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은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거룩한 백성이니 여호와의 날이 오면 환희와 평화를 맛볼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어찌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면서 그 날은 어둠이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18절). 마치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집에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리는 것처럼 어떤 불행과 위기를 넘겼다 싶지만 더욱 큰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예고합니다(19절). 고대 근동의 사람들은 사자보다 곰을 더 무서운 맹수로 알고 있기에 이런 표현을 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은 빛이 없는 어둠과 캄캄함이라고 말씀합니다(20절). 여호와의 날은 어둠과 빛, 절망과 희망의 두 측면이 모두 존재합니다. 악한 자에게는 어둠과 절망이 될 것이고, 의로운 자에게는 빛과 희망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악을 행하고 있기에 빛이 아니라 어둠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고, 하나님께 여러 종류의 제사를 드렸지만, 그들은 동시에 우상도 섬기며 우상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절기를 지키거나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사를 드리면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 따라 살아가지도 않았으며, 포학을 행하기도 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자를 압제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의식(儀式)을 행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율법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종교적 의식만 행할 뿐이지 신앙적인 삶은 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절기나 제사들, 하나님 앞에 나와 노래와 악기로 찬송하는 것들을 그치라고 말씀합니다(21절~23절). 삶이 없는 종교의식은 껍데기에 불과하기에 받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단호한 말씀입니다. 삶이 뒤따르지 않는 예배는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고 촉구합니다(24절). 이 말씀에서 “정의”(正義, Justice)는 히브리어로 “미쉬파트”(מִשְׁפָּ֑ט)로 “거룩한 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 법도를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법적(法的)인 정의”을 일컫는 말씀입니다. 그런가 하면 “공의”(公義, Righteousness)는 히브리어로 “우체다카”(וּצְדָקָ֖ה)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 단어의 원형은 “체다카”(צְדָקָה)로 “의로움”을 의미합니다. 미쉬파트는 법적인 조항에 따라 의로움을 규정하지만, 체다카는 좀 더 폭넓은 의미로 공정함과 의로움을 규정합니다. 그리고 이 정의와 공의로 물처럼, 강처럼 흐르게 하라고 할 때의 “흐르게 하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웨익갈”(וְיִגַּ֥ל)이란 단어가 사용되었고, 이 단어의 원형은 “갈랄”(גָּלַל)이란 단어로 묵직한 물체가 굴러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거세게 휘몰아치듯이 흐르는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단어입니다.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세게 흐르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의와 공의를 강력하게 행하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이라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출애굽하여 사십 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었느냐며 반문하시면서(25절), 이스라엘 백성은 오히려 그들이 왕처럼 섬기는 식굿(Sikkuth, Shrine)과 기윤(Kiyyun)을 짊어지는 가는 자들로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26절). 식굿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섬긴 우상 신을 의미하는 말이며, 기윤은 앗수르 사람들이 숭배하던 토성(土星) 신으로 별 모양으로 만든 우상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이러한 우상에 빠져서 우상을 섬기는 이중적(二重的) 모습을 보이는 악한 삶을 살았다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다메섹(Damascus) 밖으로 사로잡혀 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27절). 다메섹은 시리아(아람)의 수도인데, 다메섹 밖이란 말은 이스라엘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사로잡혀 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 갈 것에 대한 예고입니다.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는 만군의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이라고 하시며 반드시 이뤄질 경고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27절).
우리는 주일에 교회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교회에 모여 성경공부도 하고, 교제도 합니다. 봉사활동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삶의 현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보다는 자기의 욕심과 탐욕에 따라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고 하지도 않고 오히려 이기적인 행동을 일삼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도 직장이나 사회의 흐름에 편승(便乘)하여 분별력도, 경각심도 없이 살아갑니다. 국회의원이나, 군인이나, 고위공무원이나, 직장인이나, 사업가나 할 것 없이 모두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자들 중에는 세상의 흐름과 분위기에 따라 저항감 없이 그대로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정의와 공의를 강 같이 흐르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의 거센 물결에 함께 휩쓸려 가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이제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정의와 공의를 강 같이 흐르게 하는 자로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