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가짐을 보자마자 뼛속까지 연극인이다 라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을 가끔 만나게 되는데
김노운 선생님이 바로 그런 연극인이다. 첫 등장부터 앉아있는 자세, 가끔 일어나서 하는 행동들을 보고 있자면
왠지 연극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수업내용을 다시 곱씹어보면 연극처럼 명확하게 질문과 답이 나뉘었던 것 같다.
첫 수업은 그냥 이야기 with 질문 시간이었다.
문장화 시킬 수 없는 지식은 금방 날아간다. 당장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일단 써!
정말 일단 다 써봤다. 어떻게 내 이 글로 정리해놓을지 벌써 까마득하다...
일단 쓰고 봐야 하는 까닭을 난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에쮸드반 학생들의 일지만 봐도 알 수 있듯 똑같은 수업을 들어도 각각 받아들이는 게 다르기 때문에
남들이 알아듣고 깊게 생각한 이야기를 난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고, 선생님과 학생이라면 그 차이는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김노운 선생님께선 쓰는 습관을 강조하셨당.
우선 선생님께선 수업시간에 우리가 뭘 해야 할지 알려주셨다.
우린 덩크슛이 뭔진 알지만 그것을 할 수 없다. 덩크슛을 하려면 훈련을 해야 한다.
우리의 수업은 아주 짧은 시간, 적은 시수로 진행되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훈련을 하면 안 되고 수업 외의 시간에 훈련을 해오고 수업시간엔 그걸 검증받을 수 있어야 한다.
수업의 목표는 자신의 연기를 연출할 수 있는 배우이다.
또 본격적인 이야기 이전에 배우는 것 자체를 즐기지 말라는 말도 해 주셨는데 아주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위기에 취하면 안 되고, 내가 '발전'한다는 것에 취해버리면 거기에 멈추게 된다.
나도 비슷한 예를 수도 없이 봤고 그래서 여기에 대해 크게 공감했다.
내가 수업 중간에 “선생님께 배운 에쮸드를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해보는 게 좋을까요?”라 질문하자,
어려울거란 말을 들었다. 같은 채널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연기를 연습하기 이전에 어떤 장벽이 생기게 되고
이 장벽을 허무는 작업이 필요한데, 그것보단 차라리 같은 채널을 가진 사람과 연기를 하는 편이 더 빨리 늘 거란 것이었다.
근데 그런 사람을 만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고, 내가 에쮸드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와 함께하게 되면
혼란이 생길 것이다. 거기서 갈피를 잡을 수 있다면 해도 된다고 하셨다. 러시아에서는 에쮸드만 1년 반을 한다구 한다.
선생님이 다들 러시아 출신이라 그런지 러시아 얘기를 참 많이 듣는데 들을 때마다 러시아 놈들이 부러워 죽겠당.ㅎㅎㅎ
연습실에서 실수하면 그건 실수고, 현장에선 그게 실력이다.
모든 게 연습실인 학생에게는 실수가 권리다. 학생 때 이 실수를 많이 할수록 현장에서 내 실력을 낮추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일단 내가 학생 때 별 짓을 다 해봐야겠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내가 오늘 가장 인상깊게 들었던 얘긴 이거다.
내가 속했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갈 때의 기본 자세는 그들에게 난 좆도 필요 없다. 이다.
내가 그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들은 내게 다가올 이유가 없다. 근데 난 있기 때문에 내가 접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학교 학과장님께서도 자기가 빨리 별거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빨리 는다고 했는데 그 말과 일맥상통하는 거 같다.
그래, 그들에게 난 좆도 필요 없다. 근데 난 그들을 필요로 한다. 이 에쮸드반 뿐 아니라, 학교, 현장, 심지어 클럽에서도ㅋㅋ
내가 먼저 다가가는 거다. 그리고 날 더 크게 키워나가면 된다. 항상 이 말을 생각해야겠다. 그들에게 난 좆도 필요 없다. 내가 그들이 필요한 것이다.
연기의 Why와 How에 관한 이야기도 인상깊었는데 내가 장면의 초목표는 무엇인가?(Why)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How)
이것이 독특한 연기를 만드는 것이다. 남들과 다른 어떻게를 찾아야 한다. 나는 정말이지, 하도 많이 이야기가 나와 이젠 닳고 닳은 송강호의 전설적인 애드립과 같은 표현을 하길 원한다. 이 다른 표현은 내가 어떻게 생각을 하고 내가 어떤 상상을 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관한 훈련이 중요한 것이다. 선생님은 영화같은 건 이미 다른 사람이 상상해놓은 것이므로 내가 스스로 상상할 수 있는 책을 읽는 것이 좋다 하셨다. 난 요즘 스노우 크래쉬라는 유명한 사이버펑크 소설을 읽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데에 시간을 좀 더 투자해야겠다. 사실 영화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 소설을 읽을 땐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는지에 관심을 좀 가지게 되는데 이젠 그 글자들을 통해 상상하는 것을 좀 더 해봐야겠다.
연기는 가르칠 수 있는 기술이다 라는 말... 화술 수업때도 들었고 난 이 표현이 맘에 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내 마인드가 좀 그렇다. 생활의 달인에 나온 생선의 달인 이동삼 할아버지나, 의정부 최고의 중국집 사장님인 우리 이모부나,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 제일 잘나가는 우리 동네 미용실 원장님이나 그들역시 예술이 아닌가 예술이 아니면 대체 뭔가? 라고 생각한다. 난 예술이 특별하고 신성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배우는 지구상에 널리고 널린 직업군 중 하나일 뿐이다. 난 그 중에 배우란 직업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이고 난 연극으로 세상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존재보단 그냥 인간으로 살고 싶다.
모든 건 나로부터 출발한다. 내가 무대에 올라가는 건 아니다. -> 이런 말에 혼동이 있었던 이유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스타니슬라브스키 책이 노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을 일본어로 중역하고 또 그것을 한국어로 중역해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직 저 말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못 했지만 일단 적어놨다. 언젠가 벽에 부딪혔을 때 떠오르겠지.
에쮸드 수업은 내가 가장 기대하는 수업이다. 진짜 이 수업에 관련된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실수를 다 해버리고 싶다. 가끔 보기 추하더라도 다들 귀엽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준비물은 트레이닝복과 재즈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