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동양에서의 친구는 동갑이어야 하고, 서양의 Friend는 동지同志 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런데 장유유서가 뿌리 깊었던 조선시대에 Friend 에 관한 사록史錄이 있어 놀라다.
표암 강세황은 <단원기>에서....
단원 김홍도는 젖니를 갈 때(7,8세 때)부터 그림을 배우기 위해 표암 강세황(40세) 집에 드나들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처음에는 사제지간으로 만났지만 나중에는 32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잊고 지기知己가 되었다.
(나이를 반으로 꺾는) 절년이하지折年而下之 였지만 (나이를 잊고) 망년지우忘年之友가 되었다.
뜻이 같고, 느낌이 같으면 이렇게 나이나 언어에 소소하게 거슬리지 않는 막역지우가 될 수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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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얘기를 소개한 유홍준의 글에도 가끔 친구 얘기가 등장한다.
(그들의 대화 스타일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옮겨 봅니다.)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는 서화書畵를 보는 눈 외에도 세상의 추이를 보는 안목이 있었다. 그는 말년엔 조국의 장래를 위하여 가회동 집에서 김옥균, 서광범, 홍영식 등 젊은 양반 자제들을 불러 모아 개화사상을 가르칠 정도로 안목이 원대했다. 지금 시대에는 찾아 보기 힘든 대안목이었다.
그래서 한 번은 이 시기 역사를 전공하는 내 친구인 안병욱 교수에게 그의 안목에 대해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안 교수, 박규수는 안목이 대단히 높았던 것 같아."
그러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야, 박규수의 안목은 깊었어."
이에 우리는 안목이 높으냐, 깊으냐를 놓고 한참 '논쟁'을 하였다.
이때 마침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을 만나게 되어 누가 옳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당신의 대답은 또 달랐다.
“둘 다 틀렸어. 박규수의 안목은 넓었어."
(이 글을 읽으면서 문득 '이 사람들 뭐지?'.... 설령 친구가 틀린 얘기를 해도 맞다고 동조하거나 침묵하거나 적극 공감하거나 해야 하는데.... 하물며 이 사람들은 '안목이 좋다'는 것에 서로 공감하면서도 순간 동어반복을 피하며 각자 '높다, 깊다, 넓다'라는 자기 표현을 해내는 순발력도 좋지만..... 자기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 학자들 끼리 자기를 드러내는 귀여운 자존심 싸움?에 피식 웃게된다. 이어서....)
확실히 박규수의 안목은 보기에 따라 높고, 깊고, 넓었다. ....
예술을 보는 안목은 높아야 하고, 역사를 보는 안목은 깊어야 하고, 현실 정치·경제·사회를 보는 안목은 넓어야 하고, 미래를 보는 안목은 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유홍준은 여기에 다시 '멀다'를 추가한다ㅎ)
우리 사회 각 분야에 굴지의 안목들이 버티고 있어야 역사가 올바로 잡히고, 정치가 원만히 돌아가고, 경제가 잘 굴러가고, 문화와 예술이 꽃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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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다른 글을 보자.
재밌는 것은 위에서는 '내 친구 안병욱 교수, 안교수'라고 칭하는데 반해 이번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그냥 '건축가 승효상이, 화가 임옥상이'라고 칭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 하고 확인해보니 나이가 안병욱(+1) 승효상(-3) 임옥상(-1)이다.ㅋ
제주도 추사관은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것이다. 추사관을 개관한 뒤에 나는 명예 관장을 맡아서 하나씩 보완해가는데 어느날 (요즘 설치 미술에 미쳐서 조각을 열심히 하고 있는) 화가 임옥상이 찾아와서 추사관을 보더니 감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야~ 승효상의 대표작이네. 공간 운영이 기막히네요....
그런데 지상층의 공간을 저대로 놔둘거냐며 지금 '순간 자기한테 떠오른 생각이 있다'며 자기를 믿고 추사의 흉상을 맡겨달라고 사정하여.... 의뢰했다.
그렇게 승효상이 일부러 비워 둔 공간에 임옥상이 조각한 추사의 흉상을 앉힌 뒤에 승효상에게 임옥상과 같이 오라고 했다.
한참 침묵이 흐른 뒤 승효상이 입을 열고 임옥상에게 말했다.
"흉상이 왜 이렇게 커! 기껏 비워두었는데 여기를 다 채워버렸구먼"
그러고는 밖으로 나오면서 승효상은 나에게 귀엣말로 이렇게 말했다.
"작품 자체는 진짜 잘 만들었구먼. 그대신 난 망했어. 이제 추사관에 온 사람들은 승효상은 기억 못하고 임옥상만 칭찬하게 생겼구먼."
(건축가 승효상이 일부러 지상층을 완전 빈 공간으로 설계했는데 화가 임옥상이 그 공간에 추사의 흉상을 채웠던 것이다. 예술가들의 세계에서 - 어지간한 지기知己가 아니고서는 -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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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계적인 건축가라는 승효상(-3)이 예능프로인 유퀴즈에서 섭외가 왔다고 하여 '무슨 프로인가?'해서 예전에 출연했다는 친구 유홍준 편을 봤는데.... "맨 자기 자랑만 하고 가더란다"ㅎ
(그것도, 심지어 '지 자랑'이라고 할려다가 얼른 방송용어로 바꾸는 모습도 보인다.ㅎ)
'대문호'라는 표현도 '(내 덕분?에) 책이 많이 팔려서 요즘 어깨에 힘 주고 다닌다'는 절친 간의 표현이다.ㅎ
달변의 유홍준과 달리 눌변의 칠순 건축가에게 듣는 "죽이 잘 맞았다, 그 친구가 내 속을 살살 긁었다(약 올렸다)."는 표현도 재밌다ㅎ
연예인 중에서도 정준호, 신현준 같은 사람들만 그런 줄 알았는데 저 나이에 저렇게 초심?을 잃고 막 이래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일반 사람들과는 결이 다른 관계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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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나의 안목이 부족하여 제주도 추사관이 인근 주민들처럼 감자창고로 보인다는 것이다.ㅎ
시간되시는 분은 아래 동영상도 보시길....
문재인과는 50년지기 경남고 동창으로 당시 '文科의 문재인, 理科의 승효상'이라고 할 정도로 둘 다 수재였다고 하며 둘 다 상황이 되면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고 한다..... 양산 사저도 승효상 작품이라고 한다....