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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묵호의 그녀
“미자 남편이요. 좀 만납시다.”
그녀 남편의 전화를 받고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 전 그녀의 전화가 마음에 걸렸다. 앞으로 전화하지 말라는 나의 대답에 그녀는 틀림없이 흐느꼈을 것이라는 확신 또한 들었다.
봄을 지나 초여름에 접어 들자 영동 지방은 푄현상으로 연일 전국 최고 기온을 기록하고 있었다.
기록적인 무더위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에어컨조차 없는 청수원에는 잘 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라도 변명하는 것이 내가 청수원에 한동안 가지 않았던 이유로서 내 자존심을 살리는 것이다. 더 이상 내 스스로에게도 비참해지기는 싫다.
어느 날, 청수원에서 초등학교 동창 놈의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살기어린 눈초리를 받았고, 뒤이어 화장실을 갔다 오다 그의 폭행에 나는 무참히 무너졌다.
“너 이 새끼! 앞으로 여기 얼씬거리지 말아라.”
너! 글 씁네 하면서 여자만 후리고 다니는 새끼라는 거............나 다 안다.”
“너 같은 먹물 새끼들은 다 죽어야 해!”
“불쌍한 우리 형수를 갖고 놀지나 마라. 순진한 우리 형수다! 니 놈이 형수로 소설을 쓴다는데, 괜히 엄한 짓 말고 집에 가서 니 마누라에게나 잘 해라.”
“흑,.............”
나는 흘러내리는 코피를 다시 들여 마시며 아무 대답을 못했다. 수 차례 그에게 발길질을 당했다는 것을 기억 할 뿐, 아픈 줄도 몰랐다.
그의 말에 아무 말도 못한 것은 두려워서라기 보다 그의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당하게 우리 형수라는 표현을 하는 그에게 나는 당할 재간이 없기도 했다. 내가 아무리 그녀의 삶을 가슴에 새기며 그녀에 대한 소설을 쓴다 해도 그의 우리 형수라는 표현 보다 절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가 아무리 나를 오해해서 나에게 무지막지한 짓거리를 했다고 해도 그의 진정성은 내 소설이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미자 어디 있소?”
그녀의 남편은 자리에 앉자마자 다짜고짜로 나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요?”
“나 다 알고 왔소. 미자 그년...... 당신 때문에 집 나간 거....... 전에 이혼한 것도 당신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소. 시내에 소문이 파다한 일.......시치미 떼지 마시오.”
“집을 나가요?”
얼마 전 그녀의 전화가 몹시도 마음에 걸렸다. 혹시 그때 집을 나왔던 것일까?
“전 두 분이서 잘 살 길 바랬소.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자꾸 엉뚱한 소리 하지 마시오. 지금 당신 때문에 잘 살지 못하고 있지 않소?”
“.............”
나는 점점 더 대답을 할 수가 없어졌다. 역시 그의 눈도 살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어찌해야 된단 말인가. 그녀의 삶은 마치 초여름 영동지방의 무더위처럼 지겹도록 내 온몸을 칭칭 감고 있음을 느꼈다.
목 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이 어느새 윗도리를 온통 적시고 말았다.
허름한 다방 안은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전기세 낼 돈도 없는지 에어컨도 켜지 않고 있었다.
“그럼 저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여간 미자를 찾아내시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하며 머리를 숙이며, 나는 말을 했고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당당하게 그녀의 아내 이름, 미자를 불렀고 나는 그녀의 이름조차 그의 앞에서 말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남편과 다시 합쳐 살다가 다시 이어지는 남편의 난행에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집을 나왔을 것이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나에게 전화를 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그녀를 냉정하게 무시 했던 것이다. 그날 입에 하얀 거품을 물고 미친 사자처럼 육지로 향해 몰려오던 거센 파도가 생각이 났다.
그녀의 전화를 애써 끊어 버리자 나의 눈에는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었다. 그리고 그날, 청수원에서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타고 바다로 갔던 것이다.
아마 그녀가 몹시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용서 하시오.”
나는 머리를 숙이고 그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용서고 뭐고 하여간 마누라나 책임지쇼”
“저가 왜 책임을 지죠?”
