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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한 정부, 억압된 분노가 부른 K-우울증
예고 없이 발생한 전시상황도 아닌데 국민을 동원수단으로 삼아 관제 억지 국격을 연출한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가 끝났다. 돈은 돈대로 쓰고 국제적 망신은 심장을 찌르는데 저들의 자화자찬에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연예인과 기획사를 대하는 태도는 과거 박정희 정권의 채홍사를 연상케 하고 공기업이든 사기업이든 마음대로 징발할 수 있는 사유재산쯤으로 여기는 무도한 정부를 지켜보는 것은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일이다. 정부와 검찰의 나팔수로 전락한 언론이 아무리 펜 마사지를 한다한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실시간으로 외신을 접하는 국민들에게 남은 것은 미안함과 수치심이다. 이 수치심과 자괴감이 깊어지면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윤석열 정부 집권시기 시민들의 정신건강을 정신의학적으로 분석해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억압된 분노가 우울감, 식욕저하, 불면, 명치에 뭔가 걸려있는 느낌 등과 같은 신체증상으로 발현되는 질병, 흔히 화병이라고 부르는 병증에 대한 설명이다. 주변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주요원인이지만 한국 특유의 문화적인 배경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는 점에서 K-팝, K-장녀처럼 K-우울증이라고 부를 만하다. 화병은 화(火)의 개념으로 분노를 설명한 것이다. 불통을 넘어 야당과 민주화운동 세력을 포함한 시민들을 그림자 취급에 범법자, 심지어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고 국정을 유린하는 탓에 만나는 사람마다 뉴스를 보는 것이 괴롭다며 가슴답답증과 불면을 호소한다. 실로 집단 화병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 분단국가라는 특성에도 치안이 매우 안전한 국가로 정평이 나 있다. 밤늦은 시간에 거리를 걷고 카페 테이블에 노트북이나 휴대전화를 놓고 볼일을 보러 가는 일은 더이상 특별할 게 없다. 한국인들의 도덕 감정이 고귀해서든 도처에 있는 CCTV 때문이든 이러한 평가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진 국민이라는 자긍심을 주어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최근 잇달아 발생한 신림동 흉기난동 살인사건과 분당 서현역 일대 흉기난동사건, 지하철 9호선의 승객 대피소동 등은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지하철이라는 폐쇄된 공간의 특성상 공포심이 더욱 극대화된 9호선 대피소동은 아이돌 그룹 멤버의 라이브 방송을 보던 팬들의 고성을 오인한 해프닝이었지만 앞의 일련의 사건들이 아니었다면 그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1년에 한두 건 접할까말까 한 일명 ‘묻지마 범죄’가 왜 갑자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하는가, 이는 전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폭정 때문이다.
최근 흉기 난동 사건이 잇따르자 8일 경찰이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관중석을 응시하고 있다. 2023.8.8. 연합뉴스
보수 정당 집권 기간에 높아지는 폭행치사 발생률
폭력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뉴욕대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 교수는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위험한가>라는 저술에서 정치가 삶과 죽음을 가른다며 폭력치사의 진짜 범인은 사회적 불평등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190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사회의 폭력문제와 관련한 통계를 분석하다 어떤 정부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자살률과 살인율의 변동 간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는 집권정당과 폭력치사 발생률 사이에 연관성이 있는 이유를 양당이 추구하는 정책과 태도에서 찾았다. 공화당이 추구하는 정책은 수치심과 모욕감에 노출되기 쉬운 것들이 많아 열패감과 열등감을 조장하며 타인을 무시·경멸하도록 부추기고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실업률, 수치심, 모욕감이 높아져 필연적으로 폭력치사 발생률이 높아진다며 폐암과 흡연, 심장마비와 규칙적인 운동이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 것처럼 공화당은 위험요인인 흡연, 민주당은 보호요인인 규칙적인 운동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좋은 정치인이라는 게 아니라 공화당이 더 위험한 정치집단이라는 뜻이다.
