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우혜의 수요 역사탐구] 선조의 시험에 大義로 응수하다
출처 조선일보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21/2017022103468.html
[이순신 리더십] [8]
영리한 선조는 이순신 시험하려 戰功 올린 그를 오히려 징계해
오직 나라 지킬 뿐인 충무공, 좌천 조치에 분노하지 않고
최선 다한 복무로 큰 그릇 입증… 大義 따르는 자세에 임금 감복
송우혜 소설가
여진족 우을기내 생포 사건의 마무리는 실로 희한했다. 선조는 관련자들이 모두 경악할 처리를 했다. 큰 전공에 걸맞은 큰 포상은커녕 오히려 처벌을 단행해, 작전을 이끈 이순신을 무관 최하위 벼슬인 종9품인 건원보 권관으로 좌천시켰다. 처벌 사유로 선조가 내세운 명분은 '북병사 김우서 장계(狀啓)'였다.
우을기내의 목을 올려 보낸 김우서는 급히 선조에게 장계를 올려서 군관들이 그처럼 큰 사건을 준비하고 실행하면서도 육진의 최고 지휘관인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아서 명령 체계를 무너뜨린 불법성을 지적하면서 포상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이순신 '행록'). 사실 이순신은 거사를 극비로 진행했다. 정보가 밖으로 새나가면 성공은커녕 이쪽의 희생만 불러올 만큼 위험한 작전이었기 때문이다.
선조는 이순신을 처벌하면서 자신이 '의롭지 않은 작전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세상에 확실하게 보여줬다고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선조는 단순한 사람은 아니었다. 훗날 선조가 보인 행태를 종합 분석해 보면, 당시 그는 군주로서 '이순신이 과연 어떤 무장인가?' 제대로 파악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고 판단된다. 매우 큰 전공을 세운 이순신을 포상이 아닌 처벌로 처리할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영악한 계산'을 하는 선조의 사고방식에서 나온 의문이자 일종의 시험이었다.
이순신은 묵묵히 좌천 조치에 따랐다. '행록'에 따르면 그가 '건원보 권관'이 된 시기는 '그해 10월'(선조 16년·1583년)이라고 한다. 생포 작전 성공 넉 달 만에 처벌이 시행된 것이다. 좌천당하기 직전 이순신의 신분은 남병사 소속 군관이었다. 당시 군관으로서의 그의 품계는 해당 자료가 없어서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곤란하다. 다만 관행상 대개 6품 내지 7품 직에 해당했다. 따라서 그는 이때 5 내지 7단계의 품계 아래 직급으로 대폭 좌천당한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이런 부당한 처분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충분히 있었다. 당시 벼슬아치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벼슬자리에서 물러날 때 흔히 쓰는 수법이었던 칭병(稱病)을 하거나 노부모 봉양 등의 이유를 내세워 물러가는 것이다. 이순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발령 조치를 통고받은 뒤 곧 건원보 권관으로 부임해 충실하고 의연하게 근무했다.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처신했던 걸까? 우을기내 사건 자체는 물론 훗날 명량대첩 등의 사례를 통해서 명백하게 증명된 것이지만, 이순신은 '국토 방위'라는 '대의'를 생각할 때 작은 지역이든 큰 지역이든 간에 자신이 몸소 나서거나 국경의 한 부분을 지키는 것이 다른 자들이 하는 것보다 바람직하다고 확신했다. 그런 마음가짐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매우 큰 자부심과 소명의식 없인 불가능하고, 이는 그가 지닌 큰 지도자로서의 높은 역량과 격조를 웅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선조가 암묵적으로 시도한 시험을 이순신이 매우 뛰어나게 통과한 것이 되었다. 영악한 선조 자신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터였기 때문이다. 일이 그렇게 되면 절로 입장이 바뀐다. 선조가 이순신을 시험한 것이 아니라 이순신이 선조를 시험한 것이 된다. 그리고 그 시험에서 선조는 참패했다. 뒤늦게 선조도 그걸 깨달았다. 대의에 입각해 의연하고 당당하고 과감하게 처신하는 당찬 인물 앞에 서면, 불현듯 밝은 거울 앞에 선 듯 자신의 약삭빠르고 이해관계에 예민한 졸렬한 모습이 환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선조는 이를 명확히 인식하고 열패감을 느낄 정도의 지적 능력과 감각만은 충분한 사람이었다.