그 말이 화근이었을까. 갑자기 그의 눈에서 불꽃이 일면서 앞에 있던 음료수 잔을 내 얼굴에 퍼부었다.
“니 놈이 저지른 일이니까, 책임지는 게 당연하잖아. 니 놈 때문에 우리집안 깨졌잖아.”
변명은 하기 싫었다. 변명을 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책임 질 부분도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는 집을 나와서 나에게 전화를 했었고, 나는 그 전화를 냉정하게 끊어버렸으니까. 그것은 사내로서 무책임한 짓이었다.
물론 그녀의 남편이 말하는 책임과 내가 말하는 책임은 틀린 것이지만, 하여간 나는 비겁한 짓을 했던 것이다.
“너, 그냥 두지 않는다. 마누라 찾아내놓지 않으면 니 놈 집안도 박살을 낼거다."
다방을 나가는 내 뒤통수에 그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밖은 초여름의 태양이 작열하고 있었다. 비라도 팍팍 쏟아지면 가슴이라도 후련해 질 것 같았다. 몇일 후의 장마가 간절히 기다려졌다.
“사장님, 죄송해요. 저 때문에 곤욕을 치르시고........몹쓸 놈의 인간 같으니라고.........여기 오시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요.
그 인간이 그런 인간예요. 저러다가 어디 가서 또 큰일 한번 치룬다니까요.
사장님, 제가 눈치 봐서 전화 한번 드릴테니, 술 한잔 하러 오세요. 저가 대접해 드릴께요.”
“전 괜찮아요. 누님이나 조심하세요. 그리고 일간 한번 갈게요.”
청수원 그녀의 전화를 받고 방에서 나왔을 때, 아내의 표정은 서릿발 같았다.
아내는 좀처럼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안달 하거나 바가지를 긁는 경우도 없었다. 여느 여자처럼 울고 불고 난리치는 일도 물론 없었다. 그것은 그녀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아내의 그런 점은 장모를 닮았다.
아내의 집안은 가난했지만, 그런 장모 덕분에 바르고 곧게 자랄 수 있었다. 그 꼿꼿함이 아내의 자존심을 턱도 없이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런 점이 아내만의 내면으로 스스로 빠지는 꼴이 되기도 했다.
“그 여자 어디 있어요?”
아내는 청수원 그녀의 전화를 미자의 전화로 오해를 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미자 남편이 아내에게 전화라도 한 모양이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 여자 남편에게 전화가 와서 한바탕 소란을 피웠어요. 우리 집안 박살 낸데요.”
“.........”
나는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여자 만나지 마세요. 그 여자 만나면 끝장이예요.”
아내의 단호한 말을 뒤로 하고 나는 밖으로 나와 버렸다.
장마가 곧 시작할 것 같이 하늘에는 먹구름이 뒤덮혀 있었고 무거운 습기로 온 몸이 답답했다.
나의 바람을 아내가 눈치 챘을 때, 아내의 반응은 의외였다.
전혀 동요하지 않고 아내 특유의 선뜻한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기만 했었다.
이 여자는 나를 사랑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겉으로 보기에는 태연했다.
“당신........ 아이들 아빠라는 것만 명심하세요.”
이 한마디가 유일하게 아내가 나에게 던진 말이었다.
차라리 아내가 여느 여자들처럼 내 가슴이라도 쥐어뜯으며 악다구니를 써대는 것이 편했을 정도로 뒷맛이 찜찜했다.
여자로서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지켰던 것이다.
그 놀랄만한 자존심에 한편으로 나는 섬짓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딱 한번 이 소설 3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아내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마치 막 되먹은 술집 여자처럼 욕설을 섞어가며 나를 다그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술도 마실지도 모르는 아내가 소주 석잔에 취해 마치 미친 여자처럼 그러는 것이 놀라왔다.
그때는 그저 내가 너무나 미워서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아내가 그러는가 보다 하고 지나쳤었다.
그러나 얼마 후, 나는 아내의 그때 그런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내의 그 단단한 자존심 속에서 여린 속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도저히 깨어질 것 같지 않았던 아내의 자존심 속에서 나는 보통 여자의 순수함을 보았다. 그리고 사실, 그때 아내가 나에게 퍼부었던 욕설이 틀린 말이 아니지 않은가.
