말에서 시작된다. 남면은 얼굴을 남쪽으로 향한다는 뜻으로 임금을 가리키는 말이다. 논어 옹야편(雍也篇)에, 공자가 옹(雍)이란 사람을 칭찬하면서, “옹은 남면할 만하다.[雍也 可使南面]”란 말이 나오는데, 옹은 덕이 있어서 임금이 될 만하다는 뜻이다. 이 남면이란 말은 임금이 자리할 때는 무리들의 북쪽에 위치해서 남쪽을 향한다는 유래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남면은 임금을 뜻하게 되었고, 반면에 북면(北面)은 신하를 가리키게 되었다.
그러면 왜 임금은 북쪽에 자리를 잡았을까? 그것은 제왕이 북극성에 비유되었기 때문이다.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이런 구절이 있다.
“정치를 덕으로 하는 것은, 비유하면 북극성이 그 자리에 있으면 뭇별들이 그것을 중심으로 하여 도는 것 같다.[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而衆星共之]”
모든 별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여 돈다. 북극성은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모든 별의 중심이 되는 별이다. 그래서 북극성은 바로 왕이고, 그를 향해 운행하는 뭇별은 신하요 백성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쪽은 따뜻한 햇볕이 비치는 곳이다. 임금은 곧 태양이다. 만물을 따뜻하게 비추는 태양이 곧 임금이란 의미다. 임금은 북극성 같은 위대한 존재로서, 남쪽을 향해서 따뜻한 햇볕을 내려주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임금이 북쪽에 자리하여 남면하는 이유다.
논어 위령공편(衛靈公篇)에 순(舜) 임금의 덕을 찬미하는 글이 있는데 거기에 보면 “크게 힘쓰지 않고서도 다스린 자는 순 임금이었다. 어떻게 하였는가? 몸가짐을 공손히 하고 바르게 남면(南面)을 하였을 뿐이다.[無爲而治者 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而南面而已矣]”란 구절이 있다. 순 임금은 덕치를 베풀었기 때문에 그냥 남면만 하고 있어도 나라가 잘 다스려졌다는 뜻이다. 이 남면은 조선의 태종실록에도 나오는데, “임금이 상(床)을 북쪽으로 옮기고 남면하여 받았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남산(南山)은 남면하여 보는 산이다. 즉 임금이 마주하여 앞에 보이는 산이다. 그래서 앞산이 남산이 된 것이다. 임금이 있는 궁궐인 북쪽에서 마주하는 산이 서울의 남산이다. 남산은 중국에도 우리나라에도 있다. 시안(西安)의 앞산이 종남산(終南山)이고, 경주의 앞산도 남산이다. 서울 남산의 다른 이름이 목멱산(木覓山)인데, 목멱의 원래 이름은 ‘마뫼’다. 즉 고유어 ‘마뫼’를 한자로 목멱이라 적은 것이다. ‘마’는 남쪽을 가리키는 고유어다. 삼한 중 마한(馬韓)은 남쪽의 한(韓)이란 뜻이다. 또 남풍을 가리켜 ‘마파람’이라 하는 것도 이런 뜻이다. ‘뫼’는 산이란 말이니, 목멱산 즉 마뫼는 남산이란 뜻이다.
그래서 남(南)은 앞이란 뜻으로 일반화되었다.
도연명의 대표작인 음주라는 시의 유명한 시구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 한 송이 꺾어들고, 물끄러미 남산을 바라본다.[彩菊東籬下 悠然見南山]’에 나오는 남산도 앞산을 가리킨다.
또 정철의 산사야음(山寺夜吟)이란 시에 ‘계남(溪南)’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는 시내 앞이란 뜻이다.
蕭蕭落木聲(소소낙목성)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소리에
錯認爲疏雨(착인위소우) 성긴 비 내리는 줄 잘못 알았네
呼僧出門看(호승출문간) 중을 불러 문 밖에 나가보라니
月掛溪南樹(월괘계남수) 시내 앞 나무에 달이 걸렸다네
안산(案山)은 마을의 앞에 있는 산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풍수설에서 집터나 묏자리의 맞은편에 있는 산을 가리키는 말이다. 민간에서 마을 앞에 있는 산을 가리켜, 앞산이라 하기도 하고 안산이라 하기도 하는데, 그 안산이란 이름은 어디서 온 것일까?
