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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Y구락부 전말기
顚末記
최 인 훈
함뿍 어둠이 깃든 휑한 고갯길은, 늦은 봄날의 밤답지 않게, 허전하면서 썰렁한 데가 있다. 어디선가 컹컹 개 짖는 소리. 현은 걸어가면서 호주머니를 들추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손 끝으로 탁 튀긴 성냥개비가 연한 불꼬리를 이끌며 휘―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현은 무어랄까 드높아진, 그련 술렁거림이, 속에서 오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알지 못하는 것에 보내는 바램. 어느 무엇에 칵 실린다든가 넋없이 빠져본다든가 그런 일을 가져본 지 오랜 현으로서는, 이
것은 분명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혼자 셈으로, 설레임의 철은 지난 줄로 알고 있었다. 눈에 벌겋게 핏발을 세우며 밤샘을 하여 책을 읽던 무렵. 참 숱해 읽기도 했거니 그는 생각한다. 그때는, 잠 잘 때 말고는 활자를 눈알에 비치고 있지 않으면 금방 무슨 몸서리칠
재앙이 다가오기나 할 것처럼, 이야기에 있는, 무슨 그러기로 된 몸놀림을 멈추자마자 마귀에게 잡아먹힌다는 그린 식으로, 책을 한때라도 놓으면 금방 자기의 있음은 온데 간데 없어질 것 같은, 가위눌림 비스름한 것에 등을 밀려서 책에서 책으로 허덕이듯 옮아갔던 것이다. 책에 음(淫)한 무렴. 그 때는 되려 살 만한 때였다. 아무 것에나 매달릴 수 있으면 괜찮은 편이라는 뜻에서. 그 다음에 온 것,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마음밭의 모습이 말썽이었다. 현은 끝내 책을 버리고 말았다. 책을 아무리 봐도 책에서 얻고 싶었던 것은 얻어지지 않았다. 책이 쓸모 없음을 안 것이 아마 책의 쓸모의 모두였다. 우스개
같지만 정말이었다. 그의 눈은 말하자면 뚫어보는 힘이 붙어서 맹랑한 일이 일
어났다. 모든 일이 유리 그릇이 되었다. 역사, 철학, 문학, 그린 것들이 그 알몸뚱이를 보고 나니 더는 끄는 힘이 없어졌다. 누리가 유리 실로 만든 실공이 기나 하듯, 처음과 끝이 돌고돌아 비끄러매진 마지막 매듭까지 보아버렸노라고
현은 생각했다. 한 마디로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 그 모른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다는 것, 두 겹으로 싸인 덫에 치어 발버둥치는 꼴, 그것이 자기였다.
며칠 천 일이다. 그날 현은 늘 드나드는 찻집에서 할 일 없는 때를 죽이고 앉았다가 뒤척뒤적하던 신문지 한 모서리에 문득 눈길을 멈췄다. 첫장 아래 쪽
정부 인사란이 었다. 거기에는,
‘김만술. 명 마르세이유 주재 총영사.’
외무부 인사 발령이 늘 그런 대로 자그마한 칸 속에 박혀있었다.
마르세이유. 그 다른 고장의 이름을 속으로 불러본다. 그것은 결코 낯서른 도시가 아니었다. 이 도시의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푸짐한 떠올림의 부피로 보아, 어쩌면 현이 아직 살아본 적이 없는 숱한 한국의 도시보다 더 가까운 곳인
지도 몰랐다.
마르세이유 주재 영사, 흠, 괜찮은 자리야. 대사보다도 영사가 나아. 요새 대사 공사래야 무어 옛날 모양으로 대사 그 사람의 인간적 매력이나 솜씨로 일을 꾸린다느니보다 본국의 훈령을 앵무새처럼 그 쪽 외무부에 옮기는 것뿐이니까. 영사라면 오히려 홀가분하고 알아서 움직여볼 수 있단 말이야. 마르세이유 주재 한국 영사. 번잡지도 않고 초라하지도 않고……. 김만술이라 흠, 내가 이 친구 대신 영사가 된다면……. 웬걸 한 열 곱은 잘할 거야. 먼지 요코하마, 홍콩, 캘커다로 인도양을 지나 지중해를 가로지른 다음. 비행기보다 그래도 뱃길이 재미있어. 지중해의 코발트 색 물결. 그리스, 로마의 엣 뱃사람과 무사들의 뼈다귀가 그대로 묻혔을 바다 속의 노예선. 그 바다를 건너 마르세이유 부두에 닿는다? 옳지, 여부가 있을까. 멀리 파리서 온 명사 귀부인을 합쳐 마르세이유의 알짜한 귀하신 분들이 서성거리면서 내 배가 닻을 내리는 것을 바라보고 섰을 테지. 코스모스의 한 무더기 같은 양산 받은 여자들의 모습. 부두에서의 전통적인 짤막한 환영 절차와 인터뷰. 그것이 끝나면 시장 내외와 함께 차를 타고 마르세이유 상공회의소가 베푸는 환영 파티로 간다. 거기서 나는, 오로지 의젓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들은 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교가라는 것을 이윽고 알게 된다. 영사의 일이라야 불란서라면 기껏 여행자의 여권에 도장이나 찍는 것밖에 더 있을라구. 나머지는 이제 차츰 예술가 학자들의 패거리에 발을 들여놓거든. 스탕달, 발자크, 모파상, 졸라, 카뮈에 이르기까지 푸짐한 문학사적 조예와 철학적 논평으로 그들의 존경을 차지하고 우정을 얻는단 말이야. 이윽고, 파리의 이렇다할 예술가 지식인과 너 나 하는 처지가 되고 보면, 나더러 어디 가서 강연을 해달라느니, 한 주일에 한 시간쯤이라도 좋으니 대학에서 비교철학 자리를 맡아달라느니 할 것이 아닌가. 아니 그것보다도 소설가 친구들이 나더러 꼭 소설을 쓰라고 조를 거야. 어디 한국 사람이 재주가 모자라서 세계적이 못 되나. 못난 나라에 태어난 탓으로 늘 밑지는 거지. 현대인의 불안을 상징풍으로 다룬 아름다운 장편시를 써내지. 아 담박 베스트셸러가 되고 영·독역이 되는 통에 한국에 역수입되거든. 흥, 서양 문학이 무에 대단한 게 있어. 가락이 높고 은은한 우리네 마음을 나타내는 주인공을 그려내는 날이면, 모든 명작 소설이 무색하게 될 테거든. 온통 파리의 예술계가 뒤끓는 가운데 출판 축하회가 열리고……. 샴페인 병을 티치는 소리. 여기지기 모여서 환담하는 웅성임. 신사들의 새까만 틱시도. 아낙네들의 눈부신 가슴, 그리고…….
현의 행복한 공상은 줄줄 펼쳐나가, 어쩌면 드디어 불란서 한림원 회원이 되는 데까지 이르렀을 텐데, 불시에 손끝에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퍼뜩 제 정신이 들었다. 담배가 꽁지까지 타들어와 손을 지진 까닭이다. 부옇게 자리가 패인 그 자리의 아픔은 잠시 후에는 쿡쿡 쑤시는 아픔으로 바뀌었다. 현은, 염치 불구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어 의자를 박차며 찻집을 뛰쳐나왔다.
한 손으로 담뱃불에 데인 자리를 감싸쥐고, 어두운 거리를 실성한 사람처럼 무작정 걸었다. 육체의 아픔에 곁들여 폭폭 꽃혀오는 바늘 같은 비웃음의 아픔
이 더 강했다. 에익 내란 놈. 만화……. 아쉬움 없이 딱 보기 싫도록 자기란 것이 싫어지는 느낌이었다. 강한 꾸지람이나 뉘우침을 다그지는 그런 잘 된 자
기 혐오가 아니고, 시들해진 연인의 하품하는 입 모습을 보고 불시에 느끼는 오입장이의 혐오 같은, 말하자면 그런 이리도 지리도 못 할 마음이었다. 재주도 없고, 게으르고 남을 사랑할 너그러움도 없고, 젠체하고, 그러면서 안달을 내고. 아아 퉤.
“각하 무슨 못 드실 것읕 드시었는지 침을 뱉으시는 모습이 매우 심상치 않으십니다. 매우.”
화가인 K가, 그의 익살맞은 몸짓으로, 현의 어깨를 넌즈시 두드리고 서있는 것이었다.
“어 잘 만났어.”
“뭐 별로 잘 만난 것 같지도 않은데 그래.”
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어느새 나란히 걷는다.
“난 요새 자신이 없어졌어.”
“자신? 자신이야 생각하기에 달렸지. 붙었다 떨어쳤다 하는 게 자신 아닌가?”
“벽창호로군. 나는 왜 이리 무딘 친구만 가졌을까 응?”
“그렇지도 않을 거야.”
K는 웃지도 않고 시무룩하게 말했다. 어느 선술집에서 마주앉아, K는 현에
게 이런 말을 했다.
