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서울로 예배를 드리러 가는 길이다.
아내가 나를 가만히 보더니 왜 실없이 웃느냐고 묻는다.
나도 모르게 눈가에 자꾸만 미소가 지어진 까닭이다.
어제 있었던 일을 곰곰이 떠올려 보고, 아침에 적어둔 글을 다시 읽어보니 어제의 따스한 풍경이 눈앞에 환영처럼 선명하게 피어오른다.
“웃지 마요.”
“웃음이 자꾸 나오는 걸 어떡해.”
아내에게는 자주 만나는 각별한 지인이 한 명 있다. 내가 운영하는 꽃모임을 통해 알게 된 회원의 부인인데, 부부 동반 모임에서 자연스레 친해져 이제는 동갑내기 친구처럼 편하게 지낸다. 두 사람은 거의 매일 함께 산책을 즐길 만큼 절친하다.
그 지인은 아내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의지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아이가 엄마에게 응석을 부리는 듯도 싶고,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에는 늘 다정한 정이 듬뿍 묻어난다. 지인은 아내가 하는 일이라면 단 한 번도 마다하거나 반대하는 법이 없다.
오늘 아침에도 전화가 왔다. 모처럼 좋은 곳으로 나들이를 가자는 제안인 모양이다. 지인이 말만 하면 아내는 늘 알아서 척척 준비를 다 해주니, 지인은 그저 기분 좋게 몸만 따라오면 된다. 몇 번 여행을 함께 다니며 ‘이 사람에게는 모든 걸 맡겨도 안심이 된다’는 깊은 신뢰가 쌓인 까닭이다.
둘이 나눈 대화를 곁에서 가만히 듣고 있자니, 꿀이 뚝뚝 떨어진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따스한 온기가 전해져 온다. 사람과 사람이 이토록 마음이 통하면 삶이 이처럼 밝고 따스해지는가 보다.
마음이 통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여기에는 반드시 ‘서로’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한쪽의 일방적인 마음만으로는 결코 참된 통함에 이를 수 없다. ‘서로’라는 두 글자 안에는 수많은 이해와 무게가 담겨 있다.
‘서로’라는 말은 단순히 두 사람이 만났다는 물리적 사실만을 뜻하지 않는다. 내 마음을 비워낸 자리에 상대의 마음을 고이 품어주고, 상대가 보내온 신뢰에 내 진심을 더해 화답하는 ‘쌍방향의 기적’이다.
지인이 아내를 그토록 의지하고 좋아하는 까닭은, 아내가 먼저 조건 없이 따뜻한 품을 내어주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지인 역시 그 고마움을 알아 아내를 온전히 믿고 따라주었기에, 두 사람 사이에 비로소 샘물처럼 달콤한 정이 넘쳐나는 것이리라.
일방적인 애정은 집착이 되기 쉽고, 대가를 바라는 관계는 금세 지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상대를 향해 온전히 마음을 열고, 그 마음이 거울처럼 반사되어 돌아올 때 비로소 ‘마음이 통하는 길’이 열린다.
아내와 지인이 나누는 정겨운 대화를 곁에서 지켜보며 새삼 깨닫는다.
진정한 통함이란 내 뜻을 상대에게 입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결을 그대로 인정하고 감싸 안아주는 온기라는 것을.
아침 햇살을 받은 꽃들이 서로를 향해 고개를 다정히 숙이듯,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까지 환하게 밝혀준다.
세상의 어떤 명약이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하고, 이유 없는 미소를 눈가에 번지게 할 수 있을까.
마음이 통하는 이를 곁에 둔 아내의 삶이 참 고맙고, 그 따스한 풍경을 곁에서 바라볼 수 있는 나의 오늘 또한 더없이 복되고 감사하다.
첫댓글 서로 마음이 통하고 의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복이지요
잘 읽었습니다.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네요. 고맙습니다.
부럽네요.
서로를 넘어 우리가 되겠군요.
실없이 웃어보고픈 하루를 지나갑니다. 실실 웃는
모습은 누구의 얼굴에나 아름다움이 배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