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 아이들과 함께 꾸는 꿈」을 읽고
우승순
잔잔한 울림이 있었다.
잘 다듬어진 내용과 돋보이는 비유로 때로는 미소가 지어졌고,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문장에선 깊은 철학이 묻어나기도 했다. 어렵게 비틀어 쓴 문장이나 억지로 꾸민 수식 없이 그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소박했지만, 깊은 성찰이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글에선 보람과 감동으로 울림이 전해졌고 메마른 가슴에 단비를 내려 주는 그런 수필집이었다.
책을 출간하고 다음 책을 준비할 때까지가 한가한 시간이다. 지난 2년 동안 주로 집필과 관련된 전문 서적만 읽다가 요즘은 가끔씩 수필집을 읽곤 하는데 잔잔한 감동이 밀려올 때면 책을 소개하고 싶어 글을 쓰게 된다.
김소형 작가가 쓴 「작은 학교 아이들과 함께 꾸는 꿈」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선된 50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20년 이상 독서와 논술 선생님으로 일해 왔고, 기초학습지원단과 지역아동센터의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마시멜로’라는 독서 모임에 참가하는 등 오랜 시간 독서와 글쓰기가 생활화된 내공 있는 수필가다.
글을 쓰려면 먼저 읽어야 한다. 독서는 깊고 넓은 사유 체계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독서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내 경우는 내면세계가 공허해질수록 타인의 시선에 매달리게 되고 자꾸 밖에서 뭔가를 찾으려 애썼던 것 같다. 그럴 때 독서는 그 허한 마음에 위안을 주곤 했다. 독서를 ‘마음의 양식’이라 부르는 까닭일 것이다. 저자 역시 인생의 가장 좋은 선생님은 책이라 말한다.
"나는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좋은 글을 읽고 올바른 말 몇 마디쯤은 하려고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 한 구절의 좋은 글, 행복을 주는 한 마디에 잠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다. 때로는 짧은 문장 한 줄이 상처를 안아주고 삶의 에너지를 주기도 한다."
-제자의 손편지- 중에서
논술 지도를 통해 갈고 닦은 글쓰기 실력과 독서 습관으로 다져진 깊은 사색과 철학이 작품 곳곳에서 빛난다. 자칫 사소한 신변잡기가 될 수도 있는 에피소드를 사회적 이슈나 사건,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의 내용과 비교하면서 반성과 위로 그리고 가치를 부여하는 기술이 남다르다. 책을 읽으며 한 수 배웠다.
예를 들면, 수필 ‘감정 노동자의 눈물’에서는 항공기 기내의 갑질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소위 ‘라면 상무’ 사건을 은행원인 남편의 감정노동 애환에 비유했고, ‘슬픈 ‘곡자’의 여인’에서는 조선시대 유교적 관습의 제약이 많았던 여인의 위상을 탈레반이 통치하던 시대의 아프가니스탄 여인과 비교한다. ‘용감한 포기’에서는 자서전 쓰기를 포기했던 마음의 상처를 미국 체조선수 시몬 바일스의 도쿄 올림픽 기권에 관한 기사와 오버랩 시키는 대목에선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곳곳에 이런 비유가 이어지면서 재미를 더한다.
이 책의 심장부는 제3부에 소개된 내용들이다. 저자는 기초학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위해 1:1로 지도하는 ‘학습점프지원단’의 멤버로도 활동하면서, 혼자만의 울타리를 치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아이들의 담장을 허무는 과정을 소개한다. 수필 ‘함께 꾸는 꿈’의 은지, ‘고얀 놈’의 민수, ‘내가 만난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민정이 그리고 한국말이 서툰 베트남 엄마를 둔 초등학교 3학년 은미가 변해가는 ‘다문화 교육 재능기부’ 등에선 뭉클한 감동이 전해졌다.
"은미(가명)와 처음 만났던 봄이 지나고 겨울에 접어들었다.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절대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변해 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내 삶의 구슬도 새롭게 꿰어지고 있음을 알았다. 행복은 아주 가까이에서 숨 쉰다. 하지만 우리는 늘 먼 곳을 목표하며 높은 곳의 안락한 삶을 찾아다닌다.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이 바로 이곳에 있음을 잊은 채."
- 다문화 교육 재능기부 – 중에서
저자의 글쓰기 사랑은 남달랐던 것 같다. 2007년부터 수필을 쓰기 시작했는데 연간집인 ‘춘주수필’에 자신의 첫 작품인 ‘루프스 유감’이 실렸을 때 그 벅찬 설렘에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고 술회한다.
글을 쓰게 된 동기와 수필 예찬은 이 책의 머리말부터 에필로그까지 이어진다. 나도 수필을 쓰지만 이렇게 분명한 가치관과 자긍심을 갖지는 못했다. 절절하게 공감되는 그 내용들을 도저히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 속의 나와 긴 대화가 필요했습니다. .... 작은 행복 속에서도 그랬고, 마음을 위로 받고 싶을 때는 더욱 그랬습니다. 그때 행운처럼 문학이 내게 다가왔습니다. 그날 이후 글쓰기가 좋은 친구가 됐습니다."
- 책머리에 - 중에서
":왜 수필을 쓰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인생 길동무가 필요했다고 대답하고 싶다. ...... 감당하지 못하는 내 안의 많은 감정을 쏟아 낼 곳이 필요했다. ..... 글을 쓰면서 내 삶의 주인공이 되었고 많은 위로도 받았다. 잔잔한 울림이 있는 수필처럼 살고자 노력했다."
-문학 성장통- 중에서
"나를 일으켜 세웠던 건 글쓰기였다. .........수필을 쓰면서 나는 그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의 강력한 감정들이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삶이 어느 정도 변화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알 수 없던 길의 방향이 조금씩 보였다."
-꿈의 무대에 오르며- 중에서
"글쓰기만큼 배움을 내게 주었던 존재가 또 있었던가......이제 글쓰기는 내가 지향하는 삶에서 소중한 가치 중 우선순위가 되었다. 나는 글 쓰는 작업을 통해 내 영혼이 한층 더 충만해짐을 느낀다. ...... 앞으로는 내게 주어진 삶을 사색하고 관조하는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는 수필을 길동무하며 삶의 주인공이 되고, 수필처럼 살면서 삶의 의미를 찾고, 깊이 있는 사색과 관조를 통해 영혼이 충만해지고 싶다고 한다. 또한 “지금 행복해도 불쑥 찾아오는 불안과 고독의 순간이 있기에 가끔은 행복도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 행복은 평범한 일상이었고, 한 결 같이 내 안에 있었다.”고 토로한다.(p34, p185, p196, p199) 글쓰기를 통해 삶을 성찰하며 치유와 위로를 얻는 그 모습에서 독자들도 깊이 공감할 것이다.
작가는 글로 말하고 오로지 작품으로 기억된다. 소설가 백영옥이 쓴 ‘가시 없는 생선 먹기’란 에세이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백영옥의 말과 글, 2022.1.29. 조선일보에서 발췌)
“위대한 작가들의 더 위대한 일은 노벨상이 아니라 그들이 매일 읽고 썼다는 사실이다.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하는 습관이, 결국 할 수 없던 것을 가능케 만든다....그리고 신은 이런 사람들을 선택하고 힘껏 돕는다. 정말 그렇다.”
김소형 작가의 다음 작품집을 기대하면서, 수필을 사랑하고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분은 「작은 학교 아이들과 함께 꾸는 꿈」을 꼭 일독해 보시길 권한다.
2024.11. 27. 우승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