“하긴 날마다 거리에 나와서 돌아다니고 보면, 마음만 지지고 울적하기만 해. 그래서 널찍한 집을 혼자 지키고 있는 친구애가 있는데, 그 집을 아지트로 하고 게서 모이고 소일하면서, 한동안 거리엔 발을 끊어보는 게 어떨까 해서. 그 애하곤 벌써 얘기가 되고 회원을 찾고 있던 참야. 현이가 꼭 한몫 껴야겠어. 그 친구란 작자가, 레코드 모으기가 취미라서, 큰 집은 몰라도 시시한 찻집에서 음악 듣는 따위가 아닐 거야. 왜 예술의 유파가 흔히 그련 은근한 모임
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예는 허다하지 않아? 그래서 조금 쑥스럽게 들릴지 몰라도 비밀 걸사의 창당 비슷한 설레임이 없는 것도 아니야.”
그리곤 그 결사의 뜻인즉 부엉이는 부엉이끼리 모여서, 그들 스스로 어떤 분
위기를 지어서 만들어, 그 속에 들어박힘으로써, 현실과의 쓸데없는 부대낌을 비키는 데 있다고 늘어놓으면서 K는 손으로 턱을 고이고 창밖을 내다보며 무슨 아리아를 휘파람으로 구성지게 불어대었다.
“비밀 결사아? 오라 어두운 등잔불 밑의 숨은 모임. 문간엔 피스톨 든 망보기. 어두운 거리. 뒤따르는 밀정. 모퉁이. 쓰러지는 그림자. 부라보! 좋아. 비밀결사란 말이 영 멋있어. 우리의 비밀결사를 위해 한 잔!”
큰 소리를 지르는 통에, 겉에 있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았다. 꽤 올랐다.
K는 헤어질 때 그 집 길찾기를 그려주었다. 쉬워, K가 지도를 그리면서 그렇게 말했듯이, 이 언저리의 생김새를 잘 아논 현에겐 그 집을 찾긴 쉬웠다.
지금 현이 담배를 피워물고, 이 휑한 길을 따라 올라가는 것은 이런 사연으로였다. 성곽처럼 돌담이 높직한 적산가옥 앞에 와서, 그는 우뚝 섰다. 오던 길을 돌아보니, 저 밑에 전차길이 보이고 멀리 도심지대의 불빛이 환히 바라보였다. 꽤 높은 언저리다. 성냥을 그어 문패를 읽어보고는, 구두를 탁탁 털면서, 기둥에 달린 벨을 지그시 눌렀다.
팔조짜리 방에, 모두 양식 세간이었다. 방 한가운데 굉장히 큰 둥근 탁자가 있고, 그 위에 부엉이가 한 마리 앉아있다. 세 사람이 그 탁자를 둘러 그림처럼 앉아있었다. 천기 사정이 나쁜 때도 아닌데, 웬일인지 천등을 켜지 않고 웬 놈의 촛대에 굵은 초가 한 대 꽂혔을 뿐. 방의 네 귀는 처음 들어선 사람에게는 컴컴한 굴 속 같았다. 탁자에 앉은 부엉이의 눈이 번쩍 빛났다. 현은, 대뜸, 그 기묘한 광경에 말할 수 없는 설레임이 가슴에 번지어가는 것을 느꼈다.
K도,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이기나 한 것처럼, 시큰둥하게 말은 없이 손을 들어 자기 옆자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자리를 잡고 비로소 모르는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부자연스러울이만치 초연한 태도를 지니고 앉았던 두 청년 중 한 사람이 현의 눈길을 만나자 눈을 찡긋한다. 그러자, 그 당돌한 인사가 그러나 조금도 당돌해보이지 않읕 그러한 분위기에 지금 자기도 어느새 들어와 있는 것을 현은 느끼는 것 이었다. K가 일어선다.
“회원이 다 모였습니다. 발당 선연을 M씨에게 부탁합니다.”
이러고선 털썩 자리에 앉는다. M이라 불린, 현의 바른편에 앉은 낯빛이 남다르게 창백한 청년이 닌즈시 일어나더니 미리 마련한 글을 읽기 시작한다.
“움직임의 길이 막혔을 때, 움직이지 않음이 나옵니다. 예스라고 하기 싫을 때 노우라 하지 않고 그저 입을 다무는 것도 또한 훌륭한 움직임입니다. ‘손쉬운 도피’란 말을 속물들은 멋대로 지껄입니다. 손쉬운 풀이가 아닙니까? 우리는 이 손쉬움에 대듭니다. 창조는 끝났습니다. 다만 기계적 되풀이만이 남았습니다. 신이 늘 꾀를 내고 사람은 덤으로 찍어낼 따름입니다. 천재가 피리 불면 무리는 장단을 넣습니다. 우리는 겉보기를 믿지 않습니다. 겉보기는 허울인 까닭입니다. 우리는 역사의 알몸을 보았습니다. 역사란 시간의 아지랑이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짱한 빈 손, 이것을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움직임을 저주합니다. 나쁜 미움은 ‘움직임’에서 비롯합니다. 슬기있는 이는 역사가 하루의 움직임을 뉘우치며 참회의 계단에 엎드리는 잿빛 노을을 이끕니다. 우리는 잿빛을 사랑하는 자로 나섭니다. 어찌하여 속물들은 ‘치기’를 그리도 두려워합니까? 우리는 분명한 마음으로 외칩니다. 우리는 움직임읕 마다한다고. 잿빛의 저녁놀 속에서만 슬기의 새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눈을 뜹니다. 이는 우리의 상징입니다. 우리의 강령은 심령적인 것입니다. ‘동지 서로 사이에 내적인 유대(紐帶) 감정을 이어가고 순수의 나라에 산다는 느낌을 이어간다.’ 이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겐 이같은 젊음의 숫기가, 다만 나이 탓인 한때 돌림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평생 가는 바탕이었던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 지키기를 어겼을 때, 회원 지마다 스스로 물러가야 하며, 만일 밖에 일을 새게 할 때, 그는 마땅히 정신적인 암살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정신적인 암살이란 그에게 ‘속물’이란 딱지를 붙이고, 절교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우리 당은 그레이구락부라고 불리워질 것입니다.”
M이 자리에 앉자, K는 그제야 회원들을 서로 터주었다. C라는 젊은이는 M의 친구로 K도 처음 통성하는 것을 보고 현은 거듭 놀랐다. 현이 오기 전, 인사도 않고 앉아있었을 그들을 그려보고서였다. 현은 선인문이 낭독될 때, 처음엔 약간 그 품이 장난 같은 데 쓴웃음 비슷한 것을 느꼈다. 그러나 선언이 끝날 무렵에 가서는, 아주 다른 생각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적어도 이것은 티없는 매임이었다. 치기(稚氣)라면 으뜸 값진 치기였다. 현이 처음에 단수가 높은 체하고 쓴웃음지으려던 몸짓은, 이들의 맑음 앞에 금방 허물어지고 말았다. 악마의 서슬도 어린 애기의 웃음 앞에는 맥을 못 쓰는 것이 아닐까? 그보다도, 현 자신 속에 있던 감상성에 대한 깔봄이, 알맞은 낌새 속에서 크 힘을 잃어버리고, 제 모습이 드러났다고 하는 것이 정말이겠다. 갈래갈래 찢긴 나. 나의 마음 놀림이나 행동을 지켜보고, 흉보고, 놀리는 또 다른 나로 말미암은, 스스로를 우스개삼는다는, 참을 수 없이 비뜰어진 마음보가, 이 순간 삐그덕 소리를 내면서 바르잡히는 것을, 현은 분명 느끼는 것이었다.
“구원이다!” 현의 가슴에 그렇게 속삭이며 지나가는 소리가 있었다. 그는 새삼 회원들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어느 얼굴이랄 것 없이, 현은 거기사, 분명 한 한패들을 알아보았다. 현은 양양하고 따뜻한 밀물이 자꾸 가슴에 솟아오르고, 또 그것은 그를 말이 많게 만들었다. 수다스러움도 또한 믿음의 증거가 아
닌가?
박제의 부엉이의 눈은 맑아만 가고 밤은 깊어갔다.
그레이구락부가 만들어진 지 달포나 되어, 회원이 하나 늘게 되었다. 그 앞뒤인즉 아래와 같고 주인공은 현이 맡아본 셈이 되었다. 하루는 전에 늘 드나들던 찻집에 별일 없이 훌쩍 들르게 되었다. ‘전에’라고 하는 것은 그레이구락부의 회원이 되고서는 다른 회원도 마찬가지였지만 현은 거의, 전에는 살다시피하던 찻집이니 음악집에서 발을 떼고 말았던 것이다. 그들 회원들에겐 그레이구락부는 이제, 숨과 같은 것이어서 하루도 걸러서는 배기지 못하였고, 만나면 반드시 온 하루를 뿌리를 빼고야 말았고 밤을 새기도 하였다. 야릇한 일이지만 다른 어떤 단체나 모임에 낀다는 것, 회원 아닌 사람과 회원보다 더 친한
사이를 맺는다는 것은 안 될 일이다 하는 기운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오늘 현이 이 찻집에 들른 것은 정말 오랜 만이었다. 옛 단골 손님에게 알은 체를 하며 문안하는 카운터 쪽에, 끄덕 고개를 숙여보이고 자리에 가 앉자, 우루루 달
려드는 옛 패들이 저마다,
“어디 갔더랬나?”
