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티를 입으신 아발로키테스바라
박상순
보살님, 보살님, 눈물방울의 보살님
서쪽 여름 나라에 두 분이 게신다고 했어요
반팔 배꼽티를 입으시고
핫! 초미니 짧은 치마
넝쿨무늬 스타킹
한 손에는 물병, 한 손에는 꽃자루
천년 전의 서쪽 여름 나라
눈물방울에서 생겨나신
하늘색 배꼽티를 입으신 손짓 스무 살의 관세음보살님
터키색 배꼽티를 입으신 몸짓 스무 살의 관세음보살님
저는 마리아님의 성당엔 딱 두 번 갔어요
좋은 날이라고 함께 가자 해서
좋은 마음으로 갔어요
달걀 한 알, 기쁘게 받았어요
두 번째는 예쁜 여자애를 따라갔어요
오고 가며 예쁜 여자애의 발걸음만 보였어요
교회엔 세 번 갔어요
천막 교회에서, 모르는 노래를 오랫동안 들었어요
어질어질했어요. 그래도 혼자가 아니어서
싫지 않았어요
두 번째는 와글와글했어요. 용서해달라고
외치며 기도하는, 부흥회에 갔어요
다들 용서를 빌었는데, 나도 빌어야만 했는데
슬쩍 빠져나왔어요. 도망쳤어요
세번째는 예쁜 여자애가 오라 해서 갔어요
예쁜 여자애는 저 앞에 앉았고, 나는
여자애가 안 보이는 뒷자리에서
모르는 노래를 또 들었어요
또 가자고 했는데, 왜 안 갔는지는 까먹은 걸로 할게요
절에는 그냥 오다가다 여러 번, 앞마당만 걸었는데
딱딱한 뿌리가 들어 있는 풀 맛 나는 밥 한 끼
얻어먹기는 했어요
산길의 돌탑에 주먹만한 돌멩이도 한 개
올려놓기는 했어요
내게는 〈쿠란〉도 있어요. 〈쿠란〉의 글씨는
아라베스크 금빛이 아름다워요
오랫동안 들여다보았어요
그래도 보살님
짧은 치마 입으신 하늘색 스무 살의 눈물방울 보살님
더 짧은 치마 입으신 터키색 스무 살의 눈물방울 보살님
이것 좀 보실래요?
내 가슴속엔 높은 산맥을 넘어온
검은 꿀벌들이 살아요
먼 길을 왔어요. 도망쳐서 왔어요
나하고 또 먼 길을 갈 거예요
도망칠 거예요
그래도 보살님, 도망칠 거라고 말씀드리고 갈게요
손짓 스무 살의 눈물방울 보살님
몸짓 스무 살의 눈물방울 보살님
- 계간 《문학과사회》 2023년 가을호
박상순
1991년 《작가세계》를 통해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음.
시집 『6은 나무 7은 돌고래』 『마리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Love Adagio』 『슬픈 감자 200그램』
『밤이, 밤이, 밤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