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립동 외장꾼
친구들은 모두 서당에 가 ‘하늘 천 따 지’ 글공부를 하는데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열세살 맹복이는 초립을 쓰고 서당 앞을 지나 개울 건너 아랫마을로 타박타박 걸어갔다. 솜털도 가시지 않은 아들이 외장꾼이 되겠다고 우기자 맹복이 어미는 애 얼굴이 검정이 될까 봐 장에서 초립을 사다줬다. 맹복이가 박술이 형 집 삽짝 안으로 들어서서 “형, 엄마가 이거 갖다드리래” 하며 새빨갛게 익은 홍시 열두어개를 술이 형에게 주자 그 형이 제 어미한테 건넸다.
“아이고 맛있겠다.” 고추를 마당에 펴 널던 술이 형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너도 외장꾼이 되겠단 말이지?” 하며 맹복이의 초립을 쓰다듬었다. 맹복이보다 다섯살 많은 열여덟살 박술이는 마당 한편에서 지게 다리를 맹복이 키에 맞춰 잘라내고 바소쿠리도 줄여서 지게에 얹었다. 맹복이가 짤막한 지게를 지고 마당을 한바퀴 돌자 술이 어미가 “호호” 웃었다.
둘이서 툇마루에 앉아 점심을 먹고 새우젓장수 술이 형은 젓통 지게를 지고 맹복이는 빈 지게를 지고 이십리 길을 걸어 경남 진주로 갔다. 박술이 젓갈 도매상 옆에 붙어 있는 건어물 상회에 들어가 말했다. “주인 나리, 얘는 권맹복이라 하는데 건어물 외장을 뛰겠대요. 제가 보증 설 테니 외상 좀 주세요.” “그려∼ 골라 담아봐라.” 첫날이라 북어포 세축에 멸치 한포대만 앙증맞은 지게 바소쿠리에 얹자 지켜보던 장터 사람들이 “돈 많이 벌어라” 한마디씩 덕담을 했다.
술이 형을 따라 열세살 맹복이 뒤뚱뒤뚱 따라가자 장터 사람들이 걱정 반 격려 반으로 빙긋이 웃었다. 개울을 건널 때 박술이가 두번 걸음을 했다. 고개를 오를 때도 박술이가 당기는 지게 지팡이를 잡고 오르며 맹복이는 헥헥거렸다.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적곡에 다다라 “새우젓 사려∼ 싱싱한 멸치젓이요∼” 술이 형이 외치면 뒤따라 맹복이도 모기소리만 하게 “북어포 멸치도∼”를 외쳤다.
저녁나절 주막에 들어가 저녁을 먹고 나서 맹복이는 북어 두마리, 멸치 한홉 판 돈이 너무 신기해 조끼 주머니에서 꺼내 이 손바닥에 놓았다가 저 손바닥에 놓기를 반복했다. 주막 안마당 평상에서 술이 형과 주모가 떠들썩하게 술을 계속 마시는 걸 보고 맹복이는 두 주먹에 엽전을 꼭 쥔 채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나. 오줌이 마려워 일어났더니 술이 형은 옆에 없고 통시에도 없었다. 안마당에 들어선 맹복이가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주모의 소리를 들으며 얼어붙었다. “나 죽는다. 야 이놈아∼ 철퍽 철퍽∼.” 맹복이 객방에 들어가 자는 척 누워 있자 술이 형이 들어와 금방 코를 골았다. 이튿날 산길을 걸으며 맹복이가 지난밤에 안방에서 주모와 왜 싸웠느냐고 물었다가 알밤만 얻어맞았다.
그렇게 사오년이 흘러갔다. 맹복이 나이도 열여덟이 되니 팔뚝도, 허벅지도 굵어졌다. 지게 바소쿠리 위에는 북어포 외에도 대구포·건오징어에 멸치 종류도 다양해지고 이제는 하루 매상고도 부쩍 올랐다. 술이 형은 술이 과한 데다 잘생긴 얼굴 덕택에 주막집마다 주모가 달라붙었다. 게다가 노름판에도 끼었다. 자연히 장을 건너뛰기 일쑤라 맹복이와 멀어지게 되었다.
맹복이는 보름이나 한달 만에 집에 갈 때면 집에 들어가기 전에 저잣거리 건어물 도매상에 가서 깨끗이 결제를 했다. 건어물 도매상과 거래하는 외장꾼은 합이 다섯인데, 맹복이는 항상 매상고 일등이고 제때 정확하게 입금한다. 매관매직이 판을 치고 세금이 납덩이처럼 무거워 세상 민심이 흉흉하더니 마침내 진주에 민란이 일어났다. 진주성에 불길이 치솟고 농민들이 떼를 지어 횃불을 들고 관아에 불을 지르자 진주는 무법천지가 되었다. 지주들과 점주들은 도망치고 머슴들과 종업원들이 주인행세를 했다.
맹복이는 저잣거리로 달려가 건어물포를 지켰다. 건어물 외장꾼들이 몰려와 건어물을 약탈하려 해 맹복이가 막아서자 주먹다짐을 하기 시작했다. 맹복이는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한사코 점포를 지켰다. 건어물 외장꾼 세놈이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수적으로 밀린 맹복이가 기진맥진 쓰러져갈 때 술이 형이 나타나 날렵한 발차기로 그놈들을 제압했다. 오래지 않아 민란은 수습되고 주인 영감님 황 대인도 돌아왔다. 맹복이가 치부책과 돈통을 고스란히 황 대인에게 바쳤다. 며칠 후 황 대인이 맹복이를 데리고 국밥집에 가서 반주로 술 한잔을 마시더니 말했다. “나는 이제 너무 늙었네. 내 장사를 이어받을 자식도 없으니 맹복이 자네가 이 가게를 맡아주게.” “아아, 아닙니다. 대인께서 하시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이제 건어물 한축도 들어 나르기 힘들어. 콜록콜록.”
이듬해 황 대인은 이승을 하직하고 맹복이가 상주가 되어 칠일장을 치르고 난 뒤 술이 형을 데려와 둘이서 건어물 가게를 착실히 꾸려갔다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