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장 구속사 강해
아브라함이 바라 본 신령한 나라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창 24:1)는 말은 그동안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아왔던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인생의 종점이 가까웠음을 보여 주고 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인생을 정리할 시점이 가까운 것을 알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나라를 건설할 새 역사의 주인공인 이삭에게 그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의 바톤을 넘겨주고자 하였다. 지금까지 살아온 아브라함의 인생은 새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 가는 기초적인 단계였다. 이제 이삭은 그 다음 단계를 이어받아야 하는 것이다.
1. 이삭의 혼인에 대하여
이삭은 이미 마흔이 다 된 장년으로 성장하였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을 각성하고 있었다. 이에 아브라함은 이삭과 더불어 신령한 나라를 건설해 나갈 배필을 신중하게 선택했다.
아브라함은 지난 생애 동안 가까이에서 가정의 모든 행사를 경영해 온 엘리에셀이 믿음직하여 그에게 이삭의 아내를 선택해 오라는 마지막 당부를 하였다(창 24:3-4). 아브라함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선택하여 지목한 것도 아니고, 새 나라를 건설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을 수행할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문제를 이처럼 막연하게 엘리에셀에게 당부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삭을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서 가장 확실하게 이삭의 배필을 구해 줄 것을 믿고 있었기에 그렇게 당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당부를 받은 엘리에셀의 질문에 대한 아브라함의 답변 속에 나타나고 있다.
“삼가 내 아들을 그리고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seed, 단수)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찌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찌니라 만일 여자가 너를 좇아오고자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찌니라”(창 24:6-8). 아브라함은 이삭의 배필을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그러한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은, 그동안 새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있어서 친히 아브라함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흉년, 바로의 횡포, 조카 롯과의 결별, 멜기세덱의 축복, 이스마엘의 출산, 할례와 이삭의 출생에 대한 약속, 소돔과 고모라 사건, 아비멜렉 사건 등등을 거쳐 마침내 탄생한 이삭에 대하여 각별하신 하나님의 보살핌을 확인할 수 있었던 모리아 산에서의 번제 사건 등을 통해 보여주셨던 치밀한 계획들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이삭의 배필을 구함에 있어 오직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더욱이 이삭의 배필은 새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있어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아브라함으로선 그 나라가 건설됨에 있어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하나님께서 이미 이삭의 배필을 예비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생각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는 과정에서 이미 얻어진 것이다. 아브라함은 새 나라를 건설할 인물이 아브라함의 필요나 기대에 따라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근거로 아브라함은 직접 이삭의 배필을 구하러 나서지 않고 이미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 자연스럽게 성취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이 마련해 준 예물을 가지고 메소보다미아의 나홀의 성에 도착하였다. 나홀은 아브라함의 친동생으로서 역시 장형인 하란(창 11:26)의 딸 밀가(창 11:29)와 혼인하여 브두엘과 일곱 아들을 생산하였다(창 22:21-22). 아브라함은 이삭의 번제 사건이 있은 후에 나홀이 밀가를 통해 자녀를 생산하였다는 소식과, 그 아들 중 하나인 브두엘이 리브가를 생산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는데(창 22:20-24) 엘리에셀이 도달한 곳은 바로 이 리브가가 사는 곳이었다.
엘리에셀이 가나안에서 곧장 이곳으로 온 것을 보아 이미 아브라함으로부터 언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창 24:4, 40). 이 말은 아브라함이 리브가를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단지 리브가가 엘리에셀의 말을 듣고도 오지 않을 경우에는 리브가가 이삭의 배필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 리브가를 예비하신 하나님
엘리에셀이 나홀의 성에 이르렀을 때는 저녁이라서 여자들이 물을 긷기 위해 샘에 모이고 있었다. 낮에는 더위와 먼지 등으로 일하기가 어려운 근동지방은 주로 해가 떨어지는 저녁부터 주된 일상 생활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엘리에셀은 이삭의 배필을 구함에 있어 아브라함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나서서 찾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하신 신부를 쉽게 만날 수 있도록 기도했다(창 24:12-14).
엘리에셀의 이 기도는 우주적인 하나님의 경영을 근거로 한 기도였다. 단순히 주인에게 자기의 충정을 다한다는 정도의 사적인 소원을 이루고자 함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새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언약은 아들 이삭의 출생으로 성취되고 있었다. 이제 아브라함의 언약은 400여 년이 지난 뒤에 그의 후손들에게서 구체적으로 성취될 것이기 때문에(창 15:13-14), 아브라함의 기업을 이을 이삭에게서 새로운 백성들이 출생해야 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언약을 계승하여 성취할 약속의 후손이 이삭에게서 출생하기 위해서는 이방 여인보다는 그 언약의 정신을 충분히 이해하고 이삭과 함께 이루어 갈 수 있는 동질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해야 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아브라함은 구태여 엘리에셀을 갈대아까지 보내 이삭의 신부를 구하게 한 것이다.
여기에서 엘리에셀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시겠다는 의지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미 엘리에셀은 이삭의 아내를 선택하기 위해 갈대아로 가는 자기의 목적을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임을 신뢰하고 있었다.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경영에 속한 일이기 때문이다. 엘리에셀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렇게 해달라는 간구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을 지체하지 않고 이루실 것에 대한 기도였다.
리브가의 식구들은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시집보내는 것에 대하여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리브가를 시집보내는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라반이 리브가에게 축복한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찌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찌어다”(창 24:60)고 한 말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축복은 첫째, 리브가로 하여금 많은 후손들을 생산할 것과, 그 후손들의 대적이 누구이든 물리치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축복은 시집가는 신부에게 의당히 축복하는 당시 사회적인 풍습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라반이 엘리에셀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행하신 사역이 무엇인가를 알았음을 볼 때 라반의 축복은 상당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라반의 축복은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세속적인 차원에서의 의례적인 축복이라기보다는 새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새 민족이 리브가를 통해 생산될 것을 축복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3. 새 나라를 바라 본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이삭이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하여 새 민족을 생산하게 될 것을 보고 즐거워하며 여생을 보낼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140세 되던 해, 이삭은 40세에 리브가를 맞아 혼인하였고(창 25:20), 아브라함이 160세 되던 해 이삭은 에서와 야곱을 생산하였다. 이후 아브라함은 17년 간 한 장막에서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여생을 보내며 장차 야곱을 통해 새 나라를 건설할 후손들이 생산될 것을 바라보았다.
아브라함은 언제나 새 나라가 건설될 것이라는 믿음과 그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지켜보며 평생을 가나안의 장막 안에서 살았다. 그리고 175세에 열조에게로 돌아가 사라가 장사되었던 헤브론의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 라해로이 근처에 거하였더라”(창 25:11). 이렇게 함으로서 새 나라를 건설해야 할 시대적 사명은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에게로 옮겨졌으며 이삭은 아브라함의 기업을 유업으로 받은 유일한 상속자로서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