1977년부터 2021년까지 범죄자의 범행동기를 년도 별로 살펴보면 90년대 중반까지 100건 대에서 200건 대 중후반까지 꾸준히 증가하던 보복살인은 90년대 후반부터 100건 이하로 유의미하게 감소한 반면, 일명 묻지마 범죄로 분류할 수 있는 ‘우발적’ 범행은 1994년을 전후로 살인, 상해, 강도, 폭행 항목에서 거의 대부분 2배-3배로 급증했다. 같은 해부터 ‘우발적’과 별도로 ‘현실불만’ 항목을 범행동기로 추가한 것은 이러한 이상급증 현상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우발적’과 ‘현실불만’이라는 범행동기를 묶어 그 전과 비교해보면 급증추이는 더 가파르다. 매년 꾸준히 증가하던 추세가 1994년을 기점으로 갑자기 2,3배 이상 급증한 이유를 분석한 자료는 찾을 수 없었지만 그즈음 대한민국에 가해진 사회적 경제적 스트레스가 이후 IMF 구제금융과 깊은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구체적 동기 없이 불특정다수를 향해 저지르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는 보복과 같은 인과관계가 분명한 강력범죄와 달리 아무 잘못이 없는 나 자신도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주고 자연히 타인에 대한 불신의 강도가 높아져 사회를 경직시킨다. 그만큼 중요도가 높음에도 묻지마 범죄에 대한 공식자료는 매우 빈약하다. 2017년 대검찰청이 국정감사에 제출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묻지마 범죄로 기소된 사건은 총 270건’이라는 자료와 2014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2년에 발생한 모든 묻지마 범죄사건을 분석한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방안 연구”가 유일하다고 한다.
원인은 경제불평등, 대책은 소총과 전술장갑차
이 연구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 가해자의 범행 동기는 26.5%를 차지하는 환각·망상과 같은 정신질환을 제외하면 사회불만, 처지비관 등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분노나 원망이 주를 이룬다. 직업별 분포는 75%가 무직이며 나머지도 비정규직이거나 일용직 노동자로, 적절한 노동과 직업이 최소한의 자존심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주요한 요인인지 보여준다. 그 외에도 범행과 범죄자에 대한 매우 광범하고 구체적인 분석이어서 묻지마 범죄를 이해하는 훌륭한 열쇠가 된다. 하지만 2012년도 자료를 지금도 인용할 만큼 묻지마 범죄에 대한 개념도 통계도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18건의 묻지마 범죄가 발생했으며 대전에서 교사가 피습당하는 등 이상동기 범죄가 잇따르고 용산, 놀이동산 칼부림 등 315건이나 살인이 예고되는 소동으로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무차별 흉악범죄를 막겠다며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하고, 소총과 권총으로 이중무장한 경찰특공대 요원 100여명과 서울 강남역, 부산, 세종, 부안 잼버리 행사장, 대구, 제주, 성남, 김해, 수원 등 전국 9곳에 전술장갑차를 배치했다. 잼버리 콘서트장에는 경찰 3500명, 전술장갑차 5대 등 특수차량 17대, 경찰 헬기 4대를 행사장 인근에 투입, 위험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총기를 사용할 방침이라고도 했다. 마치 준전시상황인 양 폭력이 시각적으로 일상에 들어와 공포와 행동의 위축을 유발시켰다.
