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환 사상의 꽃들 15권에서
구토ㅡ우주
엄재국
캔버스는 회화의 우주다
나는
구상 또는 색채의 현상적 표현의 한계성에 대하여 절망한다
유와 무, 현상과 실체, 물질과 암흑, 존재와 무,
그 경계에 펄럭이는 깃발,
점과 선, 시간과 공간, 면과 입체의,
그
한계성과 절대성에 대한 구토
나의 구토는
회화의 실체적 우주를 드러내기 위한
전복적 배설,
열락의 고통,
그 쥐상스(jouissance)의 구토다
그러므로
캔버스에 대한 물감의 구토는
그 우주에 대한 유한성의 내가 가지는
절대적 허무를 거부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나는
구토하고 또 구토한다
----[애지], 2023년 봄호에서
구토란 위장 속의 내용물이 식도를 거쳐 입 밖으로 나오는 증상을 말하고, 구토는 여러 질환에 동반하여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할 수가 있다. 위장이나 십이지장 등 소화기계의 이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뇌출혈, 뇌경색, 뇌수막형 등의 신경계 이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폐와 심장의 질환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암과 정신질환과 약물 등에 의해서 나타날 수도 있다.
엄재국 시인의 [구토-우주]는 ‘나는 구토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시적 존재론의 소산이며, 그의 구토는 “구상 또는 색채의 현상적 표현의 한계성에” 대한 “절망”의 몸짓이라고 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캔버스는 회화의 우주”이며, 그는 그의 그림으로써 너무나도 아름답고 너무나도 완벽한 “회화의 우주”를 완성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유와 무, 현상과 실체, 물질과 암흑, 존재와 무” 등의 상호 모순적인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고 그 이상적인 회화의 우주를 창출해내야 하지만, 그러나 그는 그 어떤 것도 창출해내지 못한다. 따라서 엄재국 시인의 ‘구토’는 단순한 육체적, 정신적 증상이 아니라 지양되어야 할 모순이며,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대립과 갈등이라고 할 수가 있다. “유와 무, 현상과 실체, 물질과 암흑, 존재와 무”의 “그 경계에 펄럭이는 깃발”을 접고 새로운 우주로서의 ‘캔버스--회화의 우주’를 창출해내야 하지만, 그러나 “그/ 한계성과 절대성에 대한 구토”만을 하게 된다.
엄재국 시인의 구토는 세 가지 차원에 걸쳐져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첫 번째는 하나의 환영처럼 회화의 우주, 즉, 이데아의 세계를 본 자의 구토이고, 두 번째는 그 이데아의 세계를 창출해낼 수 없는 화가로서의 구토이며,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구토를 함으로써 구토를 자기 자신의 존재론적 근거로 삼을 수밖에 없는 “쥐상스jouissance”, 즉, “전복적 배설/ 열락의 고통”으로서의 구토라고 할 수가 있다. 회화의 우주, 즉, 이데아의 세계를 본 자는 현실을 참을 수가 없고, 또한, 현실에서 그 이데아의 세계로 갈 수 없는 자는 자기 자신의 못남과 한계에 대한 구토를 할 수밖에 없다. “캔버스는 회화의 우주다/ 나는/ 구상 또는 색채의 현상적 표현의 한계성에 대하여 절망한다”가 그것을 말해주고, 또한, “나의 구토는/ 회화의 실체적 우주를 드러내기 위한/ 전복적 배설/ 열락의 고통/ 그 쥐상스jouissance의 구토다”가 그것을 말해준다. 의식주, 즉,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은 노동이고, 먹고 사는 것이 아닌 이데아의 세계, 즉, 아름다운 세상을 창출해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은 예술이다. 노동은 필요를 위한 생산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시간과 육체를 구속하지만, 예술은 이데아의 세계, 즉, 아름다운 세상을 창출해내기 때문에 그의 시간과 육체에 자유와 자발성을 부여하게 된다. 이 자유와 자발성의 소산이기 때문에 엄재국 시인은 구토를 하면서도 그 구토 속에서 쾌락을 느끼며, “그러므로/ 나는/ 구토하고 또 구토한다”는 구토의 존재론을 역설하게 된다.
구토는 열락의 고통이며, 이 열락의 고통은 그가 시인으로, 또는 화가로서 최고의 행복을 향유하는 순간을 제공해준다. 구토의 생산성과 구토의 불꽃으로 [구토--우주]가 타오르고, 이 [구토--우주]가 만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이데아의 세계로서 그 생명력을 발휘하게 된다. [구토--우주]는 미완의 작품이라는 점에는 불완전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욱더 처절하고 고통스럽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거꾸로 그 어떤 완전함을 능가한다. 구토를 하지 않은 사람은 예술적으로 미숙하고 둔감한 사람이며, 구토를 하는 사람은 그 구토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보다 더 높이 높이 끌어올리는 예술가라고 할 수가 있다.
시란, 예술이란 인간의 사상의 진수이며, 인간의 사상이란 최고급의 지혜이며, 이 사상의 꽃만이 그 어떤 아름다움보다도 더욱더 아름다운 [구토--우주]의 꽃이 된다.
[구토--우주]의 세계를 구상하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화가가 될 수 없고, 구토를 하지 않고 구토의 역동성을 모르는 사람은 이데아의 세계, 즉, 아름다운 세계의 주인공이 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