“원, 통 보이지 않으니.”
“연애하는 모양이군?”
비슷한 말들을 뇌이며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 그러고 있는 그들 옆으로, 웬
여자가 지나가는데, 패 중에서
“오랜 만입 니다. 재미 어떻습니까?”
그런즉 저편의 대답이,
“무재미.”
이러고는 휙 지나가버리는 것이었다. 깨끗하다. 다른 여자 같으면 퍽 닳아빠진 것으로 보이거나, 적어도 우스꽝스리 보였을 그 수작이 조금도 그런 티가 없을 뿐더러, 이 친구들도 그러려니 하는 일이 더욱 그럴 듯했다.
“웬 여자야?”
“응 미스 한이라고 B대학교에 다니는 앤데 저래 뵈도 미운 데가 없는 애야. 왜 입맛이 당겨? 내 터주지. 응?”
“흠 흠.”
현은 말 웃음을 웃고 앉았는데, 그 여자가 다시 이편으로 돌아오는 것이 보인다. 쓱 옆을 지나 아까 앉았던 자리로 가 앉는 것을 현은 겉눈질로 보았다. 패들은 한참만에 우루루 일어서면서 현더러도 한 잔 하러 가는데 어때 끼겠나,
이러며 끄는 것이나,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무슨 생각이 있은 것이었다. 그들이 문 밖으로 사라지자 현은 불쑥 일어서서 그 여자의 바로 맞은 편 자리로 옮겼다. 물론 예까지는 있을 수 있는 일이지반, 그 다음 현은 종이를 한 장 꺼내어 이런 글발을 적었다.
――당신이 아주 궁금합니다. 궁금함의 뜻에 대해, 촌뜨기처럼 묻지는 마십시오. 남자고 여자고, 어떤 특이한 풍모 때문에 처음 만난 사람에게 강한 끌림을 준다는 일을 아실 테니깐. 당자에겐 자랑일 수 있고 다른 쪽에는 기쁨일 수
있는 그런 일입니다. 본인은 어떤 비밀결사의 당원인 바, 귀하에게 입당을 간절히 권고합니다. 결코 귀하의 명예에 더럽힘 이 없을 것입니다. 즉답을 바랍니다 ―
그리곤 말없이 앞으로 밀어보냈다. 약간 놀라는 눈치가 있었지만 일어서거나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러면 그렇지, 현은 속으로 먼지 제가 사람 보는 눈에 으쓱해지며 저으기 느긋했다. 그녀는 쭉 훑어 읽고는 종이를 살짝 엎어놓으면서 나무라는 듯이 웃고,
“마다하면?”
“숨길 일이 알려지고 보면, 죄송스러우나 험한 일을 각오하셔야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런 으름짱에 당장에야 꺾이지 않을 여자가 있을까요?”
현은 두번째 속으로 손뼉쳤다.
이 말을 구락부에 가져왔을 때,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현의 경거망동을 입을 모아 나무라는 것이다. K는,
“안 돼. 우리 구락부가 오늘의 번영과 순수성을 지킨 것은 남자들만이었다는데 열쇠가 있는 거야. 여자를 넣어보아. 반드시 틈이 생길 거란 말야. 뭐 그런
뜻이 아니더라도, 여자가 끼어서 조심스럽고 그래서 치러야 할 겉치레를 어떻게 감당할 텐가? 안 돼, 안 돼. 멋대로 움직인 현일 징계 처분해야 돼!”
C는,
“예로부터 비밀결사가 무너진 뒤에는, 여자가 있었단 말이거든. 왜 저 스탕달의 〈바니나 바니니〉를 못 봐? 설사 현의 말대로 그녀가 그렇게 멋지고 같이
놀 만하다 해도, 생소한 남자들 틈에 그녀가 혼자서 과연 숨쉴 수 있을는지 그
점은 아무도 보장 못 한단 말야. 안 될 말. 그만둬.”
이렇게 K를 밀고 나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M은 레코드에서 천천히 떠나며,
“그러나 생각해보아. 만일 우리가 거부한다 하면, 우리 일은 밖에 드러나는 거야. 그리고 자네들은 이성이라는 데 신경을 쓰는 모양인데, 그건 자네들 위태로운 인격을 스스로 들고 나오는 것이야. 벌어진 일을 어떻게 여미느냐가 문제야. 원칙론은 쓸데 없어.”
이렇게 되어, 형님들이 이러쿵지러쿵하는 동안 철없는 말썽을 일으킨 막내동생 꼴이 된 현은, 구석에 처박힌 채 발언권을 빼앗기고 있었다. 마침내 몇 가지 꼬리를 달고 사람을 보아 받자, 이렇게 되었는데 꼬리란 이렇다.
첫째, 그녀를 이성으로 여기지 않는다.
둘째, 그녀와의 개인 플레이를 못 한다.
셋째, 무슨 일이든 구락부의 이름을 머리에 두고 움직인다.
들어온 첫날부터 그녀는 선배 회원들의 걱정을 말끔하게 씻을 만큼 좋은 느낌을 주었다.
“처음 종이를 불쑥 내밀 땐 사실 자리를 떠날까 했으나, 미스터 현의 얼굴을 보니 아, 이건 불량 아동이 아니야, 그렇게 느껴져서 눌러앉았어요.”
이러면서 그 권유문서를 내놓았다. K는 부엉이 눈알읕 빼고 그 뚫린 구멍에
서 예의 밭당 선언서를 꺼내 읽고 그녀의 선서를 받은 후, 현이 쓴 권유문도 구락부의 사료(史料)로서 값이 있다고 하여, 선연문과 같이 구멍에 밀어넣고 도로 눈알을 박았다. 그리곤,
“음 현이 웬만한데, 기막힌 연애편지야.”
이러면서 사뭇 주억거리는가 하면 C는 집회까지의 파란곡절을 말해주고,
“이러한즉, 우으로 선배 회원을 받들며, 구락부의 이익을 지켜야 하고, 구락부의 청소, 정돈에 소홀함이 없도록.”
어쩌고 하는 통에 그녀는,
“어머나 이건 종으로 붙들러온 셈이네요.”
하고 우는 소리를 했다. 그들은 새 회원을 반기는 뜻으로 영화 구경을 갔다.
(앝트 하이델메르크〉를 각색한 그 영화는, 그 치닫는 삶이며 젊은 객기가, 지금의 그들 느낌에 거슬림없이 안겨오는 바가 있었다. 이날 밤 그들은 미스 한에게 ‘키티’라는 이름을 주고, 구락부에서 그녀를 부르는 이름을 삼기로 하였 다.
그레이구락부는 눈부신 한창 때를 보냈다. 구락부는 그들에게 바라던 것보다 더한 것을 주었고, 늘 어김없는 보금자리였다. 모이는 날이 정해있는 것도 아니요, 때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 사람씩 어느새 모여들어선, 또 어느새 없어지곤 하였다. 무슨 정기총회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M은, 사람이 오건 말건 레코드만 뒤척이며 앉아있었고, K는 그림 도구를 가져와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창에 가까이 놓인 난로는 늘 벌겋게 타고 있어서, 현은 난로와 창문 사이에서 서성거리며 지나는 게 일쑤였다. 추위를 타서가 아니고, 그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지루하지도 않은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그의 낙이었던 것이다. 난로불을 들여다브는 것이 낙이라면 웃을지 모르나, 웃는 편이 속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태공망이 낚시질한 것이나, 달마가 벽을 보브고 앉았던 것이나, 당구를 즐기는 여드름쟁이나, 낙이란 점에선 매일반이다. 남의 즐거움을 받아주는 것이 민주주의고, 남의 취미에 대한 너그러운 아량이 얼마나 동네를 숨돌릴 수 있게 만드는 것인가. 이것은 현의 지론이다. 그래서 현은 ‘난로의 기사’라는 이름을 받았는데 ‘난로의 기사’는 어느덧 땔감을 날라오고 재를 털어내는 ‘난로의 소제부’를 겉들이고 있었다. 키티는 또 굉장한 호콩 미치광이여서, 늘 호콩 껍질을 딱딱 부수고 앉았는 것이, 호롱을 먹으러 태어난 여자로 보였는데; 키티의 호콩의 힘은 어지간했다. 즉, 키티는 호콩 서너너덧 알을 가지고, 구락부의 아무도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호콩의 끌림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한번은 K가 크로스 표지의 으리으리하게 꾸민 드가의 선집을 호콩 한 봉지와 바꾼 일이 있었다. 그날 K가 이것을 가지고 와서, 한 장 한 장 들여다보고 앉은 것을 이윽히 바라보고 있던 키티는, 단 한 알도 호콩 인심읕 쓰려 않는 것이다. K는 사정을 하다 못해 골이 잔뜩 나서 홧김에, 그럼 이걸 줄 테니 바꾸어, 이렇게 되었던 것이다. 이튿날 K는 먼젓날 흥정을 물리자고 했다가 대번 K는 회원 모의 뒤끓는 나무람과 삿대질의 과녁이 되어 본전도 못 찾고 말았다. 예의 호콩으로 매수해 두었던 것이다. C는 낮잠자기와, 키티에게 ‘호콩 하나만’을 구걸하는 것을 사는 보람으로 알고 있었다. 가끔 M의 할머니가 기웃이 들여다보고 갈 때는 키티는, 꽤 손이 크게 호콩을 바치는 것이 예사였다. 그것은 야릇한 분위기였다. 어른이 될 나이에 있는 사람들이 죽자고 톰 소여의 해적굴에 매달리는 그런 것이라고나 할까.
