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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
송하성(광상22회) 동문이 4.15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전남 선거대책본부장의 중책을 맡아 우리당 압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송동문은 2002년에 출마했던 도지사선거 패배의 아픔을 딛고, 지역기반을 다지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송동문은 당초 고향인 전남 고흥에서 민주당 박상천후보의 대항마로 출마하려다 꿈을 접고, 그 대신 열린우리당의 다수의석 확보를 목표로 지역민심을 잡으려 동분서주했다.
송동문은 2002년 전남도지사 선거에서 낙선한 뒤, 그동안 경기대 교수로 재직하며 정중동의 행보를 보여왔다. 지난해 11월에는 산업자원부 무역정책평가위원으로 선임돼, 소임을 수행중이기도 하다.
불굴의 의지로 그 동안 수많은 역경을 헤쳐온 송하성 동문. 결코 좌절하지 않는 그의 도전정신은 지나온 삶의 여정에 생생히 배어있다.
송하성 동문은 1954년 전남 고흥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6남매의 장남이었던 그는 소년시절부터 지게를 지고 농사일을 다녔고, 땔감을 얻으려 산에서 나무를 하고 퇴비를 위해 들에서 풀을 베었다.
벌교중학교에 진학, 벌교읍에서 혼자 자취를 하면서 생활했는데 "쌀이 떨어지고 연탄불도 꺼진 상태에서 옆집의 땡감으로 3일 동안 허기를 달래며 중간고사를 치렀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필요가 있겠는가. 향학열에 불타던 송하성동문은 광주상고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힘겨운 독학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 프랑스 솔본느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후 미국 죠지타운 대학 로스쿨을 마쳐 LLM학위를 취득했다.
대학재학시절 고시를 향한 도전의 뜻을 세운 송동문은 마침내 1978년 제22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한다. 이후 경제기획원 기획국에서 사무관 시절 대부분을 보내고 1992년 과장으로 승진하여 대전엑스포 조직위원회 홍보부장, 청와대 경제비서실과장, 경제기획원 공보담당관, 공정거래위원회 국제기구과장 등을 지내다가 3년동안 주미대사관에서 경제외교관으로 활약했다.
귀국하여 공정거래위원회 총괄정책과장, 총무과장을 거쳐 2001년 국장으로 승진하여 공정거래위원회 심판관리관을 끝으로 공직을 사직하고 2002년 6월 전라남도 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실력있는 경제통'으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송하성 동문은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수년간 경제학을 강의했고, 2003년부터 경기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특히 송하성 동문하면 떠오르는 것이 `고시 4남매'라는 별칭. 그를 포함해 3명의 동생들이 모두 고시에 합격해 큰 화제를 모았다. 동생인 송영천 부장판사는 사법고시에 합격해 서울지방법원에 재직하고 있고, 막내동생은 역시 고시에 합격한 송영길 국회의원(열린우리당.인천 계양)이다. 여동생 송경희씨는 행정고시에 합격해 정보통신부 사무관으로 근무중이다.
소탈한 성격과 친화력으로 인기높은 송하성 동문은 바쁜 와중일지라도 동문회와 동문들을 위해서라면 발벗고 앞장서는 활동파. 틈틈이 준비해온 정책자료집을 바탕으로 펴낸 `21세기 장보고시대를 열자'는 저서에는 그의 남도사랑 정신이 가득하다.
"전라도가 잘 살아야만 진정으로 동서화합이 이뤄질 수 있다"고 역설하는 송하성동문. `IMF 때보다 더 힘겹다'는 경제불황으로 잔뜩 움츠러든 오늘, 그의 뜨거운 열정 속에서 큰 희망의 빛을 발견한다.
나의 탯줄이 묻힌 남도는 가난했다.
산업화과정에서 뒤쳐지면서 먹고 살 거리가 없자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떠나갔다.
시골동네에서는 아기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고
나이 드신 어른이 세상을 떠나도 상여 메줄 사람조차
찾기 어려운 것이 지금 남도의 현실이다.
이 흐름을 멈추게 하고 이곳을 자식 키우며 살만한 땅,
사람이 모이는 땅으로 바꾸어야 한다.
