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평포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 982-5
대포동(大浦洞)
강원도 속초시 남서부에 있는 동.
설악산에서부터 동해까지 이른다. 북쪽에 독재의 낮은 봉우리가 대포동을 감싸고, 서남쪽에 악산의 달마봉(635m)·주봉산(331.8m)·청대산(230.8m)이 동서로 해안까지 뻗어 있으며, 설악산에서 발원한 쌍천(雙川)이 비옥한 도문평야를 이루면서 동류하여 동해로 유입된다.
조선시대에는 양양군 도문면의 지역으로서 큰 포구라는 뜻에서 한개·대포(大浦), 또는 독재의 안쪽(육지 쪽)이 되므로 안독재·내옹치(內瓮峙)라고 하였고, 또는 독재 밑의 큰 마을이므로 큰독재라고도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변경 때 대포리(大浦里)라고 하여 도천면[속초면]에 편입되었다.
-8·15 광복 후 북한의 통치를 받다가
-1951년에 수복되었으며,
-시 승격 후 1966년 속초시 동제 실시에 따라 대포리(大浦里) · 외옹치리(外甕峙里) · 내물치리(內勿緇里)가 통합되어 대포동(大浦洞)으로 개칭하였는데, 또 상도문리 · 중도문리 · 하도문리가 합쳐져서 도문동(道門洞)이 되었고, 장항리(獐項里)는 설악동(雪嶽洞)으로 개칭되었다.
-1998년 10월 행정동의 통폐합으로 이전 도문면의 소재지인 도문동과 장항리(障項里)이던 설악동을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면적 65.89㎢, 인구 3933명(2008)이다. 행정동인 대포동은 법정동인 설악동, 도문동, 대포동 3개 법정동을 관할하고 있다.
대포동은 큰 포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조선지지자료'에는 '큰독'로 기록되어 있어 독재 밑의 큰 마을로 해석할 수도 있다. '여지도서'양양도호부에 기록된 지명을 보면 도문면에 상도문리 · 하도문리 · 물치리 · 대포리 · 옹진리 · 신흥사가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조선 시대 도문면 지역이 오늘날 대포동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문동은 신라 때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설악산으로 가다가 이곳에 이르러 득도의 문이 열린 곳이라고 하여 도문(道門)이라고 한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설악동은 설악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동의 대부분 지역에 설악산국립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외옹치리의 북쪽 봉화터는 조선 시대 덕산봉수(德山烽燧)가 위치하던 곳이다. 오늘날 대포초등학교 · 대포항 · 대포농공단지 등에서 관련 지명을 엿볼 수 있다.
속초시 상수도사업소·속초시 위생환경사업소 등 공공기관과 도문1·2치수장·설악동취수장이 있다.
1987년에 속초시 출신 전몰군경의 얼을 추모하여 세운 '충혼탑'이 있고, 조선 고종 때 한학자이며 효자인 매곡처사 오윤환(吳潤煥)이 1933년에 세워 후진교육의 도장으로 삼던 '학무정(鶴舞亭)'이 있으며, 1893년(고종 30)에 나라에서 정려(旌閭)한 박지의(朴志誼)의 효자비각이 있다. 설악산 소공원에 6·25 전쟁 때 수도사단 맹호부대의 전적을 기리는 '설악산지구 전적비'가 있다.
특히 국립공원인 설악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골짜기가 깊어 계곡마다 폭포·소를 이루면서 맑은 물이 흐르며, 기암괴석들이 곳곳에 있어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은 남한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171)'은 설악산의 가을 단풍, 겨울의 설경 등 아름다운 경관뿐 아니라 눈잣나무·지빵나무·눈향나무 등 800여 종의 다양한 식물이 분포되어 있고, 열목어·까막딱따구리·반달가슴곰·사향노루·산양 등 희귀한 동물이 서식하므로 1982년에 유네스코에서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선정한 곳이다.
