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래 이 땅을 밟고 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 모두가 어디에 있을까요? 정말 그 어디에도 없는, 소위 존재 자체가 없어졌을까요? 그렇다면 생각만 해도 허무합니다. 이 땅에서의 한 백년, 그것으로 그냥 끝, 참으로 무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그냥 이판사판 한바탕 살다 가요? 온갖 짓거리 다하다가 자기 명(命) 다 누리고 편안히 떠난 사람을 보고 아직도 피눈물을 흘리며 원망과 한을 품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한은 어디서 어떻게 풀지요? 그게 우리 식으로 말해서 그냥 ‘팔자다’ 생각하고 말아야 하나요? 그렇게 살아보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묻어버리고 한 맺혀 살다 가요? 속된 말로 ‘세상 참 더럽다,’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죽은 뒤의 자신에 대해서 대부분 관심을 갖습니다. 어떻게 될까? 의지할 곳 없을 어린 생명을 두고 떠나야 하는 어미 심정은 어떠할까요? 그 아픔을 그대로 가지고 간다면 저 세상에서도 편하지 못할 텐데 말입니다. 어쩌지요? 물론 그것을 지레 걱정해서 가족의 생명까지 함께 데리고 가는 부모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건 잘못이라고 여깁니다. 이 땅에 태어난 생명은 어찌 되었든 살아가게 되어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악하기는 해도 다른 한편 그 속에서도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그 세상을 우리는 믿고 사는 겁니다. 따지고 보면 살기도 어렵지만 죽기도 어렵습니다. 말 그대로 죽기를 다해 살아야지요.
경험은 할 수 없어도 우리는 상상을 합니다. 죽음 뒤의 일을. 거기서도 이 땅에 두고 온 사람들이 생각날까요? 신자들은 대부분 죽음 뒤에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몸이야 흙으로 돌아가지만 우리 안에 영혼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신이 보이지 않고 천사도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처럼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냥 영혼만 있는 것이지요. 그들이 있는 곳에서 자기들끼리는 서로가 보일 것이라 짐작합니다. 서로가 다 영체(靈體)이니까요. 물론 의사소통도 하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육체를 떠나면 우리 역시 영체로 바뀌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몸은 가지지 않아도 영계의 형체는 가지리라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이 이 땅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옛날이야기처럼 귀신으로 남아서 배회하며 원한을 갚기도 할까요? 그냥 상상일까요? 어쩌면 우리의 바람이 상상으로 만들어져 내놓은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특히 오늘날 그런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기대를 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허망하게 끝내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믿든 믿지 않든, 많은 사람들은 죽음 뒤의 또 다른 삶을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 땅에 남아있는 가족이나 지인들을 거기서도 생각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죽어서도 편치 못하겠다 싶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죽은들 뭔 소용이 있느냐 하는 생각도 듭니다. 거기나 여기나 걱정하며 살아야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오래 전 ‘사랑과 영혼’이라는 미국 영화가 있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나타나 활동하는 영화로서 대단한 성공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당시 줄 서서 관람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더구나 그 보다 몇 년 앞서 나온 주제가 팝송이 새롭게 인기를 누리게 되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남자가 어느 날 사고로 죽어 유령으로 나타나 애인을 구하는 이야기입니다. 영체가 된 남자와 육체를 가진 여자, 꽤 사랑했던 사이였기에 서로 잊지를 못합니다. 영과 육의 만남을 이야기로 꾸몄습니다. 가능한가 여부를 떠나 상상 속의 러브 스토리이면서 범죄사건 이야기입니다. 절묘하게 조합이 되었고, 더하여 삽입된 팝송이 완전 꿀 조합이 돼주었습니다. 그렇게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였습니다.
죽은 엄마가 하늘에서 사흘의 휴가를 얻었습니다. 지상으로 내려갈 수 있는 휴가입니다. 가능한가 여부를 떠나,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소위 초짜 가이드가 동행합니다. 일종의 감시이기도 합니다. 휴가 중의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따님은 어머님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요. 그냥 따님의 행복한 기억만 담고 오시면 됩니다." 그렇게 내려와서 딸을 만납니다. 그런데 자랑스럽던 딸이 교수 자리를 떠나, 옛날 살던 시골집에서 백반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막힐 일입니다. 그러나 그 감정을 전할 수도, 뭐라고 충고해줄 수도 없습니다. 영과 육의 만남입니다. 통할 수가 없습니다. 딸의 옆을 지키면서 지나간 시간 속의 문제와 아픔들을 들춰냅니다.
딸의 현재를 이해하게 된 엄마는 그래도 꼭 해줘야 할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할 수 있습니까?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에 상응한 벌칙이 있습니다. 딸에 대한 기억이 모두 지워진다는 것입니다. 딸에게 꼭 전해주어야 할 말, 딸에 대한 기억은 모두 사라진다, 거래가 가능합니까? 여태 여러 가지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비슷하면서 다릅니다. 그러나 주제는 대부분 거기서 거깁니다. 사랑, 그리고 가족애, 그런 것이지요. 저 세상 갈 때도 우리는 오로지 사랑만을 가지고 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누렸던 모든 것은 다 두고 가야 합니다. 거기서는 오로지 사랑만이 자산이고 자본이고 능력입니다. 영화 ‘3일의 휴가’(Our Season)를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