“움직임의 손발을 갖지 못하고, 내다보는 창문만을 가진 인간형이 있다. 손하나 발 하나 까딱하긴 싫고, 다만 눈에 보이는 온갖 빛깔, 형태를 굶주린 듯 지켜봄으로써 보람을 느끼는 사람, 이런 사람은 ‘창’ 타이프의 사람이다. 창은 두 가지 몫이 엇갈린 물건이다. 창은 먼지, 밖으로부터 들어앉은 방을 막아준다. 거치른 행동과, 운동의 번잡에 대한 보호를 뜻하는 ‘건물’의 한 군데인 것이다. 블라인드를 치고, 커튼을 드리우고, 덧창을 달고, 자물쇠를 채우고 하는 모든 것이, 이 창의 닫힘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창은 이같이 닫힌 집이 바깥과 오가기 위한 자리다. 창에서 이루어지는 바깥하고의 오가기는 오직 눈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눈으로 하논 사귐은 떨어져있고 번거로움이 없다. 그는 화창한 삶의 봄과, 매서운 싸움의 겨울을 바라본다. 그는 즐거움에 몸을 불사르지 않는 한편, 괴로움에 대하여 저주하지도 않는다. ‘누리는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좋았다.’ 하는 말을 그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누리가 만들어진 것은 아뭏든 좋은 일이었다.’ 하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이런 창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창 없는 집과 같다. 그는 좁은 생각과 외로움으로 숨막히고 끝내 미칠 것이다. 그레이구락부는 그러한 ‘창’의 기사들의 기사단인 것이다. 그들은
투정보다도 노래하여야 할 것이 많은 누리를 받아들였다. 창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거의 아름다왔다. 창으로 바라보는 인물은 모두 소설 가운데 주인공처럼 흥미를 돋우며, 안과 바깥과의 ‘어울림’ 속에 살아있는 인물이었다. 창은 슬기있는 사람의 망원경 이며, 어리석은 자의 즐거움이 아닐까? 이것이 그레이구락부의 믿음이다.”
이것은 ‘난로의 기사’라는 벼슬을 받았을 때, 현이, 창에 가까운 자리를 변호하기 위해서 내놓은 한자리 말씀 가운데 한 대목을 옮긴 것이다. 어떻든 그레이구락부는 창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것도 아무 데나 붙어있는 너절한 게 아닌, 그린 창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구락부의 눈이었다. 말씨가 떨어지면 누구고 으례껏 이 창가로 온다. 동편으로 난 커다란 창문으로는, 이랑이랑 이어진 지봉을 거쳐, 멀리 남산 기슭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도시의 전모를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것은, 그것 스스로 사람으로 하여금 깊으디 깊은 속으로 끝 모르게 끌고 들어가는 힘이 있었다. 가지각색의 모양과 빛깔의 기와며 벽의 빛깔. 서울의 집들의 색채는 요즈음 들어 부쩍 울긋불긋해진 것만은 사실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집에다 울긋불굿 칠하는 것을 그닥 즐기지 않았던 모양이나, 지
금은 안 그렇다. 맑게 개인 겨울 하늘 아래 굽이굽이 펄쳐진 지붕들의 색깔. 저 새빨간 양철지붕 밑에는 사과꽃처럼 진한 삶이 있는 것일까. 저 새파란 지붕 밑에는 창포꽃처럼 숨쉬는 여자의 슬픔이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 모든 지붕들도 이 찬란한 저녁 노을의 때가 되면, 빠짐없이 한 가지 잿빛의 너울을 쓰
는 것이다.
현은 K에게 말했다.
“사람은 외로울 때 창가에 서는 것이 아닐까?”
K는 유리에 얼굴을 누르며 아득히 내다보며 받는다.
“사람은 외로울 때만 창가에 다가선다, 하는 게 더 옳을 거야.”
“맞았어. 외롭다는 것, 친구가 있는데, 그레이구락부가 있는데 외롭다는 건,
근데 웬 소리야?”
K는 대답 대신 이윽히 현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알면서 묻는 거야? 몰라서 묻는 거야?”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하니깐.”
K는 소파에 벌렁 나가누웠다.
“외로움이란 건 즉 여자야.”
“여자?”
“그렇지.”
“시시한 프로이트 취미야. 이젠 낡은 이론이야. 사람은 여자 때문이 아니라도 외로울 수 있네. 돈 후안이 느끼는 외로움은 무어가 되지 ? 그러면…….”
“그럴싸한 말이지만 돈 후안의 이야기는 반증이 못 돼. 돈 후안의 허전함은 마찬가지로 또 다른 여자의 가슴에서만 메꾸어진단 말이야. 여자란, 존재의 막다른 골목의 담벼락에 붙은 문이란 말이야. 우리는 그 너머로 갈 수 없어. 언제까지나 열리지 않는 문, 아주 녹 슨 문, 사람이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마지막 물건이란 말일세.”
“그러나 문 그 자체가 목적인 건 아니잖아. 문은 어디까지나 그 건너편에 있
는 그 무엇으로 가는 길목일 뿐이야.”
“그런데 그 문이란 영원히 잠겼으니깐 결국 마지막 목적이지 뭐야.”
“옳아. 턱없는 자리를 사태를 틈타서 차지한 것이 되는구먼.”
“옳거니. 하지만 여자가 차지했다느니 남성 모두가 멋대로 뒤집어씌운 셈이지.”
“그걸 여자는 마다하지도 않고 눌러쓰고 있다?”
“그런데 영리해서가 아니라 염치없어서.”
이때 그들의 뒤에서,
“신사 여러분 커다란 잘못이로소이다.”
이런 소리가 났다. 두 사람 말고 방에는 아무도 없었으므로, 그들은 놀라서 돌아보았다. 어느새 왔는지 키티가 상글거리고 서있었다. 새로 지은 호움스런 오버에 숄을 뒤집어쯔고 눈만 내놓고 서있는 맵시가 여느 때보다 여성다와 보였다. 키티는 오버를 훌훌 벗으면서,
“그렇지 않은 줄 알았더니 여기가 꽤 낡으셔.”
하며 자기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하하하…….
손쉽게 현과 K는 웃는 재주밖에 없었다.
“여자들한테 그런 멋대로의 풀이를 붙인다는 건 남자들한테도 안 좋아요. 이쪽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변변히 굴겠어요. 제가 말씀해드리지요. 여자는 남자와 꼭 같이 사람입니다. 그리고 아까 그 이론은 여자가 남자를 대할 때도 역시 들어맞을 수 있는 것이구요. 왜 벌써 입센시대부터 환해진 이야기가 아니에요? 아니 입센보다도 숫제 사람이 만들어진 처음부티 남자와 여자는 똑같은 짐승이었지요. 뭡니까, 사회적 위치니 하는 겉보기 때문에 사람의 본질을 놓치는 건 어리석다고 믿어요. 그렇다면 두 분께선 나 역시 그런 안
경으로 보시는 모양이군요, 네?”
“결코 아닙니다. 꼭 같은 벗입니다. 그건 뭐 잘 아시면서 여왕께서.”
“점점 안 되겠는걸. 자격을 몰라준다면 난 물러갈 테야요.”
키티는 일부러 연설조이던 말투를, 이렇게 평상대로 고치며, 턱 허리에 손을 버티는 것이다. 현은 난처한 일이 되어 도대체 무슨 그럴싸한 둘러댈 말이 없을까 했으나 이렇다 할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K가 이런 땐 그 사람이었다.
“무슨 소릴. 함부로 당을 나가는 자는, 그 마지막이 어떻게 되는지 당신도 잘 아는 일. 어느 캄캄한 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이렇지…….”
하면서 비수를 곤두잡고 허공을 푹 쑤시는 시늉을 해보였다.
