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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0년(1431) 영월군수 신권근에 건립한 자규루는 관풍헌 구내 동쪽에 있는 누각이다. 본래 이 누각의 이름은 매죽루(梅竹樓)이었다고 한다. 단종은 관풍헌으로 옮겨온 후, 이 누각에 자주 올라 자신이 직접 지은 <자규시(子規詩)>를 읊었다 하여 자규루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원통한 새가 되어 제궁을 나오니
짝 잃은 그림과 꿈은 산중이로구나
밤마다 틈을 내어 잠을 들려고 해도 잠은 오지 않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원한 맺힌 그 한
자규새 소리 멎고 조각달이 밝은데
피눈물 흐르고 꽃송이 떨어져 붉었구나
하늘도 귀가 먹어 애소를 못 듣는데
어찌하여 수심 많은 내 귀에만 들리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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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경치가 얼마나 빼어난 지 조선시대의 청백리 황희 정승과 대학자인 이퇴계도 금강정에 이르러 금강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고 한다. 또한 우암 송시열도 숙종 10년(1684)에 이곳에 들려 「금강정기」를 남기기도 했다.
금강정 주변은 금강공원으로 지정된 영월군민들의 휴식처로 이곳에는 영월 유생들이 학문을 탐구하던 영월향교가 있다. 이 향교는 태조 7년(1398)에 건립했으며, 공자를 모시는 대성전과 팔작지붕을 한 풍화루가 있다.
금강정 안에는 단종이 유배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야은공 정사종의 비석과 을사의병과 정미의병 때 영월 덕포리 전투와 주천면 판운리 전투 등을 승리로 이끈 정대억의사 순국비가 있다.
금강정에서 포도밭을 지나 낙화암쪽으로 가면 절벽 위에 '월기경춘순절지처(越妓瓊春殉節之處)'라고 쓴 이끼 낀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이 비석은 영월 부사 신광수의 수청을 거절하고 낙화암에서 뛰어내려 절개를 지킨 영월기생 고경춘의 순절을 기리기 위해 정조 19년(1795), 순찰사 손암의 후원으로 세운 것이다.
이 비석에서 동쪽으로 가면 낙화암이라는 절벽이 나온다. 1457년 10월 24일, 단종이 죽임을 당하자 단종을 모시던 시녀와 시종들도 이 절벽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는데 이들이 떨어진 절벽에는 이들을 기리기 위해 누군가 '낙화암(洛花巖)'이란 글씨가 새겨 놓았다.
단종 문화제가 열리는 한식이 되면 전야제 행사로 '낙화제'가 열리는데 이때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70개의 등불을 동강에 띄워 보낸다. 또한 이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금강정 부근의 언덕바지에 민충사를 지어 이들이 사망한 10월24일이 되면 제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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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을 전후로 3일간 단종 문화제가 열리면 전야제 행사로 금강공원에서는 '낙화제'를 개최한다. 낙화제는 이곳에서 충절한 시녀와 시종을 기리기 위해 불을 켠 유등 70개를 동강에 흘려 보낸다. 또한 단종이 돌아가신 년도를 따져 540여개의 유등도 함께 띄워 보낸다.
낙화암에서 순절한 시녀와 시종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금강정 부근의 언덕에 민충사를 짓고 이들의 위패를 모셨다. 매년 10월24일이 오면 영월군수와 지방의 유림들이 모여 이들의 제사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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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연에는 서로 이웃한 상선암과 하선암이라는 두 개의 섬이 있어 그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상선암은 바위섬 위에 늘푸른 소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하선암은 바위와 여자의 긴 속눈썹 같은 자갈밭이 길게 펼쳐져 있다. 이들 섬에는 그 옛날 신선이 기거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여름철 성수기에는 이들 섬을 연결하는 나룻배와 사공이 있어 배를 타고 들어가면 된다. 예전에는 이 마을의 이해수씨가 사공을 했으나 1999년부터 임한규씨(011-362-1788)가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다.
어라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하선암에서 처음 배를 탄 곳으로 나와 북쪽 강변 길을 따른다. 강변 위쪽으로 조금 걷다보면 짧은 오르막이 나온다. 오르막 정점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르면 짧은 바위를 오르내려야 한다. 위험한 곳에는 밧줄 등이 설치되어 절벽 끝까지 갈 수 있다.
끝 부분의 벼랑에 서면 어라연의 북쪽 문산리 풍경과 상선암과 하선암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어라연의 그 푸른 물빛이 감탄사처럼 다가선다. 이곳을 다 감상했다면 다시 왔던 길로 걸어나와야 한다.