--송하성동문의 저서「21세기 장보고시대를 열자」중에서--
[송하성 동문 프로필]
벌교중학교
광주상업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프랑스 솔본느대학(파리1대학) 경제학박사
미(美) 조지타운대학 Law School LLM과정(99.5.31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 2학년 편입(2002년)
제22회 행정고시 합격( '78.9 )
경제기획원 사무관(경제기획국, 기획관리실 근무)
엑스포조직위 파견 해외 유지부장, 홍보부장
청와대 경제비서실 ( 경제규제완화 점검단 총괄과장)
경제기획원 공보담당관
주미대사관 경제외교관
공정거래위원회 총괄정책과장(부이사관), 경쟁촉진과장, 총무과장
공정거래위원회 심판관리관
현 경기대학교 교수
현 산업자원부 무역정책평가위원
공정거래위 송하성 국장의 강의 중에서(하이리빙 초청강의 세미나 중에서)
자기 주장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만, 옥석을 가려달라는 주문의 뜻으로 이 장문의 글을 옮깁니다. 용서하시고 한가한 때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국장 신분으로 저희 세미나에서 한 강의 내용입니다. 좀 장문입니다. 혹 A사 네트워커 여러분은 용서하십시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송하성입니다.
1996년 1월 14일 니혼게이자 신문에 '일본의 동경대학이 앞으로의 시효가 4년밖에 안 남았다' 라는 글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동경대학은 최고 엘리트들이 가는 곳입니다. 이런 대학의 시효가 4년후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의 말인데 이것은 무서운 속도로 앞으로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생각하나로 남들이 안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갑부들이 있습니다. 부의 원천이 자본으로부터 지금은 지식과 정보로 부를 창출하는 형태로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부가 무엇입니까. 공장, 집, 다리등등의 간접시설들이 국부이기도 하지만 국민전체의 창의력이 국부가 아닐까 합니다.
저는 경제학 교수이기도 합니다.
경제인의 한사람이고, 공정거래 위원회 국장으로서 고향에서 네트웍 마케팅을 하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보탬의 말을 하고 싶습니다.귀한 시간이고 싶습니다.우리나라의 경제에 대해서, 방문판매에 관한 것에서, 우리의 네트웍 마케팅에 대해서 얘기를 할까 합니다.
BSI(?) 지표에 따르면 경제가 100보다 높으면 장사도 잘되고, 경제가 나은 것이라고 합니다.
68-80사이에서 오고가는 우리나라입니다. 새해에 100이 넘어 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나스닥, 다우지수도 좋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반도체 값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9.11사태 이후 경제가 어두워질 것 같은데 그나마 미국은 나아지고 있고, 반면에 일본은 쇠퇴하고 있습니다.
2/4 분기 이후부터 더 나아질 것입니다. 나아진다는 것은 수요가 늘어난다는 것이고, 물건이 잘 팔린다는 뜻이 됩니다.중학교 자녀에게 무엇 때문에 경제성장을 하느냐고 물으면 재화와 용역이 늘어나는 것을 경제성장이라고 합니다.
작년에 100에서 110으로의 증가를 가져왔다면, 10%가 성장 한것의 의미는 10%가 잘 살아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구가 늘어났기 때문에 10%의 증가를 가져온 것이지 결과적으로 경제성장의 의미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1%의 경제성장을 하면 6만명이 취직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인구성장이 둔화되기 때문에 한 가정에서 2.25명을 낳아야 애국자입니다. 애를 낳으면 2년까지 모든 양육비를 지급하고, 3명이면 5만프랑(8백정도), 4명이면 8만프랑의 학자금을 준다고 합니다.이런나라는 3%만 성장해도 모두가 잘 살수가 있습니다.우리나라 경우는 7-8%를 계속 성장해야만 소화를 해 낼수가 있는데 지금 우리나라 경제성장지수는 6% 이하여서 실업자가 증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올해는 6% 이상이 되어 경제성장이 증가할 것이라고 봅니다.네트웍 마케팅은 1945년 엔텔(?), 디보스가 시초입니다. A사의 전신이기도 합니다.여러 가지 장점과 피할 수 없는 단점이 여럿 있습니다.유통비용, 광고비용, 점포운영비용을 줄여서 상품의 경쟁력을 증가시킬수 있습니다.생산자, 판매자를 따로따로 하면 그만큼 좋은 점이 생깁니다.소비자=회원=판매자이기 때문에 쌍방교류가 원활합니다.계속 제품이 발전될 수 있습니다.작은 자본으로 모두가 기업가가 될 수 있습니다. 실업구제, 정년퇴직자들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 적극 참여 할수 있는 고용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주의할점도 있습니다.