“농담, 농담, 절대 농담입니다.”
키티는 이렇게 말하면서 호콩 봉지를 내놓았다. 그러는데 M이 들어온다. 집 주인인 그는, 손님이 있건 말건 휭 나갔다 어느새 들어오고, 그의 집인지 그가 손님인지 통 알 수 없는, 짜장 무정부주의적인 구락부의 분위기인 것이었다. 키티가 일어서서 레코드를 올려놓았다. 무겁고 아름다운 가락이 지금의 그들 모두의 무드처럼 물결쳐 나왔다. 전축에 기대어 선 키티의 얼굴이 어둑어둑한 방안에서 박꽃처럼 보얗게 보였다. 현은 불현듯 속으로 ‘나는 처음부터 키티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며 섬뜩해졌다.
어느덧 여름도 다 가고, 그레이구락부의 챵가에 선 전나무의 가는 앞사귀가 한 잎 두 잎 지는 철이 되었다.
현과 키티는 구락부를 향하여 나란히 걸어가며, 지금 막 갈라지고 온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예호바의 증인’이라고 불리우는 기독교파의 사람들이었다. ——한번 꼭 와보시오. 교리를 알아본 끝에 믿고 안 믿고는 자유입니다――전도사가 찾아와서 그렇게 권하고 갔는데, 혼자 가긴 싫고 같이 가자고 키티가 졸라서 현은 따라나섰던 걸음이었다. 분명히 그들의 모임에는 신선한 종교적 분위기가 있었다. 예수의 일이 잊그저께 일어나기나 한 것처럼 안절부절 못해 하논 사람들 같았다.
o 예수 낳은 날은 성경에 말이 없다.
o 예수의 그림은 뒤에 꾸며낸 것이다.
ㅇ예수의 형틀은 십자형이 아니고 한 일자형의 막대였으므로, 십자가를 믿음
의 부적으로 가슴에 품어온 것은 교회의 무지와 승려의 기만이었다.
o 넋은 가멀성 이다.
ㅇ 곧 예수의 나라가 땅 위에 세워진다.
이같은 교리를 성경 연구를 통하여 내세우며, 성경의 여러 편 중에서도, 지금껏 비유적으로만 알려져오던 묵시록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것이 그들의 말이었다. 이 교파의 처음은 십구세기 말에 비롯한다고 하며, 미국 본부에서 나오는 (파수대 WATCH TOWER》라는 책을 가지고 성경 연구를 하는 것이
모임의 큰 일이었고, 직업 목사를 안 두기로 하고 있었다. 그 너무나 자로 잰 성경 해석에 현은 도리어 떨떠름해졌다.
“굉장한 사명감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야. 열심히 깨우치려고 들거든.”
현은 말했다.
“하긴 요즈음 드문 사람들이야. 습관으로 교회 나간다는 것과는 달라서, 거의 기성 교파에서 떨어져나온 사람들인 걸 보면, 이래도 그만 지래도 그만이란
태도가 아닌 것은 분명해.”
“그래도 구약에서 누리를 만드는 대목이 현대 물리학의 이론과 맞는다는 주장은 지나처. 성경의 말을 낱낱이 과학적인 증명으로 밑받침해나가는 식인데, 과연 성경이 과학의 증명을 필요로 할까?”
“오히려 과학으론 알 수 없고, 그러나 정말 일어난 일이라고 해야 하겠지.”
“성경은 증명하려 들 것이 아니라, 다만 그렇다고 완강히 우기기만 하는 것이 하나뿐인 길이야. 과학상의 학설이 바뀔 때마다 성경 해석이 달라서야, 어디 마음놓을 수 있나. 성경의 과학적 풀이란 것처럼 성경에서 동떨어진 것은 없을 거야.”
현은 이렇게 말하면서 문득 하늘을 쳐다보았다. 눈부신 별밤이었다. 키티는 따라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그러니깐, 예수가 물 위로 걸어오는 것을 본 사람만, 예수가 무덤에서 나와 더불어 이야기한 자리에 있은 것을 본 사람만 믿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불교하고는 또 사정이 다르거든. 하나는 사실이고 하나는 철학이니깐. 철학은 천
년 후에 읽어도 철학이지만, 사실의 기록은 사실 자체는 아니니깐.”
“보지 못했으니깐 못 믿는다?”
“보지 않고 믿는 자는 악마야.”
“보지 않고 믿는 일이 얼마나 많아. 지구가 둥근 걸 보았나? 뭐.”
“여자는 역시 깡통야. 그것과 이것과 어디 같아.”
“어렵쇼. 또 여자를 끄집어내. 그 상투는 여간해선 못 자를 모양야.”
현은 이마에 손을 붙이며 꾸벅하고 미안을 해보였다.
“그건 그렇고 키티, 사람은 왜 하느님 이야기를 이렇게 알고 싶어할까?”
“왜 천주교 교리문답을 못 봤어. ‘사람은 왜 세상에 났나뇨.’ 왈 ‘사람은 천주를 알고 천주를 공경하기 위하여 세상에 났나니라.’ 그쯤 되겠지.”
현은 그 대답 아닌 대답에 끄덕였다. 그는 골치아픈, 신에 대한 궁금증을 쓸데없는 일이라고만 보고 싶지는 않았다.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흐르면 절로 그 물음의 긴박감이 가셔버릴 것이라면, 오히려 그런 얼렁뚱땅하는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우격다짐으로 쥐어박아서 해답을 끄집어낼 아무런 재주도 없었다. 믿지도 않고 안 믿지도 않는, 잿빛 안개가 짙게 휘감겨오는 때면, 애써 지어놓은 초라한 결론의 울타리는 너무나 무르게 허물어지면, 또 다시 앙탈을 부리는 마음을 타이르는 자기와의 싸움을 시작하여야 하고 하는, 그런 허망한 마음이 정작 알고 보면 너무나 허황한 이야기를 떠들고 있는 지들, ‘예호바의 증인’ 같은 모임에까지 서성거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구락부에 닿았을 때 M은 보이지 않고 C가 혼자서 의자에 누워있었다.
C는 머리도 돌이키지 않은 채 대뜸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나?”
느릿느릿 외우듯 이러는 것이다.
“천주를 알고 천주를 공경하기 위하여 사느니라.”
현은 경을 외우는 가락으로 그런 대꾸를 한다. C는 또,
“그러면 처연주는 어디 있나뇨?”
현은 더 대답을 않고 자기도 소파에 벌떡 누워버렸다. 감자기 조용해졌을 때, 바시락하는 껍질을 부수는 소리가 나자, C는 깜짝 놀라 일어나면서,
“나 한 알만.”
키티에게 손을 내민다. 현은 속으로 지으기 놀랐다. 어느새 지 호콩을 샀을까. 정말 귀신 같은 노릇이었다.
“한 알만. 덕분에 고귀한 신앙문담을 깨뜨려버렸어. 그 손해 배상으루.”
“시큰둥하게 웬……, 그저 곱게 나올 것이지. 그런 맘보니깐 섭리를 느끼지 못하는 거야.”
“알아 알아. 나는 유혹에 너무 약해. 그놈의 바시락 딱하는 소리에 그만…….”
“신학이 온데 간데 없이……?”
“바로 그거야. 그래서 홧김에 그냥 한 알 해야겠어.”
“호호호. 홧김에 한 알……자.”
현은 숨을 내쉬었다. 구락부에만 들어서면 모든 일은 이렇게 쉽게 풀리지 않
는가? 터무니없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한편, 자기와 둘이 있을 때와 구락부에서의 키티의 노는 모양에 틈을 느끼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분주히 오가는 사람마다 가슴에 선물이 안겨있고, 그러한 사람들의 머리 위로 탐스러운 눈이 펑펑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네온 글자와 꾸미개들이 마치
그림 같은 거리에 흥겨운 크리스마스 캐럴의 가락이 확성기마다 흘러나와, 온통 명절 바람을 흐뭇이 빚어내고 있었다.
길 모퉁이 어느 장난감 가게 앞에, 현의 일행 다섯은, 쇼윈도우를 들여다보며 서있었다. 인형, 큐핏, 털 강아지, 기린, 맥곰, 미키마우스, 코끼리, 꼬마 사람……. 쇼윈도우에 벌여놓은 장난감들은 조용히 숨쉬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나그네의 고향 그리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원래 이 세계의 시민들이 아닌 것이다. 정말 기린의 목은 저렇게는 길지 않으며, 흰곰의 주둥이는 실은 훨씬 작을 것이요, 미키마우스 같은 쥐가 어느 집에 있단 말인가?
