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계층을 위한 생필품을 구입하고 왔습니다.
엄마는 출타 중이고 아이들은 방학 중입니다.
할 수 없이 아이들과 셋이 다녀왔습니다.
마트에서 카트를 밀며 함께 물건을 골랐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자연스럽게 보고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나보다 힘없는 사람에게 손 내밀 수 있고, 돌아볼 수 있는 성인으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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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조리 있게 못합니다.
말주변이 없습니다. 심각할 정도로 없습니다.
어떻게 목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당황하면 더 못합니다.
그래서 강대상에 올라서면 나만 볼 수 있는 곳에 다음과 같이 붙여놨습니다.
“오늘도 침착하고 차분하게, 천천히 또박또박, 흥분하지 말고 여유롭게 시작하기”
말 못하는 게 목사로서 치명적이지만 나름대로 극복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거울 앞에서 연습하고, 설교영상도 되돌려봅니다.
또 생소한 단어나 사자성어가 번뜻 떠오르면 메모해둡니다.
말만 못하는 게 아니라 글도 못씁니다.
글 참 못씁니다.
다양한 은유법이나 형용사를 사용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합니다.
단지 실생활에서 경험했던 것을 그대로 적는 수준입니다.
억지로 쓰려니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이런 글을 최대한 희석시킬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 있습니다.
접속부사를 쓰지 않고 짧게짧게 문장을 끝냅니다.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 그런데, 하지만, 이런 게 들어가면 글의 요점이 흐려지고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쭉 나열하거나 아주 자세하게 늘어놓지 않습니다.
간단명료하게 씁니다.
그래서 내 글은 한 문장이 짧습니다.
또 문장과 문장사이에 띄어쓰기 보다는 줄바꿈을 하는 게 이해도나 휴대폰으로 읽을 때 편합니다.
그래도 한계는 있습니다. 당최 못쓰는 건 어쩔 수 없나봅니다.
이런 졸작 같은 글을 읽어주는 후원자가 있어 대단히 고마울 뿐입니다.
형편없는 말에 귀기울여 주는 성도가 있어 대단히 고마울 뿐입니다.
알고 보니 김성민을 발전시켜주는 장본인이 후원자와 성도였습니디.
항상 겸손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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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사랑의상자배달을 포장할 시기에 맞춰 후원물품을 직접 가져온 사장님이 있습니다.
결손아동을 위해 과자를 산더미처럼 사온 반올림피자(화성남양점)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글을 읽는 분은 한 번만 주문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대단히 고마운 사장님입니다.
후원한 사실을 생색내지 않은 겸손한 분입니다.
이런 글도 굉장히 싫어하실 줄 알지만 염치가 없어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코로나를 힘겹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거리두기 때문에 배달주문과 정부긴급지원금으로 간신히 이겨냈지만 지금은 더한 불경기 바람 때문에 장사하기 더 어렵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