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5일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복음 묵상 (루카 9,22-30) (이근상 신부)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루카9,23-25)
당신을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아르네오마이; 부정하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한다(아이로;지다)'. 자신을 버린다는 말과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이 병렬적으로 반복되면서 둘이 같은 내용임을 강조한다.
자기 자신을 부정한다는 것은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다른 방향을 걷는 것이다. 자기 방향이란 뭐가 되었든 자기가 하고픈 것, 자기 욕구이거나 아니면 그리 하도록 이런 저런 사정이 있어서 밀려가는 것이 있을텐데 둘 다 좋건 싫건 익숙한 방향이란 건 분명하다. 우린 좋은 것만이 아니라 웃기는 일이지만 싫은 것조차 익숙한 것을 붙잡고 산다. 미움 따위가 대표적. 여튼 꽉 붙잡고 산다. 그들과 사는 법을 겨우 배운 인생이니 어쩌겠는가. 거기서 떠난다는 건 뭘 어찌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길로 발걸음을 내딛는다는 말이다.
해서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건 그 익숙함에서 떠나는 것인데, 그러니 매일 매일일 수 밖에 없다. 흥미로운건 십자가를 지다에서 사용하는 동사 아이로인데, 오늘 '아이로'의 희랍어 사전을 보니 끄트머리에 히브리어로 이게 '나사'라고 하니 마음이 아린다. 히브리말로 '나사'는 장막을 고정시키는 말뚝을 뽑는다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다. 해서 뽑아내다, 제거하다가 기본 뜻인데, 거기에서 남의 짐을 제거하여 자신이 대신 져주다로 넘어가며 짊어지다는 뜻도 가진다. 그러니 그 말은 또 용서하다란 뜻으로도 쓰인다. 히브리동사를 배우며 가장 인상깊었던 말이다.
자기 십자가, 그 익숙한 말뚝, 욕하면서 붙잡아온 그 지긋지긋한 상처를 뽑아낸다는 말. 그게 십자가를 진다는 말을 히브리말로 읽을 때 떠오를 수도 있는 모습이란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onksyi/posts/pfbid0WPyK5FRchKzza4NM7JhydPwTLnZZAZYHw3XKvDuf6WyUKzjRNhG882xrNqZvp4jd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