첫째는 재구매 판매가 자기 이익과 연결되어 있어 과대광고로 인해 자기의 매출을 지나치게 높이기 위해 오는 폐해가 있습니다.둘째는 법의 취약점 때문에 회사자체가 위험할수도 있습니다.앞으로 네트웍마케팅이 주류를 이룰것입니다. 미국도 성장하고 있습니다.전자상거래와 결합해서 큰 비중을 차지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받아들여서 맞게 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1. 반품기간을 3개월로 한다는 것 ( 모두 언제까지나 반품하면 회사가 어려지므로)
2. 연대책임은 고리를 끊어서 판매원 각자가 진다는 것 (판매원이 자기이익을 극대화 → 허위과장광고로 인한 피해 → 기업주, 기업전체에 피해로 확산될수 있기 때문에)
3. 제품의 가격대가 100만원 이하까지였는데 대통령령으로 임의로 정할 수 있게 함으로써 다양한 제품을 취급할 수 있게 했다는 것 등입니다.
우리 기업들이 네트웍마케팅의 주류로 이루어 나갈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을 어둡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곧 시행될 것입니다.국내 기업이 발전해야 합니다.작년 암웨이가 1위, 하이리빙이 5위, SMK가 6위를 한 것을 보았습니다.하이리빙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거의 없고, 영리에 목적을 두지 않은 소비자 공동체로 모두에게 좋은 혜택을 주기위한 좋은 미래가 보이는 마케팅 업체입니다.
A사가 많은 매출을 올리는 것을 볼 때 속이 상했습니다.
하이리빙이 없었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중요한 역할들을 하고 있습니다.
매우 합법적이고, 정당하고 매우 의미있고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시간중에 8분이 남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꿈이 있어야 합니다.
빈농의 아들이었습니다.
고시를 합격하고, 최고가 되기 위해 중간단계에 있을 때 프랑스엘 간적이 있었습니다.
4개월의 기간이 지나도 박사코스 시험을 준비하는데 필기시험은 아무리 잘봐도 면접에만 가면 뜻대로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계속 도전했습니다.
반백의 시험 면접관이 물어보았습니다.
'당신같은 사람은 붙을 수 없다. 수업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라고.
나라에서 열심히 배워오라고 보내주었는데 그냥 둘 수 없었습니다.
믿고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붙여주면 최선을 다해 할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당신의 열정적인 태도에 감동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3년을 무사히 보내서 끝낸적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하고 끝까지 밀고 나가십시오.
미국에서도 그랬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해 연방정부의 6%가, 상하의원 16%가 조지 클린턴대학 출신들입니다.
이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자격 미달로 시험을 보게하지도 않았습니다.
1년동안 공부하면서 연구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붙을수 있을까?
토플 600점 이상이고 이름있는 상위권의 사람에게 추천장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610점을 받고 추천장을 받고 갔습니다. 그런데 또다른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지클린턴 대학출신의 재벌가를 만나 그의 재산을 대학에 희사하겠다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늙은 재벌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누라와 맛있는 요리에 포도주까지 대접을 받고 얘기를 나누는데 조지타운 대학을 나왔고, 돈을 모두 기증하겠노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사람이구나! 싶었습니다.
대학에 가고 싶습니다. 추천서를 써주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멀고 멀게만 느껴졌던 그 대학엘 들어가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꿈을 이루려면, 확실한 미래가 있다면 그것을 향한 포기하지 않는 그 끈기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현실을 모르면서 추구한다면 그것은 몽상가일것입니다.
꿈은 이루려고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반드시 찬란한 미래가 열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