특징을 부풀린 아름다움, 동화의 나라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하여 붙들려온 먼 나라의 포로들이었다. 사람은 그의 어린 시절
을 이들에게서 짙은 외로움을 매우며 자란 탓으로, 어른이 되어도 영원히 인형
을 찾아헤매는 것이 아닐까? 붓다니, 예수니, 마르크스니. 장난감의 그 간추린 아름다움에는 순수함이 있었고, 그러므로 현은 소리 없이 흐르는 핏줄을 느끼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교도의 마음이 빚어내는 감상(感傷)일까? 그렇기도 하고 또 그것만도 아니다. 현은 우울하였다. 그레이구락부는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사람이 모여서, 어떤 한 가지 일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줄을, 아마, 처음 깨달았다. 다치기 쉬운 젊은 마음의 야릇한 소용돌이. 참 그것을 어떻게 옮기면 좋은 것일까? 아무 이렇다 할 까닭도 없이 시들해져서 서로 손을 멜 궁리를 하고 있는 연인들과 같은, 그러한 마음의 풍경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니 그런 장사꾼 같은 풀음을 하는 자를 저주하라. 어디서부터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레이구락부가 허물어져가고 있다는 일이다. 그레이구락부가 ‘내척인 유대감정을 이어가고 순수의 나라에 산다는 마음을 이어간다’는 것이 그 강령인 바에는.
현은 배반자였다. 밀물처럼 키티에게로 쏠리는 마음. 현은 그 밀물을 막아낼 수 없었다. 괴로와했다. 그러나 그러한, 구락부에 대한 충성심을 완강히 밀어내는, 또 하나의 힘이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회원들의 마음에 비치지 않을 수 없었다. 키티는 현의 바로 곁에 서있었다. 현은 키티의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서 그녀의 손을 더듬었다. 더듬는 현의 손바닥에 키티는 동글동글하고 따뜻한 물건을 살짝 쥐어주는 것이다. 현은 곧 그것이 무언지 알 수 있었다. 군밤. 모른 체하고 슬쩍 군밤 한 톨로 때우는 키티의 상글상글 웃어가는 그 태도가 현을 안달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들이 구락부로 돌아온 것은 열두 시가 지나서 였다.
“자, 이교도의 성탄제를 지내잔 말야.”
K는 노래 부르듯 하면서 들고 온 꾸러미를 원탁자 위에 쏟아놓았다. 현도 호콩과 도나스를 부어놓으면서 유쾌하게 외쳤다.
“그래 이교도의 성탄제, 그레이구락부의 송년 반찬회야. 아아, 사랑하는 그레이구락부!”
키티는 창가에서 밖을 보면서,
“눈발이 점점 심해져. 아주 새하얀걸. 아무 것도 안 보여.”
M은 차이코프스키의 (파세틱〉을 걸어놓고, C는 다섯 개의 촛대에다 불을 달았다. K는 모두 불러앉힌 다음, 맥주 잔읕 높이 들었다.
“그레이구락부의 영광을 위하여.”
다섯 개의 잔이 짝짝 소리를 내어 부딪쳤다.
“얘, 맥주 재고는 넉넉해 ?”
“염려 말아. 두 상자면 부족할까?”
“만세! M선생을 위해 건배!”
키티만 따르지 않는다. K는 호통치는 것이다.
“키티 이건 무슨 뜻이지 ?”
“맥주 두 상자를 비워버리면 난 주정뱅이 틈에서 어떡허구.”
K는 가슴이 미어지게 한숨을 쉰다.
“오호라! 신사 여러분. 우리는 도매금으로 넘어갔읍니다. 여왕께서는, 우리 인격을, 맥주 두 상자 안에서만 믿는다 이런 말씀입니다.”
M은 더 으르렁거린다.
“오인은 이 치욕의 자리에서 감히 퇴장하는 영광을 가지는 바입니다.”
키티가 손이 발이 되게 빌어서 겨우 고비는 넘어갔다. 현은 근래에 없이 즐거웠다. 그러면서도 이 흥겨움이 오히려 지마다 꾸며내는 안간힘―ㅡ 어려움을 보지 않으려는 딴전부리기같이도 여겨졌으나, 대뜸 ‘이놈아 네놈이 그게 비뜰어진 소갈머리란 말이다. 동지의 파멸을 세고 앉았는 놈아.’ 이런 소리가 들렸다. 마치 다른 누구, M이나 C가 말하지 않았나 싶도록 자기도 깨닫지 못한 속의 꾸짖음이었다. 현은 미칠 것 같았다. 현은 불쑥 일어나면서 외쳤다.
“여러분, 그레이구락부를 위해 즉흥시를 읊고자 합니다."
박수와 환성이 일어났다.
우리는 안다, 저 짙푸른 정글에
큰물지는 욕망을
햇바퀴는 피묻은 미움처럼
왜 저렇게 타야 하는지를
우리는 안다
큰 비 내리는 산마루를
암컷을 데리고 타고 넘는
표범의 꺾임 없는 마음을
우리는 모든 것을 안다
누리를 빚던 날에
데미우르고스가 떨어뜨린
비망록을 찾아냈으므로
순결의 수풀에 살며
비치는 슬기의 물을 마시는
현자는 안다
가 없는 하늘의 흩어지는
지 흰 구름의 마음을
너 삶을 사랑하여 서러운 무리여
오라 다함없는 잿빛의 수풀 속
순결의 물가로 오라
젊음은 할 일 없고
사랑이 다하여 짐짓
미움에 딩굴어도 보며
붉은 술잔 속에 영원을 뚫어보며
웃고 또 울자는
오 GREY구락부
너는 내 사랑
너는 내 목숨
아 바람에 훼살짓는
젊음의 깃발 너
GREY구락부
난장판이 벌어졌다.
K는 현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하는가 하면, 또 M은 현의 다리를 어찌자는 것인지 마구 잡아당기고, C는 입에다가 무작정 맥주를 부어넣어 그를 숨막히게 하려고 노렸고, 키티는 도나스와 호콩을 마구 현의 얼굴에 갈기는 것이었다.
밤은 깊어갔다.
새벽녘이 되어 가까운 데서 문득 노래 소리가 일어났다. 모두 다 창으로 몰려가서 유리창을 열어젖히며 밖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눈은 멎고, 흰 것이 눈부시게 펼쳐진 위로 크리스마스 노래가 울려온다. 밤중 난데없이 일어난 합창에는 무언가 당돌한 깨끗함이 있었다.
“합창대야.”
“선물을 가지고 가야지.”
“좋아 좋아.”
“빨리 빨리.”
그들은 쿵쾅거리며 계단을 내려가, 뒤뜰을 거쳐서 뒷문 쪽으로 달려갔다. 현은 모퉁이를 돌아가다가 키티가 호콩 봉지를 안고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키티의 팔을 붙잡았다. 키티는 마주볼 뿐이었다. 현은 뜰 안 소나무에 기대어 키티를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키티의 손에서 호콩 봉지가 떨어지고, 나무가 지에 쌓였던 눈덩어리가 미끄러떨어져, 키티의 등에서 부숴쳤다. 현은 멍한 기쁨 속에서 이제 키티도 가버리는구나…… 그런 생각읕 흐릿하게 쫓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며칠 후, 현은 그날 이후 처음으로 구락부에 나갔다. 키티를 어떻게 대할지. 구락부로부터의 진퇴여부, 그런 일 때문이었다. 그러나 끝내 이렇다할 매듭을 짓지 못하고 아뭏든 나가보기로 하였다. 문을 열고 들어
서자 현은 너무나 뜻밖의 광경에 그만 딱 얼어붙고 말았다. 벌겋게 타는 스토브의 불빛읕 빛무리처럼 뒤로 하고, 키티가 거의 다 벗고 서있고, 그 앞에 벽을 등지고 따 화구를 버티고 붓을 놀리고 있었고, M과 C는 여전히 소파에 누워서 천정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현은 간신히 낯빛을 꾸미면서 한편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화냥년, 전날 밤 일은 아무 것도 아니다. 오해 말라 이런 말이지, 화냥년…….”
“뭘 깊어지구 있어요?”
키티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어느새 옷을 입고 방글거리고 서서 “K가 전람회에 누드를 내겠다고 해서 내가 모델이 돼주기로 했지. 뽑히면 그림값을 빈씩 나누기로 하고.” 이러는 것이었다. 현은, 키티가 감자기 우쭐우쭐 키가 커지면서, 벌써 어울릴 수 없는 거인족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언제 어떤 핑계로 탈퇴하느냐 그것만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끝장은 뜻밖에도 빨리, 전혀 짐작 못한 모습으로 찾아왔다. 그 날도 현은 요즈음 날씨처럼 컴컴한 가슴을 안고, 해질 무렵이 다 돼서 구락부로 나
오고 있었다. 넓은 길에서 첨어든 골목에서 한 다섯 발자국 옮겼을 때였다.
“이봐.”
이렇게 부르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났다. 그 짧은 한 마디에 서린 차가운
것이 그대로 현의 등골을 타고 흘러갔다.
휙 돌아보는 현의 눈앞에 낯 모르는 사나이가 서있었다.
“난 P서 형산데…….”
