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창스님 대장경 산책-65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일념 속에서 6바라밀다를 행할 수 있으니, 보시할 때 법답게 재물을 희사한다면 이것이 단(檀)바라밀이고, 대선도(大善道) 속에 안주해서 보시가 2승(乘)을 향하지 않으면 이것이 시(尸)바라밀이고, 간탐 등의 번뇌와 마(魔) 등이 와서도 능히 마음을 흔들 수 없다면 이것이 찬제(羼提)바라밀이고, 보시를 쉬지 않는 것이 정진(精進)바라밀이고, 마음을 助沮痴?않도록 섭수해서 의심도 없고 후회도 없는 것이 선(禪)바라밀이고, 주는 자도 받는 자도 나아가 재물도 모두 얻을 수 없는 것이 반야(般若)바라밀이다.”
먼저는 보시를 찬탄해서 간탐을 부수게 하고 나중에는 이 보시를 비방해서 집착하지 않게 한다.
『대승론(大乘論)』에서 말하였다. “비유하자면 마치 여래께서 먼저는 어떤 사람을 위해서 보시를 찬탄해 놓고 나중에는 다시 비방[毁呰]하는 것과 같다.” 『논석(論釋)』에서 말하였다. “어떤 중생에게 여래께서 먼저 보시의 공덕을 찬탄하신 뒤에 때로는 이 보시를 비방한다. 왜냐 하면 만약 사람이 재물에 대해 간탐심이 있다면, 이 마음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는 보시를 찬탄한 것인데, 만약 사람이 보시를 행한 것을 즐거워했다면 이는 하품(下品)의 선근이므로 여래께서 다시 이 보시를 비방하여 그로 하여금 그 나머지 뛰어난 행을 갈망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이 뜻을 말미암지 않고서 찬탄하고 또 비방했다면 서로 어긋나게 되지만, 이 뜻을 말미암기 때문에 하나의 보시 속에서 비록 찬탄하고 비방하더라도 어긋나면서도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재물의 보시는 윤회하는 것으로 해탈이 아니지만 법의 보시는 세간을 벗어나서 영원히 소요하게 한다.
『미증유경(未曾有經)』에서 말하였다. “제석천이 야간(野干)에게 물었다. '음식을 보시하는 것과 법을 보시하는 것은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음식을 보시하는 것은 하루의 목숨을 구제하는 것이고, 진기한 보배와 재물을 보시하는 것은 1세(世)의 궁핍함을 구제하지만 이익의 속박을 증대하는 것이며, 법을 설해서 교화하는 것은 법시(法施)라 하는데 능히 중생들로 하여금 출세간의 도로 가게 할 수 있습니다.' ”
『대장부론(大丈夫論)』에서 말하였다. “재물의 보시는 인도(人道) 속에 있는 것이며, 법의 보시는 대자비 속에 있는 것이다. 재물의 보시는 중생의 몸의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며, 법의 보시는 중생의 마음의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다. 재물의 보시는 다함없는 돈과 재물을 짓는 것이며, 법의 보시는 다함없는 지혜에 능하게 되는 것이다. 재물의 보시는 몸의 즐거움을 얻게 되는 것이며, 법의 보시는 마음의 즐거움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재물의 보시는 중생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며, 법의 보시는 세간의 공경을 받게 되는 것이다. 재물의 보시는 어리석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요, 법의 보시는 지혜로운 자가 좋아하는 것이다. 재물의 보시는 능히 현재의 즐거움을 주며, 법의 보시는 능히 열반의 즐거움을 준다.”