그러나 번영과 경제성장을 내세울수록 경기침체 가능성이 크고, 범죄·마약과의 전쟁을 벌일수록 폭력치사 발생률, 빈곤율, 실업률과 관련이 깊다고 한다. 00와의 전쟁이란 방식이 폭력의 빈도와 강도를 높이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남을 죽이려는 공격성, 자신을 죽이는 충동으로 몰아가는 감정의 힘은 수치심이 근본 원인이라는 점에서 전시를 방불케 하는 강력치안과 엄중처벌이라는 권위적인 정책과 태도가 모욕감과 수치심을 자극해 오히려 폭력치사를 유발시킨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세수가 구멍이 날 정도로 부자감세에 열을 올리고 서민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공공요금을 올린다. 자녀들에게 1억 5천만 원까지 세금 없이 증여할 수 있게 하면서 매달 납부한 고용보험으로 실직기간의 생계를 지원받는 실업급여를 보너스에 해당하는 ‘시럽급여’라 희화화해 가뜩이나 고용단절로 불안한 시민들에게 모멸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실업급여로 여행을 하든 샤넬 선글라스를 사든 연체한 신용카드 빚을 갚든 처한 조건이나 계획에 따라 각자 자유롭게 결정할 문제다. 최대 2년으로 제한을 둔 비정규직 법안으로 원하지 않는 실업상태에 놓인 것으로도 모자라 수치심과 굴욕감을 조장하는 정부의 태도는 매우 부도덕하고 야만적이다. 언어폭력에 가까운 이런 태도는 질 낮은 고용상태에 있거나 일상적으로 실업이나 해고의 위험에 놓인 집단, 심지어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협상을 하던 사람들에게까지도 불안 심리를 전염시켜 사회 위험요인을 가중시킨다.
외신이 ‘난장판’이라고 비판한 새만금 잼버리 야영장에서 8일 대원들이 철수하고 있다. 2023.8.8. 연합뉴스
‘시럽급여’란 언어희롱이 묻지마 범죄를 부추긴다
수급자다움을 요구하고 가난을 증명하게 하는 정책이나 태도는 역대 보수정부의 공통점이다. 문제만 생기면 카르텔 운운하며 반대하는 여론을 가짜뉴스·괴담 유포자로 낙인찍고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을 북핵에 비유하는 등 국민을 때려잡을 범죄자 취급하는 윤석열 정부의 형편없는 공감능력은 너무 일상적이고 광범위해서 살의와 적개심을 느끼게 만든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시민 모두가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 불가한 정치현실과 국가안위,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로 불안에 잠식당한다. 이러한 것들이 폭력범죄 긴장도를 높이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공화당이 집권하면 죽음의 전염병이 번진다”고 통계로 말한 길리건 교수는 내 가족의 생명을 구하고 싶다면 당장 정치를 바꾸라고 조언한다. 어떤 이들에겐 생명줄과도 같은 실업급여가 시럽급여로 조롱받고 쓰임새에 따라 부정수급자로 의심받는 모욕적인 분위기가 아닌, 지급기간을 늘리고 더 다양한 직군으로 확대해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줄이며 개개인의 소득에 맞는 수준으로 늘리는 방향으로 정치를 전환시켜야 폭력으로부터 더 안전해진다. 공동체의 협력과 기회의 평등을 말하는 정부는 국가를 강조하는 다른 정치인들보다 덜 위험하다.
시민의 일상 바로 옆에 중무장한 경찰특공대를 배치하고 ‘시럽급여’를 주는 정부는 결코 묻지마 범죄를 줄일 수 없다. 무시와 경멸, 조롱이 담긴 말이나 ‘우리 국민’ ‘반국가세력’ 등등 국민을 갈라치기하는 혐오와 배제의 언어와 정책이 묻지마 범죄를 부추길 뿐이다. 윤석열 정부의 무도한 정치에 각자도생도 모자라 정부가 심리적으로 사주하는 이상동기 범죄와도 마주하고 있는 형국이니 다음엔 내 차례가 된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잼버리대회의 책임을 묻겠다며 지자체를 때려잡을 모양이니 이것이 묻지마 범죄와 무엇이 다른가. 정치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시대, 정신을 똑바로 차릴 일이다.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를 살리는 것은 광란의 질주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연대와 협력뿐이다.
첫댓글 내 가족의 생명을 지키고 싶다면 당장 정치를 바꾸라..!!
바꿉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