이렇게 자기를 밝히고 그는 현의 이름을 다쳤다. 그렇노라는 현의 대답에,
“서까지 좀 가.”
하고 동행을 요구한다.
“아니 무슨 일로?”
“가면 알지.”
“가면 알다니요? 영장을 보여주십시오.”
“무엇이, 건방진 자식!”
딱하고 자기의 뺨이 울리는 소리를 현은 들었다. 그는 형사실까지 와서 또 한 번 놀랐다. K, M, C가 먼지 와있다. 현의 어쩐 일이냐는 물음에 셋 다 모른다고 눈으로 말한다. 그들은 따로따로 나뉘어져 심문을 받았다.
“어때, 이렇게 된 바엔, 순순히 부는 게?”
현은 어이가 없었다. 그래 잠자코 있노라니,
“왜 대답 않기로 했나. 좋아. 그럼 내가 말하지, 이 자를 알지?”
그는 옆에 있는 명부에서 그 중 어느 이름을 가리키며 노려본다. 모르는 이름이다.
“모릅니다.”
“몰라아? 음…….”
그는 씨근거리면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현은 무심결에 한 걸음 물러났다. 형사는 다시 앉으면서 현에게 의자를 가리켰다.
“게 앉아. 그럴 게 아니라, 내 말을 들어봐. 너도 잘 알 테지만 수사관의 심증이란 게 있단 말야. 네가 나오는 데 따라서 조서의 분위기가 달라져. 가령 피의자는 완강히 심문을 거부하고 또는 허위 진술을 계속하고…… 운운하는 문구가 끼게 되면 검찰에 넘어가서 얼마나 불리한지 아나?”
“아니 도대체 전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가만 있는 건, 가만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형사는 눈을 가느스름히 떠가지고 건너다보았다.
“그래? 좋아.”
그는 턱을 고이고 바짝 낯을 가까이 대면서,
“너희들 거기 모여서 뭘 했어?”
“무얼 하다니요? ”
“음.”
그는 몇 번이나 머리를 흔들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현은 혼자가 되는 순간 비로소 무서움을 똑똑히 느꼈다. 형사가 다시 들어왔을 때 먼저 입을 연 것은 현이다.
“혐의는 잘못일 수도 있습니다. 먼지 어떤 혐의로 우리가 이곳에 오게 됐는지 말해주시오.”
“뻔뻔스런……. 너희들이 매일같이 모여서 불온서적을 읽고, 이 자들과 연락하여 국가를 전복할 의논들을 한 게 아니냐?”
“네?…….”
현은 너무 뜻밖의 이야기에 대뜸 이을 말을 몰랐다. 그제야 비로소 혐의의 테두리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전혀, 네, 오햅니다. 우린 그저 모여서 철학이나 문학에 대한 잡담을 하고 소일한다는 것뿐, 집이 너르고 하여 같은 집에서 자주 만났다는데 지나지 않고, 무슨 목적이 있었다든가 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현의 마음에서는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이 북받쳐올라왔다. 이게 우리의 그레이구락부에 대한 내 입에서 나온 풀이란 말인가. 잡담과 소일! 그리고 다음에 온 것은 이같은 표현을 뺏아낸 그 자에 대한 미움이었다.
“흠, 그렇다면 한 가지 묻지……. 만일 그뿐이었다면, 너희들은 다섯이 모이는 것을 그토록 비밀에 붙인 이유는…… 다시 말하면 너희들은 아무에게도 너희들의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며, 한사코 숨기려고 든 흔적이 있는데 그건 무슨 까닭이냐 말야?”
현은 말문이 콱 막혔다. 이 까다로운 그의 사정을 무슨 수로 이 자에게 알릴 것인가. 그러나 가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체면을 겨우 지키는 데까지 일을 비속화시키면서 누누한 풀이를 꾀했다. 형사는 뜻밖에 비꼬는 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간간히 짧은 질문을 던질 뿐, 죽, 고즈너기 현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현의 이야기가 끝나자 형사는 또 밖에 나가더니 한 반 시간이나 지나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또 나갔다가 이번에도 삼사십 분 후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현을 데리고 형사실로 왔다. 이윽고 K, M, C도 뒤미처 들어왔다.
“별일 없을 것 같아.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 집으로 돌려보낼 테니…….”
하고는 나가버렸다. 난로가에 의자를 끌어다놓고 앉은 채 그들은 입을 떼지 않았다. 그들은 저마다 무슨 비열한 일을 지지르고 난 연후에 동지를 만난 그런 느낌이었다. 심하게 말하면 동지를 팔고 놓여난 배반자의 괴로움을 똑같이 치르고 있었다.
이튿날, 아홉 시 좀 지나서 풀린 그들은 두 패로 갈렸다. K와 C는 집으로 돌아가고, 현은 M을 따라 구락부로 돌아왔다. 나올 때 그 형사는 수사 때문에
밝히지는 못하지만, 어떤 불온 단체와의 접선이 혐의의 내용이었음과, 키티는 일부러 끈을 다느라고 잡지 않았다고 하면서,
“잘 알 만한 양반들이니깐 과히 노여워 말게.”
하면서 현의 어깨를 탁 치는 것이었다. M이, 아래층에 있는 할머니한테 들른 탓으로, 혼자가 되어 도어를 밀고 방에 들어선 현은, 키티가 방 한가운데 서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할머니한테서 들었어.”
그 말에 대답은 않고 현은 키티를 쳐다보았다. 현은 자기가 자꾸 못난 생각만 들어 견딜 수 없었다. 누더기누더기 갈린 심정이었다.
“아무 것도 아냐, 학생 깡패로 잘못 알고…….”
“하생 깡패…….”
기티는 아주 의아스런 눈치다.
“하하하.”
현은 저도 모르게 허파가 푸들거려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정색했던 키티는 분명히 현의 그런 투가 못마땅한 눈치였다. 현의 머리 속에
는 이때 무슨 생각이 번개같이 지나갔다. 현은,
“그건 .그렇고, 키티 큰 일이 있어.”
“큰 일?”
“음.”
현은 한참 머뭇거렸다. 그것이 더욱 키티를 건드리는 모양이었다.
“아이 왜 사람이 저 모양일까?”
현은 그제야 고개를 번쩍 들었다.
“키티 다름이 아니고, 키티의 자진 사퇴를 권고하도록 구락부를 대표해서 내
가 위촉을 받았어.”
순간 키티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그건…….”
“역시, 역시, 오산이었어. 맨 처음 내가 키티더러 들어오라고 한 것은 짧은 생각이었어. 키티에겐 책임없는 일이야. 허나 그 이후로 잘 아는 바와 같이 구
락부의 평화랄까, 그런 것이 키티로 말미암아 야릇하게 됐어. 그래서 의논한 끝에…….”
현의 말은 찢어질 듯한 키티의 웃음으로 끊어졌다.
“호호호호…….”
키티는 죽자고 웃고만 있었다.
“호, 실, 실례합니다. 그레이구락부에서 제명처분. 오우 이 일을 어쩌나, 그건 저의 목숨을 뺏는 것보다 더 잔인한 일이에요. 현자의 집에서 쫓겨나면 나는 어디서 슬기를 찾으란 말입니까? 최고의 달인들의 단수 높은 사교실, 영혼의 밀실에서 지를 추방하다니 잔인해요. 호호호호…….”
키티는 웃음을 딱 그쳤다.
“웃기지 마세요. 그레이구락부가 무에 말라빠진 것이지요? 무능한 소인들의 만화, 호언장담하는 과대망상증 환자의 소굴, 순수의 나라! 웃기지 말아요. 그 남자답지 못한 잔 신경, 여자 하나를 편안히 숨쉬게 못하는 봉건성. 내가 누드가 되었다고 화냈지요? 천만에, 난 당신들을 경멸하기 위하여 몸으로 놀려준 거에요. 그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대는 꼴이란. 그레이구락부의 강령이란 게 정신의 소아마비지. 풀포기 하나 현실은 움직일 힘이 없으면서 웬 도도한 정신주의는? 현실에 눈을 가린다고 현실이 도망합니까. 난 당신들 때문에 버러졌어요. 뭐 그렇다고 나 자신의 책임을 떠맡아달라는 소린 아니구요. 허긴 방황도 또한 귀중한 것이니까요. 내가 한 수 늦었군요. 소박맞도록 눈치가 없었으니. 어떻습니까? 이것도 인연, 옛 동지가 아닙니까? 자 그럼 아디유, 그러나 마지막으로 나의 영원의 애인 그레이구락부의 번영을 빌며…….”
노여움, 게다가 일부러 신파조를 부려가며 기가 죽지 말자고 너무 악을 쓴 때문에, 키티는 낯이 핼쓱해서 숨이 턱에 닿아있었다. 현은 말없이 한참이나 그대로 있었다. 마치 넋을 잃은 사람 모양으로 한참이나 그러고 섰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키티…….”