평생토록 자신은 매우 영민하고 지혜가 많은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살았던 선조가 신하의 강한 인격과 뛰어난 능력과 담대한 행동양식에 눌려 기가 꺾였던 사례는 오직 두 사람, 이율곡과 이순신의 경우뿐이었다. 그게 모두 니탕개의 난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올랐던 것이 신기한 인연이다. 당시 병조판서로서 비변사 실세였던 이율곡은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그리고 온갖 비방과 매서운 곤욕이 닥칠 것을 환히 알면서도 서얼 허통, 천인 면천 정책으로 국난 극복의 토대를 놓았다. 그리고 대전란 발발로 육진에 파견된 진압군의 일개 군관 이순신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적의 괴수를 처치할 작전을 세우고 성공해 니탕개의 난 종식의 큰 틀을 세웠다. 그런 것은 모두 '개인의 안위'보다 '나라 전체의 안위'를 생각할 때만 비로소 가능한 행위였다. 선조도 그것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게다가 포상 대신 부과한 처벌까지 의연하게 받아들인 이순신의 당당함을 대하면서 절로 기가 꺾인 선조는 이때부터 '이순신'이라면 매사 한 수 접고 들어갔다. 이후 선조가 이순신에게 부여한 특혜들은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할 정도였다. 군신 간에 특수 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내면의 감각은 답을 알고 있다
오늘날의 의사결정학에 대한 또 다른 의문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에서 출발한다. 합리화된 의사결정 모델이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그 활용도가 과연 어느 정도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기업의 고위급 임원들 중 상당수가 논리적 분석보다는 ‘직관’이나 ‘느낌’, ‘육감’ 또는 ‘내면의 소리’를 따른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이를 놓치지 않고 일부 학자들은 성공적인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이성뿐만 아닌 ‘인간적 감성과 느낌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이른바 ‘제7의 감각’이라 불리기도 하는 인간의 직관력, 예지력, 통찰력은 중요한 의사결정 순간에 유용하게 사용되어왔으며, 동서양 모두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점占을 치는 것인데, 점이란 본래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고도의 감각을 깨워 앞날을 예측하고 더 지혜로운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방법이다. 로마의 귀족들은 양자택일을 해야 할 때 동전을 던져 의사결정을 했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위기의 순간 점성술을 이용해 미래를 준비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러한 행위 모두 점占의 일종이다.
동양에서는 아예 이 부분을 학문으로 체계화시켰는데 역학易學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 역학은 오늘날의 반도체 기술에 비할 바 없는 고급 정보학문이었기 때문에 기득권 계층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 학문을 가능한 한 어렵고 익히기 힘들게 만들어 두었다. 조선시대 과거 시험을 치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했던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하나가 바로 『주역周易』이다.
‘난중일기’에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14차례에 걸쳐 척자점을 뽑아보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순신 장군은 수많은 병사들의 생명은 물론 나라의 앞날이 걸린 중대한 의사결정을 행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처럼 정체절명의 선택을 앞에 두고 고도의 예지력과 통찰력에 먼저 답을 구하고 이후 인간의 지혜와 노력을 다해 현실에 대처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뿌리 깊은 점占의 전통은 과학이 고도로 발달했다는 현대에도 사라지기는커녕 도리어 더욱 번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통계에 따르면 2010년 현재 국내 역술인은 50만 명에 이르며, 시장규모도 3조원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미국 그리고 유럽에서도 운명을 점치고 앞날의 행운을 기원하는 전통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고 있다. 이는 인간의 내면에 고도의 감각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지속되는 현상일 것으로 본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내면의 감각을 제대로 발현시켜 앞날을 예측하고 그때가 다가왔을 때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도 역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무척 어렵다. 국내에 역술시장이 커지는 만큼 선무당이 사람 잡고, 반풍수 집안 망친다는 속담의 주인공이 혹 자신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출처 : 행복예보 생활한역 P. 46~48
내 안의 빛viit마음을 통한 의사결정 : 빛viit의사결정
지금가지의 이야기를 종합해보자. 실수나 오류에 휩쓸리지 않고 최대한 합리적인 선택을 돕고자 하는 오늘날의 의사결정학은 분명 유용한 학문이지만, 요즘과 같이 앞날이 불투명하고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테러, 환경오염으로 인한 천재지변, 괴질 등 검은 백조가 언제 어디서 출몰할지 모르는 혼란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반면 인간 내면의 고도의 감각과 예지력을 바탕으로 한 전통적인 의사결정 방법인 점술, 그중에서도 동양적 전통에서의 역학은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일찍이 헤르만 헤세는 빌헬름 신부가 중국 선교사 시절 『주역』을 독일어로 번역한 『변환의 서書』를 접하고는 “내 지식으로는 단지 짐작하거나 잠깐 이해할 정도. 그 이상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이 책 속에는 세상사를 총망라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물이나 떠도는 구름 속을 보는 것과 같다. 바로 그 안에는 무엇에 대해 생각하고 어떻게 살지가 기록되어 있다”고 찬탄한 바 있다.