아내 말대로 나는 글 쓸 자격도 없는 것이다. 물론 아내 말은, 극단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다시 한번 지금 곰씹어 보아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바람 한점 없었다. 어느새 남대천 하구까지 차를 몰고 와버렸다.
바다는 무거운 구름을 머리에 이고 침묵하고 있었다. 곧 닥쳐 올 큰비에 겁을 먹고 있는 듯,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았다.
다만, 남대천 하구의 작은 섬에는 새들이, 비를 예고하는 무수히 낮게 날고 있는 잠자리 떼를 잡아먹기 위해 바삐 날고 있었다. 아마 작은 섬은 장마가 오면 상류로부터 내려오는 홍수에 곧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전화를 받고, 오랜만에 청수원에 갔을 때,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있었다.
“왠 아이예요?”
“그 인간 아이예요. 서울로 도망간 술집 아가씨 잡으러 간다고 저에게 맡기고 갔어요. 이젠 완전히 지 마누라 취급한다니까요. 엄마 없는 아이가 불쌍해서 봐주는 거지, 누가 자기 좋아서 그러는 줄 아는가 봐요.”
화가 난 듯 그녀는 얘기했지만, 내 눈에 비치는 그녀는 썩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혹시 그녀가 초등학교 동창 놈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혼자 제대로 아이도 못 키우는 인간이 마누라는 왜 때려서 내보냈는지.......그 놈의 성질 때문에 그 인간은 무슨 일 낸다니까요."
"남편에게는 요즘도 전화가 와요?“
“요즘 통 연락이 없네요. 한 때 불나게 전화가 오길래, 난 또 정신이라도 차렸나 생각했는데, 역시 틀려먹은 인간은 할 수 없어요.”
“왜요?”
“저 보고 돈 좀 빌려 달래요. 어디서 여자도 못 구해서 혼자 사는지, 목소리가 힘이 하나도 없었어요. 불쌍한 인간이죠.”
창밖에, 장마가 시작되어 조금씩 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언뜻 슬픔이 스쳐가는 듯 보였다.
그녀의 남편 이야기에, 나는 시골에서 혼자 사시는 아버지가 생각났다. 내가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결단코 우겨보아도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아버지는 항상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아니,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미안한 것이 당연한 것 인지도 몰랐다.
가끔씩 아내가 용돈이나 반찬거리를 드리러 시골에 가도, 무엇하나 당신 스스로 당당하게 요구 하시는 법이 없었다.
자식들이 주는 것이 황송한듯 미안한 듯 받기만 할 뿐이었다. 아버지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씻을 수 없는 지난 과거를 남동생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집안 재산 다 탕진하고 같이 살림하던 여자에게서 마저 버림 받고 아버지가 나타났을 때, 남동생은 아버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 역시 그런 아버지가 측은하기만 할 뿐 부자의 정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장남으로서 의무감만으로 시골 선산 밑에 아버지를 위한 작은 집을 지어드렸을 뿐이었다.
어머니와 결혼을 하고 시골의 천석지기 집안의 아들로 빈둥대고 놀던 아버지가 노름을 시작하고 집안 재산 거덜 내고 여자와 바람이 나서 살림을 차려 어머니 가슴에 대못 하나를 박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보다도 어머니를 더욱 괴롭힌 것은 바로 춘삼이었다.
춘삼이는 전쟁고아로 시골에서 밥을 얻어먹으며 헤메다가 할머니가 거두어들인 아이였다.
아버지보다는 네 댓살 아래였고 할머니는 아들처럼 때로는 집안의 일꾼처럼 그렇게 키우셨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큰댁에 들어와서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해에 집을 나갔으니 이십 년은 족히 큰댁 식구들과 살았다.
아버지와 큰댁 큰형은 나이가 동갑이었는데, 춘삼이는 큰형과 아버지를 똑같이 형이라 부르며 컸다고 한다. 조카와 아저씨를 형이라 부르는 이상한 관계가 아무 무리 없이 유지할 수 있는 데에는 할머니의 힘이 컸다.
머리 속에 유교의 전통적인 가족질서가 뿌리 깊이 박혀 있는 할머니가 어떻게 그런 이상한 가족의 상하관계의 호칭을 허락하신 것이 지금도 불가사의하다.