영월동강 뗏목제
정선아라리의 애환을 싣고 흐르던 그 옛날의 정취
우리나라의 강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으로 손꼽히는 동강변에서는 매년 7월 말일경부터 8월 초순 사이 3일간 '영월동강 뗏목제'를 연다. 영월동강 뗏목제는 60년대만 해도 영월을 거쳐 서울로 갔던 뗏목의 옛 정취를 재현하는 영월군의 강변 축제다.
뗏사공들의 고증에 의해 제작된 길이 약 15m, 폭 약 3m의 뗏목들이 영월읍 거운리 섭새강변에서 출발하여 물길을 따라 동강변까지 약 12Km를 내려가면서 그 옛날 뗏사공들의 모습을 재현한다.
축제 첫날에는 풍물놀이 공연과 개막식, 동강 대동장승제, 통나무 멀리던지기, 레프팅 테마여행, 농산물 품평회, 찰옥수수 빨리 먹기, 맨손으로 물고기 잡기, 토종 어린 고기 방류, 모래조각 경연, 뗏목 도착 축하 공연, 식전 이벤트, 뗏목 콘서트, 강변영화제 행사 등을 한다.
이밖에 뗏사공들이 쉬어가던 주막거리와 물레방아 재현하며, 동강 미술전시회, 동강 사진전시회, 농특산물 판매장터운영, 농산물 전시회, 향토음식 맛자랑 행사 등을 한다.
둘째 날에는 뗏목고사, 뗏목 제작 시연, 뗏목 띄우기 시연, 통나무 운반하기, 통나무 장기대회, 통나무 외줄씨름, 동강 뗏목 민속학술심포지엄, 견지낚시대회, 동강 그림 그리기, 페러글라이딩대회, 어린이 풋살대회, 동강보물찾기, 국악공연, PUMP경연대회, 동강가요제 등의 행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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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강원도기념물 제5호)가 유명해진 것은 청령포의 아름다운 풍광과 17세의 단종이 세조 3년(1457)에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2개월 동안 유배된 곳이기 때문이다. 단종이 이곳에 머물렀을 당시 일반인들의 엄격하게 통제했으며, 포졸 50명을 상주시켜 단종을 감시하였다.
청령포 나루터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이 왕방연의 시조비다. 그는 단종이 먹을 사약을 들고 온 금부도사의 신분이었다. 그는 그 직책이 죽어도 싫었겠지만 세조의 명을 수행해야만 아는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그는 그의 심경을 시조로써 후세에 남겼다.
천만리 머나먼 곳에 고운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청령포로 들어가려면 청령포나루를 오가는 자그마한 유람선을 이용하면 된다. 청령포의 물빛은 언제 보아도 눈이 시릴 정도로 늘 푸르고 이내 청령포에 닿는다. 반월도처럼 퍼져 나간 모래사장은 한여름 더위를 식히기 안성맞춤이다. 강가의 자갈밭 길을 따라 걸어들어가면 울울창창한 송림이다. 거의가 아름드리 소나무이고 면적이 광대하다.
조선조 영조 2년(1726)에는 이곳의 소나무를 함부로 베내어 가지 말라는 뜻의 '금표(禁標)'비를 세워두었고, 지금까지 전해진다. 송림 속 곳곳에 벤치도 놓아두어서 편히 쉴 수 있다. 송림 속의 단종이 거처하던 집은 허물어져 주춧돌만 남아 있었으나 1990년대에 들어 영월군이 복원했다. 시녀들이 지내던 초가집도 다시 세우고 시녀 인형도 앉혀두어 당시 단종의 유배생활을 한결 실감나게 추측해볼 수 있다. 청령포의 소나무들은 한결같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지만 그중에도 최고 미인 소나무는 관음송이다. 대개 관음이란 이름은 관세음보살의 의미이지만 이곳의 관음속은 '단종의 애닯은 사연을 보고 들었다'고 하여 볼 관(觀) 자 소리 음(音) 자를 썼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밑둥 지름은 약 5m인데, 지면으로부터 약 1.2m의 높이에서 특이하게 두 갈래로 갈라져 30m쯤 치솟았으며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모습이 미인처럼 아름답다. 천연기념물 제349호다.
관음송에서 서쪽의 산비탈을 조금만(50m쯤) 올라가면 단종이 앉아, 두고 온 한양쪽을 바라보았다는 노산대 꼭대기에 다다른다. 발 아래는 수십 길 절벽이고, 그 밑으로는 서강이 유유히 흘러 매우 아름답다. 석양 무렵에 특히 좋다. 또한 이곳에는 단종이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막돌로 쌓아올렸다는 '망향탑'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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