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주는 사랑이면 많이 주를 믿습니다.
(사도행전 9장 36-42절)
욥바에 다비라라는 여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도르가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도르가라는 이름은 <사슴> <아름다운 눈을 가진 양>이라는 의미입니다. 도르가는 아람어이고, 다비다는 헬라어입니다. 다비다는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눈을 가진 양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눈이란 육체적인 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영적인 눈이 아름다웠다는 말입니다.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눈이 아름다운 눈입니다.
다비나는 선행과 구제를 심히 많이 하던 여자입니다. 그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옆 동네 룻다에 베드로가 머믈고 있었습니다. 두 명이 베드로에게 가서 급히 말했습니다.
“지체하지 마시고 급히 와주십시오.”
이스라엘이나 중동지방은 사람이 죽으면 그 날 매장하고 있습니다. 열대지방이기에 시체가 금방 부패합니다. 그래서 시신이 썩기 전에 묻는 것이 고인에게 예의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체하지 말고 급히 오라고 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가서 보니 다비다 시신을 다락에 눕혀 놓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다비다를 어떻게 하게 하셨습니까?
1. 다비다는 참사랑을 하게 하셨습니다.
가난할 때 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추울 때 더 추운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배고플 때 더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아플 때 더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이 역발상의 참 사랑입니다.
괴로울 때 더 괴로운 사람을 간호하여 주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다비다의 사랑이 역발상의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 둘 중에 누가 더 행복할가요?
결론은 사랑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다비다가 과부들을 그렇게 사랑하면서 사랑을 받은 과부들이 잘 된 것이 아니라 사랑한 다비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사랑하면 자기가 사랑을 받습니다.
다비다가 죽었을 때 그 마을 과부들이 다 모였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마을 과부들이 모두 모여 도르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을 보면 도르가는 과부를 퍽 사랑하였던 것같습니다. 같이 느껴 느껴 주는 사랑입니다.
다비다는 과부들을 특별히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죽자 동네 모든 과부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서나 언제나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다비다는 옷을 사준 것이 아닙니다. 옷을 얻어다가 가난한 과부들에게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옷을 손수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비다는 옷 재단하는 법을 배웠던 여자인 것 같습니다. 다비다가 죽었을 때 과부들이 다비다가 만들어준 속옷과 겉옷을 들고 와서 울었습니다.
사랑은 내가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필요한 것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끝까지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열두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니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내 병이 나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겉옷을 터치하여 구원받았습니다. 안심하였습니다. 구원받았습니다.
이런 믿음을 우리에게도 주옵소서.
2. 다비다는 최선을 다 하여 사랑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중에 눈에 띄이는 단어가 있습니다.
<지은 속옷과 겉옷을...>
모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모세가 말했습니다. “지팡이니이다.”
하나님의 모세의 지팡이를 통하여 14번 기적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열왕기하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엘리사가 어느 집을 방문하였을 때 빚을 갚지 못 하여 자녀들이 종으로 끌려 가게
된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엘리사가 물었습니다.
“네 집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기름이 조금 있습니다.”
엘리사는 기름을 통하여 기적을 일으켜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비다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다비다가 대답하였습니다. “옷 만드는 기술입니다.”
하나님은 옷 만드는 기술을 통하여 다비다로 하여금 사람들을 사랑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있는 것을 사용하셔서 기적을 주시는분이십니다.
댓가를 바라지 않고 사랑하는 사랑이 순수한 사랑입니다.
다비다는 과부들을 구제하고 사랑하였습니다. 받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이 감동을 주는 사랑입니다. 부자들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댓가를 바랄 수 없는 과부들을 사랑하였다는 것이 다비다의 특징입니다.
토스토에프스키는 말했습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이 가장 행복한 사랑이다.”
사랑에는 능력과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병원에서 한 산모가 쌍둥이를 조산으로 낳아서 인큐베이터에 따로 따로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쌍둥이 동생의 심장이 안 좋아서 숨이 고르지 못하고 점점 죽어가자, 의사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 때, 간호사가 “선생님 이왕에 며칠 있으면 죽을텐데 제 형하고 같이 인큐베이터에 있게 하지요.”라고 말했답니다. 병원법으론 안 되는 것이지만, 죽을 아이니까 한 인큐베이터에 형과 동생을 나란히 눕혀 놓았답니다. 그런데, 그 쌍둥이 형이 오른손으로 동생의 목을 감아주었고, 하루가 지나자 동생이 정상으로 회복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조산아지만, 형이 동생을 사랑으로 포옹해 줄 때, 놀라운 치유력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며칠 후에 건강해져 잘 살고 있다고 합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치유력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면 건강해집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다비다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더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생은 부메랑입니다. 사랑을 주니까 사랑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 왔습니다. 그가 죽자 수많은 과부들이 옷을 들고 와서 울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베드로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다비다 집에 가서 수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며 애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3. 다비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사랑의 댓가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더 놀랍습니다.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입니까?
다비다는 살았을 때에도 많은 일을 하였지만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으로 욥바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살아서보다 죽어서 더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은 아무리 평가하여도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안산에 김 집사의 남편은 말기 위암이었습니다. 암세포가 임파선까지 전이돼 의학적 치료는 끝난 채 임종만 기다렸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이 두려웠습니다. 진통이 찾아올 때는 더욱 두려웠습니다. 그 고통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김 집사가 부활절 성찬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위해 자기 몫의 성찬을 챙겼습니다. 떡은 손수건에 싸고, 포도주는 작은 병에 담았습니다. 성찬예배가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달려와 고통 속에 식은땀을 흘리며 쓰러져 있는 남편에게 성찬을 내밀었습니다.
“여보, 오늘 부활절 성찬입니다. 당신을 위해 내 몫을 받아왔어요. 이 떡은 십자가에서 살을 찢어 영생하라고 주신 주님의 몸이고, 이 포도주는 우리를 위해 대신 고통당하신 주님의 피랍니다.” 남편은 아내의 뜨거운 사랑에 감동해 눈물을 흘리며 성찬을 받았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평안이 오고 고통이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오는 것입니다.
다비다는 참사랑하였습니다. 다비다는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다비다는 다시 살았습니다.
감동주는 사랑이면 많이 주를 믿습니다.
감동주는 사랑이면 많이 주를 믿습니다.
감동주는 사랑이면 많이 주를 믿습니다.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승리교회 성도들이 가족과 소외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감동받아
주를 믿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