하지만 역학은 배우기가 너무 어렵고 이를 현대에 맞게 적절히 해석해내는 능력 또한 사람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즐겨 찾으면서도 동시에 그 신뢰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 또한 많다.
이에 필자는 기존 의사결정학의 한계를 보완하면서도 누군나 쉽게 생활에 접목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의사결정 방법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주 근원의 에너지, 빛viit과 역학을 접목해 기존의 한계를 탈피한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의사결정학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빛viit이란 지극히 순수한 자연상태, 고도의 우주근원에서 오는 행복과 변화의 에너지*를 말한다.
이 책에서는 의사결정과 관련하여 앞서 말한 바 있는 도경께서 물려주신 비서를 바탕으로 빛viit을 접목해 만든 빛의사결정학으로서의 『한역팔목韓易八目』에 대해 좀 더 자세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한역팔목韓易八目』이 정확하고 신속하며 지혜로운 의사결정의 도구이자 미래예지도구로 얼마나 큰 역할을 하였는지, 지난 20여 년간의 생생한 경험과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빛viit의사결정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안내하고자 한다.
*지난 20여 년간 수많은 사람들과 빛viit을 나눠오는 가운데 쌓인 그 무한한 변화와 행복의 이야기들은 필자의 또 다른 책 『빛viit명상,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행복 순환의 법칙』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출처 : 행복예보 생활한역 P. 49~50
빛viit마음은
빛viit마음은
우리를 통해
행복이란 기적을 만듭니다.
문화와 언어도
국경과 종교도
지구를 넘어 우주 삼라만상까지도
빛viit마음으로 하나가 되게 합니다.
빛viit마음은
어떤 이론도 교리도 아닌
겸손과 감사 그리고
‘진심’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참깨 속에
참기름이 녹아 있듯이
우리의 마음에는 ‘근원의 빛viit’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빛viit마음은
행복과 풍요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이 빛viit인 것을
일깨우고자 합니다.
출처 : 향기와 빛viit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P. 212
첫댓글 내면의 감각은 답을 알고 있다. 내 안의 빛마음을 통한 의사결정 !! "행복예보 생활한역" ~ 감사합니다.!!
서유종님, 선조의 시험에대의로 응수하다의논단과귀한 빛글감사드립니다.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서유종 님, 귀한 글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내면의 감각은 답을 알고 있다" 감사드립니다.
빛마음으로 살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겸손 감사 진심 의 마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서유종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빛viit마음에 의탁할 수 있는 소중한 의사결정도구 한역 있어 참으로 감사한 삶입니다.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빛명상으로 매일 빛마음을 들여다볼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서유종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내면의 감각은 답을 알고 있다, 관조로 자신을 볼 수있음이 감사합니다. 서유종님 글 스크랩 감사합니다.
서유종님 향상 귀한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선조와 이순신의 관계가 그랬군요 좋은 글 잘보고갑니다 편안한 저녁되세요^^
겸손과 감사의 마음으로 의사결정을 할수있는 예자력을 주셔어 감사합니다.
빛명상으로 내면의 빛마음을 밝히며 지혜로운 의사결정을 할수있는것에 감사드립니다. 서유종님 감사합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빛과함께 할수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서유종님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