“천만에, 그 광대 같은 이름도 곱게 돌려드립니다. 창피해요, 언제부터…….”
“키티…….”
현의 소리는 무겁고 누르는 듯한 힘이 있었다.
“키티, 좋자고 만났던 사람들이 왜 이다지 미워하면서 이렇게 상대방의 가슴에 모진 못을 박고 갈라져야 합니까?”
키티가 더 까불지 못하도록 장중하고 침통한 목소리였다.
“키티를 위해 그런 방법을 취했으나 이렇게 해어져서는 참을 수 없어. 키티는 역시 여자야. 그리고 너무 정이 없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기티는 M과 K, C와 나 즉 구락부가 모조리 검거된 진상을 알아보기도 전에, 그 말을 확인하기도 전에 그만 화를 냈거든. 깡패. 그런 말을 했었지 내가?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 허긴 키티가 실컷 경멸한 바에 의하면 깡패보다 못 하지만 그래도 방향이 전혀 다른 것쯤이야 알아줄 테지…….”
키티의 얼굴에 헝클어진 빛이 지나갔다.
“키티, 키티는 정말 실천력의 찬미자였나? 행동의 챤미자였나? 들어봐. 그레아구락부는 기실 무정부주의와 테러리즘을 내세우는 비밀결사의 세포였어. 놀래? 농담이라구? 키티, 인간이란 복잡한 짐승이야. 크롬웰의 민완 비서가 저 밀턴이었던 일을 키티도 알지. 바이런이 희랍에서 죽은 것은, 하이네가 혁명의 동조자였던 것은 다 무엇일까? 시인은 힘을 찬미해. 시인의 깊은 마음 속에는 제왕의 꿈이 숨어있는 거야. 플라톤이 정치학을 누누이 풀이한 건 무슨 생각에서일까? 사람이란 아주 복잡한 거야. 해방되고 연이어 일어난 지, 정계 거물 암살범들의 뒤가 이내 아리송한 채로 있는 건 다 아논 일인데, 어떤 측에선 공산당일 줄로 짐작도 했지만 그도 아니었단 말야. 바로, 우리 결사의 손이었어. 우린 플라톤의 공화국을 이념으로 시인하면서, 테러를 마다하지 않아. 마르크스의 유토피아를 인정하면서 사람의 기계화는 반대야. 지금 학계의 인사들 중에도…… 아 이건 쓸데 없는 말이고…… 자 그런데 바로 키티에게 정말 사람으로서 깊은 사죄를 먼저 하면서 줄여서 말하면, 키티를 모임에 넣은 것은 눈속임이었어. 무쇠의 육중한 빛깔에 엷은 복숭아 빛을 빌어다 가리개를 한 것이었어. 노여워 말아. 아니 그건 바라서는 안되고……. 헌데 이 조직의 일부가 잡혔어. 세포가 검거됐단 말야. 우리 세포와 가장 가까왔던 조직이야. 우선 우리가 지금 나오기는 했으나 K와 C는 아직 갇혀있고, 경찰이 우릴 짐짓 놓은 것도 꾀를 쓴 줄 번연히 알아. 그러나 그들의 수사를, 헛갈리게 만들어, 때를 벌자는 게 우리 속셈이거든. 조만간 다시 들어갈 몸이야. 이번에 놓인 건, 끝까지 문학 청년들의 동호구락부라고 순진을 꾸몄더니 친구들도 알쏭달쏭한 모양이야. 허나 그것도 시간 문제야. 키티는 아무 피해가 없을 거야. 사실 아무것도 몰랐으니깐. 사실대로만 나중에도 말하면 아무 일도 없어. 이 구락부로 더 나오지 않게 하려고, 어수선해질 앞으로의 며칠 간을 공연히 휩쓸어 고생시키진 말자고 한 노릇이, 그만 키티의 비위를 건드렸어. 난 키티와 그런 식으로 갈라질 순 없어. 그렇게 된 거야. 사람은 복잡하고 깊다는 것, 나쁜 놈들에게 써먹혔을 망정, 키티의 말마따나 헤매어보는 것도 또한 귀중하잖아? 그리고 키티의 말씀에서 나중 대목 실천과 행동의 장(章)에 대한 대목은 거둬들여 줄 테지. 하하……. 아, 고단해……. 그리고 이 못난 놈은 키티를 조금은 사랑했어…….”
현은 머리를 짚으며 비틀댔다.
“이상, 이상이 진실의 모두올시다. 여왕이시여…….”
어느새 키티는 원탁자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흐느끼는 어깨를 현은 물끄러미 보고만 있다. 얼마나 지났을 때일까?
“으하하하하하…….”
미친 듯한 너털웃음에 키티는 퍼뜩 머리를 들었다.
“으하하하하하…….”
찢어지게 눈을 부룹뜨고 허리를 붙안고 현은 웃는 것이다. 키티가 벌떡 일어났다. 아까부터 몇 번이나 곤두박질을 하는 참과 거짓의 재주놀이에서 그녀는 얼이 빠져있었다.
“으하하하하하……. 키티 어때 이만하면. 난 영화의 신인모집에 가볼 테야. 박진적 연기, 으하하하하하…….”
짐승처럼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키티의 두 손이 탁상의 부엉이 다리를 움켜잡은 것과, 그 부엉이가 깃소리 요란하게 현의 얼굴을 향해 덮쳐온 것과, 현이 두 손으로 피가 번지는 얼굴을 감싼 것이 말하자면 모두 한꺼번에 일어났다. 키티는 그대로 마루 위에 까무라쳐버렸다. 그러나 현의 웃음은 멎지 않았다. 그는 낭자하게 부엉이의 깃털이 흩어진 마루바닥을 내려다보며, 얼굴에서 흐르는 피는 아링곳 없이 웃는 것이다.
“으하하하하하…….”
문이 열리며 M이 들어섰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현은 퍼뜩 잠이 깨었다. 흐릿한 푸른 안개가 자욱히 방 안에 퍼졌고 괴괴한 고요함이 잠에서 깬 그의 둘레를 휩싸고 있었다.
―—키티가 까무러친 일, 뒤이어 들어온 M, 깨어난 키티가 열을 내어 부득이 묵고 가게 된 일. 그의 마음이 잠들기까지의 그러한 일들이 지금 막 깬 그의 마음의 빈 자리를 메꾸어주려는 듯이 차츰 떠올랐다.
그는 잠들었던 소파에서 조심스레 몸읕 일으켰다. M은 얼굴을 벽으로 돌리고 깊이 잠든 모양이었다. 현은 키티가 누운 소파를 건너다보았다.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에, 창백한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그는 조심스러이 걸음을 옮겨 그녀의 얼굴을 바로 눈 아래로 내려다보는 자리에서 멈추었다. 광선의 영향으로 유난히 하얗게 오뚝해보이는 코가 장난감의 그것처럼 서툴어보여서 가여움을 불러일으킨다.
현은 그녀가 깨어 일어나 앉기를 기다리기나 할 것처럼, 그대로 서있었다. 그의 마음은 잔잔했다. 잠에서 덜 깨어서 벙벙한 것인지. 그러나 그린 생리적인 것은 아닌 모양이다. 현은 키티의 그 잠든 얼굴에서 비로소 이성을 알아보고 있었다. 지금껏 현에게 있어서 키티는 이성이라느니보다 재주 있는 사람이었다. 그 재주가 키티의 끄는 힘이었다. 크리스마스날 그녀와 입술을 맞추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똑똑치 못한 여자와 어울리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현의 수에 골탕을 먹고 이렇게 남의 집 소파에서 잠든 키티는 그저
여자였다. 그리고 현 자신도 그저 남자인 것을, 그지 사람인 것을 느끼는 것이
었다. 아름답고 신비하지만 그것만을 쓰고 있을 수 없는 탈을 이제는 벗어야 할 것이 아니냐, 현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현자도, 철인도, 공주도 아닌 그저
사람. 얼마나 좋은가. 더 멋있다.)
그는 다시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창가로 붙어 서서 바깥을 내다보았다.
이슬을 받은 바위 등걸들처럼 번들거리는 가까운 지봉에서, 부연 안개구름 같은 멀리의 지붕들까지, 달빛 아래에 보는 깊은 밤의 도시는 처음 보는 동네
같았다.
아무런 뉘우침도 없었다. 모든 일이 잘된 것이었다. 현은 자기의 몸을 둘러보고, M을 바라보고 다음에 키티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왜 산다는 것은 이렇게 재미있을까?’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이 지붕들 위로 눈부신 해가 솟는 것을 현은 그려본다. 그 빛나는 아침을 꼭 보고만 싶었다. 감자기, 졸음이 덮쳤다. 그는 소파로 돌아와서 조용히 드러누웠다. 마지막 한 발자국마지 깊은 잠의 진구렁 속에 폭 빠지기 바로 앞서, 그의 눈 속에서, 솟아오르는 햇바퀴의 빛살이 쫙 퍼져나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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