천연기념물 351호로 지정된 설악동의 소나무는 높이 16m, 줄기둘레 4m, 나무 나이는 500년으로 추정된다. 세 줄기로 뻗었으나 현재는 한 줄기만 살아 있다. 그 밖에도 신흥사 극락보전(강원유형문화재 14)·신흥사 경판(강원유형문화재 15)·속초 김종우가옥(강원유형문화재 85)·신흥사 보제루(강원유형문화재 104)가 있다. 그 밖에 신흥사(강원문화재자료 7)·속초 김근수가옥(강원문화재자료 64)·속초 신흥사 부도군(강원문화재자료 115) 등이 있다.
설악산의 주요 명소로는 권금성(860m)·내원암·계조암·울산암·토왕성폭포· 육담폭포·비룡폭포·와선대·비선대·문주담·천불동과 귀면암·오련폭포· 형제바위·양폭포·천당폭포·대청봉(1,708m)·금강굴·마등령(1,327m)· 집선봉(920m)·달마봉이 있다.
그 밖에 내물치에 '물재 유선생 유허비'가 있다. 이 비는 물치리에 은거한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며 효자인 물재(勿齋) 유회일(兪晦一)을 추모하여 이 고을의 유림들이 향현사(鄕賢祠)를 짓고 제사를 지내다가 허물어지자, 1748년(영조 24) 그 자리에 세운 것인데, 높이 194.5㎝이고, 비문은 예조판서 조관빈(趙觀彬)이 짓고, 글씨는 강원도관찰사 홍봉조(洪鳳祚)가 썼다. 근래 도로 확장으로 지금 자리로 옮겨 왔다.
외옹치리의 북쪽 '봉화터' 산은 조선 때 '덕산봉수(德山烽燧)'라고 하여 남쪽으로 양양군의 '수산봉수', 북쪽으로 간성의 '죽도봉수'에 응하여 봉홧불을 올렸다. 1940년대까지 봉수대의 석축 흔적이 남아 있었다.
대포동(大浦洞)
경기도 이천시에 있는 동이다. 법정동으로, 행정은 중리동(中里洞)이 관할한다.
동쪽으로 대월면, 서쪽으로 호법면, 남서쪽으로 모가면, 북쪽으로 단월동과 접한다. 서쪽 대월면과 경계에 정오산(167.3m)이 솟아 있다.
고려시대에는 영창현, 조선시대에는 이천현·이천도호부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충주부 이천군 관할을 거쳐,
-이듬해 경기도 이천군 관할이 되었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폐합 할 때 이천군 읍내면 대포리가 된 뒤,
-1938년 읍내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이천읍 관할이 되었다.
-1996년 3월 이천군 전역이 도농복합형 시로 승격하면서 행정동인 중리동의 법정동이 되었다.
대포동의 원래 지명은 대포천리였다. 뒤에 '천' 자가 없어졌는데,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자연마을로는 삼정개·소도니·새말·황그네 등이 있다. 삼정개는 냇가에 자리잡은 망태처럼 불룩하게 생긴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소도니는 쇠도니라고도 하는데, 마을 뒤에 있는 소도니봉이 뾰족하게 생겨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새말은 조선시대 중엽에 생긴 마을로, 남양홍씨가 많이 살아 홍촌이라고도 한다. 마지막으로 영천이씨 집성촌인 황그네는 내 건너 마을이라는 뜻의 한건내-한개내를 거쳐 황그네로 변음된 것으로 보고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대포동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실제 높이는 4m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돌출되어 있는 부분의 높이는 239㎝, 어깨 폭은 96㎝이다.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포동(大圃洞)
경상남도 사천시에 있는 동.
원래 고성군(固城郡) 남양면(南陽面)에 속하였다.
-1906년(광무 10) 사천군 수남면(洙南面)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심포동(深浦洞)·대례동(大禮洞)·노례동(魯禮洞) 등의 일부를 합하여 대포리가 되었다.
-1918년 5월 수남면과 문선면(文善面)이 통합되어 삼천포면이 되면서 삼천포면 대포리가 되었으며,
-1931년 11월 삼천포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삼천포읍 대포리가 되었다.
-1956년 7월 삼천포읍이 시로 승격함에 따라 삼천포시 대포동이 되었으며
-1995년 5월 삼천포시와 사천군이 통합되어 사천시가 됨에 따라 사천시 대포동이 되었다.
