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7]역쉬(역시) 친구는 고딩친구가 쵝오(최고)?
엊그제 고교 졸업 47년만에 처음 만난 친구와 우리집 남향의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 여러 친구들의 근황에 대해 수소문하거나 확인을 하는 등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7반까지 모두 417명이 졸업했는데, 30여명이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살아있는 친구들은 모두 ‘한 세상’ 헤쳐오느라 나름 열심히 살았을 터. 이제는 대부분 생업生業에서 손을 떼었을 것이나, 아직 현역인 친구들은 복 받은 게 틀림없다. 낡은 앨범을 넘기며 한 명, 한 명 근황을 묻는데, 서울지역 친구들의 개별 정보를 막힘없이 말하자, 친구가 크게 놀라며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친구들에 대해 애정을 갖고, 그런 사실을 기록으로 정리해 놓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자면, 2008년 6월 24일자 중앙일보 6면에 우리 친구들의 연례행사인 소풍 이야기가 전면(광고 5단 빼고 10단 전체)으로 실린 것이다.
"반갑다 친구야" 4050 왜 동창회 열광하나,
전라고6회 재경동창회, 정기·산행·벙개 등 1년 25~26번 만나,
동창회 성공 열쇠 쥔 총무가 밝힌 활성화 비법
(https://www.joongang.co.kr/article/3200935,
https://www.joongang.co.kr/article/3200936
https://www.joongang.co.kr/article/3200937) 등 굵은 제목만 봐도 무슨 내용이 쓰여 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고등학교가 3천여개가 된다지만, 중앙일간지에 이렇듯 대서특필된 고등학교가 몇이나 있을까? 결코 흔치 않은 일일 듯. 한때는 유력 월간지였던 <신동아> 2005년 9월호에는 <전라고 6회 홈페이지에 비친 ‘40後男’의 자화상>이란 제목 <‘5초男’이 고교 모임에 열광하는 이유 : 신동아 (donga.com>)으로, 2008년 12월호에는 <‘5초男’이 고교 모임에 열광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10여쪽이 또 게재되기도 했다(https://shindonga.donga.com/3/all/13/108013/1).
하하. 그래서 기록은 소중하다. KBS 창사 50주년 기획특집 광고문구 <기록은 기억을 이기고/시간보다 오래 남는다>를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재경동문회 120여명의 활동상이 그동안 언론을 많이 탄 까닭은, 유별난 끈끈함과 의리 때문이지 않았을까.
해마다 6월 6일은 2000년대 초부터 부부동반 ‘일일소풍’을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인 2019년까지 빠짐없이 개최했다. 관광버스 2대는 기본, 보통 3대, 2008년에는 120명이 참석해 4대를 부르는 성황을 이뤘다. 친구들은 대부분 호號로 불렸고, 친구의 아내는 무조건 ‘형수’라 호칭하는 전통을 세워 지켜왔으니, 참 가상한 일이었다. 그동안 다녀온 곳만 해도 강화도, 실미도, 설악산-하조대, 단양 대청호, 부여 백마강, 서산 태안반도, 예산, 괴산 옛길, 청령포, 과천 장미공원, 경주 수학여행 등 다양했으니, 우애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형수들은 전라고 남성들과 결혼을 했으니, 모두 가상의 여고인 '전라여고' 동문이 되었다. 아예 플래카드에 <전라고-전라여고 수학여행>이라고 못을 박았으니, 빼도 박도 못할 일이지 않겠는가. ‘형수’는 싫어라고 할 친구들이 없이, 아주 근사한 호칭이었다. 형수 앞에서는 시동생이 웃통을 벗어도 흉이 안된다 하지 않던가. 오죽했으면 모두 1년짜리 회장을 사양하는 통에, 여고생 중에서 회장을 추천했을 것인가. 오 마이 갓!
어디 그뿐인가. 가까운 중국이나 베트남, 캄보디아, 일본, 대만, 백두산 등 해외 단체관광이 해마다 5회이상 이뤄졌는데, 보통 10쌍이 넘었으며, 정월 신년하례식, 여름 천렵은 회장의 가장 큰 미션이었다. 그런데도 삼삼오오 수시 번개팅과 월 1회 산행모임 '6산會'는 시산제始山祭를 전체 행사로 확대하기도 했다. 친구들의 애경사哀慶事에는 아예 몰려다니는 양상이었다. 기쁨을 같이 하기는 쉬워도 슬픔을 함께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던 다채로운 행사들이 생각지도 않은 코로나 병란病亂으로 일절 중단되는 비극을 맞이했다(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관광을 추진했는데, 보수정권의 딜레마에 허덕이었다).
또한 6학년으로 진급하면서 퇴직을 하는 친구들이 늘어나자 경제사정이 여의치 않은 탓도 단합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허나,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친구들이 아니었다. 지난해 회장은 서울은 물론 지역별 순회 회식을 갖기도 했고, 올해 회장은 그동안 해왔던 모든 행사를 부활하자며 팔을 걷어붙였다. 첫 번째 행사가 오는 18일 토요일 오전 10시, 불암산 중턱에서 돼지머리를 앞세운 시산세 지내기이다. <불암산신령지신위> 지방을 써붙이고 장문의 축문을 낭송하며, 모교 친구들의 우정이 영원하기를 다짐하기로 했다. 또한 지난해 11월 황망하게 유명을 달리한 친구를 위한 묵념과 추모사도 낭송된다고 한다. 모두 적극적으로 참석하여 성공적인 행사가 되기를 축원하는 마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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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친구들이 ‘왕회장’이라 부르는 인우 친구가 엊그제 자당을 여의셨다. 왕회장은 6회 회장 두 번과 재경총동문회장을 역임했기 때문에 부르는 우리의 애칭. 일요일 오후, 전국구 친구(부산, 순천, 광주, 임실 등)들이 동부인하여 추모를 하는데, 그날만 족히 60명은 넘은 듯했다. 게다가 모교 선배와 후배까지 합하면 장례식장은 온통 특정교 출신으로 가득했던 셈. 왕회장이 평소 쌓은 인덕이기도 하지만, 친구들의 슬픔을 같이 슬퍼하는 친구들의 미덕이 발휘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3년여만에 만난 전라여고 동문들도 추모목례는 잠시, 이런저런 생활수다 떨기에 바빴다. 참 보기 좋은, 보기 드문 풍경일진저. 이 글을 빌어 고인의 명복을 거듭 빌면서, 유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