큰형과 아버지가 어릴 때 같이 크면서, 호칭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는 것에 비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의문은 큰형과 아버지가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강릉으로 나가서야 큰댁 식구들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혼자 남은 춘삼이의 외로움과 서운함이 그를 가출하도록 만들었고, 가출한 춘삼이를 몇 번이나 수소문하여 잡아 온 사람은 영락없이 할머니였다.
그를 자기 아들이나 손자처럼 키울 수 없는 할머니의 아픈 마음이 그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유교적 가족관계의 호칭마저도 무시하게 된 것 같았다.
어릴 때, 유독 춘삼이는 나만 데리고 놀았다. 산으로 데리고 가서 산딸기며 머루며 온갖 먹을 것을 따주었고 호칭에 있어서도 나만은 예외였다. 우리 사촌형제 통 털어서 '춘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다른 사촌형들이 춘삼이라고 부르면 어른들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머리를 쥐어 박히고 온갖 놀이에서 제외를 시켰다.
아마 그 이유는 내가 형제들 중 유독 할머니를 많이 닮아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언뜻 생각나는 부분은 있었다.
어쩌면 어머니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아버지는 노름에 미처 집을 거의 나가 있었다. 어머니는 신혼 시절을 남편 없이 서럽게 시집살이를 했을 것이다.
아마 그런 어머니를 춘삼이는 마치 누나처럼 따랐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때 우리 집안에서 피가 섞이지 않은 두 사람이 비슷한 동류의식을 품은 것은 당연할 지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 봐야 춘삼이가 어머니에게 보낸 시선이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아버지가 돈을 가지러 가끔씩 집에 들러 어머니를 때리거나 당신의 여자관계로 두 분이서 말다툼이라도 할라치면 화풀이로 언뜻 언뜻 춘삼이 얘기를 꺼낸 것을 직접 나도 들은 기억이 났다.
놀면서 춘삼이는 입버릇처럼
"네 눈은 엄마 같아"
하고 종종 얘기 했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춘삼이의 말 속에 엄마라는 것이 할머니를 얘기 했는지 어머니를 뜻 했는지는 지금도 아리송하기만 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아버지를 따라 시내로 나오게 되었다. 그런 춘삼이가 얼마 후 집을 나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기를 지탱해준 큰 그늘이 없어져서 그가 시골 큰댁에 눌러 있을 이유가 없어진 때문임이 분명했다.
춘삼이가 없어졌다고 해서 어머니는 춘삼이와의 뜬금없는 염문에서 자유로워 진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집안에서 말 많은 인간들의 입방아 거리였고, 그 단서를 늘 상 제공해 준 것은 영락없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춘삼이를 자신의 딴 살림을 합리화 시키는데 적절하게 사용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소문이 씨가 되어 온 집안과 동네에 퍼지고 만 것이다. 어머니 세대의 가치관이나 전통적 남녀 관계로 생각해 보면, 어머니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었을 것이고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는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누님, 부새우 어디서 파는 지 알아요?”
“왜요?”
“아버지가 편찬으시다길래 조금 사다 드릴려구요.”
“제가 조금 드릴테니 아버님께 갖다 드리세요. 아버님, 혼자 사신다면서요? 적적하시겠네요.”
그녀는 아버지의 과거를 몰랐다. 차마 그 이야기까지 그녀에게 하기는 싫었다.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로만 남게 하고 싶었다.
그것은 내 자신의 꺼져가는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했다.
“사장님, 저 몰라요? 저는 사장님 알 것 같은데......”
“무슨 소리예요?”
“20 년전 우리 만난 적이 있어요.”
“네?”
무슨 소리인가. 20 년전 나를 알고 있다니.
“묵호에서요......묵호 거기요”
“묵호에서요? 거기가 어디예요?”
“사장님은 저 얼굴 모르지만, 전 사장님 얼굴 똑똑히 기억해요.
그때도 잘 생겼잖아요.”
무슨 말인가. 20 년전 묵호라니. 묵호에서의 나를 알고 있다니.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니.
혹시, 그녀!
진정 그녀인가.
밖으로 나오자 빗방울이 꽤 굵어져 있었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될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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