대포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남양동 관할하에 있다. 동 이름은 대례동과 심포동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대례(일명 한여)·심포·조동네 등의 옛마을, 들판인 대포들, 연못인 심포소류지 등이 있다. 유적으로는 정문(旌門)인 강효자정려, 이씨열녀문, 조순태효자비 등이 있다.
대포동(大浦洞)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법정동.
대포동은 중문 동남쪽 성천봉 동남쪽 해안 일대에 형성되어 있는 해안 마을이다. 대포동 중심 지역의 해발고도는 약 50m 내외의 평지를 이루며, 완만한 용암 대지가 넓게 분포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울창한 삼림대가 분포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해안에 접한다.
대포동은 1416년(태종 16) 한라산 남쪽 서부 지역에 처음으로 대정현이 설치될 때 대정현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470여 년 전 ‘큰개’ 가까이에 있는 ‘절터왓’과 ‘동골왓’ 일대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1864년(고종 1) 대정현 좌면 대포리가 되었으며,
-1914년 제주군 좌면 대포리가 되었다.
-1946.8.1 제주도제가 실시될 때 제주도 남제주군 중문면 대포리가 되었으며,
-1981.7.1 서귀읍 일원과 중문면을 통합하여 서귀포시로 승격될 때, 옛 대포리 일대를 대포동(大浦洞)이라 칭하였다. 중문동의 관할이 되었다.
-2006년에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포동이 되었다.대포동 마을의 포구를 ‘큰개’라 하였으며, 포구 가까이 있는 물을 ‘큰갯물’이라 하였는데, 한자 차용 표기로 ‘대포(大浦)’라고 표기하여 왔다.
19세기 중후반에는 대평리(大坪里)[큰벵뒤을]라고 하였는데, 오늘날의 대포(大浦)와 월평(月坪) 마을을 일컫는 이름으로 보인다. 19세기 후반에 다시 대포마을로 분리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해안에는 용암이 식으면서 형성된 주상 절리가 분포하고 있다. 측화산인 갯거리오름[710m]과 거린사슴[743m] 등이 산재해 있다.
한라산 남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겨울철에는 차가운 북풍을 막아 기후가 비교적 온화한 편이며, 여름에는 고온 다습한 남동·남서 계절풍이 불어와 무더운 날씨가 계속된다.
대포동은 구 서귀포시 서남쪽 끝에 위치하며, 면적은 8.47㎢로 서귀포시 22개 법정동 가운데 규모가 중간 정도이나, 인구밀도는 190.2명/㎢으로 평균[333.5명/㎢]보다 낮다. 대포동의 인구는 642가구, 1,596명으로, 남자가 817명, 여자가 779명이다(2012년 2월 현재).
지목별 토지 이용 현황을 보면, 대지와 도로를 합한 도시 용지가 8.6%이며, 농경지 16.6%, 과수원과 목장 용지가 33.5%, 그리고 임야는 34.8%에 이른다.
마을 단체로는 노인회·부녀회·청년회·새마을금고·어촌계 등이 있고, 주요 기관으로는 중문고등학교가 있다.
주요 명소로는 서귀포자연휴양림·약천사(藥泉寺)·아프리카박물관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제주 서귀포시 대포동 2506번지에 위치한 대포 연대[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3-12호], 제주 연안 연산호 군락지[천연기념물 제442호], 제주 중문·대포 해안 주상 절리대[천연기념물 제 443호]가 있다.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시작하여 외돌개를 종점으로 하는 제주올레 7-1 코스에 포함된다.
대포동(大浦洞)
한개울. 평양시 상원군 장항리 상원천기슭에 있는 마을. 큰 개울이 마을 중심을 관류하고 있어 한개울이라고 하였다. 한자표기로 대포동이다.
대포동
평양시 강동군 구빈리 남창마을 맞은편에 있던 마을. 상경말 웃골에서 발원하여 리소재지를 지나 흐르는 큰 개울기슭에 위치해 있었다. 현재는 없어졌다. 대포동이라고도 하였다.
대포동[大瀑洞]
양강도 갑산군 문락평노동자구 소재지 남서쪽에 있는 골마을. 마을 구내에 큰 폭포수가 있어 대포동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