‘안산’의 ‘안’은 우리말 ‘아ᄋᆞᆫ ’의 줄어진 말이다. ‘아ᄋᆞᆫ’은 ‘향하다[向]’의 뜻이다. 균여가 쓴 향가 청불왕세가, 상수불학가, 그리고 총결무진가에 이 말이 나온다. 그런데 이 말은 그 후 진작 없어지고 한자어 ‘향하다’만 남아 현재 쓰이고 있다. 그러니 ‘안산’은 임금이 향하고 있는 ‘아ᄋᆞᆫ산’이란 뜻에서 생긴 말이다.
그런데 이 ‘안산’의 ‘안’이 ‘향한’이란 뜻을 잃음에 따라 이 ‘안’을 한자로 옮겨 표기할 때 ‘案’ 자로 나타내었다. 곧 고유어 ‘안산’을 한자어 ‘案山’으로 적은 것이다. 그러면 ‘안’을 적는 데 왜 이 ‘案’ 자를 썼을까?
이것은 案 자가 책상을 가리키는 데서 생각할 수 있다. 案은 ‘책상 안’ 자다. 안산은 곧 ‘책상 산’이란 뜻이다. 궁궐에서 봤을 때, 앞에 놓여 있는 산을 임금의 책상이라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조상들이 배우고 공부하는 것을 얼마나 높이 생각했던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연유로 앞에 보이는 산인 앞산이 남산이 되고 안산이 되었다.
이렇게 앞쪽이 남(南)이 됨으로써 뒤는 자연히 북(北)쪽이 되었다. 북(北) 자의 원래 뜻은 ‘등’이었고 음은 ‘배’였다. 배(北) 자는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모습을 상형한 글자다. 그러니 배(北) 자는 등쪽 즉 ‘뒤쪽’을 나타낸 글자다. 그런데 이 배(北) 자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북쪽’을 가리키는 글자로 주로 쓰이자, 등을 나타내는 글자는 北에 월(月=肉)을 더하여 배(背) 자를 새로 만들게 되었다. 어떻든 북은 뒤를 나타내는 말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북옥저(北沃沮)를 뒷골[置溝漊]이라 한다는 기록은 그 증좌다.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보이는 북구지(北龜旨)는 ‘뒷거붑마루’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뒤가 북쪽을 가리키는 예는 지금도 민간 습속에 많이 남아 있다. 집을 지을 때 뒷간은 북쪽에 배치했다. 북쪽에 있는 건물이 곧 뒷간이다. 또 뒤쪽으로 이사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은 북쪽으로 이사하지 말라는 의미로 쓴다.
그리고 지금도 책이나 글에서 뒤가 곧 북이라는 의미로 쓴 글을 가끔 볼 수 있다. 제례의 절차를 설명한 어느 책에, “제상의 뒤쪽(북쪽)에 병풍을 치고 제상 위에 제수를 진설한다.”고 되어 있었고, 또 “멀리서 보니 우리 집 근처에 불이 난 것 같았는데, 와서 보니 다행이도 우리 동네보다 더 뒤쪽(북쪽)이네요.”란 글을 최근에 인터넷에서 읽은 일이 있다. 뒤쪽이란 말에 잇달아 괄호를 치고 ‘북쪽’이란 말을 삽입하고 있는데, 이는 뒤쪽을 북쪽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증좌다.
이와 관련하여 방위와 오행과의 관련에 대해 간단히 덧붙일까 한다.
음양오행설에서는 산과 물의 방위에 따라 양과 음이 달라진다. 물의 북쪽은 양(陽)인데, 산은 남쪽이 양이다. 반대로 물의 남쪽이 음인데, 산은 북쪽이 음(陰)이 된다. 서로 반대다. 서울의 옛 이름이 한양(漢陽)인 것은 한수(漢水)의 북쪽에 도읍한 데서 나온 이름이다. 그리고 경북의 하양(河陽)은 금호강의 북쪽에, 단양(丹陽)은 남한강 북쪽에, 청양고추로 유명한 청양(靑陽)은 금강 북쪽에, 밀양(密陽)은 밀양강 북쪽에, 제철소가 있는 광양(光陽)은 섬진강 북쪽에 위치한 데 따른 이름이다. 그 유명한 낙양(洛陽)도 낙수의 북쪽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