『법원』에서 말하였다.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는 능히 사람을 교화하려면 보시와 계율, 다문지혜(多聞智慧)를 구족해야 한다. 만약 종이나 먹을 가지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베껴 쓰도록 하거나, 스스로 여래의 정전(正典)을 베껴 쓴 뒤에 사람들에게 보시하여 읽고 외우도록 한다면, 이를 법시라고 한다. 이 같은 보시는 미래에 천상에서 훌륭하고 뛰어난 색(色)을 얻는다. 왜 그런가? 중생이 법을 들으면 성내는 마음을 끊어 없애니 이 인연으로 미래 세상에선 뛰어난 색(色)을 성취하게 되며, 중생이 법을 들으면 자비로운 마음이어서 살생하지 않으니 이 인연으로 미래 세상에선 수명의 장수를 누리며, 중생이 법을 들으면 남의 재물을 도둑질하지 않으니 이 인연으로 미래 세상에선 재물과 보배가 많고 넉넉하며, 중생이 법을 들으면 마음을 열어 보시를 즐기니 이 인연으로 미래 세상에선 몸에 큰 힘을 얻으며, 중생이 법을 들으면 온갖 방일함을 여의게 되니 이 인연으로 미래 세상에선 몸의 안락함을 얻으며, 중생이 법을 들으면 어리석은 마음을 없애니 이 인연으로 미래 세상에선 걸림없는 변재를 얻으며, 중생이 법을 들으면 믿는 마음에 의심이 없으니, 이 인연으로 미래 세상에선 믿는 마음이 명료해진다. 그러므로 법의 보시가 재물의 보시보다도 훨씬 뛰어난 것이다.”
또 게송에서 말한다.
백천(百千)의 세계에 순금을 가득 보시하더라도 한 가지의 법을 보시하여 그에 따라 수행하게 함만 못하네.
또 『금강경』의 게송에서 말한다.
보배를 삼천대천세계[三千界]에 가득 채우고 재계를 지녀서 복전을 짓더라도 오직 유루(有漏)의 업을 이룰 뿐 끝내 인간과 천상을 여의지 못하노라.
경전을 수지하여 4구(句)를 취하고 성인과의 훌륭한 인연을 지어서 무위(無爲)의 바다에 들어가고 싶다면 반드시 반야선(般若船)을 타야 하리라. 세간의 단(檀)을 행함은 마음이 전도됨이요 출세간의 보시를 행함은 성인이 찬양한다.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출세간의 보시[檀]는 청정해서 온갖 번뇌[垢]와 섞이지 않고 지혜와 화합하니 이는 성인이 칭찬하는 바이고, 세간의 보시는 청정하지 못해서 온갖 결사(結使:번뇌)와 섞이고 뒤바뀐 마음으로 집착하니, 이는 성인이 칭찬하지 않는 바이다. '[문] 무엇을 단(檀)이라고 합니까? [답] 보시하는 마음이 착한 생각과 상응하는 것을 단이라 한다. 또 믿음이 있고, 복전이 있고, 재물이 있어서 이 세 가지가 화합했을 때 마음이 사(捨)의 법을 일으켜서 능히 간탐심을 부수는 것을 단이라 한다. 단에는 갖가지 이익이 있다. 단은 보장(寶藏:보배 창고)이 되어서 항상 사람을 따라다니고, 단은 고통을 타파하게 되어서 능히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며, 단은 훌륭한 마부가 되어서 천도(天道)를 열어 보이며, 단은 훌륭한 부(府:곳간)가 되어서 모든 착한 이들을 섭수하며, 단은 안온하여 임종할 때에도 두렵지 않으며, 단은 즐거움을 모아 능히 고통의 도적을 부술 수 있으며, 단은 대장이 되어서 능히 간탐의 적을 굴복시키며, 단은 묘과(妙果)가 되어서 인천(人天)에게 사랑 받으며, 단은 청정도[淨道]여서 성현들이 말미암는 바이니, 부귀와 안락의 숲이자 도를 얻고 열반으로 가는 나루터와 다리이다.”
또 말하였다. “단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재물의 보시이고, 둘째는 법의 보시이고, 셋째는 무외(無畏)의 보시이다. 계율을 지키고 자기를 검토해서 일체 중생의 재물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재물의 보시를 행하는 것이고, 능히 갖가지 법을 설해서 깨달음을 열게 하는 것을 법의 보시라 하고, 중생이 죽음을 두려워하니 계율을 지키며 해치지 않는 것을 무외시라 한다.”[덕자함(德字函) 제4권] 성문은 비록 보시를 하더라도 차안(此岸)에서 끝나고 보살이 단(檀)을 행함은 피안[那邊]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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